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가든 - 초판본 비밀의 화원 - 191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박혜원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때 소공녀를 엄마가 사줘서 읽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소녀일 때 이 책을 읽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재밌었다. 봄이 온 것 같았다. 숨차게 읽었다. 내가 다 벅차오르는 지경이었다. 때로는 세 명의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지긋한 중년이 되었다가 때로는 열살 짜리 아이들과 뛰어놀고 싶은 어린이의 마음이기도 했다. 늘 무겁고 숨겨둔 이야기가 많은 어른 고전만 읽다가 어린이 고전을 읽으니 마음이 괜히 푸근해지고 뭔가 따뜻한 느낌이었다. 때로는 동화가 어린이를 위한 게 아니라 어른을 위한 거라더니, 이 책도 어른을 위한 책이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받아 읽게 됐지만 정말 읽길 잘했구나 싶었다.


인도에 사는 영국인 메리 레녹스는 괴팍한 성격의 소녀이다. 병약했던 아버지, 파티광인 어머니 사이에서 없는 애처럼 살았지만 하인들에게는 매우 못됐게 굴었다. 메리의 보모-아야-는 메리의 엄마가 메리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숨겨서 키우다시피 했다. 그런 엄마와 애착관계가 없던 메리는 더 난폭해질 뿐이었고, 간혹가다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는 아름다웠으나 차가웠다. 앞 부분을 읽으며 엄청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콜레라가 돌았고, 메리는 하인들이 죽거나 떠나자 놀이방에 숨어있었다. 어느날 군인들이 와서 저택에 혼자 있는 메리 레녹스를 발견하고 그의 친척에게 보낸다. 메리는 영국으로 돌아온다. 고모부 크레이븐이 후견인이 되어 그녀를 돌봐주겠다고 한 것이다.


원래 성격이 포악했던 메리는 오자마자 영국에서처럼 살려고 한다. 하지만 하녀 마사는 메리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옷도 혼자 입으라고 하고 아가씨의 말을 듣기보단 자기 말을 더 많이 하는 등 희한하게 군다. 그러나 마사가 해주는 이야기들에 메리는 생각이 움직이고, 특히 마사의 동생 디콘이 황무지에서 놀면서 동물들과 교감하는 이야기는 늘 혼자였던 메리를 뒤흔든다. 그러다가 마사의 권유로 밖에 나가고 비밀의 정원을 궁금해 한다. 디콘의 도움으로 정원을 가꾸기로 한 메리는 엄청난 비밀을 디콘과 공유한 채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던 중 간간이 들리던 울음소리의 근원지를 발견한 메리는 자기와 동갑의 병든 사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구도 메리에게 크레이븐의 아들 콜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몰랐던 것. 게다가 콜린은 메리보다 더 포악하고 하인들에게 무례하다. 메리는 이미 밖에서 뛰어놀면서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콜린의 고집과 심약한 마음을 가슴아파 하고 그를 고쳐주고자 마음먹는다.

콜린은 서서히 건강해지고 메리와 디콘, 콜린은 비밀의 정원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콜린은 건강해지고 크레이븐이 돌아온다.



이 소설은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럴만도 하다. 너무 잽싸게 읽을 수 있을만큼 재밌게 잘 썼다. 정원을 묘사하는 장면은 벅차기까지 해서 읽는 동안 숨이 찼다. 아름다웠다. 오스카와일드의 [거인의 정원]도 약간 생각났지만 그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일단 감춰진 것은 형용하기 힘든 매력이 있으니까.


이 소설 속에서 소어비 가족을 제외한 두 명의 어린이들은 모두 어머니가 결핍돼 있다. 콜린은 태어난지 얼마 안돼 어머니가 낙상으로 죽었으며, 메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어머니와의 애착에서 제외됐으며, 그마저도 일찍 죽어 아이를 홀로 세상에 남도록 했다. 밥은 굶지 않았을지 몰라도 애정에 굶주렸으며 어린시절부터 학대아닌 학대에 노출된 채 병약하게 자랄 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디콘과 마사는 고된 노동과 굶주림에 고생하면서도 착하고 바르게 잘 자랐다. 그것은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현명하고 현숙한 참된 어머니 상이다. 

그 어머니는 자기 자식 뿐아니라 남의 자식들에게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중요한 인물이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도 까닭없이 그녀를 좋아한다. 메리에는 이방 저방 돌아다니면 싸대기를 때린다고 엄포를 놓던 가정부 매들록 부인도 수전 소어비를 거의 존경하다시피 하며, 아내가 죽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우울한 부자 크레이븐도 수전 소어비의 말이라면 즉각 행동에 옮긴다. 정말 희한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일찍이 모성에 대해 상당히 아름답고 고귀한 생명의 진원지로 바라보고 회복과 치료의 도구로 삼았다. 그래서 모성을 발현할 수 없는 어머니는 사고로든 질병으로든 요절하게 만든 것은 아닐런지.


또, 이 소설은 이심전심이 떠오르는 소설이다. 메리를 걱정하는 마사의 마음이 콜린을 걱정하는 메리의 마음으로 전이된다. 동물을 사랑하는 디콘의 마음은 메리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며, 그런 메리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콜린에게, 그리고 엄청나게 먼 곳에 도망가 있던 아버지 크레이븐에게 전달되게 한다. 사실은 동화적인 설정이지만 그래도 재밌다. 급기야 동물들도 마음을 갖는다. 새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야기가 소설인 것도 잊고 동심으로 푹 빠져들기도 했다.


신분의 파괴도 볼 만 했다. 아무리 부모를 잃었어도 엄연한 귀족의 친척인 메리에게 매들록부인이나 벤 노인이 함부로 말하는 것, 실제로 메리도 처음에는 반말을 했지만 나중에는 존칭으로 서서히 바뀌는 모습들이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메리도 그러한데 이야기의 말미에서는 평민인 소어비부인이 귀족의 아들인 콜린에게 '아가' 라고 부름으로 그저 어머니의 역할에만 충실했던 장면은 당시로는 박수가 나오는 - 혹은 그 반대?- 부분이었을테다.


대자연의 품에서 아이들이 살찐다는 것은 대단히 동의하는 바이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은 학교도 못가고 집에 틀어박혀 있으니 불쌍하다. 대자연에는 코로나가 있을리 만무하지만 마음먹고 차를 타고 가 드넓은 들판에 아이들을 데려다 놓는다면 삼십분도 버티지 못하고 울어버릴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연에서 뭘하고 놀아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놀 것은커녕, 볼 것도 읽을 것도 없었던 메리는 나가서 사람을 보았다. 벤노인이 뭐하는지를 보았고, 그 후엔 새를 보았고, 호기심을 가졌고 마침내 비밀의 정원에 입성했다. 방안에만 갇혀있던 폴린은 황무지에서 희망을 보았고, 결국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죽음만을 기다리던 나약한 아이가 미래를 설계하는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대단한 진보다.


다만, 분명히 메리레녹스가 주인공이었는데 결말은 콜린과 아버지 크레이븐씨의 화해로 귀결되어서 좀 아쉬웠다. 아이들이 어린이에서 내용이 끝났다는 것도 아쉬웠다. 아마 나는 [빨간 머리 앤] 정도의 획기적인 성장 쯤을 기대했나보다.


어쨌든 정말 재밌게 읽었다. 단숨에 읽었고, 어른들의 소설에서 숨겨진 뜻을 발견하느라 우왕좌왕 했던 독서말고 만화보듯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중간중간 삽화도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달랐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읽게 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사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전라도 사투리를 차용했는데 처음에는 좀 우스꽝스러웠지만 뒤에서는 왜 그렇게 설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작가든, 번역가든 고민 많이 했구나 생각했다.


이 소설을 만나게 돼서 기뻤다. 아메리카노만 먹다가 달달한 코코아 한 잔 기분좋게 마신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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