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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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사후세계를 믿는가. (나는 천국을 믿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심판]은 사후세계로 간 폐암환자 아나톨의 환생과정을 다룬 다소 불교철학적인 작품이다. 국내의 책쟁이들 중에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모르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을테니 그의 소설은 차치하고 희곡작품 중에서는 이번이 두 번째다. (사실 나는 첫번째인줄 알았다. 요즘 좀 관심이 뜸했네)


베르나르는 원래부터 인간의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동양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오죽하면 제목이 [죽음]인 소설이 있겠는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연 [나무]인데 추천도 참 많이 했다.


아무튼 이 책은 폐암수술을 하던 아나톨이 자기가 죽은지도 모른채 천사들을 따라 재판관 앞에 서서 자기 삶을 돌아보는데 희곡이다보니 대화위주라 너무 정신이 없었다. 무슨 만담처럼 휙휙휙휙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이랄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이 마주보고 섰고 가운데 사람 뒤에 한 사람이 서 있어서 툭 치면 뒤로돌고, 그럼 뒤에사람이 또 툭치면 또 뒤로 돌고, 뒤로 돌고, 다시 돌고 (계속 돌아서 미안합니다) 뭐 그런 정신 사나운 느낌이었다.

등장인물이 서로 말하려고 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아나톨이 지은 죄과나 선행들이 프롬포트 화면에 나타나고 그는 아주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부터 죽기 직전까지 자기의 모습을 3자의 눈으로 본다. 그리고 발견한 놀라운 사실. 변호사인 카롤린이 자기의 수호천사였고, 아나톨의 인생은 지금까지 4번이상 환생되었으며, 환생하기 전에는 늘 자기의 삶을 정해진 모듈에 따라 선택했었다는 것. 아나톨은 죽기 전에 판사였는데 학교다닐때 동아리에서 연극반이었다. 정해진 운명은 연극배우가 돼서 어떤 여자랑 결혼하는 거였는데 아나톨은 저승의 재판 중에 고른 자기의 직업 (배우) 을 잊고 지금의 직업인 판사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정해졌어도 여러가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게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나톨은 이제 다시 부모와 자기의 직업, 취미나 핸디캡 등을 설정해야 하고 바로 환생을 해야하는 가운데 있다. 이게 뭐야, 죽자마자 바로 다시 태어나라고? 심지어 이렇게 급하게 인생을 결정하라고???


다소 정신없긴 하지만 저자의 철학은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베르나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임은 확실하다. 작가는 사람이 죽으면 환생한다는 윤회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카르마나 업보 등의 단어를 활용하고 있어서 동양의 불교사상을 제대로 공부했구나 싶었다. 작가는 개인이 인생에서 이루는 모든 일- 부모, 학업, 성격, 직업, 핸디캡, 질병, 죽는 방법까지도- 을 이전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설정했다.

 다만 유전 25%, 카르마가 25%, 자유의지가 50%가 들어가기 때문에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너무 재밌는 설정이다. 환생 같은 건 당연히 믿지 않지만 유전과 카르마, 자유의지의 비율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ㅎㅎ


또, 베르베르는 약간의 권선징악적 요소도 넣어놨다. 우리 구전 문학 [덕진다리]의 원님(원님이 죽어서 저승에 갔는데 곳간에 볏짚이 달랑 하나 있었다. 알고보니 이승에서 빈곤한 임산부에게 샅자리를 빌려준 선행의 증거였다)처럼 얼떨결에 베푼 선행들도 점수로 넣어준다. 이승에서의 삶이 좀 더 고통이거나 반대로 업적을 세우면 내세의 삶은 좀 더 윤택해지는 인과응보를 차용해 둔 것도 재밌다. (환자를 버리고 골프치러 간 의사도 벌을 받고 ㅋㅋ)


제일 재밌는 것은 결말이었다. 아나톨이 판사출신인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심판]을 아직 안 읽은 독자를 위해서 스포는 삼가겠다. 하지만 마지막은 정말 재밌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반전 ㅋㅋ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데 가장 모르는 것 중에 하나가 삶의 전개와 죽음 이후의 삶이다. 혹자는 죽고나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세에 뭐가 있어도 있을거라고 믿는다. 누구나 죽음을 거스르고 싶어하며 이별을 가슴아파 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뢰하기도 한다.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고 싶어한다.


그렇게 궁금하고 알 수 없는만큼 문학적 상상력을 힘껏 끌어내는 것도 당연히 사후세계이다. 최근에는 죽음을 보류하는 소설들도 많이 등장한 것 같다. 죽고나서 바로 저런 심판대나 영원한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이아니라 가기 전에 죽음이 보류돼서 전지한 어떤 존재로 산자처럼 살아가는 유예 스토리들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이별을 두려워하는 우리의 마음에서 기인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친대도 다시 태어나고, 죽음을 늦춘대도 분명한 현실은 죽음은 반드시 온다는 것. 이런 문학들로 죽고 난 후의 세계를 맛봤거들랑 자 이제 우리는 고민하자.


한 번 뿐인 나의 삶,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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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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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낯선 곳에 가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자라면, 그것이 자의에 의한 발걸음이라면 누구나 저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 여행으로부터 시작해서 여행으로 진행되는 삶, 그래서 늘 설레고 인생을 전개하다 순간순간 가슴 한쪽이 오래 뗀 군불처럼 뜨거워서 들썩거리게 되는 온 몸의 감각.


스물 한 살의 설희는 발리에 갔다가 호주 멜버른으로 간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엄마는 시시로 간섭하듯 문자를 보내고, 설희는 싫다. 치즈공장으로 일자리를 얻고 외곽의 셰어하우스에 들어갔다. 수퍼바이저는 간혹 시내로 셰어하우스 애들을 실어날라 준다. 주중에는 일하지만 주말에는 시간이 많은 설희는 갈 곳이 없다.


우연히 페스티벌에서 셜리클럽을 알게 된 설희. 그녀의 영어이름이 셜리인지라 할머니들이 죄다 셜리인 이 클럽에 강한 호기심이 생긴다. 클럽 근처에서 우물쭈물 하던 사이, S를 만난다. 한국계 독일교포 3세로 한국말은 거의 못하고 영어로 설희와 대화를 한다. 설희와 S는 모두 외로운 인물. 각자의 조국을 떠나와서 호주라는 낯선 곳에서 거주하고 있으니 그럴수 밖엔. 서로를 알아가며 친해진다.


그 와중에 설희는 셜리클럽의 명예 멤버가 된다. '셜리'는 한 때 유행했지만 지금은 한물간 이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순자, 복자' 정도 되는? 셜리는 외국인이 아니어서 정식 이름은 아니지마는 영어학원에서 흔히 짓는 영어이름, 그러니까 별명인 셈이다. 셜리는 그 곳에서 할머니들 (개중엔 아주머니들도)과 시간을 보내며 친분을 쌓는다.


설희는 치즈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많이 아팠다. 마스터는 쉬라고 했고 쉬었지만 치즈공장 오너가 설희를 해고했다는 말을 듣게 되고 셰어 하우스에서도 나갈 위기에 놓였다. 알고보니 마스터가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임의로 자른 것. 그러나 복직이 가능했음에도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설희.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린 S를 찾아 무작정 떠난 설희를 도와주기 위해 다른지부의 셜리클럽 할머니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면서 점점 설희는 자기를 발견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스포방지를 위해 결말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마음에. 쏙 들긴 했다. 뭔가 사랑사랑 한 것이 아직도 좋고 그리운 기혼여성이라서 그런지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지고, 만난지 얼마 안되는 남자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 무턱대고 달려가는 로맨스는 여기서는 절대 불가능 할 것 같으면서도 희한하게 응원하게 되는 그런 멜랑꼴리였다.


그러나 내가 집중하게 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설희와 엄마와의 관계다. 설희의 부모는 일반적인 부모가 줄 수 있는 류의 사랑을 설희에게 주지 않았다. 이혼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이혼가정이어도 성숙한 태도로 아이를 바르게 양육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설희는 철없는 엄마로부터 필터없는 감정적 학대를 당했다. 아이들에게 아빠를 험담하는 것은 뿌리를 부인당했다고 느끼게하는 감정적 학대행위다. 설희는 아빠를 좋아했지만 엄마는 끊임없이 아빠를 미워했고, 설희를 보면서 신세를 한탄했다. 아빠에게 상처를 주려고 딸을 희생시켰을 것이다. 엄마와의 관계를 끊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을 포기한 후의 권태로운 삶을 살기가 버거웠던 설희는 이 나라를 떠나기로 했다. 3개월동안.


설희는 어릴때 가수였던 아빠와 캐롤음반을 낸 적이 있고, 꽤 잘됐다. 그래서 연금처럼 음반 수익금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깨진 꿈이 아쉬웠던 듯 방황한다. 끊임없이 딸의 존재를 부정하게 유도하는 엄마를 견딜 수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와도 잘 안 받는 설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설희는 알게된다. S를 사랑하는 자기를 보면서 엄마의 치기어린 사랑을 이해한다. 셜리클럽의 할머니들을 보면서 지나간 것들에 대한 향수를 , 지난 후에 깨닫게 되는 찰나의 눈부심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엄마를 용서하는 것, 사랑을 마냥 기다리지 않고 끝내 찾아가서 쟁취하는 것. 용감함과 로맨스가 탑재된 설희의 여행은 평생 가슴을 뛰게 만드는 젊은 날의 눈부심이 되었다.

이 소설은 재밌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테이프의 앞면과 뒷면을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일시정지버튼도 있고, 재생도 있다. 일시정지는 지금의 설희가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녹음한 형태를 가졌고, 재생은 과거의 설희가 호주여행을 서술하는 형태를 가졌다.


오래전에 좋아하는 오빠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 테이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도 테이프 세대여서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잃어버린 세대를 찾아서 같은 기분?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지나고나면 돌려서 녹음할 수가 없다. 지금처럼 어플에서 돋보기에 제목 절반만 쳐도 바로 플레이 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라디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좋은 노래가 나오면 언제든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네모버튼을 꾹 누를 수 있도록 화장실도 안가고 기다리면서 안테나 길게 뺀 라디오에 귀를 밀착했었다.


여행지에서의 사랑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하는 테이프 같았다. 지나가버리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그래서 지키고 있어야 하고 행여 잘못 녹음되면 끈기를 가지고 다시 찾아야만 하는. 기다림도 쫓아감도 모두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믿음에서 비롯되니까. 셜리가 돼버린 설희의 레코딩은 그래서 성공이다. 행복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솟았다.


흘러가는 세월의 페이지에서 나는 무엇을 기록하여 둘까.


정말 재밌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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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 - 영혼을 파고드는 무의식 세계와 페르소나 탐구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심리학 3대 거장
칼 구스타프 융.캘빈 S. 홀 지음, 이현성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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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거장 칼 쿠스타프 융을 만난다. 사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름을 무지하게 들어본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영혼의 세계와 페르소나를 탐구한 정신의학의 명의 칼 구스타프 융의 사상과 그의 말, 그의 생애를 알아보았다.


심리학이라는 것 , 사실 전문가가 아니라서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책과 함께라면 쉽게도 접근이 가능하니 융이니, 아들러니, 프로이드니 거창한 이름은 들어봤어도 내용은 모르겠다, 알고 싶다 하시는 분은 스타북스에서 출간한 [칼 쿠스타프 융]과 함께 경험해 보시길 추천한다. 줄을 박박 쳐가면서 읽었다. 


여러분은 간밤에 꿈을 꾸셨는지?

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라 때로는 피곤하고 잔 것 같지 않다. 융은 인간에게는 의식과 무의식이 존재하며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이야기한다. 의식적으로 실현되지 못한 욕망이나 몰랐던 욕망이 꿈에 나온다는 것. 모두 동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공포영화 보고 난 후에 악몽을 꾼다든가, 잠들기 직전까지 너무 빠져들었던 책이 꿈에서 어지럽게 전개 된다는 것을 경험한 나로써는 아니라고 보기도 어려운 흥미로운 이론이다. (신혼 때 남편이 바람피우는 꿈을 꾼 적도 있다 ㅋ)


칼 융은 1875년 스위스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을 받았지만 사춘기를 거치며 교리에 의문을 갖게 되고 신앙인과는 반대되는 길을 걷는다. 의사가 되었고 심리학을 과학에 입각해 연구하기는 했지만 '우연'이라는 것을 배제하지 않음으로 전능한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독교와는 완전히 거리가 먼 사상을 전개하였다.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융은 인격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뉘는데 의식은 자아와 페르소나를 가지며 무의식은 그림자와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를 갖는다. 페르소나는 자아에 반하는 인격으로 내가 인식하는 '나' 와는 또 다른 '나' 이다. 인간은 누구나 복잡하고 어려워서 여러가지 요소가 섞이면서 인격을 발현한다. 그러나 의식하지 못하는 자아도 있다. 여성성은 아니마, 남성성은 아니무스인데 사람은 주로 어머니를 보면서 아니마를 정립하고, 아버지를 보면서 아니무스를 정립한다. 내가 남편이랑 부부싸움을 한다면 나는 남편에게 원하는 아니무스가 충족되지 않았음이고, 남편은 본인이 원하는 아니마가 나에게 발현되지 않기 때문에 함께 다투는 것이다. 인간은 합리성과 불합리성을 놓고 늘 다툰다. 그것은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이 현실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은 에너지를 만든다. 긴장이 없으면 에너지가 없고 나아가서 인격도 없다고 책은 말하고 있다.


또, 앞서 말했듯이 꿈은 무의식이 발현되는 곳으로 융은 꿈에 태고의 유형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 점은 프로이트도 언급했는데 융이 프로이트와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프로이드는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에 콤플렉스를 만드는데 그것이 언젠가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 공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오히려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억압된 콤플렉스가 문제 행동으로 나오기도 한단다.


우리는 남들에게 우리의 정신상태를 투영한다. 그래서 남들과 관계가 좋지 않을 경우에 우리의 정신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외적 갈등은 반드시 인격 내부의 부조화된 투영이라 밖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면 내적 부조화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p.163)


혹시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 있어서 괴로운 사람은 나 자신의 부조화를 먼저 점검하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면 좋을 것 같다. 이론상으로는 완벽한데 분노와 서운함이 점철된 인간에게 '나'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심리학에 의거해 좀 더 발전적인 인격을 소유하고 싶다면 참고해봐도 좋을 것이다.


심리치료의 첫번째 목적은 환자에게 보장이 없는 행복한 상태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이성적 인내를 갖도록 돕는 데에 있다고 한다. (p.178)

나는 융이 했던 말 중에 이 말이 가장 와 닿았다.


모든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 개성의 최고 실현 형태가 바로 인격이다.

인격은 인생에 맞닥뜨리는 고도의 용기이며, 개인을 구성하는 요소의 절대적 긍정이다.

또한 보편적인 생활 조건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적응이며

그와 동시에 최대 가능한 자기 결정의 자유이다.

p.178


요즘 '인성에 문제있어?' 라는 말이 유행어다. 인성과 인격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면 문제가 많기 때문에 이런 말이 유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된 인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자신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려면 고도의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올바른 인격을 갖기 위해 남을 의식하지 않고 마구행동을 하는 것은 또한 바른 인격을 소유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지나치게 자기 희생으로 남만 배려한다면 역시 용기있는 인격 소유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책임과 자유가 수반되는 용기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나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융도 읽고 아들러도 읽고, 프로이드도 읽는 게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인 생활조건에 만족하며, 자유의지도 잃지 않아서 모쪼록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해 나갔으면 좋겠다. 너무 이기적이고, 너무 배타적인 것이 넘실대는 세상이다. 남탓이 만연하고 분열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럴수록 우리는 내면의 부조화를 해결해 갈등을 완화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제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지만 모든 문제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인과도 목적도 아닌 우연한 요소, 융이 말한 '동시발생' 이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기저를 탐구하는 것은 좋지만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인류애이고, 사랑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책 한권 읽었다고 심리학 박사가 된 것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책을 읽어보니까 관계가 힘들 때는 사랑을 선택하라는 이해인 수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해서 더불어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이 책을 정리한 사람은 캘빈 홀이라는 심리학 박사다. 그런데도 칼 융이 공동저자인 것처럼 돼 있는 것은 책의 말미에 칼융이 직접 소개하는 자기 자신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융이 겪었던 고민, 그가 가진 철학적 사고와 분석심리학이라는 사상 확립의 계기, 프로이드와의 만남 등이 그의 목소리로 들어있다. 사상만 정리할 수도 있었는데 융의 자서전(?) 같은 것도 들어가 있다. 제목이 '분석 심리학' 이 아니라 '칼 구스타프 융' 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아주 일목요연하고 흥미로운 책이었다.


또, 챕터마다 정리가 돼 있어서 읽기가 좋았다. 쉽게 풀어놨지만 그래도 이름부터 어려운 심리학아닌가. 하지만 예로 제시된 것이 머리에 쏙쏙 박히고 참 좋았다. 표지만큼이나 멋진 책이다.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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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가든 - 초판본 비밀의 화원 - 191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박혜원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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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소공녀를 엄마가 사줘서 읽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소녀일 때 이 책을 읽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재밌었다. 봄이 온 것 같았다. 숨차게 읽었다. 내가 다 벅차오르는 지경이었다. 때로는 세 명의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지긋한 중년이 되었다가 때로는 열살 짜리 아이들과 뛰어놀고 싶은 어린이의 마음이기도 했다. 늘 무겁고 숨겨둔 이야기가 많은 어른 고전만 읽다가 어린이 고전을 읽으니 마음이 괜히 푸근해지고 뭔가 따뜻한 느낌이었다. 때로는 동화가 어린이를 위한 게 아니라 어른을 위한 거라더니, 이 책도 어른을 위한 책이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받아 읽게 됐지만 정말 읽길 잘했구나 싶었다.


인도에 사는 영국인 메리 레녹스는 괴팍한 성격의 소녀이다. 병약했던 아버지, 파티광인 어머니 사이에서 없는 애처럼 살았지만 하인들에게는 매우 못됐게 굴었다. 메리의 보모-아야-는 메리의 엄마가 메리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숨겨서 키우다시피 했다. 그런 엄마와 애착관계가 없던 메리는 더 난폭해질 뿐이었고, 간혹가다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는 아름다웠으나 차가웠다. 앞 부분을 읽으며 엄청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콜레라가 돌았고, 메리는 하인들이 죽거나 떠나자 놀이방에 숨어있었다. 어느날 군인들이 와서 저택에 혼자 있는 메리 레녹스를 발견하고 그의 친척에게 보낸다. 메리는 영국으로 돌아온다. 고모부 크레이븐이 후견인이 되어 그녀를 돌봐주겠다고 한 것이다.


원래 성격이 포악했던 메리는 오자마자 영국에서처럼 살려고 한다. 하지만 하녀 마사는 메리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옷도 혼자 입으라고 하고 아가씨의 말을 듣기보단 자기 말을 더 많이 하는 등 희한하게 군다. 그러나 마사가 해주는 이야기들에 메리는 생각이 움직이고, 특히 마사의 동생 디콘이 황무지에서 놀면서 동물들과 교감하는 이야기는 늘 혼자였던 메리를 뒤흔든다. 그러다가 마사의 권유로 밖에 나가고 비밀의 정원을 궁금해 한다. 디콘의 도움으로 정원을 가꾸기로 한 메리는 엄청난 비밀을 디콘과 공유한 채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던 중 간간이 들리던 울음소리의 근원지를 발견한 메리는 자기와 동갑의 병든 사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구도 메리에게 크레이븐의 아들 콜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몰랐던 것. 게다가 콜린은 메리보다 더 포악하고 하인들에게 무례하다. 메리는 이미 밖에서 뛰어놀면서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콜린의 고집과 심약한 마음을 가슴아파 하고 그를 고쳐주고자 마음먹는다.

콜린은 서서히 건강해지고 메리와 디콘, 콜린은 비밀의 정원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콜린은 건강해지고 크레이븐이 돌아온다.



이 소설은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럴만도 하다. 너무 잽싸게 읽을 수 있을만큼 재밌게 잘 썼다. 정원을 묘사하는 장면은 벅차기까지 해서 읽는 동안 숨이 찼다. 아름다웠다. 오스카와일드의 [거인의 정원]도 약간 생각났지만 그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일단 감춰진 것은 형용하기 힘든 매력이 있으니까.


이 소설 속에서 소어비 가족을 제외한 두 명의 어린이들은 모두 어머니가 결핍돼 있다. 콜린은 태어난지 얼마 안돼 어머니가 낙상으로 죽었으며, 메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어머니와의 애착에서 제외됐으며, 그마저도 일찍 죽어 아이를 홀로 세상에 남도록 했다. 밥은 굶지 않았을지 몰라도 애정에 굶주렸으며 어린시절부터 학대아닌 학대에 노출된 채 병약하게 자랄 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디콘과 마사는 고된 노동과 굶주림에 고생하면서도 착하고 바르게 잘 자랐다. 그것은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현명하고 현숙한 참된 어머니 상이다. 

그 어머니는 자기 자식 뿐아니라 남의 자식들에게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중요한 인물이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도 까닭없이 그녀를 좋아한다. 메리에는 이방 저방 돌아다니면 싸대기를 때린다고 엄포를 놓던 가정부 매들록 부인도 수전 소어비를 거의 존경하다시피 하며, 아내가 죽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우울한 부자 크레이븐도 수전 소어비의 말이라면 즉각 행동에 옮긴다. 정말 희한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일찍이 모성에 대해 상당히 아름답고 고귀한 생명의 진원지로 바라보고 회복과 치료의 도구로 삼았다. 그래서 모성을 발현할 수 없는 어머니는 사고로든 질병으로든 요절하게 만든 것은 아닐런지.


또, 이 소설은 이심전심이 떠오르는 소설이다. 메리를 걱정하는 마사의 마음이 콜린을 걱정하는 메리의 마음으로 전이된다. 동물을 사랑하는 디콘의 마음은 메리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며, 그런 메리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콜린에게, 그리고 엄청나게 먼 곳에 도망가 있던 아버지 크레이븐에게 전달되게 한다. 사실은 동화적인 설정이지만 그래도 재밌다. 급기야 동물들도 마음을 갖는다. 새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야기가 소설인 것도 잊고 동심으로 푹 빠져들기도 했다.


신분의 파괴도 볼 만 했다. 아무리 부모를 잃었어도 엄연한 귀족의 친척인 메리에게 매들록부인이나 벤 노인이 함부로 말하는 것, 실제로 메리도 처음에는 반말을 했지만 나중에는 존칭으로 서서히 바뀌는 모습들이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메리도 그러한데 이야기의 말미에서는 평민인 소어비부인이 귀족의 아들인 콜린에게 '아가' 라고 부름으로 그저 어머니의 역할에만 충실했던 장면은 당시로는 박수가 나오는 - 혹은 그 반대?- 부분이었을테다.


대자연의 품에서 아이들이 살찐다는 것은 대단히 동의하는 바이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은 학교도 못가고 집에 틀어박혀 있으니 불쌍하다. 대자연에는 코로나가 있을리 만무하지만 마음먹고 차를 타고 가 드넓은 들판에 아이들을 데려다 놓는다면 삼십분도 버티지 못하고 울어버릴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연에서 뭘하고 놀아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놀 것은커녕, 볼 것도 읽을 것도 없었던 메리는 나가서 사람을 보았다. 벤노인이 뭐하는지를 보았고, 그 후엔 새를 보았고, 호기심을 가졌고 마침내 비밀의 정원에 입성했다. 방안에만 갇혀있던 폴린은 황무지에서 희망을 보았고, 결국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죽음만을 기다리던 나약한 아이가 미래를 설계하는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대단한 진보다.


다만, 분명히 메리레녹스가 주인공이었는데 결말은 콜린과 아버지 크레이븐씨의 화해로 귀결되어서 좀 아쉬웠다. 아이들이 어린이에서 내용이 끝났다는 것도 아쉬웠다. 아마 나는 [빨간 머리 앤] 정도의 획기적인 성장 쯤을 기대했나보다.


어쨌든 정말 재밌게 읽었다. 단숨에 읽었고, 어른들의 소설에서 숨겨진 뜻을 발견하느라 우왕좌왕 했던 독서말고 만화보듯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중간중간 삽화도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달랐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읽게 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사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전라도 사투리를 차용했는데 처음에는 좀 우스꽝스러웠지만 뒤에서는 왜 그렇게 설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작가든, 번역가든 고민 많이 했구나 생각했다.


이 소설을 만나게 돼서 기뻤다. 아메리카노만 먹다가 달달한 코코아 한 잔 기분좋게 마신 기분!


#비밀의화원

#시크릿가든

#thesecretgarden

#더스토리초판본

#미르북컴퍼니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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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살인법
저우둥 지음, 이연희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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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오락실에서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금방 잡혔다. 범인 천원칭은 도주는커녕 약간 은신했을 뿐이며, 범행일체를 자백하고 있으나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기색이 없다. 일면식도 없던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은 단지 감옥에 갇히고 싶어서라고 한다. 아니, 갇히는 걸 넘어서 사형을 받고 싶어서. 죽고 싶지만 죽을 용기가 안나서.



이 파렴치한 행동에 타이완 전역이 들끓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 잔악한 살인범의 변호를 맡겠다는 이가 생겼으니 그는 바로 폐업을 앞둔 가난한 변호사 위윈즈다. 언론을 비롯한 사람들은 윈즈가 천원칭의 변호를 자진해서 맡자 손가락질의 방향을 살인마에서 변호인으로 틀었다. 국선변호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돈 때문에, 혹은 인기를 끌기 위해서 변호를 맡았다는 것이다. 악의 대변인인 듯 비난한다. 윈즈도 처음부터 그를 변호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아니 펄쩍 뛰었다. 그 이유는 윈즈의 아내가 천원칭과 같이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주젠쭝에게 살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윈즈의 아내 유리팡은 임신중이었고, 선로에 서 있다가 주젠쭝이 밀어서 숨졌다. 윈즈는 그것으로 거의 모든 것을 잃었고, 심리 상담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극복하고 일선에서 정직하고 신뢰받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신과 닥터로부터 이 사건을 의뢰받게 된 것. 그 의사는 묻지마 살인범의 진짜 동기를 알아내 동일한 사건을 방지하고자 연구하길 원했고, 윈즈가 살인범의 변호를 맡음으로 살인의 진짜 이유를 캐내는 것에 도움을 주기를 바랐다. 약간의 방황 끝에 윈즈는 그 사건을 맡게 되고 천원칭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천원칭이 정신병자처럼 행동하자 당황한다. 그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모습을 자세히 담았다.




정신이 박약하면 살인죄로부터 감형이 가능한가. 우리는 비슷한 난제에 늘 시달려 왔다. 얼마전 지역 맘카페를 갔다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폭력 가해자 조두순의 석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염려하는 글을 보았다. 그의 형기는 고작 12년이었다. 살인자는 아니지만 8세 여아를 잔인하게 폭행해 아이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 모두를 살해한 정서적 살인마요, 무뢰한이었다. 가장 안전해야 하는 학교 가는 길에서 무참히 짓밟힌 아이는 아무런 회복의 길로 접어들지 못했는데 그가 알콜로 인한 심신미약으로 아주 가벼운 벌을 받았을 뿐이며, 시간이 흘러 이제 사회로 나오겠다는 것에 선량한 시민으로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가해자는 석방될지 모르겠지만 벌은 여전히 피해자와 가족들과 우리 사회가 받고 있다. 너무 무서운 일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묻지마 살인범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이 사회부적응자를 만들고, 그 부적응이 사람을 향한 적대를 만들었으며, 그로인해 전혀 죄의식을 느낄 수 없는 한 개인이 자기보다 약하고 불특정한 한 사람을 지목해 죽여버리는 과정을 심도있게 다뤄 독자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불우한 환경에서 죄를 짓는 것은 아니며,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 반드시 범죄자를 양산하는 것은 아님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여 읽는 내내 답답함을 벗어버리지 못하였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살인자는 무조건 사형에 처하라는 식의 거센 분노. 묻지마 살인의 이유를 알아보려고 하는 변호사를 매도하고 조롱하고 급기야 그의 뒤까지 캐서 황색언론의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하는 모든 것들이 상당히 부정하다고 느끼면서 책을 읽었다. 중간부분은 조금 지루하기도 했는데 그런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몰랐다.



그러던 중 또다른 묻지마 사건이 벌어진다. 심지어 이번에는 총기사고. 그런데 한참 전에 일어난 총기사고와 같은 총알이 발견됐다. 그러고보니 지난 번 사건 때 살인 무기였던 그 총이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사건이 끝나기도 전에 사건이 휘몰아친다. 끊어지지 않는 실타래처럼 얽히고 섥혀 있는 살인사건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인가.



독자의 즐거움을 위하여 뒷 내용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대단히 반전이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대악(惡)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무언의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허구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해서 나는 이런 결말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해피엔딩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안다. 결코 해피엔딩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이 만든 세상이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결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다지도 위험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이 생각거리를 마구 던진다는 것. 타이완의 이야기지만 결코 우리나라와 크게 상이하지 않다는 것도.



묻지마 범죄는 분명한 사회적 문제다. 사패적인 성향의 한 개인이 일으킨 문제라고만 치부하기엔 너무 무책임하다. 제도적으로 별도의 도움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는 점점 각박해지고 어려움을 돕거나 나눌만한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도움' 은 어디까지이며, '관심'은 어디까지인지 심도있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어릴 때부터 생명 존중 사상을 심어주는 것은 중요하다. 작은 곤충에서 동물, 인간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생명이든 소중한 것임을 끊임없이 주지시켜야만 인간의 목숨을 놓고 경과 중을 따지는 몰인정한 개념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지 죽어도 되는 인간은 없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법이 개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서는 안될 것이다. 사법의 존엄성은 분명히 있다.



재밌는 소설인줄 알았더니 깊이있게 사회문제를 다뤄 머리가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작가 저우둥이 범죄에 대해 첨예하게 고민한 작품이며, 완성도가 높아서 누구에게나 생각거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공포스러운 감이 있으니 (특히 결말)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결말을 맞이하시길 먼저 읽은 자로서 권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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