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미스테리 문고에서 출간된 <지하인간>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한 번역본입니다. 그럼에도 성실하기 그지없는 탐정인 루 아처를 좋아하는 독자는 묵묵히 참아내며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니까요. <지하인간>에는 작가 로스 맥도널드의 알싸한 매력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지하인간>은 전형적인 로스 맥도널드 풍의 작품입니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루 아처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의뢰인을 보호하고,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추적하고, 사건을 둘러싼 진실을 하나하나 밝혀냅니다. 그리고 베일을 벗은 진실은 언제나 불행이란 녀석과 쌍둥이처럼 나타나고, 그것을 사주하는 것은 늘 그렇듯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입니다. 한심한 번역으로 손해를 본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로스 맥도널드의 문체입니다. 아시다시피 루 아처 시리즈는 1인칭으로 진행됩니다. 주인공 루 아처의 구시렁거리는 넋두리는 이 시리즈를 읽는 큰 즐거움 중 하나죠. 그런데 ‘찌질한’ 번역은 이런 즐거움을 뻔뻔스럽게도 싹둑 잘라내 버렸습니다.(이런 상황, 그 어떤 푸대접과 몰상식도 이해하고 참아내는 장르소설 팬 나부랭이지만 인내의 한계가 느껴집니다.) 매력적인 문체를 제대로 즐긴 것은 <위철리 여자>입니다. 작가의 위트 넘치는 상황묘사와 루 아처의 적당히 빈정거리는 어투가 잘 드러나더군요. 그런데 <소름>과 <지하인간>에서는 이런 즐거움을 미루어 짐작만 할 뿐입니다. 문체를 즐길 여력은 고사하고 문장의 뜻을 파악하기도 버거울 정도였으니까요. 보아하니 <소름>과 <지하인간> 모두 같은 역자가 번역했더군요. 편집자도 같았을까요? 아무튼 <지하인간>의 번역이 조금 더 끔찍한 걸로 기억합니다. ‘진실’이 주는 충격의 무게감만 놓고 보면 <소름>이 가장 둔중합니다. <위철리 여자>의 경우 그 ‘진실’보다 종잡을 수 없는 사건의 변화추이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반면 <지하인간>은 앞의 두 작품과 달리 좀더 정서적으로 독자를 밀어붙이는 힘이 있는 작품입니다. 솔직히 이야기 전개과정은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루 아처가 활약하는 2박3일 동안 너무 많은 인물이 얼굴을 비죽비죽 내미는 통에 중반 이후부터는 누가 누구의 아내이며, 누구의 아버지인지 헛갈릴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말미에 다다르면 대단한 힘을 발휘하며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아니 힘을 발휘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서의 폭발로 이어집니다. 이야기 말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불행이거든요. <지하인간>의 불행은 로스 맥도널드의 단골 소재인 ‘해체된 가정’ 혹은 ‘부모와 자식간의 불화’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 강도가 세게 느껴지는 것은 그 불행이 미치는 영향이 총체적이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게 얽힌 등장인물 중 누구 하나도 불행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이죠. 루 아처마저도 인물들의 불행을 공감하며 전에 없이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드러냅니다. 본인도 비슷한 상처가 있다는 암시가 곳곳에 드러나거든요. 이 총체적 불행이 독자까지 짓누르는 통에 책을 읽고 난 후 잿빛 여운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품을 거듭해 읽을수록 로스 맥도널드는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작품은 대중소설의 범주에 머물고 있지만 독특한 문학적 향기가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그가 작품 속에 그려낸 세상은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닙니다. 장르소설의 일회성 유희에만 집착한 허구의 세계는 더욱 아닙니다. 그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생생하게 현실을 그려내고 있기에 놀라울 뿐입니다. 대책 없는 싸구려 소설들이 판치는 대중소설계에서, 마치 늪에서 피어난 연꽃 같다고나 할까요? 로스 맥도널드의 더 많은 작품이 양질의 번역으로 출간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원제 ‘The Underground Man’을 번역한 제목 ‘지하인간’은 내용상 ‘땅 속의 남자’가 더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