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B컷 문학동네 청소년 64
이금이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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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책을 읽은 게 10년 안팎이어서 그 전부터 유명했던 작가들의 책은 안 본 게 많다. 이금이 작가님의 동화는 거의 읽은 적이 없고 처음 접한 게 청소년 소설부터였는데 나는 그 소설을 어른이 읽는 소설로 읽었고, 역사 소설로 생각했다. 이름은 [알로하, 나의 엄마들]! 그 후로 기회 닿는대로 읽었다. 이 책도 신간이 나오자마자 읽었다. 그리고 대체로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는다. 그러니까 재밌다는 이야기.

같은 반 인기남 서빈으로부터 유튜브 편집 제의를 받은 중학생 선우. 인정받는 기분과 더불어 한편 당 주어지는 문상 2만원은 달콤하기 이를데 없었다. 서빈의 무리는 서빈 포함 네 명이고 한 명이 유독 정적(?)이긴 했지만 대체로 잘 어울리는 기분이어서 선우는 공들여 편집을 한다. 날것의 그대로를 넣자니 '모범생 인싸' 분위기 서빈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자를 건 자르느라 시간을 많이 뺏기고 있던 선우에게 첫사랑 미호에게 연락이 온다.

코로나로 대한민국 중학생들은 모두 정상 수업이 중지된 상태. 그래도 줌으로 수업이 진행되는데 새롭게 같은 반이 된 정후가 까만 화면만 띄울 뿐 나타나지 않는다. 예비 반장이 된 선우는 평소에 쌀쌀맞은 정후였지만 괜히 마음이 쓰여 문자를 넣는다. 그리고 정후 엄마가 전화를 걸어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우리 모두는 편집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잘라지고 섞이고 미화된 화면들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산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거짓 교사가 만연한 시대. 우리는 그것을 편집이라고 부른다. 편집을 못하면 촌스럽고 편집을 안하면 무식한 것처럼 구는 그런 세상에 산다. 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거짓광고를 만들고 있고 잘만 만들면 돈이 된다는 허황된 생각에서 각색하고 포장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이금이 작가는 '편집'이라는 단어에 고민한 나머지 이런 재밌는 소설을 또 써내었다. (이 시점에 박수쳐도 될까)

선우의 선택은 옳았다. 선우 아버지의 선택도 옳았다. 떳떳하기 위해 증거를 내밀었다. 남들은 바보 같다고 한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될 것을 뭐하러 일을 키우냐고 한다. 하지만 선우 아빠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 선우도 움직인다. 어쩌면 선우가 편집을 했기 때문에 정후는 죽지 않아도 됐을지 모르겠다.

폭력은 쉽게 청소년을 죽음으로 몬다. 부모의 학대도 그렇고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다. 억압과 체벌 속에서 아이들은 또래를 괴롭히는 것으로 희열을 느낀다. 정후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자기를 그었다. 선우가 B컷을 잘라내지 않고 지워버렸다면, 선우가 그것을 묵인했더라면, 선우가 돈을 좇았더라면 정후는 죽고 없을 것 같다.

현실과 편집된 세계 사이에는 누더기 차림의 신데렐라와 마법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신데렐라의 차이만큼이나 거리가 있었다.

p.103

이 책이 놀라운 이유 중에 하나는 학교폭력만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부모, 공부로 억압하는 부모, 부정을 모른 체 하는 어른, 코로나 이야기, 퀴어 문제까지도 발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많은 이야기가 퍼져 나갈 수 있는 소설이었다.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울 정도로.

그리고 선우가 한 물음에 나도 봉착한다.

'나는 정말 몰랐을까?'

선우의 용기가 부러운만큼 좋아요를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부러워요를 멈출까? ㅎㅎㅎ

재밌게 잘 읽었다. 어른들도 읽어봤음 좋겠다. 함부로 잘라내고 거짓으로 뭉쳐 놓은 15초짜리 동영상으로 하루를 채우는 청소년들은 꼭꼭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집 애들부터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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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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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장편소설 [중앙역]은 구매 할 때부터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 후 읽을 때까지 아무런 정보도 기대도 없이 내게 왔다. 이제는 읽기 전으로는 도저히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딸에 대하여] 이후로 단편을 제외하고는 처음 읽는 장편인데 아, 이 여운을 어떻게 해야할까...



감히 내가 함부로 짐작하거나 분석하거나 정리하거나 나름의 감상을 붙이기가 어려운 소재라서 리뷰 자체가 머뭇거려지지만 온 마음을 휘감은 비감은 또 그냥 넘어가지 못할 정도로 강렬해서 읽은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모르는 사람 앞에 빈 손바닥을 내밀어본 사람은 안다. 그 손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나중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p.167

노숙인 ‘나’가 가방을 잃어버릴 때만 해도 이런 엄청난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내내 편협했던 것이다. 바닥에 박스를 깔고 누우면서 작은 돌멩이가 배겨서 잠 못 이루는 젊은 사내가 거리 생활을 착착 접고 희망을 찾는다, 성실한 젊은이가 된다, 내지는 그들을 돕는다는 식의 판타지를 아주 쉽게 꿈꿨다. 좁고 허름한 철거촌 쪽방 같았던 나의 사고방식이 부끄럽다.



‘나’가 병든 여자를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선회한다. 그 여자를 몰랐던 시절로는 절대로 못 돌아가는 삶, 나눠 가진 온기 때문에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절대 놓지 않으려고 했던 손. 덤덤하게 서술하는 문체와 달리 행간에서 읽힌 절망과 슬픔이 너무 아득해서 할말을 잃었다. 테두리를 뱅뱅 도는 삶, 도무지 안다고 이해한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얼른 꺼지지 못하는 그 사랑에 대해 내가 뭐라고 무슨 말을 보탤 수 있을까...



거리의 삶은 모든 것을 잃게 한다. 살기 위해서 남의 것을 훔치거나 뺏거나 해야하고 그마저도 못하면 범죄자가 돼야 한다. 누구도 하려고 하지 않은 폭력을 자행해야 하고, 남에게 연민을 보내는 일은 오만일 뿐이니 경계해야 한다. 남은 모든 걸 빼앗겼지만 끝내 지키고 싶었던 하나를 위해 분투하는 부랑한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침대를 포기할 수 없는 내게는, 운이 좋아서 이고 살 천장을 소유한 내게는 이 모든 일에 책임이 없는지 생각하게 했다. 서사는 강력했고 진실을 훔친 문장들에게서 울음이 났다.

“다들 제 처지를 설명하기 바쁘다. 그들은 말하고 나는 듣는다. 모두에겐 다른 사람들의 이해가 가닿지 않는 사정이 있다.
나는 거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내 처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누구라도 내 얘기를 한 번쯤 들어줬으면 좋겠다.“
p.233

우리는 남의 처지에 대해 함부로, 쉽게, 신속히 정리하고 판단하고 단호한 말을 쏟아 기정사실화 한다. 게을러서 가난한 것 처럼, 나약해서 아픈 것 처럼, 바보 같아서 속은 것 처럼, 귀찮아서 결심하지 않은 것처럼, 어리석어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처럼.

그리고 우리는 너무 태연하게 어떤 집단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인 것 처럼 군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갈 곳과 머물 곳이 정해져 있으며 죽는 날까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처럼 생각한다. 세상에 당연한 일은 극히 드물고, 누구라도 지금 당장 이 땅이 꺼져버리기를 바랄만큼의 버거움을 만나 삶의 전반이 무기력하게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한다. 김혜진의 소설에는 도무지 만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도 들지 않던 세계를 내 눈 앞에 속히 부려놓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역사(驛舍)이면의 역사(歷史)를 직관하게 하고, 노숙자를 내쫓으려고 광장 중앙에 분수대를 파고 있는 게 바로 나였구나, 깨닫게 한다. 누구도 읽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세상에 상관없는 일 같은 건 없다. 무슨 일에든 우린 다 조금씩 책임이 있는거야. “
p.169

어떤 소설에서,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삶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중앙역] 주인공은 사랑에 빠지고도 이해할 수 없는 삶 때문에 모든 걸 바쳤다. 그러고도 다 잃었다. 내게 주어진 것이 작아서 불평하고 싶을 때 어딘가에는, 몸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저당 잡힐 수 없고 그것 때문에 사는 모든 날이 지옥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야겠다. 남은 시간이 빠르게 소진 돼 사그라들기만을 기다리는 부랑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당분간 아플 것 같다. 계속 뻐근한 비통이 오래도록.

어떨 때 소설은 독약 같다. 옴짝달싹 할 수 없어 덮은 책을 쓸고 또 쓸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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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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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아서 읽고 나도 바로 사서 선물했다. 전작도 좋았지만
​이번 소설도 정말 좋았다. 두고두고 읽고 내 이야기를 떠올리고 울고 아프고 그랬다.

오늘 본 라방에서 '이번엔 서사보다 문장이나 감정에 중점을 두었다'고 했지만 나는 서사부터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와 재혼한 새어머니, 그리고 갑자기 생긴 동생. 동생은 아팠고 형은 아버지를 위해서 동생이 병원갈 때 동행했고, 그런 형이 따뜻했을리 없는데도 그래도 좋았던 동생의 이야기. 아버지는 새로 생긴 어린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친아들이 상처받고 있는 걸 몰랐고 새어머니는 잘못도 없는데 아무리 부어도 새어나가는 물바가지처럼 줄줄 새는 마음을 퍼넣느라 자주 울었다. 그리고 포커스가 흔들린 사진처럼 선명하게 확인해 보지도 못한 채 헤어져야만 했던 그 여름의 이야기. 이런 탄탄한 서사에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 균열을 더하고 마지못해 떼워나가는 게 아니라 그저 벌어지게 두어 버린 비감에 대해서 누가 이렇게 잘 그려낼 수 있을까. 닮고 싶은 부분이다.



감정은 또 어떻고. 작가님이 노력했다면 대성공이다. 나는 인물들의 복잡하지만 기어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심리(혹은 작가가 그려낸 행동)에 녹다운 된 기분이었다. 세상 일이라는 게 내 마음 먹은대로 잘 안된다지만 재하와 기하네 집은 어찌 이리도 어긋나는지. 이제야 조금 그 다정했던 여름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온전한 마음을 주고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 사람은 죽고 없단다. 에휴, 그렇게 자꾸 어긋나는 게 현실인데도 맞아 맞아 주억거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그들이 어디선가 만나서 해묵은 마음도 터놓고 그동안의 단절도 극복하고 화해도 하고 그랬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 일이 더 드물다는 걸 마흔이나 먹고서도 모르는가.



기하가 능을 떠나면서 두고 온 게 없는데 자꾸만 두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는 말을 두 번 하는데 반복되는 그 문장에 줄곧 멈춰서서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지, 왜 이렇게 나도 두고 온 게 있는 모양으로 애가 타는지 몰라서 고심하였다. 재하가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보낼 때 내 마음 어딘가도 그렇게 떠나보내야 할 것 같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이 소설이 너무 좋아서 제정신 찾는 데 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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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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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문체 너무 사랑해요! 아직 못 받았는데 기대 만땅입니다!! 안 읽어도 좋은 느낌 뭐지 이거!!(선물 받고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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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나와 일 - 돈과 일, 그 사이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
이원지 외 지음 / 얼론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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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적당양 이상의 돈이 없으면 상당히 괴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나야말로 또 인생의 새로운 포인트에 서 있다보니 여러가지로 이 책이 와닿았다.

이 책은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고 있는 열세명의 직업인이 말하는 ‘돈’과 ‘일’에 관한 에세이다. 사람과 직업은 달랐지만 기본 정서는 비슷했다.

우선, 돈은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돈을 버는 것은 신성하고, 예술을 하든 소비를 하든 돈은 반드시 필요하니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벌라고도.

그리고 돈을 쓰라고 말한다. 모아서 부자가 되는 데 목표를 두지 말고 나를 위해 투자하라고 말한다. 돈이 적다고 안 쓰면 모이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 꿈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쓰라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서라도 쓰라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는 배우 김의성 씨였는데, 문장이랑 생각이 좋았다. 실력을 키우라는 말, 나중에 잘해준다는 사람 말은 믿지 말라는 말, 진짜 잘해주는 사람은 지금 잘해준다고, 페이는 대우라고. 아는 말인데 읽는 이를 사로잡는 매력적인 말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 내가 좋아하는 김중혁 작가의 꼭지를 읽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분! 바로 위로 받은 문장 하나, 또 작가님 내 상황 어떻게 아시고 또 이런 격려의 문장을 남기셨는고.

현재의 나를 믿는다. 지금 무언가 하기로 선택했다면 잘한 일이다.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면 잘한 일이다.

p.168

이 책은 금방 읽는다. 13인의 글을 읽으면서 나라면 이런 에세이를 어떻게 쓸까 생각한다. 김광혁 작가는 일이 돈을 담는 항아리라는데 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고민한다. 나는 ‘직업’을 작금의 상황과 여건에서 스스로 내 시간에 대가를 매기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직업에 다시 뛰어들고 있는 만큼 그 수단을 굴려서 따뜻하고 성실하게 항아리를 찰랑찰랑 채우고 싶다. 그러나 꽉 안 찰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도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할 시간도 사고, 좋아하는 것들도 사들이고, 온기를 나눠야 하는 곳에 힘을 보태야 할테니까. 갑자기 떨리고 울린다. 가자, 돈 벌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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