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킹 오레오 새소설 7
김홍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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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이기호 작가의 추천사를 보고 무척이나 궁금했던 책이다. 또, 자음과 모음의 새소설 시리즈를 알기에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사건은 의문의 메일로부터 시작됐다. 전자상가의 사람들에게 전달된 총 설계도. 만든사람은 12. 반대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제작에 성공하고 쏘면 비트코인 시세 80억을 준단다. 안만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그 총은 터지고 난사된다. 서울 시내가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빠르게 읽어나갔다. 엄청 가독력이 좋다고 생각은 안했다. 짧은 챕터로 달라지는 서술자들은 적응하자마자 낯설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지만 나는 빨려들어가듯이 결말로 향하고 있었다. 범인이라고 일컬을만한 사람은 누구인지 이 모든 사건들이 상징하는 바가 뭔지.


처음 챕터는 총에 맞은 오수안의 서술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후에 윤정아, 임다인, 박창식을 거쳐 오수안으로 돌아오는데 그 후에는 다른 인물들도 끼어있다. 독자는 이 많은 인물들의 눈을 거치며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그런데 중간에 좀 이상한 부분도 있었다. 아마도 작가가 추구한 상징의 세계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거겠지만 오수안이 처음부터 오레오를 가지고 심상치않은 일을 벌이는데 고게 좀 의문이었다. 첫파트에서 병원에 입원한 오수안이 오레오를 먹는데 -먹는게 한가지 종류뿐이다- 뭔가 그 바삭하지만 부드러운 질감, 입안에 넣었을 때의 나름의 황홀경 같은 거는 조금 억지스러웠지만 이해는 갔다. 하지만 오수안이 뒤에가면 오레오를 얼굴에 바르고, 끓여먹고, 심지어 담배처럼 태운다. 곱게 빻아서 필터에 크림까지 묻히는 장면은 상당히 컬트적이었다. 이유는 아직까지 의문이다. 제목이 그래서 스모킹오레오 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오수안이 총에 맞아서 저런 일을 하나? 싶으면서도 내 정서로 완벽히 이해되진 않았다. 뭐 워낙 소설 속 인물은 문제적 인물이니까!


아무튼 대한민국은 총기소지는 불법으로 지정된만큼 상당히 안전한 나라라고 자부했지만 소설일지언정 자꾸만 시내복판에서 총이 쏴지니 무섭긴 했다. 세상에는 돈 많은 또라이가 참 많구나 싶기도 했다. 돈으로 남을 좌지우지 하려고 하고 불법을 합리화시켜 사회를 테러하고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악의 무리가 비단 소설만의 일이겠냐 싶기도 했다.


근데 나중에 귀신도 나오고 총이 빙의되기도 하고 해서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음 범죄느와르물이 애니메이션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융합은 불가역적이에요.

오수안은 이제 없습니다.

분리가 된다고 해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하고요.

저한테 중요한 건

멍청한 게임이 끝나서 더 이상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오레오가 죽여준다는 것뿐이죠.

p.225


작가 김홍에겐 이 책이 첫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독특한 상상력과 실과 허상을 넘나드는 장면의 묘사가 이 작가의 색채인지 궁금하다.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읽고 두 작품을 비교해보고 싶다. 얼마 전에 읽었던 [무차별 살인법]이 생각났는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자기를 신격화 해 물질을 가지고 인종을 청소하려고 드는 현대판 히틀러들이 존재해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서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최무진의 [인더백] 같은 느낌도 살짝 보이고, 김동식의 수많은 장편(掌片)소설들도 생각이 났지만 결국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나의 감성에는 어렵고 불편한 그런 작품 세계였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이 젊은 작가를 알게 돼서 반가웠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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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 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
박민영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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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박민영

북트리거



눈먼 돈, 장님 코끼리 만지기, 병맛,

벙어리장갑, 귀머거리 3년



평범하게 썼던 관용어이자 속담 가운데 엄청나게 많은 혐오 표현이 있었다는 걸 이 책을 보고 알았다. 나름 넓은 사고와 이타심을 정말 나름대로 지녔다고 생각했던 지난 날들이 굉장히 오만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혐오 발언이 있었는지 체크해보니 부끄럽기가 이를 데 없었다.


어제도 아들에게 농담반, 진담반 '우리 집에 게임충이 두 마리 있어요, 정말 극혐이에요.' 라고 말했다. 엄마야 늘 재밌게 말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말해도 본인은 게임을 끌 생각이 없으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아들이다. 우스갯소리로 내뱉은 저 말들 가운데 -농담일지라도- 써서는 안되는 단어들이 있다. 솔직히 벌레라는 표현을 붙여서 '-충'이라고 말하는 것이 혐오 발언이라는 걸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진지충, 급식충, 맘충, 틀딱충 등등 붙이기만 하면 말이 돼 버리고 그 어감에 따라 의미를 이해해 버리는 세상이 왔다. 공통된 하나의 습성을 싸잡아 한 번에 비난하는 잘못된 일반화에서부터 근거 없는 혐오 사상까지 너무나 많다. 말로 인한 상처가 실제 물리적 폭행을 휘두르는 트리거가 될 때까지도 혐오의 말들이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쉽게 쓰이고, 널리 쓰인다.


아직도 심각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혹은 문화로 받아들여 버리는 그 그릇된 혐오의 버릇들을 고치기 위해서 이 책은 꼭 널리 읽혀야 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왜 혐오 발언을 쓸까. 그리고 어쩌다가 혐오를 하게 되었을까. 누구나 개인의 생각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모두 같을 리 없다. 반대도 가능하고, 비판도 가능한 세상이다. 그렇지만 혐오는 미워하는 것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생각의 발로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집단을 싸잡아 욕하는가.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위만으로는 부족하다.

혐오에 대한 메타지성이 필요하다.

혐오가 정치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던 논리적 맥락 속에 있으며,

그 역사적 연원은 무엇인지, 그 발생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고,

인식이 바뀐다.

p.15



저자 박민영은 혐오를 4개로 나누었다. 세대 혐오, 이웃 혐오, 타자 혐오, 이념 혐오.


세대 혐오 중 가장 처음이 '청소년 혐오'였는데 청소년을 기르는 엄마로서 나도 모르게 내 아들을 '중2병'이라는 거에 가두고 그 시기는 저렇게 미쳐날뛰는 시기니 김정은이 대한민국 중2들 때매 못 쳐들온다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던 엄마였다는 게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작가의 글에 반성과 성찰과 더불어 내가 왜 그렇게 가감 없이 혐오적인 생각과 발언을 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돼서 좋았다. 작가는 혐오가 어디서 기인했는 줄 알면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안다고 생각한듯하다. 그래서 어쩌다가 사람이 세대별로 나와 다른 세대를 혐오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해 준다. 청소년이 급식을 무상으로 지원받는 것은 그 애들이 쓸모없는 아이들이 아니며, 그 부모가 세금으로 그것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므로 '급식충'이라는 말은 전혀 이유 없는 혐오이다. 또, 사회가 부조리해서 생기는 온갖 문제들을 청소년이 질풍노도의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오히려 어떤 세력이 이익을 목적으로 그런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 여성청소년에 대해 이중으로 혐오해 그것이 자연적으로 여성 혐오로 이어지게 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혐오의 뿌리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서 읽으면서 여러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살면서 가장 화가 나는 혐오 발언 중에 하나는 '맘충'이라는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거의 가장 먼저 나온 혐오 발언이 아닌가 싶다. 내가 엄마여서 아마 더 와닿는 발언이겠지만 나는 그것이 그저 일부 몰지각한 엄마들 때문에 빚어진 말인 줄만 알았다.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청소년의 반대자로서, 소비주의의 포로로서, 기업에 착취당하고 남편에게 무시당하는 존재로서 발현된 혐오가 기혼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모든 문제 상황이 단 하나의 원인으로만 비롯되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깨달은 바가 크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노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왜 우리나라는 노인들이 폐지를 주울까. 왜 노인은 역정을 잘 내고 늘 굶주리고, 빈한할까. 왜 노인은 기피 대상이 되었는지 그 뿌리가 어딘지 세세하게 알려주는 '노인 혐오' 파트도 읽어볼만했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늙는다. 나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아무리 다짐해도 사회 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도 여전히 소리만 지르는 노인이 될 것이다. 청년들이 노인들에게 갖는 엄청난 부담과 피해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조목조목 따져주는 작가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이웃' 혐오 장에서는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혐오의 시선을 담았다. 가장 어려운 파트는 장애인 혐오였다. 동성애 혐오와 세월호 혐오는 안하면 그만인데 장애인 혐오는 아주 뿌리박힌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장애인 시설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시설을 만드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을 걱정한다. 장애인 시설을 만드는데 비용이 드는 이유는 새로 만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비장애인이 기준이었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편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었다. 살다가 리모델링을 하려면 돈이 더 많이 드는 법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만들고 시작했더라면 따로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 아닌가. 생각이 전환 이자 그것이 사실이다. 무조건 더 많은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 것 때문에 부차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장애인 혐오의 발판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반대로, 장애를 이유로 삼아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요즘 살인사건이나 아동학대 사건이 나오면 무조건 조현병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진짜 조현병을 앓는 사람은 무조건 혐오하고 본다. 완벽한 차별을 양산하는 잘못된 언론 플레이도 멈춰야 한다.


알지 못하고 지은 죄는 엄청나다. 세월호 혐오 파트를 보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원한 적도 없는데 정치와 결탁한 언론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이웃'을 혐오하다 장(場)에 '피해자' 혐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성폭행 피해자 혐오는 말도 못 할 지경이다.


내가 이 책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분명한 사실은 모두가 읽어야 하는 좋은 책이란 점이다. 이 책을 반 정도 읽었을 때 정치색이 너무 강하지 않나 생각했다. 어느 날 모임에서 내가 이 책을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술에 술 탄 듯 알 수 없는 정치색을 지닌 사람보다는 한 가지 소신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밀어붙이는 사람이 훨씬 낫다고. 듣고 보니 그렇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수용하고 말고는 독자의 판단이다. 다만, 이 저자가 오랜 시간을 들여 조사하고, 연구한 모든 것이 이 사회의 지독한 혐오 사상을 조금은 느슨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았던 챕터는 '정치혐오'였다. 솔직히 말하면 정치 얘기 안 좋아한다. 투표할 때 찍는 '당' 은 있지만 돌아가는 현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저 파트를 읽고 왜 정치를 혐오하게 됐는지, 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많이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나의 이 깨달음이 혐오로 젖어가는 이 사회에도 스며들어서 이제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데올로기 생산에 있어서

가장 책임이 무거운 사람은

아무래도 지식인 계층일 것이다.

뜻있는 지식인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p.15

#지금또혐오하셨네요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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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 - 건축을 시로 만든 예술가 클래식 클라우드 23
신승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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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발자취를 신승철 교수의 필담으로 만난다! 발간이 거듭되며 탐서가들 사이에서 단연 으뜸으로 자리잡고 있는 클래식클라우드의 스물 세번째 페이지, [르코르뷔지에] 편을 읽었다.

내가 필로티 건축물을 처음 본 게 언제였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일기라도 써놓는 건데! 지금은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건물 형태고 특히 주차대란에 시달리는 빌라들을 볼 때면 필로티가 아닌 것에 괜히 분개할 정도로 익숙한데 아마도 처음 봤을 때는 무척이나 신기했을 것이다. 건물이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무수히 보고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필로티를 설계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모르고 살아왔던 지난날이었는데 어느날 초등학생 딸이 보는 위인전집에서 르코르뷔지에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흥미로웠다. 몇 년전에 읽은 거지만 기억에 남았던 것은 필로티는 물론이고, 인간의 크기에 맞게 가구를 배치하고 싱크대 같은 주방가구를 조절해서 설계한다는 모듈러 방식이 기억에 남았다. 또, 일반적인 성당과 다르게 지어진 롱샹성당과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친구의 집을 갤러리 형태로 만들기위해 계단이 아닌 오르막길의 형태로 복층을 설계한 것을 보고 우아, 우아를 연발했던 기억이 났다. 마지막으로 인도의 도시 찬디가르를 설계한 사람이라는 말에 으잉? 했었다. 어린이 책이므로 업적만 시간의 순서대로 도열돼 있을 뿐 상세한 설명이 없었다. 그렇지만 당시 나는 그 책에 상당히 매료됐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만날 운명이었던 걸까.

르코르뷔지에는 스위스 라쇼드퐁에서 시계 장식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위스는 워낙 시계가 유명하니까 한 나라의 장인정도 될 것 같다. 르코르뷔지에의 본명은 에두아르인데 이 책에서도 거의 본명을 이용해 이야기를 전개하므로 알아두는 게 좋겠다. 에두아르도 아버지를 따라 시계 장식가를 해보려고 하지만 스승 샤를 레플라트니에를 만나면서 건축가가 된다. 역시 인생에 있어서 좋은 스승은 길이되고 진리가 된다.

에두아르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유명 건축물을 돌아본다. 그런데 그는 건축양식만 보는 것이아니라 장식가의 면모를 드러내며 색채, 프레스코, 조각 등 장식디자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뭐 여기까지만 보면 유럽의 여타 예술가들과 다를바가 없지만 내가 르코르뷔지에를 위대한 예술가라고 여기는 것은 그가 다른 시각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애를 가지고 있던 르코르뷔지에는 편안한 건축가의 삶이 아니라 다소 어려운 길을 택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설계하고자 마음먹기도 했다.

에두아르는 친구랑 동방여행을 계획한다. 독일, 체코 등 동유럽을 지나 이스탄불, 그리스 등을 돌며 건축에 대한 본인의 시각을 넓히고 공법화한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여러가지 건축적 업적을 남기는데 이미 유명해졌지만 안주하지 않고 비종교인이면서도 종교적 건축물인 성당과 수도원을 건축하기에 이른다. 돈 벌기 위해 그냥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자세를 겸허히 하며 그가 받은 감동을 재현하는 건축양식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대단히 천재적이고 비범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도 있었다. 사보아 건축물은 물이 새서 입주민이 힘들어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유럽 백인 남성답게 이상주의자이기도 해서 기하학 형태와 정돈된 비례를 선호했다고 한다. 자연도 기하학이어야 했다. 그런 시각은 좀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건축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르코르뷔지에는 정말 예술가였다. 늘 실용이나 기하학에만 집착했던 그의 단호한 모습이 깨어진 부분이 있었는데 그리스 아토스산에서 드높은 하늘과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청춘의 희열과 고독을 동시에 경험했다고 한다. 그가 흘린 뜨거운 눈물이 종교적 성찰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위대하고 장엄한 것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그의 건축은 예술임과 동시에 시(詩)가 되어가고 있었다.

에두아르는 현대 건축의 시초인 돔이노 건축을 하고,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 리우데자네이루, 알제 등에서 현대도시들을 건설하기도 했다.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기도 했다. 피카소와 예술적 교류를 나누기도 했는데 갑자기 아는 사람이 나와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 책은 워낙 방대한 것을 다루는만큼 리뷰에 다 적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책을 덮고 이렇게 생각날 수 있다는 것은 저자의 문장력도 무시 못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재밌게 읽었다. 르코르뷔지에라는 사람을 제대로 소개받은 기분이랄까.

삶 자체가 특별했던 사람 르코르뷔지에. 죽는 것도 평범 할 수가 없다. 태양으로 헤엄쳐 가는 것을 동경했던 에두아르 할아버지는 73세의 나이로 바다에서 익사로 생을 마감한다. 가장 빛나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헤엄치면서 장엄하게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다. 진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르코르뷔지에는 지중해에서 예술적 영감으로 다시 태어나고, 지중해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다. 원래의 것으로 회귀라고 일컫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게 예술이라면 건축이야말로 생활에 밀접한 가장 친근한 예술이다. 미술이나 조각, 음악과 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이롭게 하지만 공간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건축은 인간이 생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 중의 하나인 '주'를 담당하면서 인간에게 가장 이로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현대사회를 살면서 '주(住)' 에게 인간 본연의 감정을 중시 여기는 공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단 '남의 눈', '평수' , '물질적 가치' 로만 가치를 두고 있지는 않나 싶어 반성하게 됐다.

때론 인류애적인 감성으로, 때로는 미(美)에 대한 경외와 찬양으로, 때론 거부할 수 없는 거룩함과 신성으로 현대건축의 미래를 선도했던 르코르뷔지에를 만나게 돼서 정말 정말 좋았다.

특히 아름다운 사진들과 르코르뷔지에의 말과 사상들을 꼼꼼하게 만날 수 있어서 넘 근사한 경험이었다. 비대면 언택트 사회에 이 책으로 돌아가신 천재 건축가 양반과 제대로 조우할 수 있게 돼서 클래식클라우드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참 좋은 책!


#르코르뷔지에

#신승철

#아르테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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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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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사후세계를 믿는가. (나는 천국을 믿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심판]은 사후세계로 간 폐암환자 아나톨의 환생과정을 다룬 다소 불교철학적인 작품이다. 국내의 책쟁이들 중에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모르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을테니 그의 소설은 차치하고 희곡작품 중에서는 이번이 두 번째다. (사실 나는 첫번째인줄 알았다. 요즘 좀 관심이 뜸했네)


베르나르는 원래부터 인간의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동양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오죽하면 제목이 [죽음]인 소설이 있겠는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연 [나무]인데 추천도 참 많이 했다.


아무튼 이 책은 폐암수술을 하던 아나톨이 자기가 죽은지도 모른채 천사들을 따라 재판관 앞에 서서 자기 삶을 돌아보는데 희곡이다보니 대화위주라 너무 정신이 없었다. 무슨 만담처럼 휙휙휙휙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이랄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이 마주보고 섰고 가운데 사람 뒤에 한 사람이 서 있어서 툭 치면 뒤로돌고, 그럼 뒤에사람이 또 툭치면 또 뒤로 돌고, 뒤로 돌고, 다시 돌고 (계속 돌아서 미안합니다) 뭐 그런 정신 사나운 느낌이었다.

등장인물이 서로 말하려고 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아나톨이 지은 죄과나 선행들이 프롬포트 화면에 나타나고 그는 아주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부터 죽기 직전까지 자기의 모습을 3자의 눈으로 본다. 그리고 발견한 놀라운 사실. 변호사인 카롤린이 자기의 수호천사였고, 아나톨의 인생은 지금까지 4번이상 환생되었으며, 환생하기 전에는 늘 자기의 삶을 정해진 모듈에 따라 선택했었다는 것. 아나톨은 죽기 전에 판사였는데 학교다닐때 동아리에서 연극반이었다. 정해진 운명은 연극배우가 돼서 어떤 여자랑 결혼하는 거였는데 아나톨은 저승의 재판 중에 고른 자기의 직업 (배우) 을 잊고 지금의 직업인 판사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정해졌어도 여러가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게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나톨은 이제 다시 부모와 자기의 직업, 취미나 핸디캡 등을 설정해야 하고 바로 환생을 해야하는 가운데 있다. 이게 뭐야, 죽자마자 바로 다시 태어나라고? 심지어 이렇게 급하게 인생을 결정하라고???


다소 정신없긴 하지만 저자의 철학은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베르나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임은 확실하다. 작가는 사람이 죽으면 환생한다는 윤회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카르마나 업보 등의 단어를 활용하고 있어서 동양의 불교사상을 제대로 공부했구나 싶었다. 작가는 개인이 인생에서 이루는 모든 일- 부모, 학업, 성격, 직업, 핸디캡, 질병, 죽는 방법까지도- 을 이전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설정했다.

 다만 유전 25%, 카르마가 25%, 자유의지가 50%가 들어가기 때문에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너무 재밌는 설정이다. 환생 같은 건 당연히 믿지 않지만 유전과 카르마, 자유의지의 비율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ㅎㅎ


또, 베르베르는 약간의 권선징악적 요소도 넣어놨다. 우리 구전 문학 [덕진다리]의 원님(원님이 죽어서 저승에 갔는데 곳간에 볏짚이 달랑 하나 있었다. 알고보니 이승에서 빈곤한 임산부에게 샅자리를 빌려준 선행의 증거였다)처럼 얼떨결에 베푼 선행들도 점수로 넣어준다. 이승에서의 삶이 좀 더 고통이거나 반대로 업적을 세우면 내세의 삶은 좀 더 윤택해지는 인과응보를 차용해 둔 것도 재밌다. (환자를 버리고 골프치러 간 의사도 벌을 받고 ㅋㅋ)


제일 재밌는 것은 결말이었다. 아나톨이 판사출신인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심판]을 아직 안 읽은 독자를 위해서 스포는 삼가겠다. 하지만 마지막은 정말 재밌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반전 ㅋㅋ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데 가장 모르는 것 중에 하나가 삶의 전개와 죽음 이후의 삶이다. 혹자는 죽고나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세에 뭐가 있어도 있을거라고 믿는다. 누구나 죽음을 거스르고 싶어하며 이별을 가슴아파 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뢰하기도 한다.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고 싶어한다.


그렇게 궁금하고 알 수 없는만큼 문학적 상상력을 힘껏 끌어내는 것도 당연히 사후세계이다. 최근에는 죽음을 보류하는 소설들도 많이 등장한 것 같다. 죽고나서 바로 저런 심판대나 영원한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이아니라 가기 전에 죽음이 보류돼서 전지한 어떤 존재로 산자처럼 살아가는 유예 스토리들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이별을 두려워하는 우리의 마음에서 기인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친대도 다시 태어나고, 죽음을 늦춘대도 분명한 현실은 죽음은 반드시 온다는 것. 이런 문학들로 죽고 난 후의 세계를 맛봤거들랑 자 이제 우리는 고민하자.


한 번 뿐인 나의 삶,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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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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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낯선 곳에 가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자라면, 그것이 자의에 의한 발걸음이라면 누구나 저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 여행으로부터 시작해서 여행으로 진행되는 삶, 그래서 늘 설레고 인생을 전개하다 순간순간 가슴 한쪽이 오래 뗀 군불처럼 뜨거워서 들썩거리게 되는 온 몸의 감각.


스물 한 살의 설희는 발리에 갔다가 호주 멜버른으로 간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엄마는 시시로 간섭하듯 문자를 보내고, 설희는 싫다. 치즈공장으로 일자리를 얻고 외곽의 셰어하우스에 들어갔다. 수퍼바이저는 간혹 시내로 셰어하우스 애들을 실어날라 준다. 주중에는 일하지만 주말에는 시간이 많은 설희는 갈 곳이 없다.


우연히 페스티벌에서 셜리클럽을 알게 된 설희. 그녀의 영어이름이 셜리인지라 할머니들이 죄다 셜리인 이 클럽에 강한 호기심이 생긴다. 클럽 근처에서 우물쭈물 하던 사이, S를 만난다. 한국계 독일교포 3세로 한국말은 거의 못하고 영어로 설희와 대화를 한다. 설희와 S는 모두 외로운 인물. 각자의 조국을 떠나와서 호주라는 낯선 곳에서 거주하고 있으니 그럴수 밖엔. 서로를 알아가며 친해진다.


그 와중에 설희는 셜리클럽의 명예 멤버가 된다. '셜리'는 한 때 유행했지만 지금은 한물간 이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순자, 복자' 정도 되는? 셜리는 외국인이 아니어서 정식 이름은 아니지마는 영어학원에서 흔히 짓는 영어이름, 그러니까 별명인 셈이다. 셜리는 그 곳에서 할머니들 (개중엔 아주머니들도)과 시간을 보내며 친분을 쌓는다.


설희는 치즈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많이 아팠다. 마스터는 쉬라고 했고 쉬었지만 치즈공장 오너가 설희를 해고했다는 말을 듣게 되고 셰어 하우스에서도 나갈 위기에 놓였다. 알고보니 마스터가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임의로 자른 것. 그러나 복직이 가능했음에도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설희.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린 S를 찾아 무작정 떠난 설희를 도와주기 위해 다른지부의 셜리클럽 할머니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면서 점점 설희는 자기를 발견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스포방지를 위해 결말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마음에. 쏙 들긴 했다. 뭔가 사랑사랑 한 것이 아직도 좋고 그리운 기혼여성이라서 그런지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지고, 만난지 얼마 안되는 남자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 무턱대고 달려가는 로맨스는 여기서는 절대 불가능 할 것 같으면서도 희한하게 응원하게 되는 그런 멜랑꼴리였다.


그러나 내가 집중하게 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설희와 엄마와의 관계다. 설희의 부모는 일반적인 부모가 줄 수 있는 류의 사랑을 설희에게 주지 않았다. 이혼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이혼가정이어도 성숙한 태도로 아이를 바르게 양육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설희는 철없는 엄마로부터 필터없는 감정적 학대를 당했다. 아이들에게 아빠를 험담하는 것은 뿌리를 부인당했다고 느끼게하는 감정적 학대행위다. 설희는 아빠를 좋아했지만 엄마는 끊임없이 아빠를 미워했고, 설희를 보면서 신세를 한탄했다. 아빠에게 상처를 주려고 딸을 희생시켰을 것이다. 엄마와의 관계를 끊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을 포기한 후의 권태로운 삶을 살기가 버거웠던 설희는 이 나라를 떠나기로 했다. 3개월동안.


설희는 어릴때 가수였던 아빠와 캐롤음반을 낸 적이 있고, 꽤 잘됐다. 그래서 연금처럼 음반 수익금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깨진 꿈이 아쉬웠던 듯 방황한다. 끊임없이 딸의 존재를 부정하게 유도하는 엄마를 견딜 수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와도 잘 안 받는 설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설희는 알게된다. S를 사랑하는 자기를 보면서 엄마의 치기어린 사랑을 이해한다. 셜리클럽의 할머니들을 보면서 지나간 것들에 대한 향수를 , 지난 후에 깨닫게 되는 찰나의 눈부심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엄마를 용서하는 것, 사랑을 마냥 기다리지 않고 끝내 찾아가서 쟁취하는 것. 용감함과 로맨스가 탑재된 설희의 여행은 평생 가슴을 뛰게 만드는 젊은 날의 눈부심이 되었다.

이 소설은 재밌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테이프의 앞면과 뒷면을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일시정지버튼도 있고, 재생도 있다. 일시정지는 지금의 설희가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녹음한 형태를 가졌고, 재생은 과거의 설희가 호주여행을 서술하는 형태를 가졌다.


오래전에 좋아하는 오빠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 테이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도 테이프 세대여서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잃어버린 세대를 찾아서 같은 기분?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지나고나면 돌려서 녹음할 수가 없다. 지금처럼 어플에서 돋보기에 제목 절반만 쳐도 바로 플레이 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라디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좋은 노래가 나오면 언제든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네모버튼을 꾹 누를 수 있도록 화장실도 안가고 기다리면서 안테나 길게 뺀 라디오에 귀를 밀착했었다.


여행지에서의 사랑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하는 테이프 같았다. 지나가버리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그래서 지키고 있어야 하고 행여 잘못 녹음되면 끈기를 가지고 다시 찾아야만 하는. 기다림도 쫓아감도 모두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믿음에서 비롯되니까. 셜리가 돼버린 설희의 레코딩은 그래서 성공이다. 행복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솟았다.


흘러가는 세월의 페이지에서 나는 무엇을 기록하여 둘까.


정말 재밌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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