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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희미하게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평점 :

책을 읽다 보면 읽으면서 감동이 전해져 오는 글이 있고 읽고 난 후 여운이 더욱 깊게 다가오는 글이 있다. 정미경 작가의 글은 후자에 속한다. 읽고 난 후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아파 먹먹해지는 느낌..
정미경 작가의 투병 중에 쓴 5편의 단편과 작가를 추모하는 작가와
영원한 동반자이자 처음이자 마지막 비평가였던 김영남 화백의 추모단편 함께 수록된 이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5편의 이야기 속에 어느 인물 하나 쉬운 대상이 없다. 모두들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버려지고 버리는 관계
속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못>에서의 금희도, 사람의 정신 상태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이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은 알지 못하는 <엄마, 나는 바보였어>의
주인공도,
익명의 인물에게서 위로를 받는 ..그들의 힘겨운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어
오히려 눈물이 나는 책이다.
5편의 소설 속에서 내 마음을 가장 아련했던 건 <못> 에서의 금희와 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마저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실적에 못 미쳐 해고 통지를 받는 공에게 어느 누구의 작별인사도, 마음을
다스릴 시간도 없다. 단지 큰 상자에 자신의 비품을 챙기고 사무실을 나가기만 하면 그 뿐이었다.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간 아내, 혼자 된 공은 마트에서 냉장고 판매
사원으로 일하는 금희를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서로 말을 꺼내진 않지만 언젠가는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안한 동거 속, 그들에게 찾아 온 길고양이. 금희는 고양이를 가족처럼 맞아들인다. 금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연락
한 번 없이 떠난 공과 버려진 금희, 그리고 비싼 치료비로 인해 가족 같던 고양이를 한 순간에 버려두고
돌아선 금희… 마음이 아팠던 건 버림을 받는 그들은 슬퍼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마치 익숙하다는 듯.
직장에 속해 일을 하지만 모든 직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생각이 있다. ‘나도
언젠가는 내팽겨 칠 수도 있다;는 생각.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생각이 이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사랑하는 사이도 돈과 실리를 따져가며 헤어짐을 반복한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일회성 관계에 너무 익숙해져있고 살아가고 있다. 공과
금희도 그리고 고양이 ‘점순’이처럼…
“ 점순이는 금희를 올려다보았다. 휙휙
대신, 느리게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이해한다는
듯.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듯.”
이 글을 읽고 난 후 내용을 곱씹다가 눈물이 났다. 버림 받았음에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너무 서글퍼서. 이런 관계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야속해서…
5편의 단편 소설은 이 <못> 이외에도 4편의 소설 모두 슬픈 사회를 담담히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린다. 누구 하나 인생이 쉬운 사람이 없다. 하긴
인생이 쉽기만 하다면 어찌 인생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세 편의 추모 산문 중 영원한 배우자인 김병종 화백의 추모글이 가슴을 적신다.
물론 정이현 작가의 정지아 작가의 추모글도 아름답지만 어찌 배우자를 떠나 보낸 그리움이 담긴 추모글과 비교할
수 있을까.
사별 후 다시 정미경 바로보기를 하고 있다는 김병종 화백의 추모를 통해 정미경 작가의 글이 더욱 풍성하게 다가오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살아가는 작품 속의 인물들이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쉽게 버려지고 이웃이나 가족이 아닌 익명의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자기들의 판단에 대해
사람을 대하는 등 슬픔이 만연한 사회..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결국 살아가야 하고 이겨나가야
하는 존재라고 작가가 삶의 마지막 길에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마지막을 알면서도 끝까지 충실히 살아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