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 - Incep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인셉션>은 이런 발상에서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비밀을 훔쳐보거나 조작하려는 시도로 확장됩니다.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다른 사람의 꿈에 침입하는 전문가입니다. 저 밑바닥에 있는 무의식의 영역까지요.
비밀을 캐려하는데 꿈의 주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침입자의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 방어체계가 작동하는데, 침입자를 제거하려는 사람들(킬러 혹은 군인)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무의식이 비밀스러운 생각을 들춰내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거죠. 마치 백혈구(이건 함께 영화를 본 사람의 표현입니다. 적절한 거 같아요)처럼요. 재미있는 것은 침입자인 코브의 무의식도 동시에 등장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코브를 방해하고 위협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꿈속에 자기 무의식이 나타나 다른 사람의 무의식이 공조 아닌 공조를 펴는 거죠. 어때요 재미있지 않나요? 




이런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출발한 <인셉션>은 뜻밖에 지루하고 따분했습니다. 괜찮은 아이디어를 황홀한 스펙타클로 형상화했는데도 말입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극적 갈등이 희미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인공들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미션을 수행합니다.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가 거짓 기억을 주입시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세 번에 걸친 꿈속 침투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꿈속에서 또 꿈속으로,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 꿈을 꾸는 인물의 내면에 자리한 비밀을 찾아내어 새로운 기억을 이식해야합니다. 점입가경(漸入佳境). 그러니까 점점 들어갈 수록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는 거죠. 마치 거듭되는 컴퓨터 게임의 미션처럼 말입니다.(혹시 <인셉션>의 원작이 게임인가요? 게임에 대해 무지하고, 검색하는 것도 귀찮네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속의 꿈이 겹치는 설정, 이중삼중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것은 정말 컴퓨터 게임의 스테이지 진행과 흡사합니다. 각 스테이지 마다 뛰어넘어야할 미션이 있을 뿐 플레이어에게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똑같습니다.

물론 주인공 코브에게 갈등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무의식에는 아내를 죽도록 했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코브의 아내(그러니까 코브의 무의식)는 꿈속에 나타나 번번이 코브의 임무를 방해합니다. 이런 아내를 볼 때마다 코브는 괴로워하죠. 그런데 이것이 코브가 맡은 임무와 전혀 관계가 없어요. 코브의 임무는 피셔라는 인물의 꿈에 침투하여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는 것. 그래서 피셔의 갈등을 해결하는 겁니다. 결국 영화에서 내내 펼쳐지는 엄청난 스펙타클은 주인공과 감정적 교감이 전혀 없는 피셔를 위한 이벤트입니다. 피셔를 구원하기 위한 깜짝쇼인 거죠.
그럼 주인공 코브의 갈등은? 깜짝쇼를 방해하는 요소의 하나 일 뿐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 이런 이유로 주인공 코브가 번민하고 눈물을 흘려도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가 휴대폰 통화를 하느라 제대로 미션을 클리어하는데 방해받는 느낌이랄까요? 둘은 전혀 엮기지 않습니다. 




인간의 꿈을 소재로 하고 있고, 무의식과 림보, 토템을 들먹이고 있지만 <인셉션>은 전혀 지적인 작품이 아닙니다. 꿈이라는 것의 특성을 잘 소화하지도 못했고, 무의식과 림보, 토템도 멋지게 활용하지 못하고 이름만 따온 수준입니다.
사실 <인셉션>의 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꿈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의 무의식이 은유와 환유로 재구성된 것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말입니다. 프로이트에 일자무식인 사림이 봐도 전혀 프로이트적인 세계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꿈과 인간의 뇌에 관한 과학적인 근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 <인셉션>의 꿈은 무엇일까요? <매트릭스>의 시뮬라크 세계와 같습니다.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답을 시뮬라크 세계(꿈)에서 찾는다는 설정이 똑같습니다. 시뮬라크의 세계를 겹겹이 쌓아놓아 그 구조를 조금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 다를 바가 없습니다. 꿈속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면 림보라는 동일한 세계에 빠진다는 설정이 그 증거입니다. 저마다 다른 꿈을 꾸어도 그들이 떨어지는 림보는 하나로 설정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영화 속에서는 이를 정당히 얼버무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니면 제가 얼버무리고 있거나요. 사실 좀 지루하게 본 터라 대사에 집중하지 않은 장면 종종 있거든요.)
결론만 말하면 가상현실에나 어울리는 설정을 꿈이라는 소재에 우격다짐으로 끼워 넣은 듯한 인상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도 영화를 지루하게 만드는데 한몫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드라마에는 약해요. 감정을 쌓아가기보다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정보전달에만 관심을 두거든요. 사건이 긴박하게 전개되기는 하지만 늘 서사구조가 느슨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요. 특히 씬과 씬의 연결이 거칠기 그지없는데, 뛰어난 편집으로 이를 극복하죠.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무성영화처럼 배경음악이 끊이질 않고 흐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또한 거칠게 이어붙인 씬들을 눈가림하기 위한 수단인데 때로는 몹시 귀에 거슬립니다.
반면 절정의 순간을 상정해놓고 스트레이트하게 몰아붙이는 힘은 대단합니다. 거의 뻔뻔스러울 정도로 막판 승부만을 위해 가속을 붙입니다. 관객들이 인물과 동화하는지 어쩐지는 관심 없어요. 리듬감 부재! 언제나 클라이맥스의 폭발만을 위해 감정을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니까요.
<다크 나이트>의 경우 크리스토퍼 놀란의 스타일이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 작품입니다. 하이라이트인 ‘배트맨과 조우커의 대결/투페이스의 탄생/선상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교차하면서 긴장감과 함께 묵직한 주제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인셉션>의 경우 그렇지 못합니다. 실패죠. 긴장감은 힘을 발휘하나 주제가 부각되지 않기에 공허합니다. 사건의 설정만 있을 뿐 인물의 갈등이 없었으니 주제가 떠오를 리 없지요.
똑같은 스타일의 영화인데 왜 <다크 나이트>는 성공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캐릭터의 힘입니다. 배트맨/조우커/하비 덴트(투 페이스)의 캐릭터는 이미 분명한 갈등요인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서로 뒤엉키며 이야기가 완성되고 마무리되었거든요. 다시 생각해봐도 <다크 나이트>는 무모하리만치 저돌적인 걸작 블록버스터입니다.


영화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나봅니다. 그런 이야기를 얼핏 듣고 호기심을 느낀 것도 사실이죠. 그래서 영화를 보았으니까요. 뚜껑을 열어보았더니 <인셉션>은 그냥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입니다. 모호함은 의도된 것이 아니라 요령부득 때문입니다. <다크 나이트>의 무게감에 턱없이 모자를 뿐만 아니라, <매트릭스>가 구현한 시뮬라크 세계도 제대로 흉내 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뜯어볼수록 흥미로운 두 영화와는 격이 다릅니다.
감기는 눈을 부릅뜨느라 ‘백푸로’ 집중하지 못했지만 이런 소리를 한다고 감독이 억울해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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