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살육에 이르는 병>은 매우 야심찬 작품입니다. 정말이지 아비코 다케마루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폭로되는 ‘속임수’를 위해 시종일관 우직하게 몰아붙이더군요. 그 결과는 어떠냐고요? 일단 성공입니다. 책 말미에 실린 작품 해설의 표현대로 저를 ‘멍한’ 상태로 몰아넣었으니까요.

사실 이야기는 별게 없어요. 일본 소설이나 만화, 영화에 지겹게 등장하는 성도착증 사이코 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각각의 살인 사건의 진행과정을 친절하게도 상세히 묘사하고 있죠.(아시죠? 이 책이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것!)
그리고 범인이 경찰에 붙잡히는 순간 이야기는 끝납니다.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변태성욕자나 살인마가 된 선정적이고 짜릿한 고어물을 원한다면 소설보다 영화나 만화가 더 자극적이죠.   

그런데 <살육에 이르는 병>에는 영화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소설이라는 매체에서만 가능한 ‘트릭’이 숨어있습니다. 그게 뭔지는... 스포일러성이라 이만!  
아무튼 이 ‘트릭’은 <살육에 이르는 병>을 흔해 빠진 성도착증 사이코 연쇄살인마 이야기의 틈바구니에서 구해내고 있습니다.

작품을 다 읽고 나니 나이트 사말란이라는 감독이 떠오르네요. 반전 강박증에 걸린 할리우드 감독말이에요. 이 사람 작품 중 <식스 센스>는 ‘대단한 발상!!’, <언브레이커블>은 ‘그랬던 거야!’, <사인>이나 <빌리지>는 ‘또 같은 수법이군, 그만 좀 하지.’ 뭐 이렇게 투덜거리며 본 기억이 납니다.

<살육에 이르는 병>도 비슷한 트릭이에요. 이미 지나온 페이지를 다시 살펴보며 복기를 하고 싶게 만든다는 점에 <식스 센스>와 비슷하지만, 그 강도는 글쎄요... 앞서 말한 작품 해설의 표현을 빌지만 충격이라기보다 그냥 ‘멍한’ 정도입니다.

그 이유는 ‘트릭’이 존재하는 이유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주제의식이나, 실험적인 시도, 혹은 등장인물의 심리를 깊이 있게 드러내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듯 합니다. 이 신선한 트릭은 그냥 ‘유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그랬어요.

싸구려 에로/호러/고어물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즐겁게 읽었다는 걸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알라딘의 유명한 서평자가 극찬한 것을 감안하면, 실망스럽고 다소 허망하기까지 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아비코 다케마루의 대표작이자 걸작이라면..., 앞으로 이 작가의 작품과 다른 인연을 만들 일은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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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5 0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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