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창비세계문학 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p.104)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죽음이라는 모험의 초보적이고도 결정적인 측면이 부조리의 감정의 내용을 이룬다'(p.33 민음사)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죽음은 체험할 수 없고 죽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만 죽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죽음을 주제로 한 톨스토이의 두께는 얇지만 그 안의 내용은 묵직한 이 소설을 올 가을에 읽었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아주 밀도있게 그린 작품으로 나처럼 톨스토이를 처음 읽는 사람이 시작하기에 좋을 듯 하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판사로서 시대에 민감하고 출세를 지향하나 사람들에게 욕 먹을 정도로 속세에 찌든 인간도 아닌 사회적으로 성공할 만큼 적당한 허영심과 속물성을 가진 평범한 관료이다. 그는 일하는 데에 있어서도 공사를 혼동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며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대외적으로 고상하고 품위있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이반 일리치는 몸의 이상함을 느끼고 통증이 심해지면서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그 죽어가는 과정에서 이반 일리치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노하고 체념도 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죽음으로 다가가는 인간의 심리와 그 주변 인물들의 반응과 행동의 묘사가 매우 인상적인 이 작품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알리는 데서 시작, 그 죽음을 둘러싼 동료 판사들과 가족들의 반응부터 매우 흥미롭다.

동료들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자신과 동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p.8)을 계산한다. 또한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에 안도감'(p.10)도 느낀다.

미망인이 된 이반 일리치의 부인 역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 국고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p.20)에 더 관심이 많다.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언뜻 나의 모습이 보이는것도 같아 가슴이 뜨끔거리기도 했다. 이렇듯 첫 장면부터 톨스토의 묘사는 날카롭고 섬세하다.

 

2장부터는 과거 이반 일리치의 삶과 어느 날 병에 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반 일리치는 알 수 없는 통증에 괴로워하고 가족의 무심함에 증오심이 커져간다. 의사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의학적인 지식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그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죽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지 '나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p.72)인 것이다.

 

특히나 그를 힘들게 하는건 치료만 잘 하면 곧 나아질거라는 사람들의 거짓말이다. 또한 누군가 자신을 가엾게 보살펴 주기를, '사람들과 하느님의 냉혹함'에 '도대체 왜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왜 저를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만드는 겁니까?'(p.100) 라며 울며 절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기뻤던 일들보다 덧없고 의심스러운 일들이 많았음을 알게 된다. '언제나 똑같은 생활', '하루를 살면 하루 더 죽어가는 그런 삶', 삶의 무의미함에 치를 떨며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p.103)

 

'왜?!'에서 시작한 원망섞인 질문이 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반 일리치는 생각하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게 없다. 내가 정말 죽는가, 왜 이런 고통을 내가 겪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없다.

 

죽음의 절망과 치유의 희망 사이에서 외로운 방황을 하던 이반 일리치는 과거를 회상하며 거짓과 위선 앞에서 자신의 양심이 고개를 들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자신의 일과 삶의 방식, 사교계 이 모든 것들 속에 얽혀 있는 이해관계가 다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가족과 의사를 보면서 그들의 모습에서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p.112)을 보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삶과 죽음도 가려버리는 '거대한 기만'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인생이 정당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주변을 살펴보지 못하고 그 안에 갇혀있던 자신을 알게 되고 그 순간 힘들어하는 가족과 미워하던 아내도 이해하게 된다.

 

'그래, 내가 모두를 괴롭히고 있구나.'(p.117)

 

죽기 전 그는 가족을 진심으로 불쌍하게 여기고 비록 제대로 전달되지는 못하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통증도 사라지고 평온함을 느낀다.

죽음 대신 그가 본 것은 빛이었고, 그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은 다음과 같다.

 

"아, 이렇게 기쁠 수가!"(p.119)

 

죽음의 순간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받아들이고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고 떠나는 이반 일리치를 보며 모든 독자는 앞으로 다가올 각자의 죽음을 머리 속에 그려볼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이반 일리치처럼 평안하게 기쁜 마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인사하며 떠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리라 생각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0-12-18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오래 전에 사두고,
또 올해 창비 리뷰대회 선물로도
받아 두었는데...

왜 읽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내년에나 도전해 볼까 합니다...

coolcat329 2020-12-18 13:32   좋아요 2 | URL
어머나! 레삭매냐님이 이 책을 안 읽으셨나니, 정말 의외네요 ㅎㅎ 요즘 워낙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그러실거에요.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0-12-18 14:23   좋아요 1 | URL
이 작품 정말 좋아요. 꼭 읽어 보세요. 두께도 얇잖아요? ㅎㅎㅎㅎ

scott 2020-12-22 19:29   좋아요 0 | URL
ㅋㅋㅋ 레삭매냐님이 깜빡하시고 묵혀둔 책
요기!
(=ⁿ-ⁿ=)ノ

페크pek0501 2020-12-19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독한 작품입니다. 주인공도 그렇지만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주목하게 되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지 놀랍더군요. 대단한 작품 같아요.

scott 2020-12-22 19:30   좋아요 1 | URL
전 개인적으로 톨스토이 작품중 안나 카레니나 다음으로 이책이 명작중에 명작이라고 생각해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