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가 1953년에 발표한 <주머니 속의 죽음 A Pocket Full of Rye>은 영국의 구전동요 ‘지빠귀 노래’를 소재로 한다.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범인은 매번 수수께끼같은 단서를 남긴다. 늘 그렇듯 제인 마플은 범인이 암시한 바를 쉽게 풀어낸다. 범인은 구전동요 ‘지빠귀 노래’의 가사에 따라 살인을 저지른 것. ‘지빠귀 노래’는 무엇을 의미하며, 범인은 누구일까?
** 약간의 스포일러!!
<주머니 속의 죽음>의 익숙하지만 흥미로운 설정을 쫓아가며 머릿속을 떠다녔던 생각은,
1. 애초에 범인이 일부러 단서를 흘린 것은 둘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과시욕에 사로잡혀 있거나, 수사의 혼선을 빚도록 유도한 위장술이거나...
2. 과시욕, 그러니까 무언가를 외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범인이라면 또 대략 두 가지일 것이다. 미친놈(싸이코패스)의 살인유희이거나, 죽은 자의 악행을 폭로하려는 복수극일 터.(작품 속 피해자는 적당히 나쁜 놈이다.)
3. 그런데 제인 마플이 등장하는 크리스티의 작품에 싸이코패스 캐릭터는 어울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복수극이라면 범인의 동기가 너무나 뚜렷하고 쉽게 드러나는 셈. 자고로 전통 탐정추리극의 범인은 베일에 싸여 있어야한다. 그렇다면 피해자에게 앙심을 품은 인물이 범인이라는 것은 너무 시시하다.
4. 결국 범인이 던져놓은 단서(크리스티가 설정한 ‘지빠귀 노래’ 살인)는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지 않을까?
결국 작품의 핵심 아이디어인 ‘지빠귀 노래’에 대한 어림짐작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크리스티가 심어놓은 모든 단서를 면밀히 파악하여 범인을 미리 확신한 것은 아니다. 다만 누가 범인이 아닌지를 알 수 있었던 정도.
제인 마플이 늦게 등장하고, 사건을 둘러싼 트릭이 비교적 단순한데다가, ‘눈치 독서’를 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머니 속의 죽음>은 재미있게 읽혔다. 이건 순전히 크리스티의 글솜씨 때문일 터. 특히 범인의 정체가 밝혀진 후, 뒤늦게 제인 마플에게 도착한 편지는 훈훈한 여운을 남긴다. 소품이라도 크리스티의 역량이 드러난 대목이다.
<주머니 속의 죽음>, 떠오른 것들
-새에 대해 문외한인지라 지빠귀가 어떤 새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노랑지빠귀, 검은지빠귀, 호랑지빠귀, 흰눈썹지빠귀 등 여러 종류가 있다는데... 사진을 찾아보니 유려한 선을 가진 새였다. 특히 우아하게 뻗은 꼬리 깃털은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blackbird’가 검은지빠귀인가? 암튼 범인이 남긴 단서 ‘blackbird’는 피해자의 악행을 기억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음험한 협박을 의미하는데 묘하게 비틀즈의 아름답지만 애처로운 노래 ‘blackbird’의 가사와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비틀즈의 ‘블랙버드’는 1968년에 발표되었고, <주머니 속의 죽음>은 1953년작이니 무관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