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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대의
지젤 알리미 지음, 이재형 옮김 / 안타레스 / 2021년 10월
평점 :

『여성의 대의』의 저자 지젤 알리미. 지난 2020년 7월 28일 작고한 그녀는 20세기 최고의 페미니즘 활동가로 불린다. 변호사이며 페미니스트이자 정치가인 지젤 알리미가 프랑스의 여성 운동에 대해 남긴 이력은 화려하다.
<여성의 대의를 선택하다> 협회 설립해 조직적으로 여성을 지원하고
낙태로 기소된 여성을 변호한 보비니 재판에서 승리한 변호사로 3년 후 '자발적 임신 중단에 관한 법률' 제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1980년 '성폭행 및 사회 도덕을 저해하는 행위에 관한 법률' 제정의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여성의 대의』는 페미니즘의 한 획을 그은 지젤 알리미의 대표작이며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그녀의 첫 작품이다.
우리 세대에게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온갖 차별을 당할 인류의 절반이 된다는 의미였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말이다.
여성이 된다는 것은 열등감과 무책임이 주어진다는 뜻이었다.
지젤 알리미는 여성이 출생과 동시에 차별을 안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먼저 확실히 한다.
가부장제로 점철되어진 사회에서 남성은 출생부터 우월한 특권을 인정받는 데 비해 여성은 차별을 감당해야 할 존재로 인식된다. 이 성의 차별 위에 인종, 피부색, 계급 차별 등이 덧붙여진다. 가장 먼저 주어지는 차별. 그건 바로 성차별이다. 슬프게도 지젤 알리미는 자신의 출생을 예로 들어 독자에게 설명한다. 어머니가 지젤 알리미, 즉 딸을 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저자의 아버지가 실망해서 지인들에게 딸의 출생을 말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1남 2녀인 우리 가족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빠는 1남 1녀가 있어 마지막으로 아들을 기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막내가 딸이라는 말을 듣자 섭섭함에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셨다. 아들이 있음에도 또 아들을 바라는 가부장제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공통되는 제도라는 걸 말해주는 듯 하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억압은
그것에 희생당하는 이들의 암묵적 동의를 수반한다.
한편으로는 억압에 대해 희생자들이
불안감을 덜 느끼려고 해서일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참고 견디면서 스스로 격려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암묵적 동의... 나는 이 '암묵적 동의'라는 구절에서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딸이였기에 학업도 포기해야 했고 집안에 떠밀려 결혼해야했다. 결혼하셔도 여성의 굴레는 엄마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러함에도 엄마는 엄마와 같은 길을 나와 동생에게 요구하셨다. 학업을 포기하지 않게 한 것을 제외하고 엄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며 우리를 본인과 같은 삶의 테두리 속에서 살기를 종용하셨다. 결혼 후 이 제도가 여성에게 얼마나 불리한 제도인가를 알게 된 이후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여성에게 결혼 후의 삶이 훨씬 힘들 걸 알면서도 선택을 주지 않고 강제하셨나 생각하곤했다. 그게 바로 지젤 알리미가 말한 '암묵적 동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이 암묵적 동의도 다른 선택이 있다는 걸, 저항할 수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암묵적 동의'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지젤 알리미는 분명히 말한다. 낙태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하지만 여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임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정부에서 피임법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무성의로 인해 수많은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의 피해가 됨을 지적한다. 섹스를 출산의 도구로만 장려하기에 피임법을 알리는데 소극적이고 낙태를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이 현실에 지젤 알리미는 분노한다. 그리고 그 불리한 환경에 있는 여성들을 변호해나간다.
프랑스 식민지 튀니지 출생으로 프랑스 본토의 여자에 대한 차별과 식민지 차별을 모두 감내해 온 지젤 알리미. 그녀의 행보 하나 하나마다 여성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여성의 차별은 아무리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뿌리가 깊으며 어디서나 공통되는 현상이고 이 뿌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함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지젤 알리미는 여성들에게 남편에게서의 경제적 독립을 강력하게 제안한다. 경제적으로 독립되지 않는 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버지니아 울프 또한 경제력과 자기만의 방의 필요성을 말했듯 경제력이 없는 한 여성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육아 등 여성에게 현실적인 제약이 많은 사실을 떠올릴 때 과연 이게 최선일까라는 생각 또한 들며 더욱 많은 토론이 필요할 듯 하다.
이제서라도 지젤 알리미라는 이름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이 작품이 국내에 첫 소개되었는데 저자의 다른 책이 있다면 또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