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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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혼하기 전 과연 나에게 맞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결혼을 한 후, 남편과 다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과연 우리는 서로 맞는 걸까? 내 선택이 잘못되었던 걸까? 자문하곤 했다. 상대방에게 일편단심일 순 없다. 어른들은 결혼 후에는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산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지켜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헤어짐을 택한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나만의 DNA와 일치하는 나의 짝을 맞는다면 과연 그 관계는 영원할 수 있을까?

소설 《더 원》은 자신의 DNA 정보를 제공하면 컴퓨터가 그 DNA 정보에 적합한 상대방의 DNA를 찾아 짝을 매칭해 주는 서비스로 만난 다섯 명의 이야기이다.

소설에는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두 아이를 유산한 아픔과 함께 자신 몰래 DNA 정보를 등록하고 그 짝을 찾아 떠나버린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맨디, 데이트어플에서 알게 된 여자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마 크리스토퍼,

결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커플 닉과 샐리,

먼 지구 반대편인 DNA 매칭 연인인 케빈을 두고 매일 장거리통화로만 사랑을 키워가는 제이드,

'DNA 매칭' 서비스의 창립자이자 과학자인 엘리가 그들이다. 소설은 이들의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전개되어간다,

맨디는 DNA 매칭으로 연하의 리처드라는 상대방을 알게 된다. 페이스북을 탐색하며 그와의 만남을 상상하며 희망을 꿈꾸지만 리처드가 뺑소니 사고로 죽게 되며 만나기도 전에 추도식에 참석하게 되는 불운을 겪는다. 맨디는 추도식에서 처음으로 리처드의 누나와 어머니를 마주하게 되고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병원에 보관 중인 리처드의 정자로 임신할 것을 권유받는다.

여자들만 죽이는 연쇄살인마 크리스토퍼는 매번 살인 후 사진을 찍어 시체 위에 사진을 올려 두고 훌훌 떠나는 화제의 살인범이다. 그 또한 호기심에 시작한 DNA 매칭으로 에이미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자기 소개를 하는 중 에이미는 경찰임을 알게 되고 경찰과 사랑에 빠지는 연쇄살인마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범죄행각을 벌인다.

결혼을 약속한 닉과 샐리는 DNA 매칭 서비스로 만난 연인은 아니지만 주변의 강권에 정보를 입력하게 된다. 샐리는 아직 적합한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닉은 동성인 알렉스와 매칭이 되면서 이 커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DNA 서비스로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은 엘리, 하지만 항상 외롭고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엘리는 자신의 상대방인 팀을 만나게 된다. 자신에게 목적을 갖고 접근해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친 엘리는 팀을 경계하지만 순수한 그와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순탄했던 연애는 DNA로 인하여 큰 변환점을 갖는다. 과학적 근거에 맞춰 사랑에 빠질 거라고 확신하며 자신의 DNA로 찾았으니 이 매칭으로 만나는 상대방이 자신의 완벽한 짝일 수 밖에 없다고 믿는다. 결혼 생활 중에도 확신이 없을 때 이 매칭 서비스로 또 다른 짝을 찾아 떠나버림으로 부부들의 이혼율이 증가한다. 하지만 모두 올바른 짝을 찾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더 원》의 커플 또한 처음부터 사랑에 빠지는 맨디와 크리스토퍼가 있고 조금씩 사랑에 빠지는 엘리와 같은 커플도 있다.

과연 사랑이 DNA 정보로 완벽할 수 있는가? 소설은 과연 사랑을 선택할 자유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소설 초반은 DNA 법칙에 의해 사랑을 하게 되며 이 서비스를 확신하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조금씩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과연 인간의 순수한 마음이 아닌 이 서비스에 의존하여 선택하는 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부작용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과거 담배회사 소송에서 원고측에서는 폐암 등 각종 질병을 만들게 한 원인인 담배회사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소송이 있었다. 그 소송에서 회사는 비록 담배가 원인을 제공하나 흡연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졌으므로 회사는 책임이 없다고 강변한다. 소설 《더 원》은 바로 이 소송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 매칭 서비스로 가정이 깨지고 상처 받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과연 이 책임은 'DNA 매칭' 서비스의 책임인가 아니면 이 서비스를 신청하고 행동한 사람들의 책임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걸까? 서비스일까? 인간일까?

이 질문에 'DNA 매칭' 서비스의 창립자인 엘리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버튼을 누르고, 세상이 다시 실수를 저지르게 하세요."

이 엘리의 말 속에 인간의 욕심이 결국 이런 서비스를 창조하게 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인간의 숨겨져 있는 불안, 욕구 등을 반영하여 사람들은 이러한 서비스에 응답해왔다. 서비스 또한 잘못이지만 인간들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살인마인 크리스토퍼와 경찰인 에이미와의 매칭은 압권이다. 크리스토퍼가 경찰인 애인을 두고 살인 행각을 벌이며 목표치인 30명의 살인을 채워나가는 그의 행위는 매우 담대하다 못해 무모하기까지한다. 떄로는 옆에 범인을 두고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경찰 에이미의 행동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가장 큰 반전을 안겨주는 커플이기도 하다.

다섯 커플이 DNA 매칭을 두고 벌어지는 그들의 연애 이야기는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 다섯 커플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지금 나의 배우자,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이 사람이 맞을까? 하지만 선택은 분명 자신에게 있다. 분명한 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황에 맞추어 살아가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후회가 없을 순 없다. DNA 매칭 서비스를 만나도, 아니면 순수한 인간의 감정만 믿고 선택해도 완벽한 관계는 있을 수 없다. 다만 걱정하기보다 지금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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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 폭력의 시대를 넘는 페미니즘의 응답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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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이제 낯선 용어가 아니다. 시중에는 많은 페미니즘 서적이 출간되어 있고 많은 유명 인사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반발하는 거리감도 있다. 이 상승세와 다르게 세상은 텔레그램 n번방, 유명연예인들의 성추문, 성폭행 기사가 난무하다. 미투운동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저자 권김현영은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는 그 고민과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을 담은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에서는 현재 가장 큰 이슈라고 할 수 있는 성범죄에 대하여 이 범죄의 역사를 추적해간다. 텔레그램 N번방 이전에도 보이지 않는 여성 성범죄는 은연중에 널리 유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터넷 역사와 디지털 성범죄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해 주목한다.

흥미로운 건 이 성범죄에 대해 주로 단속을 당하는 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위주라는 점이다. 저자가 예를 들자면 n번방 사건 이후 많은 부모들은 딸의 인스타를 단속한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딸의 인스타를 막으며 몸조심을 당부하는 방식이 딸을 가진 한국 부모의 보편적인 형태이다. 저자의 글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상케 한다. 버스 안에서 자신을 힐끔거리며 추행하는 남성을 피해 내린 후 당황하여 우는 김지영을 보고 아빠는 오히려 "그러게 치마 짧게 입지 말라고 했지?" 라며 김지영을 채근한다. 한국의 성범죄는 많은 경우 여자의 옷차림이나 몸조심에 대한 경고로 끝나곤 했다. 저자는 이 규범이 폐기되어야 할 담론임을 강조하며 다른 방식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한다.

섹스를 했든 하지 않았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아무것도 상관없어진 시대다.

무엇을 조심하라는 말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일찌감치 폐기되었어야 할 '몸조심'류의 담론이

더욱 강력한 규범으로 작동할수록

성적자기결정권은 고사하고 신체의 자유와 더불어

남은 자율성도 '안전'을 위해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빨간 마후라' '소라넷', 'n번방', '버닝썬'등 여러 디지털 성범죄의 역사와 그 판결을 보면 소량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최근 가수 정준영과 버닝썬의 판결, 위안부를 매도한 연세대 교수의 1개월 정직 처분의 가벼운 처벌은 이 사회에서 성범죄를 보는 사회의 지표가 낮음을 나타내며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어냈다.

디지털 성범죄와 함께 정치권, 기업에서 널리 용인되는 성접대 등을 용인된 강간문화라고 칭하는 저자는 '몸조심'에 대한 담론보다 남성들을 분류하여 각 분류대로 다르게 나아갈 방법을 찾을 것을 제안한다.또한 사회에서 여성들을 겨냥하고 공격하는 각종 거짓말들을 유념하고 그 단호하게 대처하며 결코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성범죄를 극복할 수 있다.

저자의 전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이였을 당시 '여성'에 대한 담론이 화제에 있을 때 저자는 정작 중요한 여성에 대한 토론이 없었음을 지적한다. 이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은 단지 생물학적인 여성에서 지나지 않았음을 말하며 아직 이 사회에서 여성, 사회적 담론으로서의 '여성'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외에도 미투운동, 여성주의적 안보 기획 등 다양한 이슈들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저자의 글을 보며 몇 달 전에 본 윤이형의 소설 <붕대감기>가 떠올랐다. 같은 여성이라도 각자의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갈등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다른 인물들이 서로 다투면서도 대화를 나누고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이해되지 않는다 하여 문을 닫기보다 서로 끝까지 토론하며 나아간다. 나는 페미니즘의 대중화에 대해 고민하는 저자의 글을 보면서 이 <붕대감기>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르더라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 이해되지 않을수록 더 이야기하고 토론할 때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어쩌면 미투운동도, n번방도, 바로 포기하지 않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었기에 힘겹게 이만큼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많이 발전했지만 사회의 변화는 아직도 여전하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는 '세상은 변하지 않게 보여도 여전히 우리는 나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저자 또한 늘 길을 찾아낼 것이고 이기고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새로운 국면에서 또다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까 봐

나는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혁명은 상상 속에서 먼저 실현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길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우리는 "이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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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
조안나 지음 / 지금이책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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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우울증으로 너무 힘들었다. 너무 외로웠던 그 때 '엄마의 꿈방'이라는 카페에서 글쓰기를 했다. 그 곳에서 내게 글쓰기는 글을 쓰기보다 내 마음을 표출하는 자리였다. 글쓰기라지만 남편 욕을 해대는 자리였고 그런 나를 공감해주는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그 때부터였다. 아.. 글을 쓰고 공감을 받는다는 것으로도 이렇게 큰 힘이 있구나..

글쓰기의 힘을 알고부터 많은 글쓰기 책을 읽었다. 모든 책의 글쓰기는 한 가지를 말했다. "매일 써라." "매일 읽어라." 특히 매일 쓰라는 조언은 글쓰기의 진리였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은 어떻게든 읽겠는데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회사와 육아 이 도돌이표 삶 속에서 특별할 게 없는데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막막했다. 모니터의 흰 화면에서 쓸 소재는 찾기 어려웠고 그 두려움과 부담감에 글쓰기는 내게 멀어졌다.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 또한 글쓰기를 적극 권장하는 책이다. 《월요일의 문장들》의 저자로 유명한 조안나씨가 글쓰기의 힘에 대해 쓴 글쓰기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그녀 (딸을 '그녀'라고 말한다.) 이야기, 미국 생활, 읽은 책 이야기, 도둑 맞은 이야기 등 주변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글쓰기란 바로 테크닉이 아닌 우리 일상의 일을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현재 나에게 좋은 주제는 가까이에 있는 것이고

나쁜 주제는 멀리 있는 것이다.


나는 욕심이 많다. 시간이 없지만 영어 공부도 하고 싶고 책도 읽고 싶다. 운동도 하고 싶다. 하지만 아이를 재운 후 시간은 밤 11시 .. 항상 시간이 고프다. 저자 또한 한 아이의 엄마로 자신의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낼 수 없음을 호소한다. 글도 쓰고 요가도 하고 싶지만 모든 걸 다 할 수 없어 안타까운 내 마음을 같은 엄마로서 저자는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 바쁨을 알기에 저자가 내린 처방은 단순하다. 단 3문장부터 매일 쓰라는 것. 처음부터 큰 욕심을 부리기 보다 매일 3문장을 들여 습관을 가지도록 실질적인 조언을 해 준다.

매일 일기를 쓰라는 충고는 이제 식상하다.

그저 매일 세 문장씩 자신의 기분 변화나

일상을 적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글쓰기의 기교가 아닌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다. 기교나 방법이 아닌 내 주변의 일상부터 바라보고 쓸 수 있도록 격려해준다. 아마 다른 책처럼 많이 쓰라고 한다면 나는 이미 내 머리 속에 변명했으리라. "쓰고 싶다고요. 하지만 난 쓸 거리가 없다고요!" 라고 외쳤을 것이다. 저자는 바로 우리 일상에서 시작하고 세 문장에서 점차 늘려가 완성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내게 글쓰기란 전혀 어렵지 않음을 가르쳐준다.

그렇다.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는 바로 글쓰기란 누구나 할 수 있음을 저자의 일상을 통해 말해주는 책이다.

하지만 결국 글쓰기의 진리란 많이 쓰는 방법 이외 다른 길이 없음을 알고 있다. 저자는 시작하는 방법을 안내해 주는 동시에 열심히 쓰기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다.


"저는 그럴 시간이 없는데요"

라는 핑계를 대기 좋은 분야라고...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저마다 24시간 동안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 이야기를 쉽게 허공에 날려버린다.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을 읽은 후 나의 일상이 하나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단조로운 내 일상이 관찰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시시한 이야기도 마음껏 쓰라는 저자의 글에 용기를 받는다. "이까짓 것, 나도 한 번 써 볼까?"라는 객기를 부려본다.

다양한 저자의 글쓰기 책을 읽었지만 저자의 일상만으로 글쓰기를 말해주는 이 책이 너무 고맙다. 저자가 아기 엄마여서 더 고맙고 바쁜 일상 속에서 소재를 가져오고 하얀 백지를 채워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 너무 고맙다. 글쓰기가 멈춰있는 내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준다. 글쓰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처럼 소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좋은 글쓰기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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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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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읽게 될 때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다. 녹록지 않은 삶의 무게가 느껴져서 몇 번씩 숨을 고르고 읽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청소부 매뉴얼》은 세 번의 이혼과 네 아들의 싱글맘, 알코올중독자, 청소부, 병동 사무원 등등 이력을 대충 읽는다 해도 결코 만만치 않은 삶이였음을 짐작케 하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루시아 벌린의 첫 소설집이다.

루시아 벌린은 사후 11년이 지나서야 작품이 빛을 발했는데 작가의 경우 생활을 책임지고 아이들을 돌보아야 했기에 단편 소설 위주로 글을 쓸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저자가 평생 쓴 76편의 작품 중 43편이 수록된 《청소부 매뉴얼》은 청소부로서 지켜야 할 여러 규칙들과 함께 일어나는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자신의 낙태 경험 그리고 싱글맘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고됨을 작품 속에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표제작인 《청소부 매뉴얼》의 경우 저자의 청소부의 경험담이 상세하게 드러난다. 이 집 저 집을 청소하며 각 집마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행동하며 느끼는 삶의 모습, 그리고 그 삶 속에서의 고단함이 느껴지지만 작가는 그 속에서 결코 유머를 잊지 않는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부자들은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절대로 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차를 타고 지나다니면서

늘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본다.

가난한 사람들은 많이 기다린다.

사회보장연금 수령, 실직수당 신청, 빨래방,

공중전화, 응급실, 감옥, 기타 등등.


많이 기다려야만 하는 가난한 삶 속에서 심취해 있다가 "그대여, 인생이란 그런 거라오."라는 글 속에 갑자기 웃픈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마냥 슬퍼하지 않게 저자가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쓰면서 생활했던 저자의 생활 속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청소부 매뉴얼》의 미덕이라면 마냥 감상에 취하지 않게끔 담담하게 전개되는 작가의 이야기의 힘에 있다. 단편 <웃음을 보여줘>에서도 사제 지간으로 법정에 서게 되는 연인의 이야기 또한 구속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현실을 받아들이며 담담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병원 사무원으로서의 일이 기록된 단편 <연애 사건>에서도 자신을 이용해 다른 남자와 만남을 갖는 동료 직원 루스의 이야기 또한 바람이 난 루스를 비방하기보다 이 또한 하나의 삶이라는 듯 이야기하는 작가의 글을 보면서 납득하진 못해도 삶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되는 듯하다.

모든 단편이 저자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어떤 단편이든 삶에 찌든 인물이 아닌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삶 자체를 포용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 속에서 위로 아닌 위로를 받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된다면 저자처럼 마치 남인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남에게 공감을 구하는 것보다, 동정을 얻는 것보다 이런 삶도 살 만하다고 말해 주는 듯한 저자의 소설 <청소부 매뉴얼>에 이어 <내 인생은 열린 책>도 출간되었는데 이 후속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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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시작은 아르테 미스터리 9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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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을 접할 때마다 놀라운 건 소재의 독특함이다. 한국소설 또한 소재의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함을 추구하고 있지만 일본소설의 독특한 소재는 매번 읽을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한다. 소설 《세계의 끝과 시작은》 또한 다시 한 번 그들의 소재에 다시 한 번 놀란 작품이다.

《세계의 끝과 시작은》은 22회 <기억술사>로 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독자상을 수상한 오리가미 교야의 소설이다. <기억술사>에서는 기억을 지워 가는 이야기였다면 《세계의 끝과 시작은》은 흡혈종과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미스테리 소설이다.

소설의 시작은 대학생 하나무라 도노가 9년 전에 집 창문에서 본 여자를 잊지 못해 매일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11살의 나이에 집 창문에서 달빛에 비친 여자를 단 한 번만 보았을 뿐인 첫사랑.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그 여자를 기억하기 위해 매일 그림을 그린다. 그림 속에 여인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보고 머리의 변화도 주며 언젠가 나타난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상상하며 첫사랑을 간직해간다. 학교에서 도노와 같은 소속인 오컬트 연구부 친구 사쿠와 후배 지나쓰, 그리고 부장인 아야메는 이런 도노를 비웃지 않고 언젠가는 꼭 이루어줄 것을 응원해준다.

오컬트 연구부는 곧 있을 축제에 쓰일 기획을 한참 준비중이며 같은 부원인 도케부치를 찾아가던 중 살인 사건을 알게 되고 그 살인 사건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닌 연쇄 살인 사건이며 경찰에서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의 현장에서 9년 동안 오매불망 그리워한 첫사랑 아카리와 다른 동료 아오이를 만나게 된다.

《세계의 끝과 시작은》은 오컬트 연구부원들과 아카리와 아오이의 협력으로 이 살인 사건을 추적해가면서 점점 사건을 급박하게 전개해간다. 갈수록 빨라지는 연쇄 살인 사건을 흡혈종과 그 흡혈종에게 피를 공급하는 인간 계약자, 그리고 그들이 인간과 서로 공생해가며 살아가는 이 지구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초반 많은 설명으로 이해를 돕는다. 작가의 독특한 흡혈종들의 세계, 흡혈종과 계약하여 피를 공급해주고 흡혈종과 비슷한 능력을 받게 되는 인간 계약자들, 미등록 흡혈증들 등 작가가 창조한 흡혈종의 세계는 매우 놀랍기만 하다.

초반 약간 느슨하게 전개되는 듯한 소설은 절친한 친구 사쿠가 죽임을 당하고 난 후 급반전을 맞게 되고 그 이후 저자는 쉴새없이 사건을 몰아 나간다. 반전과 반전을 이어나가며 마지막 강렬한 한 방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소설은 살인 사건의 긴장감 속에 9년 만의 첫사랑을 놓치지 않으려는 도노의 첫사랑 사수 작전이 함께 어울러져 긴장감을 조절해준다. 누가 흡혈종이고 누가 인간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도 오컬트 연구부 소속의 끈끈한 우정과 첫사랑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이 소설을 끝까지 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의아했던 제목 《세계의 끝과 시작은》이 끝부분에 가서야 과연 이게 어떤 의미인지 헤아릴 수 있게 되며 아찔한 감동을 선사해준다.

다시 한 번 작가가 창조해 내는 세계에 감탄하며 책을 읽었다. 과연 흡혈종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을까?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열린 결말로 막을 내려 독자의 상상력으로 이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어쩌면 저자는 이 후속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열린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음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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