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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의 비극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4월
평점 :
지방소멸시대는 용어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낮은 출생율, 이제는 기업들마저 수도권으로 공장을 이전하며 수도권 집중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밀어터지는 서울, 그에 비해 텅 비어버린 지방의 모습은 이제 뉴노멀이 되었다.
지방소멸시대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 『I의 비극』은 일본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을 그린다. 누구도 이 흐름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 현상을 부활시키고자 한 시장이 야심차게 <I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도시가 빈 집을 수리해 싼값에 임대하는 'I턴 프로젝트'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무너진 헛간, 갈라진 아스팔트, 버려진 수레, 메마른 저수지......
이 마을은 죽었다.
소설의 배경은 난하카마시. 이 시는 네 개의 지방자치단체가 합병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 또한 축소되는 지방을 합병해 하나의 지방으로 새롭게 재탄생하는 것처럼 일본도 한국과 다르지 않다. 새롭게 취임한 난하카마 시장이 <I턴 프로젝트>를 실현하고자 하는 곳은 바로 '미노이시' 마을이다.
시장의 정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바로 '에산'이다. 거의 폐허에 가까운 상태의 미노이시로 사람을 불러 들이기 위해서 '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참가자들을 모집해야 한다.
우선 참가자들이 이주할 수 있는 '이주비' 보조금,
참가자들이 싼 값에 집을 임대할 수 있도록 집주인과 중개하는 '임대비'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상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여러 예산이 투입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실행할 부서와 공무원을 배정해야 한다. 모두의 반신반의속에서 '소생과'라는 부서가 새롭게 개설되고 이 부서에는 니시노 과장, 그리고 만간지 구니카즈, 신입 간잔 유카 달랑 세 명 뿐이다. 온 시청이 힘을 합해도 모자랄 판에 단 3명이 부서의 이름대로 마노이시 마을을 소생시킬 수 있을까?
유령 마을에 시범 케이스로 12가구가 선정된다. 모든 사람이 서로 양보하며 살면 좋으련만 그건 천국에서나 가능한 법.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상 잡음이 없을 수 밖에 없다. 첫번째로 이주한 구노와 아쿠쓰 씨는 단 두 가구 뿐인데도 음악의 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기대를 갖고 시작한 이주인만큼 불만도 많고 민원도 잦다. 그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공무원 만간지는 느긋해보인느 상사 니시노 과장과 천진난만한 신입 공무원 간잔 사이에서 혼자 발을 동동 굴리며 처리하기에 바쁘다.
소생과는 이주자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신설된 부서인데 연일 불의의 사고가 터진다. 그 문제들을 보면 처음에 <I의 비극>은 인간의 이기심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잘 살아갈 수 있는데 질투나 불안 또는 무지등이 원인인 것처럼 보여진다. 역시 이 프로젝트는 무리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도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만간지를 향해 동생은 직격타를 날린다.
세금만 삼키는 깊은 늪.
자신의 일을 무용하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화를 내지만 부인할 수 없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정부의 예산 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기 떄문이다.
끝내 I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고 마지막 이주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 마을에서 사는 걸 좋게 생각하지 않는 어떤 힘.
그 힘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 경악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힘은 이미 책 속에 수없이 밝혀졌는데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I의 비극』을 읽으면서 나는 한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중앙정부는 지방 소멸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걱정하며 방책을 논의하고 있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단념하고 있지 않을까? 지방소멸은 단지 지방자치제만의 숙제일까?
지방을 살린다는 건 단지 집만을 임대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져야 하고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즉,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마을을 살리는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여건을 갖추게 하는 건 무엇인가. 그 답이 바로 이 마을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비극에서 비롯된다.
『I의 비극』은 철저한 현실 위주의 소설이다. 획일적인 공무원 조직 구조, 민원인과 상부 사이에서 일 처리하기에 바쁜 공무원들의 모습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과 불안 등이 합쳐져 I의 비극이 만들어졌다.
소설임에도 소설 같지 않아 더욱 공감이 가는 소설. 이 마지막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는 소설의 극사실주의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