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나라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작가는 언제나 작품 뒤에 숨어있다. 자신의 음험한 모습을 작품으로 가리거나, 미화하거나, 과장한다. 왜 음험한 모습이냐고? 비록 작품의 창조자이지만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음험하니까. 암튼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을 꾸미는 일을 즐긴다는 것이 한 독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종종 그들이 꾸며낸 것들만 보고 작가에게 빠지기도 한다.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을 존경하거나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필경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마셜 프랜스의 어떤 점에 이끌렸는가? 바로 그의 상상력이었다. 하나하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가며, 나를 조용히 사로잡고, 겁에 질리게 하고, 눈을 휘둥그레 뜨게 하거나 미심쩍어하게 만들고, 눈을 가리거나 반대로 기쁨에 박수를 치게 하는, 능력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가끔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작품에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 그는 내 상담 치료사이기도, 단짝 친구이기도, 고백을 받아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어떻게 나를 웃게 만드는지도, 어떻게 나를 겁주는지도, 어떻게 적절하게 이야기를 끝내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내 입맛을 정확하게 아는 요리사였다.(p.207)  
   

마치 ‘내게 100%의 이상형인 연인’을 만난 사람의 행복한 비명과 같다. 그렇다. 한 작가가 있고, 그가 쓴 작품에 내게 100% 들어맞는 작가를 발견했다는 것 무지무지 행복한 일 것이다. 평생 이런 작가를 한 두 명이라도 찾아낸 독자는 그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웃음의 나라>의 주인공 토머스는 운 좋은 독자다. 마셜 프랜스라는 동화작가가 100%였으니까. 그를 통해 평생 즐거움과 위로를 얻었던 토마스. 결국 만사를 때려치우고 자신의 영웅이자 친구이며, 베일에 가린 괴짜 동화작가 마셜 프랜스의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웃음의 나라>는 토마스가 마셜 프랜스의 전기를 쓰기로 결심하고, 마셜 프랜스가 살던 시골 마을에 방문하여, 마침내 전기를 쓰는 와중에 벌어진 일들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을 꽤 오래 붙잡고 있었다. 미묘한 분위기와 어투를 즐기지 못하고 초반부에서 머뭇거리던 차, 작정하고 첫 페이지를 되돌아가 내달렸더니 뒤늦게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작품의 무게와 분위기, 캐릭터를 잘 못 파악한 독자의 둔감함 때문이리라.
가속이 붙자, <웃음의 나라>는 무척 재미있었다. 최근 이 만큼 재미있던 소설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조나선 캐롤은 유머가 넘치고, 인물의 개성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아는 작가다. 게다가, 게다가, 게다가 이야기를 끌어갈 줄 안다!!
<웃음의 나라>를 읽는 동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네 페이지짜리 에필로그 빼놓고는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소설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다.(이런 비슷한 설정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라고 하면, 소설과 영화를 합하면 49편은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책읽기를 했다는 것은, 독자가 아둔하거나, 작가가 명민하거나... 뭐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웃음의 나라>는 책과 작가, 독자에 대한 질펀한 환타지다. 동시에 태평양 건너 미국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단출한 역사를 등지고 살아가는 미국 작가들은 종종 현실 속에 환타지를 접목시켜 신화의 공간을 만들곤 하는데, 그 속에서 역사성을 획득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오즈의 마법사>처럼 말이다.(텍사스 벌판과 토이네도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 우리에겐 그 얼마나 생소한가!) 유대계 출신의 이민자 동화작가 마셜 프랜스가 게일런에 정착하고,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을 두고 이렇게 읽는 것은 오버일까?
암튼 <웃음의 나라>는 가슴에 푹 박히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작품이다. 책읽기의 초반부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맨 것은 앞서 이야기한 너무나 미국적인 무언가에 쉽게 이입할 수 없었기에 그러지 않았나 싶다.(실제로 90년대 미국에서 맹활약했던, 몹시 미국적인 밴드 토드 더 웻 스프라켓(Todd the Wet Sprocket)의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웃음의 나라>를 읽었다. 참 잘 어울리더라.)

작품 뒤에 숨은 작가의 음험함을 이야기하다가, 엉뚱하게 <웃음의 나라>는 미국적인 소설 어쩌구하는 엉뚱한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었다. 앞서 작가가 음험하다고 느낀 것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작가의 사진은 물론 프로필도 실리지 않은 것 때문일 것이다.(이봐 비겁하게 숨어있지 말고 나와!!) 이것이 오히려 독자의 호기심과 환타지를 자극하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물론 작품을 좋을 때의 이야기지만. 작가의 의도가 신비주의 노선 때문인지, 진정 작품과 독자와 순결한 만남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는 알 수 없지만, <벌집에 키스하기>가 궁금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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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산책 2010-08-1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데빌님!!
완전 리뷰에 폭 빠져 읽었네요 ㅎㅎ
근데 리뷰가 넘 좋으니 그 흡족감에 더이상 책에 대해선 관심이 사라진다는..ㅋ
이 책도 첨 접하는데, 아주 재미난 발상 같네요^^

lazydevil 2010-08-13 12:18   좋아요 0 | URL
이런.. 이런.. 과찬의 말씀을~~ㅎㅎ
암튼 이 책 재미있어요, 시간 나시면 읽어보세요^^

곤조 2010-08-1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벌집에 키스하기 저 있습니다. 빌려드릴게요. 먹지만 마세요.

lazydevil 2010-08-17 10:17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사진 찍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