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먼 길 - 임성순 여행 에세이
임성순 지음 / 행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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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은 2010년 장편소설 『컨설턴트』로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2018년 젊은 작가 상, 2019년 SF 어워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의 말'에서 임성순은 자신을 "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것으로 먹고살고 있지 못하고, 영화 일을 하고 있지만 소설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며, 월급 사실주의 동인에 속해 있지만 사실주의에 부합한 소설은 손에 꼽기에도 부족한… 적다 보니 뭐하나 싶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런 것치고는 잘 살고 있다"라고 소개한다.

자신감이 묻어나는 소개 글을 읽으니 책의 내용이 더 궁금해졌다.

그래서 저는 일단 저를 집에서 쫓아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말이죠. 그래요. 이것은 일종의 유배기이자 귀향을 위해 가장 먼 길을 돌아가는 한 멍청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별일은 … 제발 없었으면 좋겠네요. P.11

작가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을 고립시킨 채 글쓰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나름 나쁘지 않은 삶이었고, 할 것 없는 텅 빈 나날이었지만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고 한다. 피하지 못할 결말인 고독사 하게 될 그날까지도 별일 없이 계속 글만 쓰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던 그가 왜 이런 엄청난 여행을 떠났을까?

그건 자신도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모든 여행이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 작가도 같은 생각이지 않았을까?

오토바이 여행을 계획했던 임성순 작가는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던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앞으로의 일정을 계획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3,500km 내에 제대로 된 도시가 없기 때문에 시베리아를 달리는 것을 포기한다. 그는 오토바이를 화물열차에 실어 모스크바로 보내고, 자신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모스크바에 오토바이보다 먼저

도착한 그는 미술관과 천문대를 둘러보며 러시아를 즐겼다.

작가는 오토바이 여행을 계획했지만, 오토바이는 여행을 출발한 지 보름이 지난 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책의 앞부분(part1)은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앞부분을 읽으며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오토바이 여행 에세이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part2에서 드디어 작가는 러시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업보죠. 엄청난 업보. 오토바이 타는 일은 곤충의 천적이 되는 일입니다. 물론 자동차가 더 많이 죽이겠지만,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최소한 그런 사실을 모르거든요. 하지만 오토바이는 촉감과 소리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업보는 적립되어 이탈리아에서 나름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p.71

오토바이 여행을 시작하고 작가가 마주한 것은 벌레들이다. 한국에 비해 벌레가 다섯 배쯤 많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독일이나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고 오토바이를 1,2주쯤 렌트해 스위스로 넘어가 신나게 탄 후 반납할 거라는걸. 네, 저도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밤에 이런 후회를 했습니다. p.73

계획 없이 떠난 오토바이 여행에서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작가는 비와 사투를 벌인다.

비구름보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오토바이 여행의 핵심인 경치를 버리고, 아우토반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비는 끈질기게 여행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쫓기듯 달리고 의무적으로 여행지를 둘러보는 여행을 너무 길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요, 확실히 지쳤습니다. 독일에서 비 맞으며 달릴 때에 비하면 템포를 많이 늦추고 있지만, 그래도 확실히 지쳐 있습니다. 지쳐서 출발했던 여행이라는 걸 돌이켜 볼 때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아무래도… 그래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p.122

3개월간 느슨한 여행을 생각했던 작가는 어느 순간 무리한 일정을 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여행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거창한 결말도, 화려한 레드 카펫도 없이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끝나버렸습니다. 다음 여행을 떠나기 까지는요. 무언가 아름답고 멋진 교훈을 줄 수 있다거나 거창하게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아쉽네요. p.279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먼 길』은 작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 11,000km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책의 내용으로 볼 땐 작가가 도착한 나라의 문화와 건축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각 나라의 문화와 건축에 대한 정보도 좋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11,000km의 길을 달리는 동안 느꼈던 작가의 외로움이었다.

비구름보다 빨리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심정을 쓴 부분과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는 사고로 인해 다리를 다쳤지만, 주변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혼자 해결해야 하는 장면에서 몰입도가 확 높아졌었다.

작가는 이 여행을 통해 자신이 바뀐다든지, 자아를 찾는 경험 등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전보다 '덜 열심히 살게 됐다.'라고 한다.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며 하루를 쪼개고 쪼개 글을 쓰는 일은 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내가 생각했던 오토바이 여행과는 많이 달랐던 작가의 여행을 통해 '외로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덜 열심히 살게 됐다.'라는 작가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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