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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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스물여섯 살 때 회사를 그만두고, 아야츠지 유키도, 아리스가와 아리스, 노리즈키 린타로 등 '신본격 미스터리' 1세대의 작품을 접하면서 소설을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편을 쓰려다 실패했고, 단편 위주로 집필을 했었다.


그러던 중 출판사 관계자에게 '카파-원 등용문'이라는 콘테스트에 참가해 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다시 장편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장편 미스터리를 어떻게 써야할지 몰랐던 그는 살인사건과 단서를 찾는 과정 사이사이에 '유머'를 섞기로 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장편 데뷔작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이다.


2002년에 발표한 장편 데뷔작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극찬을 받았고, 이후 2010년에 발표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시리즈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일본 미스터리계의 새로운 작가로 주목을 받는다.


2022년,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데뷔 20주년 기념으로 『저택섬』의 속편인 『속임수의 섬』이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속임수의 섬』은 『저택섬』을 읽지 않아도 즐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나도 아직 '저택섬'을 읽지 못했지만, '속임수의 섬'을 읽는데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두 권의 책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큰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속임수의 섬』과 『저택섬』의 차이점은 바로 '유머'라고 한다.


유머를 결합한 미스터리물은 어떤 느낌일까?


『속임수의 섬』은 유명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이다이지 고로'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장례식을 마치고 사이다이지 고로의 고문 변호사인 야노 고조가 유족들 앞에서 고로의 유언장을 개봉한다. 유언장 안에는 다른 갈색 봉투와 편지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다만 유언장을 개봉할 때는 다음 지시 사항을 엄수해 주기 바라는 바이다.

첫째, 유언장은 내가 죽은 후 적당한 시기에 비탈섬의 별장에서 개봉할 것.

둘째, 유언장을 개봉하는 자리에는 내 여동생 마사에, 3남매 에이코, 게이스케, 유코, 그리고 조카 쓰루오카 가즈야가 참석할 것.

셋째, 다섯 명이 모이기 전에는 유언장을 절대 개봉하지 말 것. p.40

『속임수의 섬』


'사이다이지 고로'의 편지를 읽고, 유언장을 개봉하기 위해선 '비탈섬'에 유언장에서 언급된 다섯 명이 모여야 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인물들을 모으는 과정도 흥미롭다.

'섬'이란 특성상 배나 헬기가 뜨지 못하는 날씨면 그대로 갇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물이 모이는 날부터 날씨는 심상치 않다.


비탈섬은 섬 남쪽부터 시작된 오르막이 한참을 이어지다가 바다를 향해 수직 낙하하듯 험준한 벼랑이 섬 북쪽에 나타나는 섬이다. 번지점프를 하기에 적당한 벼랑을 가지고 있는 비탈섬은 '사이다이지'가문의 섬이었기에 건물은 가문의 별장처럼 쓰이는 '화강장' 단 한 채뿐이다.


유언장을 개봉하기 위해선 행방이 묘연한 조카 '가즈야'를 찾아야 했다. 장녀 에이코는 탐정에게 의뢰를 했고, 탐정은 가즈야를 찾았다. '사이다이지 고로'의 사십구재가 되는 날을 유언장의 개봉일로 잡고, 사람들은 하나, 둘 '비탈섬'으로 모인다.


'비탈섬'에는 유언장에 쓰인 5명 이외에, 장녀 에이코의 남편과 딸, 고로의 부인, 부인의 주치의, 사십구재를 지내기 위한 스님, 가즈야를 찾은 탐정, 유언장을 개봉할 변호사 그리고 '화강장'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관리인이 모였다.


유언장을 개봉하기 위한 주인공들이 한데 모이자 변호사는 유언장을 개봉했다. 조카 가즈야에게 꽤 큰돈을 나눠줬다는 것을 빼면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유산 분배였다.

그리고 다음 날 가즈야는 주검으로 발견된다.


가즈야가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는지 궁금했지만, 사이다이지 가문의 사람들은 경찰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탐정과 변호사도 시체를 본 목격자였기에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신고를 한다. 태풍이 부는 날씨 때문에 경찰은 배나 헬기를 띄울 수 없었다.

탐정은 사건이 궁금했지만, 사이다이지 가문 사람들이 사건 의뢰를 하지 않아 고민을 한다. 사건을 해결해도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일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서이다. 탐정이 돈 때문에 사건을 해결할까 말까 망설이는 이 부분이 작가가 말하는 유머 코드일까?


'사이다이지' 가문 사람들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변호사는 탐정이 사건을 제대로 파보길 원하지만, 탐정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은 끝난 걸로 했다. 하지만, 탐정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고, 통화 이후에 탐정은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탐정과 탐정의 엄마 사이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언급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돈이 되지 않아서 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던 탐정이 갑자기 엄마의 전화를 받고 사건을 진지하게 파고드는 부분에서 약간의 몰입감이 떨어졌다. 큰 부분은 아니었지만, 이 점이 책에서 단 하나 아쉬웠던 부분이다.


탐정은 조수가 필요하다면서 변호사를 마치 자신의 조수처럼 쓰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수사하다 보니 이 사건은 23년 전에 있었던 사건과 맞닿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탈섬'의 하나의 트릭에 숨겨진 두 개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500쪽에 가까운 책이지만 지루한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섬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트릭과 복선이 잘 조합되어 끝까지 재미있게 읽힌다.


범인은 이 책을 읽는 독자라는 뜻이지. 야, 거기 너 말이야, 너!


범인이 이 책을 읽는 독자라고? 나? 책의 뒷면을 장식하고 있는 말이 읽기 전엔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는데,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 이 책에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상상을 하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문득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작가의 북 콘서트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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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이천우 지음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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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우 작가는 한양대 연극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극영화 · 다큐멘터리 · 연극 ·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다. 그런 이력 덕분이었을까? 삼 남매의 타임루프 탈출기 『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를 읽는 내내 머릿속에 영화 장면이 떠오르는 몰입도가 높은 소설이었다.


문제는 지금이 8월 5일이라는 거야. 어제는 8월 22일이었고!

[서평] 『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 이천우, 삼 남매의 타임루프 탈출기


진태, 진수, 해민은 사는 게 버거워 서로 연락을 잘하지 않고 지내는 삼 남매다.

큰형 진태는 결혼 생활에 문제를 느끼고, 이혼을 생각하는 시점에 회사에서는 명예퇴직을 권고받는다.

둘째 진수는 같이 대회를 준비해오던 파트너가 다른 남자를 택하는 바람에 한강에 몸을 던진다.

자신의 인생에서 그런 수치는 처음이었다고, 죽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투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보자의 신고로 구조된다. 구조를 한 대원은 큰형 진태에게 전화를 하고, 진태는 진수를 집으로 데려간다.

집에는 막내 해민이 기다리고 있다.

해민도 고민을 가지고 있다. 오빠 둘이 집으로 들어선 순간 해민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오빠들 나 있잖아. 알고 보니 레즈비언이었어!"

해민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중대 발표를 하지만, 삼 남매는 각자의 인생에서 큰일을 겪고 있었기에 해민의 상태에 마음을 써줄 여력이 없다.

오랜만에 모인 삼 남매지만, 안부를 묻거나 서로에게 신경을 써 줄 여유 따위는 없는 그런 만남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병원으로부터 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연락을 받고, 삼 남매는 다시 모인다.


언제든 닥쳐올 죽음이었음에도 삼 남매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모두 자기 고민에만 빠져 있었다. "내가 상조에 가입 안 해놨으면 어쩔 뻔했어?"

- 중략 -

"어차피 태울 거니까, 그치?" 수의와 관과 유골함은 가급적 최고 저렴한 것으로 골랐고, 심지어 입관할 때 관을 들어 옮기던 형제는 쿵, 하고 관을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p.31

[서평] 『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 이천우, 삼 남매의 타임루프 탈출기


어설픈 장례를 치르고 남매는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집에 모인다.

의욕 없이 모인 삼 남매는 일단 아버지의 짐을 마루로 끌어냈다. 그러던 중 진태가 고급 양주를 발견한다.

삼 남매는 양주를 마시며, 유품을 정리하다 40년은 묵은 것 같은 턴테이블을 발견한다. 턴테이블에 판을 올려놓고 양주를 홀짝이며 삼 남매는 추억에 젖는다.

그러다 판이 튀며 세상이 캄캄해졌다.


뭐지?

아침에 눈을 뜬 진태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구속에서 풀려난 듯도 하고 괜히 시원한 듯도 하고, 좋은 술은 역시 뒤끝도 깔끔한 건가?

근데 여기가 어디지? 아, 집이군. p.39

[서평] 『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 이천우, 삼 남매의 타임루프 탈출기


진태는 어떻게 자기 집 안방에 누워있는지 모르겠지만, 안방 침대에서 잠이 깼다.

그 시각 진수와 해민도 이상함을 느낀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오늘은 8월 23일이어야 하는데, 세상은 18일 전인 8월 5일로 되돌아와 있었다. 삼 남매는 진태의 회사 건물 앞에 모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대화를 나누지만, 결론에 도달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버지 병원을 찾은 삼 남매는 어제 장례를 치른 아버지가 죽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814호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타임 루프의 시작이다.

삼 남매는 '타임 루프'를 인정하고, 다시 삶을 살아간다.

힘겨운 삶 속에 또다시 아버지의 임종을 맞고, 장례를 치른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모여 고급 양주를 마시며 유품을 정리한 다음 날 눈을 뜨면 또다시 8월 5일.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해민은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삼 남매와 함께 읽기 시작한다.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본다는 느낌 때문일까? 아버지의 일기장이 등장하는 순간 몰입도가 확 높아졌다.

삼 남매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고, 타임 루프를 거듭하며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인생'이 아닌 철저히 개인적인 '아버지의 삶' 자체를 이해하게 된다.


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꿈, 남기지 못했던 무엇, 그리웠던 무엇일지 모른다고. 그렇게 사람은 가족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고 살지만, 죽음 앞에선 철저히 개인일지 모른다고. p.214

[서평] 『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 이천우, 삼 남매의 타임루프 탈출기


『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의 작가 이천우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6개월 넘게 병실에서 먹고 자며 아버지의 곁을 지키는 어머니의 모습이 의아했다고 한다. 원래 두 분 사이엔 애틋함이 별로 없다고 느꼈는데, 어머니가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해 답답한 마음까지 들었다고 한다.

본가를 찾은 어느 날 집 정리를 하려고 안방을 뒤적거리다가 책장 맨 아래 서랍 속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한 이천우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만났는지, 함께 겪은 희로애락의 감정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밤새 그 일기장을 읽고 난 후로는 아버지 곁을 지키는 어머니의 모습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고….

이 작품은 진실에 허구를 더하고 거기에 웃음을 더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부모님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됐다. 나이가 어릴 땐 엄마, 아빠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게 부모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 부모님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우리 엄마, 아빤 어떤 꿈이 있었을까?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작가와 『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의 작가의 책을 통해 우리네 아버지의 삶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책이 나온다는 건 그동안 희생하면서도 외면당했던 아버지들의 삶을 위로하기 위함일까?

이천우 작가는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타임 루프'라는 장치를 통해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끌어나갔다.

이 책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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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 단편소설 모음집
알퐁스 도데 지음, 김이랑 옮김, 최경락 그림 / 시간과공간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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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작 단편 소설 모음집』에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별>

기 드 모파상의 <비곗덩어리>, <목걸이>

안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어셔 집안의 몰락>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20년 후>

앙드레 지드의 <탕아 돌아오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밀회>

레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빅토르 위고의 <가난한 사람들>

루쉰의 <고향>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열다섯 명의 작가가 쓴 세계 명작 단편 소설 스무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안톤 체호프, 에드거 앨런 포, 프란츠 카프카이다. 내가 읽었던 단편 소설 말고 다른 소설부터 읽기 시작했다.


"프란츠, 난 널 탓하지 않는다. 넌 충분히 반성할 테니까. 사람들은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지. '뭐 서두를 것 없어, 내일도 있으니까.'하고 말이야. 그 결과가 너처럼 되는 거야. 아, 공부를 늘 다음날로 미루는 것이 알자스의 가장 큰 불행이었어. p.13

'마지막 수업', 알퐁스 도데, 『세계 명작 단편 소설 모음집』


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에 같이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읽는데,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주인공 프란츠가 했던 후회의 순간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 당시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을 읽으며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물어봤었는데, 그땐 크게 다가오는 게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때 선생님의 나이보다 많아진 지금 이 시점에서 보니 가슴을 울리는 후회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창밖을 봐. 저기 벽에 붙은 담쟁이의 마지막 한 잎을. 바람이 부는 데도 꼼짝도 안 하잖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니? 존시! 저게 바로 베이먼 할아버지의 걸작이야. 마지막 잎이 떨어진 그날 밤, 할아버지가 벽에 그린 거야." p.225

'마지막 잎새', 오 헨리, 『세계 명작 단편 소설 모음집』


그것은 노여움이나 놀라움, 불만이나 공포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찌할지 모르는 참담함 표정으로 잠자코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p.234

'크리스마스 선물', 오 헨리, 『세계 명작 단편 소설 모음집』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의 내용은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이야기다.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던 나는 당연히 그 책을 읽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었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원작을 번역한 글이 아닌, 아이들이 읽기 쉽게 그림책으로 각색해 놓은 책을 읽은 것 같았다.

그림책으로 가볍게 보던 내용과는 확실히 달랐다.


『세계 명작 단편 소설 모음집』을 보면서, 내가 기존에 좋아했던 작가 외에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며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특히 내가 읽어봤다고 착각했던, 오 헨리의 작품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세계 명작이라는 책은 대부분 내가 어렸을 때 읽었는데, 내용이 전부 각색된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읽었던 책에서는 '마지막 잎새'를 벽에 그린 벽화가 아닌 나뭇가지에 잘 묶어두었다고 했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가난한 부부였던 부인은 남편의 선물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시곗줄을 샀고, 남편은 시계를 팔아 머리핀을 샀다는 사실만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는데….

그 내용이 전부라고 느꼈었는데….


세계 명작이라고 부르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다시 한번 알게 됐다.


『세계 명작 단편 소설 모음집』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말고, 좋은 글을 쓴 또 다른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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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인공지능에 관한 거의 모든 것 K-Teen 시리즈
전승민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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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전승민은 과학기술 분야 전문기자로 20여 년간 근무했었고, 현재는 프리랜서 과학 기자 및 과학기술 전문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에 흥미가 있었지만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이 책이 좋은 입문서가 되길 바랍니다. 이 책을 읽고 앞으로 미래 기술에 대해 더욱 즐겁고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p.6

머리말 중

작가는 『10대를 위한 인공지능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통해 로봇과 인공지능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이 책이 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럼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컴퓨터로 움직이는 세상

2. AI는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

3. 우리를 돕는 일꾼, 로봇

4.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AI와 로봇

5. AI와 로봇 세상에서 맞이할 미래 직업

1장에서는 현대 문명의 근간이 된 컴퓨터 이야기가 나온다. 컴퓨터의 기본 구조와 원리, 역사를 알 수 있다.

2장에서는 AI의 기본 개념과 작동 원리, 미래를 바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3장에서는 로봇의 기본 개념과 작동 원리를 이야기한다.

4장에서는 2,3장에 언급했던 AI와 로봇이 합쳐진 미래를 이야기한다. 앞으로 AI와 로봇 기술은 얼마나 발전할까? 또 그에 따른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해 쓰여있다.

5장에서는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 나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맞이할 새로운 직업을 소개하고 있다.

컴퓨터를 모르면 세상을 이해하기 힘든 시대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언어 능력입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고, 쓰고,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을 논리적으로 말하려면 언어를 알아야 합니다. 이를 '문해력'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도 익혀야 합니다. p.61

컴퓨터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언어능력'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문해력'뿐만이 아닌 이제는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도 익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동영상이나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정보를 얻고 학습하는 시대에 새로운 매체들은 대체로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진다. AI와 컴퓨터에 대한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주는 정보를 분별력 있게 읽어내는 능력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만일 이 세상에서 컴퓨터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컴퓨터가 없는 세상은 어떻게 바뀔지, 그리고 어떤 것이 가장 불편하고 힘들지 상상해 보세요. p.62

생각해 보기 - 컴퓨터 편

책에는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생각해 보기> 편이 있다.

컴퓨터가 없는 세상?

그런 시대를 살아보진 않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컴퓨터 사라진다면, 그 세상은 조선시대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AI 기술이 발전하면 세상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AI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물건을 들어 올리고 옮기고 먼 곳까지 이동할 수 있는 기계인 로봇이 없다면 AI는 현실 세계에서 힘을 펼칠 수 없습니다. AI와 로봇 각각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흐름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릅니다. p.162

이 책을 읽기 전까지 AI와 로봇의 연관성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 세상이 크게 바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AI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AI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몸체인 로봇이 없다면 AI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한들, 내 몸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이 인공지능과 로봇은 하나의 '몸'이라는 생각을 전에는 하지 못했었다.

책의 5장에선 미래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부 안 해도 되는 세상이 올까?

출처 입력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은 그 정보를 빨리 찾아내는 것이다.

그럼 공부를 안 해도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미래 직업을 위해 우리가 꼭 해야 할 공부가 있다.

첫 번째는 언어다. 모든 지식은 언어인 말과 글로 익히기 때문에 한국어 실력이 탄탄해야 함을 강조한다.

두 번째는 영어다. 신속하게 접해야 하는 자료는 국제 공용어인 영어로 먼저 발표되는 경우가 많아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세 번째는 수학이다. 수학은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언어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한다.

즉, 미래 직업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언어'라는 것으로 통일된다.

이 세 가지 언어 능력에 더해 컴퓨터 시스템에 관한 기본 지식을 익힌다면 미래를 대비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p.150

'언어'는 '소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재료이다.

책에서 나오는 미래 직업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핵심 키워드가 '소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의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떠는 기계와 소통하기 위한 직업들이 앞으로 계속 생겨날 것이라고 책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독후 활동으로 채워져있다.

책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과 가로세로 낱말 퍼즐, 깊이 생각하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10대를 위한 인공지능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은 어렵지 않게 읽힌다. 전문적인 내용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도 풀어 놓아 편하게 읽히는 것이 장점인 책이다.

독후 활동을 하며, 앞 부분의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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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먼 길 - 임성순 여행 에세이
임성순 지음 / 행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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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은 2010년 장편소설 『컨설턴트』로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2018년 젊은 작가 상, 2019년 SF 어워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의 말'에서 임성순은 자신을 "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것으로 먹고살고 있지 못하고, 영화 일을 하고 있지만 소설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며, 월급 사실주의 동인에 속해 있지만 사실주의에 부합한 소설은 손에 꼽기에도 부족한… 적다 보니 뭐하나 싶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런 것치고는 잘 살고 있다"라고 소개한다.

자신감이 묻어나는 소개 글을 읽으니 책의 내용이 더 궁금해졌다.

그래서 저는 일단 저를 집에서 쫓아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말이죠. 그래요. 이것은 일종의 유배기이자 귀향을 위해 가장 먼 길을 돌아가는 한 멍청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별일은 … 제발 없었으면 좋겠네요. P.11

작가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을 고립시킨 채 글쓰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나름 나쁘지 않은 삶이었고, 할 것 없는 텅 빈 나날이었지만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고 한다. 피하지 못할 결말인 고독사 하게 될 그날까지도 별일 없이 계속 글만 쓰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던 그가 왜 이런 엄청난 여행을 떠났을까?

그건 자신도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모든 여행이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 작가도 같은 생각이지 않았을까?

오토바이 여행을 계획했던 임성순 작가는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던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앞으로의 일정을 계획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3,500km 내에 제대로 된 도시가 없기 때문에 시베리아를 달리는 것을 포기한다. 그는 오토바이를 화물열차에 실어 모스크바로 보내고, 자신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모스크바에 오토바이보다 먼저

도착한 그는 미술관과 천문대를 둘러보며 러시아를 즐겼다.

작가는 오토바이 여행을 계획했지만, 오토바이는 여행을 출발한 지 보름이 지난 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책의 앞부분(part1)은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앞부분을 읽으며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오토바이 여행 에세이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part2에서 드디어 작가는 러시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업보죠. 엄청난 업보. 오토바이 타는 일은 곤충의 천적이 되는 일입니다. 물론 자동차가 더 많이 죽이겠지만,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최소한 그런 사실을 모르거든요. 하지만 오토바이는 촉감과 소리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업보는 적립되어 이탈리아에서 나름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p.71

오토바이 여행을 시작하고 작가가 마주한 것은 벌레들이다. 한국에 비해 벌레가 다섯 배쯤 많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독일이나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고 오토바이를 1,2주쯤 렌트해 스위스로 넘어가 신나게 탄 후 반납할 거라는걸. 네, 저도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밤에 이런 후회를 했습니다. p.73

계획 없이 떠난 오토바이 여행에서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작가는 비와 사투를 벌인다.

비구름보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오토바이 여행의 핵심인 경치를 버리고, 아우토반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비는 끈질기게 여행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쫓기듯 달리고 의무적으로 여행지를 둘러보는 여행을 너무 길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요, 확실히 지쳤습니다. 독일에서 비 맞으며 달릴 때에 비하면 템포를 많이 늦추고 있지만, 그래도 확실히 지쳐 있습니다. 지쳐서 출발했던 여행이라는 걸 돌이켜 볼 때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아무래도… 그래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p.122

3개월간 느슨한 여행을 생각했던 작가는 어느 순간 무리한 일정을 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여행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거창한 결말도, 화려한 레드 카펫도 없이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끝나버렸습니다. 다음 여행을 떠나기 까지는요. 무언가 아름답고 멋진 교훈을 줄 수 있다거나 거창하게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아쉽네요. p.279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먼 길』은 작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 11,000km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책의 내용으로 볼 땐 작가가 도착한 나라의 문화와 건축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각 나라의 문화와 건축에 대한 정보도 좋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11,000km의 길을 달리는 동안 느꼈던 작가의 외로움이었다.

비구름보다 빨리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심정을 쓴 부분과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는 사고로 인해 다리를 다쳤지만, 주변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혼자 해결해야 하는 장면에서 몰입도가 확 높아졌었다.

작가는 이 여행을 통해 자신이 바뀐다든지, 자아를 찾는 경험 등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전보다 '덜 열심히 살게 됐다.'라고 한다.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며 하루를 쪼개고 쪼개 글을 쓰는 일은 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내가 생각했던 오토바이 여행과는 많이 달랐던 작가의 여행을 통해 '외로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덜 열심히 살게 됐다.'라는 작가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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