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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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강명관 / 천년의상상 / 547

 


예전에 무슨무슨 시험이나 퀴즈에 단골로 나오던 문제중에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는 무엇인가 하는게 있었다.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되는데  답은 우리나라에 없는 직지심체요절이나  책이 남아있지 않은 상정고금예문이다.  이걸가지고 서양의 구텐베르크 보다 100년, 200년 먼저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임진왜란때 왜군이 금속활자를 싹슬이해서 그때부터 일본에 출판이 시작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나라는 출판대국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나만 가진건 아니었는데 지금 강명관교수가 그런 의문을 가진 모든 이에게 시원한 대답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한정한, 왜냐하면 그 이전시대는 자료가 없기에,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다.  몇 년전 출간된 <조선출판주식회사>와 여러면에서 비슷한 내용이 중첩된다.  조선시대 책의 역사를 다루면서 이 <조선출판주식회사>의 존재나 참고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은 의외다. 두 책 모두 책과 출판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고려 금속활자에서 비롯된 인쇄술의 발전은 조선에 들어와 꽃을 피우는데  출판에 관한 모든 것은 국가가 결정하고 시행하는 구조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민간출판업이나 서점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활자를 만들고 소유하고 인쇄하고 공급하는 모든 과정이 국가주도로 이루어졌다. 왜 국가에서 책의 모든 것을 관장했는가. 바로 “국가가 지식의 공급처이고 지식의 유통주체라는 의미였다. 즉 금속활자 인쇄술은 소수의 지배자 양반을 위한 것이었다.”

 

조선의 인쇄장인은 국가관청에 소속되어 있었고 출간주체는 교서관이나 주자소였다. 개인을 위한 유통구조는 존재하지 않았고 조선초기 서점 설립 주장은 묻히고 만다. 그러니 출간되는 책의 내용은 대개 경서 사서와 백성들의 교화를 위한 도덕교과서였다.


정부 뿐만 아니라 사족들의 책에 대한 욕구또한 대단하여 중국으로부터 수입이나  거간꾼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았다.  민간출판본인 방각본은 18세기 들어서야 나타나지만, 조선중기에도 서점은 없지만 책을 베끼거나 사적으로 인쇄하여 파는 이들의 존재가 확인되기도 한다. 금속활자와 목판본의 비교도 흥미롭다. 

 

조선출판주식회사와 비교하면 이 책이 보다 세밀하고 전거에 충실하며 저자 특유의 시니컬한 논조를 볼수있다는 점.  그리고 내용에 책값과 유통구조, 제책과정, 일본수출, 전란으로 인한 망실, 한글이라는 문자의 용도 등등이 독자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북한에서 전통문화를 대하는 자세가 민족의 유산인 동시에 부르주아의 잔재라는 이중성을 갖고있는 것처럼 우리 금속활자나 인쇄문화를 보는 눈도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민중의 생활향상에 어떤 역할도 하지못하고  근대를 불러오지도 못했지만 당대 지식 정보의 원천이자 문화대국으로서의 존재감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잃은게 너무 많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많은 문화재가 약탈되어 현재 일본에 있는 고서나 도자기가 우리보다 많을수 있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종이를 만들거나 도자를 구워내는 장인의 기술맥이 단절된 것이다.  한지의 종류가 그리도 많은데 최상급 종이를 어떻게 만드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다.  강명관의 말중에 정약용의 책이 당대에 인쇄되었는지 필사되었는지 의문을 가졌다는데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세계최초가 그리 중요한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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