레스 - 앤드루 숀 그리어 장편소설
앤드루 숀 그리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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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리뷰가 대만족인 반면 나는 참으로 힘들게 꾸역꾸역 읽었다. 50번째 생일을 두려워하는 늙은 게이 레스는 분명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인물인데, 문화와 감성이 달라서 였을까...읽으면서 글 자체가 이해가 안가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고, '엄청나게 웃긴 소설'이라는 광고 문구가 무색하게 난 2번 정도 피식~하고 웃었던거 같다. 약간 병맛 개그랄까, 난 확실히 병맛을 좋아하지 않는거 같다.

 

영리하고 재치있는 소설임에는 분명하나 "실연을 당한 주인공이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삶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갖고 돌아오지 않겠느냐..." 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했기에 '딱히 재미도 없는데 계속 읽어야 할까?' 10번은 고민했던거 같다. 수시로 과거의 상념에 빠지는 레스 덕분에- 이 점이 특히나 힘들었는데- '아, 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못 읽겠구나...' 싶었다.

 

다른 책 같았으면 그냥 덮었을텐데 퓰리처 상 수상작이라니까! 내가 읽은 퓰리처 수상작은 <로드>하나니까, 허영심이 발동, 또 다들 재밌고 웃기고 감동적이라고 하니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어떤 오기가 발동했던거 같다. 그리고 7일에 걸쳐 결국엔 읽은 것이다.

솔직히 부끄럽다. 나의 무식함으로 인해 위트있는 소설을 이해못한거 같아서.

 

내가 미국 뉴욕에 살았을 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그 시절 길에서 또 일하는 데서 게이들을 많이 봤는데, 정말 레스처럼 마른듯한 몸매에 멋쟁이이고 진짜 모델과 같은 아우라를 풍긴다. 길거리를 세련되게 걸어다니는 잘생긴 남자는 대체로 게이라고 보면 된다고 누군가 말해준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같이 매우 예의바르고 친절했다는 점이다. 타국에서의 힘든 생활 속에서 우연히 경험한 그들의 부드러움과 세심한 배려에 나도 모르게 울컥한 적도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알게되었다. 그들도 차별받는 소수집단이고 나 또한 동양에서 온 약자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슬픔을 느낀 구절을 적어본다. 모로코에서 두 소년이 서로 팔을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슬픔을 느끼는 레스.

 

p.216~217 

두 소년은 서로에게 팔을 두르고 있다. 레스에게는 너무 낯설어 보인다. 그걸 보고 있으니 슬퍼진다. 그의 세계에서는 한 번도 이성애자 남성들이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마라케시의 거리에서 게이 커플이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카고 거리에서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한들 남자 둘이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지금 이 청소년들처럼 모래언덕에 앉아 서로의 품에 안긴 채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없다. 허클베리 핀에 대한 톰 소여의 사랑.

 

사랑이란...레스의 레즈비언 친구 조라의 말.

 

p. 231

"나더러 평생의 사랑을 만났다고 하더라." (중간 생략) "하지만 평생의 사랑 같은 건 없다는 걸 다들 알잖아. 사랑은 그렇게 두려운 게 아니란 말이야. 사랑은 씨발, 다른 사람이 편히 잘 수 있도록 개를 산책시키는 거고 세금을 내는 거고 악감정 없이 화장실을 청소하는 거야. 삶에 동맹을 두는 거라고. 사랑은 불이 아니고 벼락도 아냐. 사랑은 그녀와 내가 늘 해왔던 그런 거 아냐? "

 

이 책은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가볍고 위트가 있다.  다루는 주제는 사랑, 인간관계, 일과 커리어, 나이듦과 외로움, 성소수자의 정체성 등과 같은 살면서 우리가 겪을 수 밖에 없는 고민들이다. 가볍고 유쾌하지만 때로는 심오한 통찰과 철학적인 사유를 재치있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내가 이 소설의 장점인 이런 위트를 더 잘 이해했으면 좋았겠지만, 레스가 긴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샌프란시스코 자기 집 현관을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선, 삶이란 뒤죽박죽 엉망이기도 하지만 어딘가엔 뜻하지 않은 선물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50번 째 생일, 나에게도 올텐데 그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레스를 생각하며 삶의 밝은 면을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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