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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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제목이 부끄럽지 않은 작품입니다.  내심 세월의 무게때문에 고리타분한 공포소설을 예상했던 저의 우려는 기우였습니다.  <나는 전설이다>는 최근 등장한 뱀파이어 혹은 좀비에 관한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흥미롭고 무게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작품과 별개로 불만을 늘어놓아야겠네요.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밀리언셀러 클럽에 대한 전반적인 불평이죠.  주먹만한 활자로 페이지수를 늘리는 편집은 정말 짜증납니다. 아시다시피 이 시리즈의 적지 않은 책들은 가지고 다니며 읽기가 정말 고역입니다. 그 두께가 장난이 아니죠.

<나는 전설이다>의 경우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을 10편 묶어 놓았더군요. 근데 그 단편의 수준이 고르지 못합니다. 면피용 페이지수를 위해 억지로 끼어넣은 듯한 작품이 눈에 띕니다. 

비슷한 두께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 비교하면 어이없는 편집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스밀라의...> 경우 약 600페이지의 분량입니다. 읽기에 불편하지 않는 촘촘한 행간도 마음에 들고요. 반면 450페이지의 <나는 전설이다>는 성긴 행간과 페이지의 여백... 밀도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부피... 바보스럽습니다.

본문의 오자나 '오바이트'같은 콩글리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넘어간다고 해도 책표지에 주먹만한 붉은 글씨로 찍힌 오자는 도대체 뭡니까? 좀비 영화의 거장 조지 로메로(George A. Romero)를 '조지 로메오'라고 찍어놓았습니다. (제가 구입한 책을 기준으로) 4쇄가 출간될 때까지 표지에 등장한 대형오자를 그냥 두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번역자 조영학 씨가 쓴 역자 후기도 어처구니없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다시 제작된다는 소식을 소개하며 그간 영화화된 <지구 최후의 사나이>와 <오메가 맨> 대한 근거없는 폄하와 새로 제작되는 영화판 <나는 전설이다>에 대한 우려로 역자 후기의 적지 않은 부분을 할여하고 있습니다. 사실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영화는 그리 욕먹을 만큼 졸작도 아니고, 후기를 읽다보면 역자가 블록버스터라는 용어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지 의문입니다.

<나는 전설이다>는 좋은 공포SF소설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 자체만으로 좋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용 이야기는 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설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설이다>의 매력은 흡혈귀 세상으로 변해버린 지구의 마지막 인간이 겪는 심리적 공포와 고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이방인>의 주인공 메르소처럼, 네빌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햄릿형인간입니다. 돈키호테처럼 온몸을 던져 모험을 펼치는 액션물의 히어로가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만약 이 작품을 할리우드형 블록버스터 영화로 각색한다면 원작에서 가져올 수 있는 것 설정 뿐이죠. 소위 말하는 '영화적 사건'은 설정을 바탕으로 다시 창작해야하는 거죠. 애초에 <나는 전설이다>의 영화화는 이런 딜레마를 안고 시작하고 있고, 할리우드의 제작자는 알고 있을 겁니다. 할리우드의 제작자는 역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역자가 함부로 추측한 원작자  "매드슨이 원한 영화는 자신의 소설과 똑같이 생긴 영화일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없는 억측입니다.  각본가로서  할리우드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매드슨이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요?

<나는 전설이다>의 팬이라면 원작과 영화는 비교하는 보너스를 즐기면 됩니다. 흥분할 필요는 없죠. 영화가 졸작이 된다고 해도 원작의 명성과 성과가 어디 가겠습니까?

좋은 작품을 읽고 불평만 늘어놓은 거 죄송합니다. 하지만 작품이 좋았기에 더욱 불만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영화판 <나는 전설이다>가 올 겨울 개봉하다는군요. 저 역시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나는 전설이다>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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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d 2007-07-1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한 리뷰 넘 좋네요..요즘 리뷰들은 좀 칭찬 일색이라..추천만 믿고 샀다 낭패본 경우가 많아서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