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사육장 쪽으로’는 좋은 소설이다. 이 소설이 담고는 있는 주제,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 등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이 한 작품만으로도 작가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정말 괜찮은 소설이다.
단편집 <사육장 쪽으로>는 재미없다. 표제작 ‘사육장 쪽으로’에 드러난 주제의식, 글쓰기 방법 등이 판에 박은 듯 똑같다. 8편이 모아놓은 단편집이지만 마치 한 작품을 읽는 느낌이다. 그런데 다른 작품들은 표제작만큼 강렬하지 못하다. ‘사육장 쪽으로’는 두 번째 실려있다. 이미 최고점을 찍은 작품집은 뒤로 갈 수록 그 힘을 읽는다. 작가는 세상을 인식하는 개성 있는 시선이 가지고 있고, 독특한 문체로 그것을 표현하여 괜찮은 작품을 써냈지만, 독자는 거듭될수록 지친다.
우연히 끼게 된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이 있다. 소설가였다. 편혜영의 이야기가 나왔고, 그는 “우리 문단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자연스레 편혜영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다. 나중에 살펴보니 편혜영은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였고, 두 권의 작품집과 한권의 장편을 출간한 작가였다. 그리고 호평 일색이었고, 여러 차례 수상경력도 눈에 띄었다. 결국 두 번째 작품집 <사육장 쪽으로>를 읽게 되었다.
편혜영의 소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과연 독자들의 생각도 문단의 평가와 같을까?하는 생각 말이다. 이건 작가의 재능, 혹은 작품의 완성도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육장 쪽으로’는 훌륭한 단편이고, 함께 실린 작품들도 좋은 소설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재미가 없는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미안하지만 편혜영의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쓰면 평론가들이 좋아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쓰면 독자들과의 소통은 요원하겠구나 싶었다. 그가 ‘아오이가든’이나 ‘사육장 쪽으로’같은 뛰어난 단편을 쓴 작가라할 지라도 말이다. 물론 이러한 판단은 성급하다. 첫 장편 <재와 빨강>을 읽은 뒤에야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에게 공평하리라. 하지만 선뜻 끌리지 않는다. 장편이 ‘사육장 쪽으로’의 확장판이라면 기꺼이 반기겠지만, ‘사육장 쪽으로’와 닮은 작품들의 장편화라면... 거부감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