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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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은 김현진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김현진 작가를 페미니즘 테마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을 통해 알았다. 그 때 처음 만나 본 김현진 작가의 글은 내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작품으로 기억되었다. 그 후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의 출간 소식을 들은 이후 망설임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8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에는 <새벽의 방문자들>에 수록된 [누구세요?]도 포함되어 있다. 이 여덟 편의 이야기 속에 저자는 다양한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에서 저자가 그리는 여성들은 평범한 여성들이다. [정아]의 정아는 가난한 남자 친구 건호와 함께 살면서 빠듯한 생활을 해 나가지만 잠깐의 일탈로 다른 남성과 잠자리를 함께 하게 된다. 두 남자 사이에서 임신을 하게 된 정아는 그게 건호의 아이인지 또는 잠깐의 만남으로 생긴 남자의 아이인지 알지 못한다.

[정정은 씨의 경우]의 정정은씨는 교사이다. 오랜 세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남자 친구를 위해 많은 희생을 했지만 사법고시 합격 후 보란듯이 정정은씨를 버리고 돈 많고 어린 여자와 약혼했다. 그 실연의 상처와 주변의 시선에 점차 변해가는 정정은씨의 심리를 그린다. [아웃파이터]에서의 영진은 거래처 직원의 접근으로 데이트를 하며 결혼을 꿈꾸지만 후에 유부남인 줄 알게 되며 권투를 해 나가는 여성을 그리고 [공동생활]에서의 윤정화는 뚱뚱한 외모로 인해 어울리지 못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낸다.

저자가 그려내는 여성들, 정아, 정정은, 영진,윤정화, 지윤 등 그들은 모두 성인들이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들은 그녀들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의지대로 다스리려고 한다. 아껴야 한다지만 자신의 생활방식을 정아에게 고집하며 낙태를 권유하는 건호,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애물단지 취급 받는 정은, 영진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며 "나 유부인 것 몰랐어?"라며 합리화하는 그 등등을 보면서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보여준다.





비록 소설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이다. 특히 정은을 향해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며 스물다섯 넘으면 쓸데가 없다며 말하는 주변의 말들은 지금까지도 여성의 나이를 조롱의 대상으로 그리는 작금의 현실을 보게 된다. 예전에 비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자 나이 30이 되면 계란 한 판이라 놀리고 여자 나이 30이 되면 아무도 받으려고 하지 않는 바람 빠진 공 취급을 받고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니 여성은 빨리 결혼해야만 한다면서 여성을 출산의 대상으로만 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남성의 나이와 튀어 나온 배는 연륜을 말한다고 미화하고 여성은 노화와 자기 관리 미숙으로 받아들이는 이 관념이 폭력이 됨을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는 폭력인 줄 모르고 우스개소리로 웃는 얼굴로 돌을 던진다.

그래서일까. [누구세요]의 지윤이 데이트 통장까지 전남친에게 빼앗긴 상황에서 다른 이웃남자에게 가하는 그녀의 행위가 더욱 공감있게 다가온다. 여성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며 여성의 두려움을 즐기는 바바리맨을 향해 끝까지 쫓아가 같이 관계를 갖자고 소리치는 화정의 모습은 매우 통쾌하다. 전반부의 소설이 남성 사회에 의해 소외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면 후반부에 수록되는 소설들은 역할이 전복되어 남성에게 가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통쾌함과 이제 결코 당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는 것 같아 그녀들을 응원하게 된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의 여성들은 결국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너와 나의 이야기이다. 강남역 여성피해 사건이 모티브인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요]의 수연의 죽음 또한 수연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의 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모든 여성을 가리킨다. 뚱뚱하다고 놀림받으며 살아가던 윤정화도 여성의 외모로 평가받는 모든 여성들이다.

작가는 상처 받은 한국 여자의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감당해 냈다고. 그러니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고. 그 틀을 벗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와 나의 이야기,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여성들의 이야기가 쓰여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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