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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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은 김현진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김현진 작가를 페미니즘 테마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을 통해 알았다. 그 때 처음 만나 본 김현진 작가의 글은 내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작품으로 기억되었다. 그 후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의 출간 소식을 들은 이후 망설임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8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에는 <새벽의 방문자들>에 수록된 [누구세요?]도 포함되어 있다. 이 여덟 편의 이야기 속에 저자는 다양한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에서 저자가 그리는 여성들은 평범한 여성들이다. [정아]의 정아는 가난한 남자 친구 건호와 함께 살면서 빠듯한 생활을 해 나가지만 잠깐의 일탈로 다른 남성과 잠자리를 함께 하게 된다. 두 남자 사이에서 임신을 하게 된 정아는 그게 건호의 아이인지 또는 잠깐의 만남으로 생긴 남자의 아이인지 알지 못한다.

[정정은 씨의 경우]의 정정은씨는 교사이다. 오랜 세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남자 친구를 위해 많은 희생을 했지만 사법고시 합격 후 보란듯이 정정은씨를 버리고 돈 많고 어린 여자와 약혼했다. 그 실연의 상처와 주변의 시선에 점차 변해가는 정정은씨의 심리를 그린다. [아웃파이터]에서의 영진은 거래처 직원의 접근으로 데이트를 하며 결혼을 꿈꾸지만 후에 유부남인 줄 알게 되며 권투를 해 나가는 여성을 그리고 [공동생활]에서의 윤정화는 뚱뚱한 외모로 인해 어울리지 못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낸다.

저자가 그려내는 여성들, 정아, 정정은, 영진,윤정화, 지윤 등 그들은 모두 성인들이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들은 그녀들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의지대로 다스리려고 한다. 아껴야 한다지만 자신의 생활방식을 정아에게 고집하며 낙태를 권유하는 건호,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애물단지 취급 받는 정은, 영진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며 "나 유부인 것 몰랐어?"라며 합리화하는 그 등등을 보면서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보여준다.





비록 소설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이다. 특히 정은을 향해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며 스물다섯 넘으면 쓸데가 없다며 말하는 주변의 말들은 지금까지도 여성의 나이를 조롱의 대상으로 그리는 작금의 현실을 보게 된다. 예전에 비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자 나이 30이 되면 계란 한 판이라 놀리고 여자 나이 30이 되면 아무도 받으려고 하지 않는 바람 빠진 공 취급을 받고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니 여성은 빨리 결혼해야만 한다면서 여성을 출산의 대상으로만 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남성의 나이와 튀어 나온 배는 연륜을 말한다고 미화하고 여성은 노화와 자기 관리 미숙으로 받아들이는 이 관념이 폭력이 됨을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는 폭력인 줄 모르고 우스개소리로 웃는 얼굴로 돌을 던진다.

그래서일까. [누구세요]의 지윤이 데이트 통장까지 전남친에게 빼앗긴 상황에서 다른 이웃남자에게 가하는 그녀의 행위가 더욱 공감있게 다가온다. 여성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며 여성의 두려움을 즐기는 바바리맨을 향해 끝까지 쫓아가 같이 관계를 갖자고 소리치는 화정의 모습은 매우 통쾌하다. 전반부의 소설이 남성 사회에 의해 소외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면 후반부에 수록되는 소설들은 역할이 전복되어 남성에게 가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통쾌함과 이제 결코 당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는 것 같아 그녀들을 응원하게 된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의 여성들은 결국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너와 나의 이야기이다. 강남역 여성피해 사건이 모티브인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요]의 수연의 죽음 또한 수연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의 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모든 여성을 가리킨다. 뚱뚱하다고 놀림받으며 살아가던 윤정화도 여성의 외모로 평가받는 모든 여성들이다.

작가는 상처 받은 한국 여자의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감당해 냈다고. 그러니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고. 그 틀을 벗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와 나의 이야기,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여성들의 이야기가 쓰여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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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쾌변 - 생계형 변호사의 서초동 활극 에세이
박준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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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중에서 시청률 불패 드라마를 꼽으라면 의학드라마와 법조계 드라마를 말할 수 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일반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분야이기도 하려니와 생명과 정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의학과 법은 우리에게 일종의 환상을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여기 우리의 환상을 와장창 깨뜨려 주는 변호사가 있다. 정의는 커녕 당장 눈 앞의 생계를 위해 의뢰인에게 시달리며 하루 하루를 버텨가는 생계형 변호사 박준형씨다. 카카오 브런치에 자신의 고달픈 좌충우돌 변호사 생활을 연재해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인 《오늘도 쾌변》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변호사 생활을 이야기한다.


《오늘도 쾌변》의 저자 박준형씨는 변호사 9년 차이다. 법에 문외한인 우리의 입장에서 변호사는 멋져 보이지만 박준형씨는 이 책에서 변호사가 일반 직장인과 달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버텨가는 변호사의 일상을 소개한다. 텔레비젼에서 보여지는 멋진 드라마의 이미지에 의뢰인이 많은 기대를 안고 변호사를 찾아오지만 실상과 다른 변호사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며 의뢰인으로부터 성공 보수를 받지 못해 끙끙대는 그의 고군분투가 펼쳐진다.

선과 악, 빌런과 히어로, 정의와 불의 등 법을 등을 따지기보다 자신에게 당장 월급을 줄 수 있는 의뢰인의 편을 들어주고 승소를 위해 전전긍긍하는 현실은 때론 회사에서 따르기 싫은 명령일지라도 꾹 참고 감내하는 일반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저자의 유머와 자조 섞인 말 속에서 동병상련을 느끼게 된다.



의뢰인의 편인 변호사에게마저 거짓말을 일삼기도 하고 약속한 보수를 받는 것조차도 끙끙 대는 저자의 일상은 우리가 흔히 보는 의뢰인에게 군림하는 모습이 아닌 때론 의로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역할이기도 하고 때론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의뢰인의 기분을 상하지 않기 위해 완곡한 표현을 쓰며 눈치를 보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직장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변호사가 이렇게 솔직히 자신의 이야기를 써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 글은 웃프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Ⅰ부에서 의뢰인과의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그려지고 Ⅱ부에서는 저자의 생계형 변호사란 이런 것이다라고 작정한 저자의 현타 (현실 자각 타임) 가 그려진다. 전혀 화려하지도 않고 멋지지도 않는 변호사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령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재판 법정의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변호사의 발언에 "존경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받아치는 판사의 모습, 단 10분만에 종결되어 버리는 허무한 재판, 때때로 다른 변호사의 복대리인으로 재판에 참석해서 망신을 당하기도 하는 일상에 때려치울까 결심도 하지만 대출원리금을 알리는 은행 문자에 다시 또 하루를 버텨가는 그의 모습 속에 남들에게 말 못하는 자신의 일상을 독자라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저자의 하소연이 들리는 듯 하다.



작가는 브런치에서 자신의 글을 연재하게 된 계기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 뭔가 소소하게 재밌는 일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의뢰인에게 치이고 법정에서 치이고 아둥바둥 살아가는 생계형 변호사로서 다른 생계형 직장인들에게 다른 누구도 이렇게 치이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동병상련'이 되어 주고 싶다고 썼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그래도 변호사가 회사원보다는 낫지 않겠냐며 볼멘 소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출금을 갚기 위해 오늘도 사표를 가슴 속에 꺼내지 못하고 의뢰를 한 건이라도 더 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저자의 글 속에 변호사도 어쩔 수 없구나, 모두 사는 건 똑같구나라는 감정에 살며시 위안이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론문을 작성하며 맞춤법을 검사하는 변호사답게 유머러스한 작가의 필력이 매우 놀랍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를 알 수 있을만큼 생계형 변호사의 일상을 담담하면서도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재미있게 그려냈다. 좁은 세계이니만큼 미처 못 한 이야기도 많다고 한 저자의 경험담이 모두 펼쳐진다면 그건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대가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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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말을 쏘았다
호레이스 맥코이 지음, 송예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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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저자 호레이스 맥코이가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마라톤 댄스 대회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이다. 영화화 되기도 했던 이 소설은 화려하해상 유원지의 무도회장에서 열리는 10,000 달러의 상금이 주어지는 마라톤 댄스 대회가 주 배경이다.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로버트가 법정에서 글로리아를 총으로 쏘았을 때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선처를 부탁하는 그에게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부분과 함께 그들이 처음 만남부터 마지막까지의 기억이 펼쳐진다.

영화감독 지망생인 로버트는 유명한 폰 스턴버그 감독의 영화에 엑스트라로 자리를 얻기 위해 스튜디오로 가지만

거절당한다. 그 곳에서 영화배우 지망생인 글로리아를 만나게 되고 글로리아는 로버트에게 우승 상금 10,000달러가 주어지는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가하자고 제안한다.


마라톤 댄스 대회. 144쌍의 남녀가 대회에 참가하고1시간 50분 동안 춤추고 10분 동안만 쉴 수 있는 대회로 이 10분 이외에 잠시라도 몸을 쉬면 탈락하는 대회이다. 참가 첫 주는 계속 춤을 춰야 하고 그 후부터는 잠시라도 몸을 쉬어서는 안 된다. 이 대회의 스폰서는 많은 관람객을 모으기 위해 참가자들에게 돌발 경기로 관객의 흥미를 끌기도 하는 등 이 대회를 홍보하기에 전념한다. 인기 있는 참가자들은 스폰서의 후원 아래 제품을 받기도 하고 이 대회에 찾아오는 영화감독 및 유명인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 이 쉴 새 없는 마라톤 대회에서 로버트와 글로리아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그려진다.


《그들은 말을 쏘았다》에서 다른 인물들에 비해 눈에 띄는 인물은 여주인공인 글로리아이다. 그녀가 예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다. 로버트가 매번 글로리아에게 지적하는 그녀의 비관주의가 그녀를 돋보이게 한다.

매번 죽음을 사모하지만 무서워서 죽음을 택하지 못하는 글로리아는 말 끝마다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불평한다.

"사는 게 지긋지긋한데 죽기는 무섭고..."라며 푸념하는 그녀에게 로버트는 질색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어려서부터 친척의 학대와 가난에 찌들려 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어떤 희망이라곤 조금도 없이 불행에 중독된 듯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의 푸념들 중 놀라운 건 바로 현재 우리 삶 속에서 많이 듣고 있는 불만들이라는 점이다.


"키울 돈도 없으면서 뭐하러 애를 낳아요?"

"말이 돼요? 저 여자 나이면 집구석에서 손주 기저귀나 갈고 있어야죠. 세상에, 저렇게까지 오래 살까 봐 무섭네요."

"가면 갈수록 죽고 싶은 생각 뿐이에요."


글로리아의 냉소적인 말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건 지금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맘충이라는 단어를 거리낌업이 쓰고 어르신들을 비하하며 무의미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글로리아의 모습이 결코 다르지 않다.

1930년, 미국 대공황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2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놀라울만치 흡사하다.


이는 글로리아 뿐만이 아니다. 이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또한 우승 하나만을 향해 달려나간다. 파트너와 함께 춤을 추고 있지만 그들은 동료라기보다 자기에게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대회의 흥행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고 주최측의 돌발 경기에 응하는 그들은 관람객들의 이목 속에 자신들을 소진해 나간다. 돈과 흥행을 위해서라면 과정은 중요하지 않은 참가자들과 대회 주관자들의 모습은 최근 우리 사회에 논란이 일고 있는 리얼리티쇼의 악마의 편집을 떠올리게 한다. 쇼를 위해서라면 개연성 따위는 없이 더 자극적인 이슈를 만들어내는 현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글로리아가 더없이 냉소적이 되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마라톤 댄스 대회는 냉소와 이기심이 날뛰는 사회의 축소판이였다. 로버트와 글로리아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이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었고 이 소설이 결국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음을 저자는 매우 설득력있게보여준다. 그러하기에. 때로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를 보기도 할 만큼 극단적인 비관론에 젖어 있는 글로리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두껍지 않은 소설이지만 매우 빠르게 읽힌다. 이 소설은 현재 우리의 모습이 과연 그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묻는다. 그 질문 앞에 현재의 나의 모습을 비춰 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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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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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문근영이 출연했던 <바람의 화원>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여성의 신분으로 화원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남장을 하여 화원에 들어가 활약했던 드라마였다. 남장을 한 여주인공과 그 여주인공을 돕는 남주인공의 역할을 보며 매혹적으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여자라서 자신의 재능을 펼 수 없었던 이야기는 단지 조선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동양보다 더 빨리 여성들의 인권이 진보한 서양 역시 여성들에게는 화가의 꿈은 그들에게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싸우며 자신의 길을 개척한 여성 화가들은 늘 존재해왔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의 저자 김선지씨는 주로 미술사에서 이름이 누락된 여성미술가들과 그들 앞에 놓인 편견과 차별을 꼬집은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미술가들>을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해 2019년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 연재물이 바로 이 책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으로 출간되었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은 3부로 이어진다. 1부에서는 억압적인 가부장제에서 자신의 역할을 펴낸 여성화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교육의 길이 제한되고 가정생활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15-16세기 화가를 아버지로 두거나 또는 부유한 부모 밑에서만 여성들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설사 배운다 하더라도 인체 데생 교육은 제외되었고 역사화, 종교화 등의 그림은 넘볼 수 없었다.

1부는 주로 아버지에 의해 궁중화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좌절된 마리에타 로부스티, 딸의 그림을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여긴 아버지에 의해 고통받은 엘리자베타 시라니, 남성화가와의 친분이 없이는 자신의 그림을 전시할 기회도 없거나 또는 친분이 있으면 스캔들로 매도해 버리는 당시 시대의 풍습들을 보여준다.

결혼 전에는 활발한 미술 활동을 하였지만 결혼 후에는 미술사에서 홀연히 이름이 사라져 버리는 여성 화가들의 한계와 제약이 주로 그려진다. 이 상황 속에서도 인정 받기 위해 끝까지 싸웠던 베르트 모리조의 발언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나는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그들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2부에서는 편견과 억압을 뚫고 운명을 만들어나간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등 9명의 화가들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화가는 바로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자신의 의지로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룬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이다. 열입곱 살에 스승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 법정 재판까지 회부되었던 젠틸레스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문에 시달려야 했다. 어린 나이에 겪었던 일들은 젠틸레스키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른 화가들이 주로 완곡하고 관능적인 여성 묘사를 한 데 비해 강하고 담대하게 표현한 작품들은 그녀의 경험이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하게 한다.




책 속에 묘사된 수많은 화가들은 자신들의 업적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때로는 남편의 작품으로 세상에 평가되었다. 아버지, 남편 등 남자의 이름으로 높게 평가되었던 작품들이 훗날 여성 화가의 작품으로 판매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어느 새 평단은 동일한 작품임에도 기존과 상반된 평가로 바꿔 작품을 끌어내린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에 수록된 여성 화가들은 부유한 부모가 있거나 화가를 둔 아버지의 교육이 있었기에 화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교육이 단절되고 외모와 교양이 함께 있어야만 가치를 인정받았던 그 때에도 조각상을 보며 독학으로 인체를 공부하거나 집 바깥의 곤충들을 관찰하며 그림으로 그리는 등 좌절하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설명해간다. 우리에게 익숙한 남성 화가들의 이름으로 독식하는 미술사이지만 분명 그 긴 세월동안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활동을 펼쳐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팀 버튼의 영화 중 <빅 아이즈> 라는 영화가 있다. 실화인 여성 화가 마가렛 킨과 남편 월터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보수적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내 마가렛 킨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도용하여 판매를 하며 명성을 쌓는다. 남편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던 마가렛 킨은 후에 자신이 원작자임을 밝히고 남편인 월터와 긴 저작권 공방을 벌이게 되는 실화이다. 현재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보수적인 시대에서는 흔하게 벌어지던 일이였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이 음지에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젠틀리스키는 성폭력과 자신을 둘러싼 추문과 싸웠고 수잔 발라동은 여성의 몸을 성적 매력으로만 제한시켰던 미술계에서 과감하게 있는 그대로 그려내며 남자들의 시선에 자신의 작품을 투영시키기를 거부하였다. 그렇게 여성화가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묵묵히 작품 활동을 해 나갔다.

책을 읽으며 과연 이 시대는 15-16세기의 사회에 비해 개선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쉽게도 현실에서 아직도 미투 운동은 진행중이고 성폭행의 주범들은 가벼운 형량만 받고 사회로 복귀한다. 이 반복되는 움직임에 분노가 때론 좌절이 표출된다. 하지만 기억하자. 지금보다 더한 차별 속에서도 여성들은 꿋꿋하게 자신의 일과 이름을 지켜나갔다. 그림 속에 몰래 자신의 얼굴을 투영시켜 자신의 작품임을 밝히고 자신의 그리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거부하기도 하면서 싸워 나갔다. 그렇게 미술사에서 포기하지 않고 싸워 온 여성들에 의해 여성 화가의 명맥은 이어져나갔다.

비록 사회가 더디게 변화할지라도 끝까지 싸워 온 그녀들처럼 우리도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걸 이 책에 수록된 여성들은 말해준다. 끝까지 싸워나갈 때 우리는 그들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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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 전문화된 세상에서 늦깎이 제너럴리스트가 성공하는 이유
데이비드 엡스타인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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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한 우물을 깊게 파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듣곤 했다. 한 분야에서 자신의 업적을 성취한 전문가들을 부러워하며 너무 늦었다는 후회감이 매번 나를 뒤덮곤 했다. 주변에서는 이 나이에 너무 늦었다고 말했고 나 또한 뭔가를 하기 틀렸다고 생각했다.평생직장이 사라지고 모든 게 불안정한 지금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 만난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이라는 책 제목은 의아함과 동시에 호기심을 일으켰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의 저자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자신이 바로 늦깎이라고 말한다. 논픽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지금 언론과 창작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는 환경 과학과 천문학을 전공했고 환경 과학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전문가이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주장한 대로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진로를 바꾸어 현재 이 자리에 이른 늦깎이이다. 자신이 경험하고 책을 저술하기 위해 취재한 수많은 늦깎이들을 만나면서 그는 자신의 이론을 확신하고 독자들에게 인공지능으로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은 전문가보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의 역할이 월등히 중요함을 이 책에서 설명한다.

아무리 스포츠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와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명실 공히 최고의 선수이다. 하지만 이들이 스포츠를 배워 온 과정은 전혀 다르다. 타이거 우즈는 어려서부터 타이거 우즈의 천재성을 알아본 아버지의 계획 하에 골프를 배워 왔다. 두 살부터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고 10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하는 등 천재의 두각을 나타내었고 조기 전문화의 전형적인 상징이 되었다.

반면 테니스의 강자 로저 페더러는 테니스만이 목적이 아닌 다양한 활동에 주력했다. 노는 것을 좋아했고 그의 부모 또한 테니스가 아닌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접해 보도록 격려했다. 로저 페더러의 어머니가 운동 코치임에도 그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려다 포기했을 정도로 그는 처음부터 테니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저자는 이 두 선수들의 교육 과정을 조기 전문화와 늦깎이 전문화로 칭하고 이 두 타입을 비교하면서 과연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 인재인가를 이 책에서 설명해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아이의 재능을 빨리 발견하고 키워주라는 말을 한다. 재능을 발견하면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갈고 닦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조기 유학을 가고 영재 프로그램에 보내며 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저자는 조기 전문화로 타이거 우즈를 예로 들었지만 한국에서는 김연아 선수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가장 놓치고 있는 부분을 주목한다 바로 조기 교육, 전문화가 필요한 부분과 여러 경험이 필요한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전문화가 필요한 부분을 골프나 음악과 같은 변수가 적고 규칙이 명확한 분야, 즉 친절한 분야의 경우 협소한 전문화가 승부를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골프, 체스와 같은 패턴을 학습하는 분야는 수많은 연습과 노력으로 성취가 가능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세계는 규칙이 아닌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강조한다. 특히 인간보다 학습효과가 월등히 뛰어난 인공지능에 맞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문화가 아닌 다른 역할이 요구됨을 강조한다. 저자는 지식을 단시간에 습득하는 인공지능과 맞서기 보다 폭넓게 종합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의 강점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은 바로 이 폭넓게 종합하는 능력이 한 우물을 파는 전문가보다 여러 가지를 접하고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며 여러 장에 걸쳐 저자가 만나거나 조사한 여러 인물들의 사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준다. 명화 <별이 빛나는 밤에>의 화가로 유명한 반 고흐, 닌텐도 위의 개발자인 요코이,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 걸스카우트 CEO 였던 프랜시스 헤셀바인 등등 그 외 수많은 실제 인물들의 사례 속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념에 과감히 반기를 든다.

저자는 이 사회가 결코 친절하지 않은 사악한 시대라고 말한다. 이 사회는 극도록 복잡해졌으며 한 가지 전문화된 지식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가 융합된 사회라고 말한다. 전문화의 늪에 빠져 내부에서만 해답을 찾는 우를 피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답을 구하는 이노센티브의 사례 또한 다양한 폭과 경험을 한 사람일수록 유추의 폭이 넓어지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생활고를 면하기 위해 쓴 동화가 베스트셀러가 된 J.K. 롤링 또한 늦깎이였으며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늦깎이 천재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창작자 또는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 또한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거나 늦게 시작한 경우를 이 책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며 회사 상무님이 내게 해 주신 조언이 떠올랐다. 해외 손님과 미팅 후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상무님은 자신의 옛 회사 동료 이야기를 말씀하셨다. 영어를 잘 하는 그 동료가 책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언어의 폭이 상당히 넓어지고 누구를 만나도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대화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하셨다. 책으로만 배운 언어에만 집착해서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약한 내게 언어란 언어 그 자체만이 아닌 폭 넓은 지식이 함께 어우러져야 함을 강조하셨던 상무님의 말씀과 다양한 경험으로 자신의 레인지를 넓힐 걸 강조한 저자의 글은 맥락을 같이 했다. 그리고 내게 무엇이 부족한 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여섯 살인 쌍둥이 아이들의 꿈은 한 명은 요리사이고 다른 한 명은 화가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내 바램이기도 한 의사가 되지 않을래 떠보면 아이들은 내게 대답한다. "엄마, 난 다 해 보려구요. 그림도 그리고 글자도 공부하고 다 해 볼 거예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걸 할 거예요." 내가 늦게 깨달은 정답을 여섯 살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하루가 다르게 인간의 생활영역을 위협하고 있다. 이 시대에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는 없다고 말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는 이 불확실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의 강점을 어떻게 키워나갈 수 있는지 알려주어 인공지능 시대에 자녀 교육을 고민하는 부모에게도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며 나와 같이 늦었다고 고민하는 독자들에게도 아직 늦지 않았으므로 끝까지 자신의 경험을 더욱 쌓아나가길 권유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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