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2
켄 키지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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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1950년대 비트 세대와 1960년대 히피 세대를 연결하는 작가'인 켄 키시(Ken Kesey 1935~2001)가 정신 병원에서 야간 보조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1962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듬해에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상연되었고 1975년에는 체코 출신 밀로스 포먼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섯 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의 상을 받았다.


이야기는 한 정신 병원에 가짜 환자인 맥머피가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그는 이런 저런 범죄를 저지른 잡범으로 교도소 작업 농장에서 일하다가 싸움을 일으켜 정신 이상 판정을 받아 정신 병원으로 오게 되었는데, 사실은 고된 노동을 해야하는 교도소 보다는 정신 병원이 더 편하고 자유로울 거라는 생각에 미친 척하고 병원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맥머피는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래치드라는 수간호사를 중심으로 '정밀한 기계처럼 운영'(p.52)되는 병원은 치료를 이유로 환자들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또 다른 감옥이었던 것.


[사방 벽이 짓누르고 있는 듯 갑갑한 분위기가 감돈다. 너무 갑갑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곳은 정말 이상하다.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웃으려 하지 않는다. (p.87)]


이 병동에서 가장 오래 머문 환자는 '빗자루 추장'이라고 불리는 브롬든으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 1인칭 화자인 '나'이다. 브롬든은 귀머거리, 벙어리인 척하며 병동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찰한다. 브롬든은 이 세상은 콤바인이라는 무시무시한 권력이 통치하며 '병동은 콤바인을 위한 공장'(p.72)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은 비정상적인 인간이 들어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완벽한 존재가 되어 나'가는 곳으로, 수간호사는 병원의 책임자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냉혹한 인물이다. 래치드 수간호사는 항상 온화한 표정이지만 속마음은 경직되어 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고야 만다. 



[수간호사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하다. 마치 그녀 자신이 원하는 표정을 조각하여 색칠을 한 것 같다. 여전히 차분하다. 자신감과 인내심이 있는 침착한 표정이다. (...) 오싹할 만큼 냉정한 표정의 얼굴, 빨간 플라스틱을 짓눌러 만든 것 같은 침착한 미소, 나약함이나 근심을 드러낼 만한 주름 하나 없는 반들반들하고 매끄러운 이마, 도화지에 그린 것 같은 녹색 눈.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기다릴 수 있어요. 이따금씩 작은 패배를 경험하기도 하겠지만 인내심을 갖고 침착하게, 자신 있게 기다릴 수 있지요. 왜냐하면 내 사전에 패배는 없으니까요. (p.189,190)]


맥머피는 이런 래치드 수간호사와 사사건건 충돌한다. 수간호사가 환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여 권력을 휘두를 때마다 특유의 장난과 비아냥거림으로 맞서지만 콤바인이라는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그녀를 이기기란 불가능하다. 환자들은 병원의 비인간적인 운영에 불만이 많지만 제대로 저항할 수 없는데, 저항하는 사람은 곧바로 중환자실로 끌려가 전기 충격 치료를 받거나 더 심하면 뇌 전두엽 절제술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식물인간, 즉 '만성 환자'가 됨을 의미한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환자들은 감히 수간호사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병원 규칙에 순응하며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맥머피는 이런 환자들에게 활력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기 위해 기꺼이 환자들의 앞에 서서 수간호사와 병원에 저항한다. 


이 소설은 바로 래치드 간호사로 대표되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정신 병원과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맥머피의 대립을 통해 인간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거대한 사회 시스템을 비판한 작품이다. 사회가 원하는 순종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해 문제가 있는 인간을 정신 병원에 가둬 자유를 억압하고 학대 함으로써 환자 스스로 병원을 떠날 수 없는 상태가 되게 만드는 모습은 거대한 조직 안에서 희생된 수많은 개개인의 모습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간 맥머피를 통해 인간에게 있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소설이다. 

맥머피 역으로 197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잭 니콜슨과 (작년에 타계한) 역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래치드 간호사 역의 루이스 플레쳐의 연기가 보고 싶어 영화를 찾았으나 없어서 유투브로 주요 몇 장면을 봤는데, 정말 잭 니콜슨은 소설 속 맥머피 그 자체였고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의 래치드 간호사 역의 루이스 플레처도 잭 니콜슨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명연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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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1-14 18: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재밌을것같아요! 영화 평점도 9.2가 넘네요< 뒤렌마트 희곡선>에서 ‘물리학자들‘ 생각도 나구요. 미드 <래치드>가 아마 이 간호사의 이야기를 확장해 만들었나봅니다.^^

coolcat329 2023-01-15 08:46   좋아요 1 | URL
어쩌다 래치드가 이렇게 냉혹한 간호사가 되었는지 넷플에서 프리퀄로 <래치드>만든거 같은데 평은 별로인거 같더라구요.
오 그러고보니 <물리학자>도 떠오를 수 있겠네요.
영화도 책도 다 명작입니다~~👍

새파랑 2023-01-15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제목이 익숙해서 읽어본거 같은 느낌이 들지만 안읽은 책이네요 ㅋ 역시 명작이어서 그런지 영화도 있군요 ^^ 역시 고전하면 쿨캣님!

coolcat329 2023-01-17 17:47   좋아요 0 | URL
영화도 있고 동명의 김건모 노래도 있어서 익숙하실 거에요~영화가 아주 유명하더라구요~^^

물감 2023-01-17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저는 이런 제목들을 보면 고리타분한 5~60년대 한국영화가 떠오르는지 모르겠어요...
여하튼 내러티브가 흥미진진하네요. 병원이 또다른 감옥이란 것도, 그곳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들도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ㅎ

coolcat329 2023-01-17 17:51   좋아요 1 | URL
아 ~혹시 정윤희 주연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때문이 아닌지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3-01-27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저도 한 번 보고
싶긴 한데 - 옛날 영화라
주저하게 되더라구요.

하긴 요즘에는 점점 더
영화에서 멀어지게 되네요.

coolcat329 2023-01-28 13:04   좋아요 1 | URL
저도 유툽에서 명장면만 봤답니다. 젊은 잭 니콜슨보며 역시 젊음이 좋구나...했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