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훌륭한 번역은 번역문에서 인간적인 흠결이 보일 정도로번역자의 인성이 느껴져야 한다는 뜻이다.  - P100

이런 예를 제외한다면 자막의 어휘 수준은 캐릭터를 기준으로삼는 것이 온당하다. 
위에 언급한 예처럼 캐릭터는 현학적인 어투를 쓰는데 무조건 술술 읽히도록 쉬운 어투로 윤색해버리면 캐릭터도 사라지고 연출자와 작가의 의도도 사라진다. 
영화번역가는 관객의 편의를 위해 작업하는 사람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전달자다. 기계적으로 쉽게 윤색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고,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러 온 관객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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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의 비극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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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시대는 용어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낮은 출생율, 이제는 기업들마저 수도권으로 공장을 이전하며 수도권 집중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밀어터지는 서울, 그에 비해 텅 비어버린 지방의 모습은 이제 뉴노멀이 되었다. 

지방소멸시대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 『I의 비극』은 일본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을 그린다. 누구도 이 흐름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 현상을 부활시키고자 한 시장이 야심차게 <I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도시가 빈 집을 수리해 싼값에 임대하는 'I턴 프로젝트'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무너진 헛간, 갈라진 아스팔트, 버려진 수레, 메마른 저수지......
 이 마을은 죽었다.


소설의 배경은 난하카마시. 이 시는 네 개의 지방자치단체가 합병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 또한 축소되는 지방을 합병해 하나의 지방으로 새롭게 재탄생하는 것처럼 일본도 한국과 다르지 않다. 새롭게 취임한 난하카마 시장이 <I턴 프로젝트>를 실현하고자 하는 곳은 바로 '미노이시' 마을이다. 


시장의 정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바로  '에산'이다. 거의 폐허에 가까운 상태의 미노이시로 사람을 불러 들이기 위해서 '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참가자들을 모집해야 한다.  

우선 참가자들이 이주할 수 있는 '이주비' 보조금, 

참가자들이 싼 값에 집을 임대할 수 있도록 집주인과 중개하는 '임대비'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상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여러 예산이 투입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실행할 부서와 공무원을 배정해야 한다. 모두의 반신반의속에서 '소생과'라는 부서가 새롭게 개설되고 이 부서에는 니시노 과장, 그리고 만간지 구니카즈, 신입 간잔 유카 달랑 세 명 뿐이다. 온 시청이 힘을 합해도 모자랄 판에 단 3명이 부서의 이름대로 마노이시 마을을 소생시킬 수 있을까? 


유령 마을에 시범 케이스로 12가구가 선정된다. 모든 사람이 서로 양보하며 살면 좋으련만 그건 천국에서나 가능한 법.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상 잡음이 없을 수 밖에 없다. 첫번째로 이주한 구노와 아쿠쓰 씨는 단 두 가구 뿐인데도 음악의 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기대를 갖고 시작한 이주인만큼 불만도 많고 민원도 잦다. 그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공무원 만간지는 느긋해보인느 상사 니시노 과장과 천진난만한 신입 공무원 간잔 사이에서 혼자 발을 동동 굴리며 처리하기에 바쁘다. 


소생과는 이주자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신설된 부서인데 연일 불의의 사고가 터진다. 그 문제들을 보면 처음에 <I의 비극>은 인간의 이기심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잘 살아갈 수 있는데 질투나 불안 또는 무지등이 원인인 것처럼 보여진다. 역시 이 프로젝트는 무리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도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만간지를 향해 동생은 직격타를 날린다. 






세금만 삼키는 깊은 늪. 


자신의 일을 무용하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화를 내지만 부인할 수 없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정부의 예산 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기 떄문이다. 



끝내 I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고 마지막 이주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 마을에서 사는 걸 좋게 생각하지 않는 어떤 힘. 

그 힘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 경악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힘은 이미 책 속에 수없이 밝혀졌는데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I의 비극』을 읽으면서 나는 한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중앙정부는 지방 소멸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걱정하며 방책을 논의하고 있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단념하고 있지 않을까? 지방소멸은 단지 지방자치제만의 숙제일까? 


지방을 살린다는 건 단지 집만을 임대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져야 하고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즉,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마을을 살리는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여건을 갖추게 하는 건 무엇인가. 그 답이 바로 이 마을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비극에서 비롯된다. 


『I의 비극』은 철저한 현실 위주의 소설이다. 획일적인 공무원 조직 구조, 민원인과 상부 사이에서 일 처리하기에 바쁜 공무원들의 모습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과 불안 등이 합쳐져 I의 비극이 만들어졌다. 

소설임에도 소설 같지 않아 더욱 공감이 가는 소설. 이 마지막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는 소설의 극사실주의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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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편지 가게 글월>에 수록된 편지에 답장을 쓰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첫 번째 보내야 할 답장은 바로 '그림 그리는 돌고래'님의 질문에 대한 답장. 



익명님은 자기 자신을 잘 용서하는 사람인가요? 

혹시 자기를 용서하는 방법을 알고 계시면 답장 부탁드려요. 


<편지 가게 글월>


어떤 답장을 써야 할까 고민해 보았다.

이 지면을 빌어 나는 내 답을 써내려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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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림 그리는 돌고래님.

돌고래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아마 제가 4,5년 전이었다면 저는 제 자신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을 것 같아요. 예전이었다면 매번 계획에 실패한 제 자신을 탓하고 이것밖에 해 내지 못한 저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자신을 더 다그치며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채찍질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저도 이제 중년이 되고보니 자기 자신에게 모질 게 대할 수 있는 것도 젊은 시절의 특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많이 있으니까 다그치고 원망해도 다시 시작할 시간이 많이 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매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이게 시간이 주는 유일한 선물일까요?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소설책이 있어요.

김이설 작가의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라는 소설책인데 그 책에서는 49세의 세 명의 대학 동창들이 나옵니다.










이 소설에서는 50으로 접어드는 중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대요

그 중의 한 문장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하여간 그렇대. 우리 나이가 한참 늙느라 바쁜 나이래.

여기저기 삐그덕거리면서 고장 나는 데 생기고

마음은 공허하고 살아 뭣하나 싶은 나이라는 건데

그게 당연한 마음이라는 거니까 너무 난감해 하지마.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이 문장을 보면서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요...

40대가 되면서 확실하게 느끼는 건 용서하는 방법을 알기 떄문에 용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용서하며 스스로를 달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며 버티는 시간도 너무 아깝고 소중하니까요..

그러므로 제가 그림 그리는 돌고래님께 드리고 싶은 건 지금은 이해 안 되시겠지만 용서하지 못해 힘든 지금의 마음도 소중히 여기시길 바래요.

자신을 다그칠 수 있는 것도, 용서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것도 모두 꿈꿀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떄문에 가능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림 그리는 돌고래님은 이렇게 질문하시겠죠?

저절로 용서가 되냐고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나이를 떠나 후회와 원망 등 인간의 감정은 똑같으니까요.

여전히 인간은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갈대니까요.

나태주 시인님의 < 나태주의 행복수업>의 한 문장을 말씀드릴게요.











오그라드는 대로 두세요. 그러면 오히려 떨리지 않아.

그런데 그걸 자꾸 막으면 머리가 하얘지지.

떨리는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서투른 나를 자연스럽게,

떨리는 게 못난 게아니에요. 본질이지.


<나태주의 행복수업>


애써 마음을 다그치지 않고 그저 내 마음을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 마음이 힘들구나...

내 마음이 지쳤구나...

내가 떨리고 있구나...

강하다고 다그치게 되면 될 수록 내 마음이 더 힘들더라구요.

내 마음을 살살 달래주고 공감해주면서 인정하는 게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신의 마음을 인정해주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겠죠.

저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편지도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편지가 그림 그리는 돌고래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디 그 마음도 소중히 여기시길 바래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2024.06.03

From. 자유롭고 싶은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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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중독 - 실패 혐오 시대의 마음
롤란드 파울센 지음, 배명자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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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직면하도록 도와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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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중독 - 실패 혐오 시대의 마음
롤란드 파울센 지음, 배명자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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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걱정 중독』의 저자 롤란드 파운셀은 책의 첫 부분을 소설가 포스터 윌리스의 말로 설명한다.


우리는 보통 정신력을 강조하며 정신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탁월한 하인'이라는 표현은 맞다. 그런데 '끔직한 주인'이라는 표현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정신력을 강조한다면 끔찍한 주인이라고 하는 표현은 웬지 맞지 않아 보인다. 이 책의 제목인 『걱정 중독』은 정신력이 끔찍한 주인일 때 일어난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걱정과 정신. 어떤 연관관계로 저자는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문장을 인용했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 중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다음 부분이다.

우리 인간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

얼핏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책 처음부터 한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릴르 물고 이어지며 걱정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휩싸여서 그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나으며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된다. 그저 돌멩이만 던졌을 뿐인데 '만약'이라는 걱정은 자전거의 녹을 뗴어내고 '생태계'의 파멸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걱정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게 단지 돌멩이로만 끝나지 않는다. 암이라는 질병을 안 이후부터 몸에 조그마한 이상도 암으로 의심되어 검사비로만 수많은 돈을 쓰는 걱정증에 사로잡힌 헬레들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왜 의사들이 건강하다고 하는데도 걱정에서 사로잡히지 못하는 것일까?



산업혁명에서 인터넷 시대 그리고 AI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과거 농경 시대에는 단순한 삶의 패턴으로 고정되고 안정된 생활이었던 반면 이제 모든 게 빨리 변하고 불확실한 시대에서는 조그마한 것 까지 모두 결정해야 하는 우리는 생각 과잉을 낳게 된다.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안고 살아야 하며 이는 직장, 또는 인간 관계, 건강 등 전반적으로 걱정 중독에 휩싸이게 된다는 걸 이 책에서 여러 예를 통해서 알려준다.


걱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저자는 다른 질문으로 바꾸어 말한다.

왜 우리는 걱정하는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위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결정하지 못할 때 정치가 바로 가장 걱정에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

불가피한 위험들에 잠식당한다.

개인의 의지는 실행력을 잃는다.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정치가 특히 고마워할 만한 상황이다.



위험하다는 걱정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올바른 질문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걱정은 오히려 인간을 무기력하게 하며 실행력을 잃게 한다. 정치가들이 국민들을 가장 잘 조정하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정책을 펴야 할 정치가들이 오히려 더 많은 불안과 걱정을 제시하며 더 불안에 떨게 한다.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은 어렵지만 더 많은 걱정에 세뇌되기는 쉽다.

우리나라의 정치만을 살펴봐도 방법은 없이 위기감만 조장하는 정치가들의 행태를 볼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 또한 마찬가지다.



심리학 『걱정 중독』은 저자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예시를 통해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지 생생하게 알려준다. 그들의 걱정을 통해 이 걱정에 억눌릴 때 타인 또는 사회가 어떻게 우리들을 조장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게 해 준다. 다만 아쉬운 건 문제 제시에 대한 부분은 자세한데 비해 해결책은 다소 짧은 감이 있어 아쉽다. 걱정과 불안을 덜어주기는 커녕 더 걱정을 조장하고 그 걱정을 이용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그 걱정과 직면하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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