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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김은국의 <순교자>를 읽으며 무척 당황스러웠다. 한국인 작가가 쓰고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뜻밖에도 한국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은국은 이 작품을 영어로 썼다. 하지만 그는 우리 땅에서 태어나 성장한 한국인이다. 젊은 시절 6·25전쟁을 겪었고, 휴전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9년만에 쓴 작품이 <순교자>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한국인이며, 6·25 전쟁 중 평양을 주요무대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순교자>는 한국소설이 아니었다.
<순교자>에는 한국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말을 하고, 한국인 성과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지만, 그들에게서 한국 사람다운 무언가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이 엘리엇, 웬트워스, 혹은 찰스, 스미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참 이 작품에는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는 나오지 않는다. 동시에 성역활도 중요하지 않다. 주제가 성을 초월한 것이기에 말이다!)
6·25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전쟁은 ‘6·25전쟁’이라는 명칭보다 ‘한국전쟁’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린다.(물론 영어로 쓴 이 소설은 ‘Korea War’라고 표기했을 것이다.) 이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6·25전쟁은 우리 민족에 깊은 상처를 안긴 그 전쟁이 아니다. 그냥 관념적인 전쟁일 뿐이다. 이야기를 위한 하나의 배경일 뿐이다. 베트남 전쟁이든, 포클랜드 전쟁이든, 걸프전이든 상관없다. 그 무대가 바뀐다해도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크게 변하지 않을 듯싶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시선도 간혹 놀랍도록 국외자(局外者)처럼 보인다. 가령 주인공 ‘나’에게 친구 박 대위가 보내온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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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인 데다 양쪽이 모두 한국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어. 우리가 어느 쪽을 죽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네. 모두 똑같은 언어로 “누구야, 너 누구야?”만 외쳐대고 있었으니 말일세.(p.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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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국군과 인민군이 육박전을 벌이는 상황을 묘사하는 이 대목은 철저하게 제삼자의 시선이다.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는데 더 없이 좋은 설정이지만, 이는 마치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의 시선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어색함과 이질감은 <순교자>를 읽는 내내 목안의 생선가시처럼 불편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작가는 미국으로 간지 9년만에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타자의 시선으로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타인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한 의도였을까? 아무튼 김은국은 이 작품으로 한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후보로 선정되었다.
다행히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괴롭히던 의문은 책 말미에 실린 역자의 해설 덕분에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역자 도정일 역시 작품의 시선에 의문을 제시한다. 동시에 이 작품이 역사적 문화적 한계에서 벗어나 인간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이며, 동시에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순교자>의 성공요인을 분석한다. 동의한다.
정말이지 지극히 개인적이며 좀스러운 이야깃거리가 대장 먹는 국내문학의 현실을 생각하면, 무국적이지만 범세계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순교자>는 분명히 큰 그릇에 담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