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열린책들 세계문학 176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김소임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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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의 희곡을 처음 읽었다. 그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그 유명한 묘비명 뿐이었는데, 소설보다는 희곡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1925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다. 

평생 60여편의 희곡을 발효할 정도로 희곡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나는 그저 이름만 알고 있었던 것.

아! 그리고 정말 새로 안 사실은 이 희곡이 오드리 헵번 주연 뮤지컬 영화 <My Fair Lady>(1964)의 원작이라는 것이다. 


"천박한 영어를 하는 저 아이를 보십시오. 저 영어는 죽는 날까지 저 아이를 빈민굴에 처박혀 있게 할 겁니다. 자, 선생, 저는 석 달 안에 저 아이가 대사의 가든파티에서 공작 부인 행세를 하게 할 수 있어요. 저 애가 보다 수준 있는 영어를 요구하는 귀부인의 하녀나 가게 점원 자리를 얻게 할 수도 있습니다." (p.36)


<피그말리온>은 사람의 말소리만 듣고도 어디 출신인지 귀신같이 맞추는 음성학자, 헨리 히긴스가 길거리 하층민 소녀를 교육시켜 기품있는 숙녀로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길거리에서 꽃을 팔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녀 일라이자 둘리틀은 꽃집에서 일하고 싶지만 자신의 천박한 영어로는 그 일을 할 수 없기에 길에서 우연히 알게 된 히긴스를 찾아와 품위있는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영국 영어는 상류층이 쓰는 Queen's English 와 런던 이스트엔드 하층노동자가 쓰는 Cockney 로 나뉘어 진다고 하는데, 일라이자는 당연히 코크니를 사용, 다음 일라이자의 대사를 보면 왜 그녀가 꽃집에서 일할 수 없는지 알 수 있다. 


"Ow, eez yeooa san, is e? Wal, fewd dan y'de-ooty bawmz a mather must, eed now bettern to spawl a pore gel's flahrzn than ran awy atbaht pyin. Will ye-oo py me f'them?" 


아, 저 사람이 아줌니 아들이에유? 글씨, 아줌니가 에미 노릇을 지대로 했더라면, 저 인간이 불쌍한 여자애의 꽃을 다 망쳐 놓고 돈도 안 주고 도망치지는 않았겄지유. 물어 줄 거지유?(p.23)


생각보다 너무 심한 사투리아닌가...저 중에 아는 단어가 몇 개 보이지도 않고 런던에 살지 않는 사람은 영어권이라도 이해하기 힘들 듯 하다. 작가는 이해하기 힘든 그녀의 말을 이런 식으로 계속 쓰는 '필사적인 시도'를 포기하겠다면서 다음 문장부터는 보통 영어로 표기하겠다고 말한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예술가가 자기가 만든 작품과 사랑에 빠진다는 그리스 피그말리온 신화에서 그 제목과 모티프를 가져왔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의 영향을 받은 쇼는 <피그말리온>에서 신분, 언어, 교육, 빈곤, 여성 등의 사회 문제를 본격적으로 극화한다.'(p.230 작품해설)


특히 영국의 신분사회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데 일라이자가 사용하는 하류층 영어는 그녀의 신분을 결정짓는 잣대이며, 개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 일라이자는 9년 동안의 의무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어구사 능력과 발음이 엉망인데, 이는 영국 공교육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버나드 쇼는 이런 영국 교육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중산층 위주의 비합리적인 사회보장으로 일라이자와 그녀의 아버지는 극한의 빈곤 상태에서 생활한다. 난방도 안되는 집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밖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로 누더기 천이 겹겹이 덮힌 침대에서 잠을 잔다. 평생 목욕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욕조에 들어가 몸을 씻으면 죽는다고 생각할 정도이니 매일 씻는 나로서는 상상하기가 괴롭다. 이렇게 열악한 생활 환경 속에서 엉터리 의무교육을 마치고 생계를 위해 길거리로 나와 꽃을 팔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그녀에게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은 어느새 삶의 당연한 일부분이 된다. 


괴팍한 음성학자 히긴스와 예의바른 신사 피커링 대령의 내기로 시작된 '하층민 소녀 숙녀만들기 프로젝트'는 이런 일라이자를 변신시키는데 성공, 이런 상황 설정은 낭만적이며 재미있다. 

길거리 소녀가 아닌 꽃집 점원으로서의 자신을 꿈꾸며 히긴스의 지도를 받아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며 숙녀로 변신한 일라이자...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어 행복해야 하지만 곧 자신의 처지를 알게된다. 

"난 무엇에 어울리는 사람이죠?" (p.149) 라고 물으며, 자신이 피나는 노력을 해서 얻게된 '숙녀의 언어와 몸가짐으로는 영국 사회에서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것'(p.233 작품해설)과 차라리 거지같은 차림으로 길에서 꽃을 팔 때가 더 자유롭고 독립적이었음을 깨닫고 분노한다.


"나는 꽃을 팔았지 나를 팔지는 않았어요. 당신이 나를 숙녀로 만들어 버려서 나는 이제 어떤 것을 팔아도 어울리지 않아요. 나를 발견했던 그곳에 그대로 놔두지 그랬어요."(p.151)


"아! 꽃이나 팔던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당신하고 아버지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독립해야만 했는데! 왜 내게서 독립을 빼앗아 갔어요? 나는 뭘 위해서 그걸 포기한 거죠? 이제 좋은 옷이 아무리 많아도 노예와 마찬가지예요." (p.193)


이런 그녀에게 히긴스는 지극히 상류층 남자가 할 수 있는 말을 한다. 자기는 일라이자가 원하면 돈을 주고 양녀로 삼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피커링 대령과 결혼을 할 수도 있지 않냐며, 일라이자가 무엇때문에 걱정하고 고민하는지 그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일라이자는 돈을 원하는 것도 결혼 상대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는 그 '약간의 친절'을 원했을 뿐인데, 히긴스는 그 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일라이자는 히긴스의 가르침은 '멋지게 춤추는' 기술을 가르쳐 준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진정한 숙녀로 바로 서게 해 준건 피커링 대령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다고 고백한다.


"제게 진정한 교육을 시작한 게 뭔지 아세요? (...) 제가 윔폴 거리에 처음 온 날 저를 둘리틀 양이라고 불러 주신 거요. 그게 제게는 자기 존중의 시작이었어요. (...) 진실로 숙녀와 꽃 파는 소녀의 차이는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접을 받느냐에 달렸죠." (p.180,181)


'어떻게 대접을 받느냐' 이 차이가 자신을 변화시켰다는 일라이자의 고백은 인간 관계에서 예의의 중요성과 그런 예절도 배우고 몸으로 익혀서 습관으로 만들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져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 극은 일라이자라는 한 하층민 소녀를 통하여 신분차별과 성차별, 빈부 격차등, 영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러 사회문제들을 풍자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시대의 '변화와 발전을 꿈꾼' 작가의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라이자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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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4-30 1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좀 엄한 이야기지만...

제가 어울리지도 않게스리 작은
대리석 조각상을 하나 개지구
있답니다. 오래 전에 친구가 생일날
선물로 사준 거였는데, 바로 피그말
리온과 갈라테아가 키쓰하는 장면
이지요...

리뷰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퍼뜩
생각이 나서 몇 줄 적어 보았습니다.

coolcat329 2021-04-30 11:57   좋아요 3 | URL
어머 조각상 저도 갖고 싶네요. 😍볼 때마다 제 안의 낭만성이 살아날거 같아요.

새파랑 2021-04-30 1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보니 재미있을거 같아요~오랜만 희곡 도전~5월에 읽어야겠네요~!!

coolcat329 2021-04-30 12:00   좋아요 2 | URL
네~저는 읽은 희곡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 그래도 읽을 때마다 재밌고 여운이 오래 남네요~~4월도 다가고 5월 새파랑님의 활약 기대할게요~

미미 2021-04-30 1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화 너무 재밌게 봤음요~♡ 책도 이뻐?서 사두었는데 쿨캣님 리뷰보니 노벨 문학상도 탔네요!!

coolcat329 2021-04-30 13:07   좋아요 3 | URL
저도 유툽에서 오드리 영화 조금 봤는데 웃기더라구요. 초반 우악스럽게 말하는 오드리 연기가 넘 웃겼어요.

Falstaff 2021-04-30 1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라이자.... 세상을 정복한 위대한 충청도 사투리여!!!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4-30 13:08   좋아요 2 | URL
아는 충청도 분이 왜 소설 속 사투리는 다 충청도냐고 가끔 기분나쁘다고 했어요. ㅋㅋㅋㅋㅋ

scott 2021-04-30 15: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채털린 부인의 사랑에도 충청도 사투리로 번역 되었는데 ㅎㅎ
피그말리온에서도 영쿡식 Cockney 번역체로 ㅎㅎ

실제로 런던 웨스트엔드 연극중 가장 먼저 매진 되는 뮤지컬이
‘마이 페어 레이디‘
그런데 현재 영국에서 Cockney말투 그중 억양을 구사하면(도시노동계층)
100퍼센트 런던 토박이라고 합니다. ^.^

coolcat329 2021-04-30 16:13   좋아요 3 | URL
아 그렇군요 ~~그래도 일라이자처럼 심하진 않고 많이 희석됐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