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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살인법
저우둥 지음, 이연희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한 오락실에서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금방 잡혔다. 범인 천원칭은 도주는커녕 약간 은신했을 뿐이며, 범행일체를 자백하고 있으나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기색이 없다. 일면식도 없던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은 단지 감옥에 갇히고 싶어서라고 한다. 아니, 갇히는 걸 넘어서 사형을 받고 싶어서. 죽고 싶지만 죽을 용기가 안나서.
이 파렴치한 행동에 타이완 전역이 들끓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 잔악한 살인범의 변호를 맡겠다는 이가 생겼으니 그는 바로 폐업을 앞둔 가난한 변호사 위윈즈다. 언론을 비롯한 사람들은 윈즈가 천원칭의 변호를 자진해서 맡자 손가락질의 방향을 살인마에서 변호인으로 틀었다. 국선변호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돈 때문에, 혹은 인기를 끌기 위해서 변호를 맡았다는 것이다. 악의 대변인인 듯 비난한다. 윈즈도 처음부터 그를 변호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아니 펄쩍 뛰었다. 그 이유는 윈즈의 아내가 천원칭과 같이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주젠쭝에게 살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윈즈의 아내 유리팡은 임신중이었고, 선로에 서 있다가 주젠쭝이 밀어서 숨졌다. 윈즈는 그것으로 거의 모든 것을 잃었고, 심리 상담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극복하고 일선에서 정직하고 신뢰받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신과 닥터로부터 이 사건을 의뢰받게 된 것. 그 의사는 묻지마 살인범의 진짜 동기를 알아내 동일한 사건을 방지하고자 연구하길 원했고, 윈즈가 살인범의 변호를 맡음으로 살인의 진짜 이유를 캐내는 것에 도움을 주기를 바랐다. 약간의 방황 끝에 윈즈는 그 사건을 맡게 되고 천원칭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천원칭이 정신병자처럼 행동하자 당황한다. 그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모습을 자세히 담았다.
정신이 박약하면 살인죄로부터 감형이 가능한가. 우리는 비슷한 난제에 늘 시달려 왔다. 얼마전 지역 맘카페를 갔다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폭력 가해자 조두순의 석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염려하는 글을 보았다. 그의 형기는 고작 12년이었다. 살인자는 아니지만 8세 여아를 잔인하게 폭행해 아이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 모두를 살해한 정서적 살인마요, 무뢰한이었다. 가장 안전해야 하는 학교 가는 길에서 무참히 짓밟힌 아이는 아무런 회복의 길로 접어들지 못했는데 그가 알콜로 인한 심신미약으로 아주 가벼운 벌을 받았을 뿐이며, 시간이 흘러 이제 사회로 나오겠다는 것에 선량한 시민으로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가해자는 석방될지 모르겠지만 벌은 여전히 피해자와 가족들과 우리 사회가 받고 있다. 너무 무서운 일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묻지마 살인범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이 사회부적응자를 만들고, 그 부적응이 사람을 향한 적대를 만들었으며, 그로인해 전혀 죄의식을 느낄 수 없는 한 개인이 자기보다 약하고 불특정한 한 사람을 지목해 죽여버리는 과정을 심도있게 다뤄 독자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불우한 환경에서 죄를 짓는 것은 아니며,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 반드시 범죄자를 양산하는 것은 아님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여 읽는 내내 답답함을 벗어버리지 못하였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살인자는 무조건 사형에 처하라는 식의 거센 분노. 묻지마 살인의 이유를 알아보려고 하는 변호사를 매도하고 조롱하고 급기야 그의 뒤까지 캐서 황색언론의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하는 모든 것들이 상당히 부정하다고 느끼면서 책을 읽었다. 중간부분은 조금 지루하기도 했는데 그런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몰랐다.
그러던 중 또다른 묻지마 사건이 벌어진다. 심지어 이번에는 총기사고. 그런데 한참 전에 일어난 총기사고와 같은 총알이 발견됐다. 그러고보니 지난 번 사건 때 살인 무기였던 그 총이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사건이 끝나기도 전에 사건이 휘몰아친다. 끊어지지 않는 실타래처럼 얽히고 섥혀 있는 살인사건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인가.
독자의 즐거움을 위하여 뒷 내용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대단히 반전이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대악(惡)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무언의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허구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해서 나는 이런 결말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해피엔딩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안다. 결코 해피엔딩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이 만든 세상이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결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다지도 위험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이 생각거리를 마구 던진다는 것. 타이완의 이야기지만 결코 우리나라와 크게 상이하지 않다는 것도.
묻지마 범죄는 분명한 사회적 문제다. 사패적인 성향의 한 개인이 일으킨 문제라고만 치부하기엔 너무 무책임하다. 제도적으로 별도의 도움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는 점점 각박해지고 어려움을 돕거나 나눌만한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도움' 은 어디까지이며, '관심'은 어디까지인지 심도있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어릴 때부터 생명 존중 사상을 심어주는 것은 중요하다. 작은 곤충에서 동물, 인간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생명이든 소중한 것임을 끊임없이 주지시켜야만 인간의 목숨을 놓고 경과 중을 따지는 몰인정한 개념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지 죽어도 되는 인간은 없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법이 개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서는 안될 것이다. 사법의 존엄성은 분명히 있다.
재밌는 소설인줄 알았더니 깊이있게 사회문제를 다뤄 머리가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작가 저우둥이 범죄에 대해 첨예하게 고민한 작품이며, 완성도가 높아서 누구에게나 생각거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공포스러운 감이 있으니 (특히 결말)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결말을 맞이하시길 먼저 읽은 자로서 권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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