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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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끊이지 않는 이슈이다. 미국의 흑인들은 80년 넘게 시행된 짐 크로법(Jim Crow Law,1876~1965)에 의해 모든 공공장소에서 백인과 분리되어 차별을 받았다. 버스를 타도 백인 전용좌석에는 앉을 수 없었고, 식당이나 극장, 화장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차별은 사회,경제적으로 흑인들이 뒤처질 수밖에 없는 극심한 불평등을 야기했다.

 

이 소설은 이런 차별과 그에 대한 저항이 극에 달하던 시기인 196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을 다룬 소설로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는 2017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이어 이 작품으로 2020년 두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연이어 발표한 작품이 퓰리처 수상작이라니 이번에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그 녀석들은 죽어서도 골칫덩이였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국 플로리다 주 탤러해시의 폐쇄된 니클 캠퍼스에서 수 십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던 시체들이 고고학과 학생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다. 

'금이 가거나 구멍이 뚫린 두개골, 대형 산탄이 잔뜩 박힌 갈비뼈 등' 심상치 않은 유해들이 언론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고, 그곳에서 학대를 받은 피해자들의 아픈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 감화원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었던 폭력의 실체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동안 아무도 믿지 않았던 그들의 말에 이제야 세상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2014년 현재 뉴욕 시에 사는 엘우드 커티스도 당시 니클 감화원에 있던 피해자로서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이제는 자신도 나서야 할 때가 되었음을, 과거 자신과 자신의 친구가 겪어야 했던 그 잊을 수 없고 잊혀져서도 안 되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플로리다로 향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엘우드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한다. 

우선 이 엘우드라는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엘우드는 할머니가 청소부로 일하는 호텔 주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식당 문이 열릴 때마다 흑인 손님이 있을지를 두고 혼자만의 게임을 하는 소년은 1962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앨범을 들으며 자신의 가능성과 꿈을 키워나간다.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이므로, 매일 삶의 여로를 걸을 때 이런 품위와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p.39)


킹 목사의 말은 어린 엘우드에게 깊이 각인되어 그에게 하나의 신념으로 다가온다. 

나의 자존감을 빼앗고 나를 억누르는 크고 작은 힘 앞에서 나 자신을 잃으면 안된다는, '너는 자신이 누구인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신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바로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는 것이기에 세상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사실을 원칙으로 삼는다.  


엘우드는 이런 믿음으로 할머니 몰래 극장 앞 시위에도 참가하고, 이런 경험은 그가 좀 더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게 만든다. 엘우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들어가 어떤 공부를 할지 고민하며, 한편으로는 '흑인의 지위 향상에 헌신' 을 하겠다는 꿈을 갖는다. 

엘우드는 이런 아이였다. 킹 목사의 연설을 마음 속에 새기며 바르게 생활하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하다보면 이 세상은 좀 더 바른 길로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그런 선량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엘우드는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우수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대학에서 하는 강의를 들으러 가던 날, 너무나 어이 없게도 자동차 도둑으로 몰려 니클(Nickel)이라는 소년 감화원에 가게 된다. 재수 없게도 히치하이킹을 했던 차가 훔친 차량이었고, 그 차에 타고 있었다는 이유로 차 도둑으로 몰린 것이다. 대학에 진학할 만큼 똑똑하고 성실하며 정직한 아이가 어떻게 한 순간에 소년원으로 갈 수 있는가...

1부 마지막 경찰의 말은 엘우드가 왜 아무 의심없이 소년원으로 가야하는지 보여준다. 

"그런 걸 훔치는 사람은 검둥이뿐이라고."


니클은 1899년, 어린 범법자들이 새로운 교육을 받고 '새 사람이 되어 훌륭한 시민의 품성과 목적의식을 지니고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감화원' 이라는 취지로 문을 연 학교이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은 물론, 갈 곳 없는 아이들도 온다. 

니클에는 백인 소년과 흑인 소년이 있지만, 그들의 공간은 피부색에 따라 완전히 분리, 인종차별이 그 어디보다 철저하게 이뤄진다. 제이미라는 소년은 어머니가 멕시코인이라 흑백의 구분이 모호하여 처음엔 백인 기숙사에 있었으나 라임밭에서 일하고 피부가 탄 뒤에는 유색인종 반으로 옮겨지는데, 나중에 피부가 다시 제 색깔로 돌아오자 다시 백인 진영으로 보내지고, 또 다시 그게 못 마땅한 선생에 의해 다시 흑인 쪽으로 보내지는 웃지 못할 상황도 일어난다. 

피부색에 따라 기숙사 환경과 음식, 대우도 당연히 다르다. 


엘우드는 킹 목사의 연설을 생각하며, '난 여기 붙잡혀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할 거야. 여기서 보내는 시간을 짧게 줄일 거야.' 라며 마음을 다잡지만 현실은 그의 이런 순진함을 뭉개버린다. 

어느 날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 소년을 도와주려다가 선생에게 걸려 잔혹한 체벌로 악명 높은 '화이트하우스'로 끌려 가게 되고 그곳에서 채찍질을 당해 기절을 하게 된다. 

열심히 하면 니클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 줄 것이라는 엘우드의 믿음은 이런 폭력과 모욕으로 되돌아 오고 그는 자신이 와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그 실체를 알게 된다.


니클에는 폭력과 차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 관리자들은 주 정부가 지급한 물품을 빼돌려 시내 상점에 팔아 이익을 챙긴다. 엘우드는 친구 잭 터너의 추천으로 '지역봉사활동'을 나가게 되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시내에 나가 상점마다 다니며 빼돌린 보급품을 전달하는 것이다. 각종 통조림, 공책, 연필, 의약품 등이 이렇게 사라지고 그제서야 엘우드는 왜 학생들에게 치약이 공급되지 않았는지 알게된다. 또한 학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얻은 수익금으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바쁜, 니클은 그야말로 부정부패의 온상이다. 

엘우드는 어떤 본능에 이끌려 이런 니클의 부정을 매일매일 적어둔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기록이 이런 일들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고.


현실에 체념, '침묵의 미덕'을 받아들이며 터너와 '지역봉사활동'을 하며 조용히 지내던 엘우드는 어느 날 자신의 실체를 보게된다.

'오랫동안 억압당한 끝에 그냥 현실에 안주하며 멍해져서 그 현실을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침대로 여기고 잠드는 법을 터득한 검둥이'에 불과한 자신을...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음에 안도하며 고개 숙이는 자신의 모습...그건 바로 니클이 원하는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생각한다. 니클을 나가는 방법은 탈출, 죽음 이외에 한 가지가 더 있다는 것을...

'니클을 없애는 것'


주 정부에서 감사가 나오는 날, 엘우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동안 니클에서 일어난 비리와 폭력을 낱낱이 적은 편지를 감사관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를 말리는 터너에게 엘우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건 장애물 경주가 아니야. 장애물을 피해서 돌아갈 수가 없다고. 반드시 장애물을 통과해서 가야 돼. 놈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든 고개를 꼿꼿이 들고 걸어가야 돼."(p.218)


엘우드는 킹 목사가 말한 '긍지와 자부심'을 생각한다.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궁극의 선의'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세상은 '버스에서 앉으면 안 되는 자리에 앉은 여자, 금지된 식당에 들어가 호밀빵에 햄을 얹은 샌드위치를 주문한 남자 덕분'에 조금이라도 바뀌었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의 이 편지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작가는 플로리다 주에 실제로 있었던 도지어 남학교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의 일부 내용은 실제로 이 학교를 경험했던 사람의 이야기에서 가져왔으며, 무자비하게 채찍질을 가했던 '화이트 하우스'도 실제로 있었음을 '작가의 말'에서알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형제복지원'이 생각났다. 암매장, 폭력, 감금, 노동착취, 횡령 등 그 모습이 얼마나 닮았는지, 약자들을 상대로 잔인하게 가해지는 폭력과 인권유린은 너무나 많고 어디나 그 모습은 비슷하다. 

또한 작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조지 플로이드 사건도 떠올랐다. 경찰의 무릎에 목이 깔려 "숨을 쉴 수 없어요. 온 몸이 아파요. 난 죽을거 같아요" 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찍힌 동영상은 많은 이들의 분노를 자아냈고 미국에서는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되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너무나 자주 이야기되는 이슈이고 미국의 뿌리깊은 사회 구조적 문제라 진부하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지금 현재 21세기에도 보란듯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는 4년 전 한국의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하버드대 출신에 유명 소설가인 당신도 인종차별을 겪나?"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차별을 겪었다. 성공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흑인이다. 이건 돈과 명예 여부와 관련이 없다."  


이 소설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엘우드라는 소년을 통해, 지금도 여기저기서 자행되고 있는 차별과 폭력에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시위를 하고 백인들을 설득해서 법을 바꾸면 평등한 세상이 올거라고 믿는 순진한 엘우드에게 잭 터너는 세상의 민낯을 보여주고자 쇠고리가 박혀 있는 떡갈나무 두 그루를 보여준다. 흑인 아이를 데려와 쇠고리에 묶어놓고 채찍으로 후려쳐 걸레로 만드는 곳. 


아무리 법을 바꾼다해도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면 세상을 지배하는 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작가는 터너를 통해 보여준다. 

'사악함의 뿌리는 단순히 피부색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이런 곳에 오게 만든 그 모든 부모들, 사람들이 문제' 인 것이다.

차별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만이 아닌 인간 본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생각해보게 한다.

이 소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한 본성이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구성과 문장, 메시지 모든 것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 짜여진 작품이다. '위대한 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천명관 작가의 말에 동감한다. 

특히 마지막 에필로그에서의 그 전율은...많은 사람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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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05 15: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잘못된 것을 바꾸려는 행동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움직임이 당장의 효과는 가져오지 않더라도 의미는 있을거라는~! 결말부분은 저도 놀랐었습니다. ㅎ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coolcat329 2021-03-05 15:44   좋아요 2 | URL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읽고 난 후에 뒤늦게 감동이 밀려오는게 작가가 치밀하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랑새님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군요. 행동의 중요함~~댓글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1-03-05 15: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심이 담긴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전 작년에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이
그야말로 맨발로 달려가 사서 읽었
던 기억이 납니다.

하버드 출신도 인종주의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니... 슬프네요.

coolcat329 2021-03-05 15:46   좋아요 2 | URL
그쵸~~하버드출신에 유명작가인데 차별은 같으니까요.
레삭님 책 사러 달려 나가시는건 뭐~~이젠 놀라지 않습니다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

막시무스 2021-03-05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은 정말 공감하고 감동적입니다!ㅎ

coolcat329 2021-03-05 21:19   좋아요 1 | URL
네~아무리 법과 규칙이 바뀌어도 인본주의가 바탕에 깔려있지 않으면 악의 뿌리는 그대로 남는다는 메세지가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메모습관 2022-06-25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서야 읽어보았답니다. 리뷰에 너무 너무 공감하며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coolcat329 2022-06-25 21:44   좋아요 0 | URL
아~ 글을 잘 못쓰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