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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시작은 ㅣ 아르테 미스터리 9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일본소설을 접할 때마다 놀라운 건 소재의 독특함이다. 한국소설 또한 소재의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함을 추구하고 있지만 일본소설의 독특한 소재는 매번 읽을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한다. 소설 《세계의 끝과 시작은》 또한 다시 한 번 그들의 소재에 다시 한 번 놀란 작품이다.
《세계의 끝과 시작은》은 22회 <기억술사>로 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독자상을 수상한 오리가미 교야의 소설이다. <기억술사>에서는 기억을 지워 가는 이야기였다면 《세계의 끝과 시작은》은 흡혈종과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미스테리 소설이다.
소설의 시작은 대학생 하나무라 도노가 9년 전에 집 창문에서 본 여자를 잊지 못해 매일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11살의 나이에 집 창문에서 달빛에 비친 여자를 단 한 번만 보았을 뿐인 첫사랑.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그 여자를 기억하기 위해 매일 그림을 그린다. 그림 속에 여인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보고 머리의 변화도 주며 언젠가 나타난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상상하며 첫사랑을 간직해간다. 학교에서 도노와 같은 소속인 오컬트 연구부 친구 사쿠와 후배 지나쓰, 그리고 부장인 아야메는 이런 도노를 비웃지 않고 언젠가는 꼭 이루어줄 것을 응원해준다.
오컬트 연구부는 곧 있을 축제에 쓰일 기획을 한참 준비중이며 같은 부원인 도케부치를 찾아가던 중 살인 사건을 알게 되고 그 살인 사건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닌 연쇄 살인 사건이며 경찰에서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의 현장에서 9년 동안 오매불망 그리워한 첫사랑 아카리와 다른 동료 아오이를 만나게 된다.
《세계의 끝과 시작은》은 오컬트 연구부원들과 아카리와 아오이의 협력으로 이 살인 사건을 추적해가면서 점점 사건을 급박하게 전개해간다. 갈수록 빨라지는 연쇄 살인 사건을 흡혈종과 그 흡혈종에게 피를 공급하는 인간 계약자, 그리고 그들이 인간과 서로 공생해가며 살아가는 이 지구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초반 많은 설명으로 이해를 돕는다. 작가의 독특한 흡혈종들의 세계, 흡혈종과 계약하여 피를 공급해주고 흡혈종과 비슷한 능력을 받게 되는 인간 계약자들, 미등록 흡혈증들 등 작가가 창조한 흡혈종의 세계는 매우 놀랍기만 하다.
초반 약간 느슨하게 전개되는 듯한 소설은 절친한 친구 사쿠가 죽임을 당하고 난 후 급반전을 맞게 되고 그 이후 저자는 쉴새없이 사건을 몰아 나간다. 반전과 반전을 이어나가며 마지막 강렬한 한 방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소설은 살인 사건의 긴장감 속에 9년 만의 첫사랑을 놓치지 않으려는 도노의 첫사랑 사수 작전이 함께 어울러져 긴장감을 조절해준다. 누가 흡혈종이고 누가 인간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도 오컬트 연구부 소속의 끈끈한 우정과 첫사랑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이 소설을 끝까지 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의아했던 제목 《세계의 끝과 시작은》이 끝부분에 가서야 과연 이게 어떤 의미인지 헤아릴 수 있게 되며 아찔한 감동을 선사해준다.
다시 한 번 작가가 창조해 내는 세계에 감탄하며 책을 읽었다. 과연 흡혈종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을까?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열린 결말로 막을 내려 독자의 상상력으로 이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어쩌면 저자는 이 후속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열린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음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