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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경제학
밀턴 프리드먼 지음, 김병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11월
구판절판


화폐현상~연구로부터 얻은 몇가지 경헙적 발견을 요약해보자.
1)장기와 단기를 막론하고, 화폐 수량 증가율과 명목소득 증가율 사이에는 정확하지 않지만 일관된 관계가 존재한다.
2)단기에 있어서는 화폐 증가와 명목소득 증가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기는 때때로 곤란하다.~오늘의 소득 증가는 오늘의 통화증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고, 이는 이제까지 화폐에 일어났던 변화에 달려 있다. 오늘 화폐에 일어나는 일은 미래의 소득에 일어나게 될 일에 영향을 미친다.
3)대부분의 주요 서구 국가들에 있어서 화폐증가율의 변화는 약6~9개월 후에 명목소득 증가율의 변화를 일으킨다.
4)명목소득의 반응은 통화 증가보다 진폭이 더 크다.
5)명목소득 증가율 변화는 전형적으로 처음에는 산출량에 나타나고 물가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6)소득효과나 생산효과와 마찬가지로 물가효과는 시간에 걸쳐서 나타난다. 이는 약12~18개월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화폐증가율의 변화와 인플레이션율의 변화 사이에 총 지체기간이 평균적으로 2년 정도가 된다.
-69-71쪽

8)3~10년 정도까지 길어질 수도 있는 단기에는 화폐 변화가 주로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 반면에, 수십년에 걸쳐서 화폐증가율은 주로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9)화폐수량의 대폭적 감소를 포함하는 화폐 위기가 심한 불경기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11)"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12)화폐 증가의 변화가 이자율에 미치는 영향은 처음의 방향과 나중의 방향이 다르게 나타난다. 화폐 증가의 가속화는 처음에는 이자율을 인하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후 이에 따라 지출이 가속되고, 다시 그 다음 인플레이션이 가속됨에 따라 대출수요가 증대되고, 이것은 이자율을 인상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에 더하여 인플레이션의 고도화는 실질이자율과 명목이자율의 차이를 확대한다. 대출자와 차용자 모두 인플레이션을 예상함에 따라, 예상 인플레이션을 상쇄하기 위해 대부자는 높은 명목이자율을 요구하고 차용자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71-74쪽

14)1971년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 이후에는 이자율과 인플레이션율은 평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목자산에 대한 명목수익의 가변셩은 커지고 명목자산에 대한 실질수익의 가변성은 작아졌다. -74쪽

1931~36년의 중국의 사태 발전을 ~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1)미국의 은가격 인상이 중국에 급격한 화폐수축을 발생시켰다. 2)정부가 은의 금수조치를 취한 후에는 대량의 은이 법적으로는 또는 밀수를 통해 수출되었다.3)동시대 논평자들은 화폐환상 때문이든지,~ 화폐수축이 심각한 경제불황을 수반한 것으로 보왔다.4)화폐수축은 순전히 명목적인 것이든지 실물 변수들의 감소를 수반하는 것이든지 광범위한 불확실성과 불만을 야기시켰다.5)이러한 현상은 중국으로 하여금 은본위제를 이탈하고 불환지폐제도로 이행하게 했다. 6)화폐개혁은 제도개편을 마련했는데, 이는 초인플레이션에 이바지하는 것이었다. -218-219쪽

과도한 화폐발생의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는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가, 둘째는 정부의 완전고용 정책, 섯째는 연준의 잘못된 정책의 추진이다.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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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전쟁, 한국경제의 기회와 위험 - 잘못된 5대 금융상식과 5대 금융명제
신장섭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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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실이라고 하는 모든 것은 이미 이론이다(Everything factual is already a theory.)"라는 괴테의 말을 저자가 인용하면서, 우리가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많은 금융 현상과 이런 현상의  인과관계들을 설명해 주는 이론들이 사실은 착시이거나 잘못된 이데올로기, 혹은 이해관계에 기반한 경우가 많으며 기존의 잘못된 금융상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명제 1.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명제 2. 돈이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흐른다.
명제 3. 버블이 커지지 않게 통제하고, '건전한 성장'을 해야 한다.
명제 4. 금융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명제 5. 경제성장율, 인플레율, 경상수지 등과 같은 '유량'지표를 관리하는 것이 경제운용에 중요하다.

  우리는 13년전 추운 겨울 IMF의 구제 금융을 받았고, 소위 워싱턴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는 경제운영 논리에 따라, 기업의 부채를 줄이고, 은행의 BIS를 높이며, 관치금융과 정경유착,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면서 외국자금의 유출입을 자유롭게 하는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를 충실히 따르면서 그 위기를 헤처나갔다. 그리고 3년전 미국을 진원으로하는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서 IMF 우등생이라고 하는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외환위기를 격게 되었다.  

  두 번의 위기속에서 생존하고 나름데로 선진국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대한민국이라고 칭찬해야 겠지만, 우리 경제에는 내상(內傷)이 남았고, 세계 금융시장에 대한 억울한 기분은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갖는 심정일 것이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에서 미정부가 취한 정책들은 오히려 우리가 과거에 경제위기를 겪었을 때 취해던 정책들과는 상반되는 금리인하, 고용안정, 자국기업의 보호 등의 정책을 취했다.
  저자 신장섭 교수는 이러한 심정과 의구심을 가지고 다시 세계 경제를 바라보고 다음과 같은 5대 금융명제를 도출했다

명제 1. 몸통이 꼬리를 흔든다 - 투기가 몸통이고 펀더멘틀은 꼬리에 불과하다.
명제 2. 돈은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흐른다- 신흥국에 돈이 흘러들어오는 것보다 빠져나가는 것이 훨씬 쉽다.
명제 3. 버불은 터지기 마련이고 새로운 버불을 만들어서 해결한다 - '버블만들기'가 자본주의 발전과정이다.
명제 4. 음모론을 믿어라 - 어느 음모론을 믿을지가 중요할 뿐이다.
명제 5. 성장률 숫자에 현혹되지 말라 - 자산가치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명제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정책대응을 한국정부에 조언했다.

명제 1. 꼬리를 건드리기보다 몸통에 직접 작용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
명제 2. 급격한 자금유출의 부작용을 다스리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명제 3. 버블 만들어질 때에 빨리 성장하고, 버블 터질 때에 충격 작게 받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금융위기 때 '100% 우리잘못론'에 빠질 필요가 없다.
명제 4. '음모'에 넘어가지 말고, '국익'에 맞는 정책을 펴야 한다.
명제 5. 국부(國富)를 지키고 확대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P.93)

  일례로 성장률 숫자에 현혹되지 말라는 충고는 IMF이후 지금까지 모든 정부당국자들에게는 뼈아프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이고, 우리 국민들도 성장에만 매몰되지 않았나 자문하게 된다.

정책담당자들은 국민들의 고용에 책임을 지고 성장률이나 인플레, 수출입, 경상수지 등 유량(flow)지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지표들은 국제적인 일목요연하게 비교할 수 있도록 잘 만들어져 있다. 정권이나 경제팀의 성적은 이 지표들을 얼마나 잘 달성하는가에 따라 매겨진다. 물론 국부통계와 같은 저량(Stock)지표도 일부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국제 비교를 할 수 있는 수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어느 나라가 경제운용을 잘 했는지 비교할 때에 국부가 들어가는 적은 없다.(p.79)

  그의 기존 상식에 대한 반박과 그가 주장하는 금융명제 및 대안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저자는 1998년 하반기 경기회복 역사도 '정사'에서 처럼 한국이 IMF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수행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어서가 아니라, 1998년 8월 러시아, 브라질의 금융위기, 9월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가 부도위기에 놓이면서 세계경제에 공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세계경제가 '심각한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점에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정부가 동의하고 금리를 공격적으로 낮추거나 재정지출을 확대 등 범세계적 케인지언 정책을 시행했기에 가능했다(PP166-168)고 주장한다.

  그가 비판하고 있는 기존 금융상식들은 사실 IMF구제금융 이후 금융선진국(주로 미국)들이 일방적으로 강요하였고, 경제적 이해관계 및 경제외적인 외교, 군사 등의 필요성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주입된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저자는 금융선진국이 주장하는 논거들이 사실은 자기들도 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며, 논리적으로 허약하고 우리의 이해도 대변하지 않기때문에, 워싱턴 컨센서스가 약회되고 있는 이 시점에 새로운 한국경제의 금융패러다임으로 중용(中庸)정신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경제, 중용의 패러다임.
1. 외환위기 '유리몸 체질'극복 방안 - 시장과 정부의 중용
: 자율변동환율제의 신화에서 '바스킷 방식'으로 전환하자.
2. '산업-금융'동반성장 전략 - 산업과 금융의 중용
: 펀드자본주의, 금융의 증권화, 금융자산의 비약적 증가, 레버리지의 증가
등을 통해 금융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산업이나, 이를 위해 산업의 체력이 회손되면 안된다고 본다. BIS 비율 규제 전면 개편 및 한국적 '관계금융'체제의 구축을 통해 산업과 금융의 동반성장을 꾀하자.
3. 중진국의 발전전략 - 선진국과 후진국의 중용
상품시장 자유화와 선택적 자본통제의 결합이라는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의 정신을 기억하며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대신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로 국가 발전 전략을 수립하자.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보다 앞서있는 선진국, 특히 미국에서 발생한 이론이나, 시스템을 빠르게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데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신화는 실체가 없을 뿐이다. 우리나의 경제현상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제시에서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을 넘어서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금융질서의 폐해를 지적하고 민족주의적이고 주체적인 시각을 제시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저자가 보왔을 때, 내부적으로 구별되는 경제주체들 이를테면 국가와 시장,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서로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하기 보다는 이들 세력이 동방성장을 통해 대한민국의 거시적인 발전 전력 수립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더이상 선진국이 아닌 중국이나 싱카포르 등의 여러 가지 경제발전모델이나 금융시스템 중에 좋은 점이 있으면 배워야 한다.
  일례로 저자의 시각데로  한국 중소기업들은 일본 중소기업들과 경쟁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고 본다면, 단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대안제시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또한 주식시장이 투기자금 조달보다 부를 실현시키는 기능으로 본다면 어떻게 금융이 새로운 산업들에게 투자금을 공급할지 모색해 보아야 한다. 사실 기존의 주식시장이 저자의 주장데로 대부분 기업들은 안정적으로 매출을 늘리고 영업이익을 올린 뒤 주식시장에 상장한다. ~ 오히려 그동안 경영을 잘해서 쌓아 놓은 기업가치를 주식시장을 통해 실현시키려는 목적이 더 크다.(p.236)

  그러나 약간 의구심이 남는 부분도 있다. 필자는 1997년 한국의 금융위기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이유들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환 과정의 실수들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데로 워싱턴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는 무조건 틀리고 기존 한국경제 운영방식은 올바랐을까? 분명 그들의 충고들이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을 튼튼하게 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데로 조지 소르소 등 초국적 투기세력들에게 우리나라의 국부가 많이 이전된 부분이 있다는 점은 공감한다. 또한 저자의 주장데로 금융시스템의 변경은 갈수록 미국과 경상무역, 외교, 군사 등에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쌍방의(bilateral) 협의로는 미국의 이해가 있어 쉽지 않아 보인다. 동아시아  국가들과 국제 공조를 통해서 동아시아의 국가 경제를 초국적 자본에서 쉽게 영향받지 않는 장치를 공동으로 요구하는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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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1
심재관 지음 / 책세상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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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불교 신자도 아니고, 전문적인 불교 서적을 읽은 경험은 없지만,  불교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들어가지 전에 기존 불교학이 어떤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는지 알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읽기는 쉽지 않지만, 끝가지 읽어가면 외래적인 근대성과 상투적인 전통주의를 극복한 주체적이고 탈식민시대를 지향하고 있는 현재 우리에게 가치있는 불교학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불교가 교실로 들어오면서 그리고 근대라는 교과서 속으로 들어오면서 전통의 참다운 모습은 빛을 잃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문헌 연구를 통해 이 모든 것을 과거의 승려들보다 더 정확하고 명백히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p.9)

  저자의 문제의식은 서구와 일본을 통해 수입한 근대 불교학이 가지고 있는 성과와 더불어 많은 한계들이 오늘과 우리가 주체성을 가지고 불교를 이해하도록 어렵게 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여 참다운 우리의 불교학을 추구해야 함을 얘기하고 있다.  

  이는 단지 불교학의 문제가 아니라, 동양학 전반에 관한 고민으로, 서양철학의 방법론만이 보편적이기에 우리의 동양학도 서양철학의 방법론으로만 이해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의구심은 포스트모더니즘이 한창유행했던 20세기말부터 생겨왔다. 특히 우리의 전통을 서구의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이를 보편화 객관화하는 태도는 아직도 우리가 근대성에 집착하고 있음을 말해주다. 하지만 저자와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더니즘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기존의 근대성이면에는 식민성도 함께 있음을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변증법적인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전통적인 불교가 정이라면 근대적인 불교학은 이에 대한 반이다. 그리고 이를 종합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터이다. 그런데 저자의 지적데로 전통을 제대로 보는 노력이 없으니, 종합하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시대에 보편화된 문제의식이며, 이와 더불어 저자가 우리에게 수입된 유럽과 일본의 불교학의 태생과 변천에 대해서 불교학이 유럽 19세기 중엽에 불경의 문헌 분석을 통해 시작되었기에 문헌학과 언어학을 중심으로 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종이 위의 불교학을 펼친 서구의 불교학의 인식태도와 인식방법에 대해서 저자는 고고학적인 고찰을 하고 있다.

이 비교언어학과 문헌학의 관계를 고려해보자.~~
미셜 푸코 Michel Foucault는 이 19세기 언어학의 탄생에서 새로운 에피스테메를 발견하는데, 그에 따르면 비교언어학의 탄생은 고전주의와 근대를 가르는 사건으로서 인식의 영역에서 갖는 기존의 투명하고 명백한 자연적 재현기능을 멈추고, 인식의 형태로 기능했던 언어가 오히려 자신의 법칙과 역사를 갖는 인식의 '객체'로 되는 시기를 말한다. 비교언어학적 언어연구는 기존의 문헌학에서 이루어졌던 의미와 소리-사상과 결합될 수 있는 단위들의 비교가 아니라 동사의 곡용과 같은 언어의 형식적인 구성 요소의 비교, 즉 언어로 환원할 수 없는 분석적 요소가 연구 대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푸코의 해석에 따르면 사상의 투명한 재현으로서의 고전적 언어관이 19세기 들어 전격적으로 후퇴하게 된 것은 서양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에 하나이지만, 이러한 사실은 거의 인식되지 못한 채 서양의 의식 속에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 (pp.56-57)

일차적으로 그들(19세기의 사학적 전통속에서 교육을 받은 학자들)은 불교사상의 발전 과정을 도식화하기 위한 사실과 사료들을 얻고자 했으며, 이러한 방법은 서양의 문명 속에서 역사가 차지하는 것만큼 인도의 정신적 삶에서 역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으므로 성공할 수 없었다. 서양의 불교학자들이 문헌에 집착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문헌 속에서 내재된 언어적 층위를 분석하고 그를 통해서 특정한 과거의 시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먼저 초기 불교학의 연구 목표가 되었던 '정확한 문헌해독'의 풍토가 어디서 기원했는지 살펴보자. ~~해석학 전통에서 영항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산트크리스트 연구 풍토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문헌적이며 상호문화적 이해를 포괄하는 모든 영억에서 전제로 하고 있었다. ~ 다시 이 해석학적 전통을 설명하면, "본질적으로 전통적인 해석학은 해석의 목적이 되는 하나의 참다운 의미를 주장하며 이 의미는 결국 저자의 의도와 동일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해석자의 임무는 "자신의 문화적, 역사적 그리고 개인적인 경향성을 배제하고 저자의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이 객관적인 의미를 회복하는 일이다."(pp.58-59)
언어가 곧 자연의 모사라는 고전주의의 명제에다 문헌학은 곧 엄밀한 자연과학이라는 초기 비교언어학의 선언을 덧붙인다면 그 이유는 이제 너무나 자명해진다.(p.61)
실재로 문헌학은 그들에게 자연과학과 같이 객관적이고 자명하며 투명한 학문이지만 이러한 투명성과 객관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투명한 학문의 창문 너머로 이들이 남긴 식민지 연구 역시 객관적이고 투명한 것인가.(p.61)

문제는 근대적 이성의 실험대 위에 전통이 올려질 때, 거기에서 전통의 본질을 찾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첫번째 이유는 전통이란 이방인에 대해 일차적으로 낯설고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며, 그것을 이해하고자 할 때 첫번째 작업은 귀납적 탐구로 귀착된다는 데 있다. 그런데 객관적 관찰의 렌즈 안으로 들어오는 일차적 자료의 총합은 전통의 정체성을 말해주지 않는다.(pp.108-109)

이러한 근대 불교학의 역사적 관점은 불교의 전통적이고 추상적인 개념까지 해체한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연구는 그것들이 대체로 근세에 만들어진 가상물임을 밝혀낸다. '민족'이라든가 '한국 불교'라든가 하는 집단 자의식이 문헌을 통해 실증되어야 하는, 그러한 집단적 개념은 사실 근대에만 나타난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문헌의 증거에 입각해 이루어지는 근대 문헌학 또는 근대 불교학이 그러한 심리적이고 집단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의 연구에 적합한 방법인가. '민족'이나 '한국 불교'라는 개념은 지금도 그렇듯이 글에 의해서 명료히 정의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심리적인 범주(그러나 실재하는 범주)이다.(p.124)

그들의 자료 중심주의는 아직도 18세기 유럽식의 역사적 방법에서 벗어난 것 같지 않으며, 제국주의의 문화적 표상의 관습들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엄밀한 의미의 문헌 연구는 역사학적 차원, 객관적으로 전통을 구축하고자 하는 일정, 고고학보다도 더 정확히 역사적 층위를 파헤쳐 '본래의 말씀'이 우엇이었는가를 확인하고픈 무의식적 충동이 그 배면에 깔려 있다. 현대의 초기 불교학자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관점을 빗대어 스스로 '기원의 형이상학자'라고 부를 정도였다.(p.131)

불교학의 주체화나 전통의 부할은 한국 내에서 전승되고 있었던 전통적인 연구방법의 재고와 재해석을 의미하고, 그것이 한국의 지형적 특수성을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 현재 불교학의 연구에 이러한 주체적 목소리가 필요함을 주장하는 학자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상당수의 학자는 서양의 근대적인 학문적 방법과 엄청난 양의 연구서를 소화하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다. 설사 주체적인 학문을 주장해도, 그 주장은 과거 대항 식민주의에서 길들여진 경직된 학문이거나, 그것이 다시 군부정권하에서 체제 이데올로기로 강화된 병태적 민족주의의 어조를 갖고 있다.(p.133)
   

그의 견해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나 약간 근대성에 대한 불편함이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그는 서구의 불교학에 의해 더칠해진 현재의 불교 연구에서 벗어난 우리 전통 불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이한정의 글쓰기를 지지하고 있다. 기회되면 저자가 추천한 이한정 님이 쓴 <경험스님 '능엄경' 역안의 연구>를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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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미래 -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
노무현 지음 / 동녘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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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생전에 고민했던 한국 사회의 방향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 볼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주요 관심사는 국가와 시장의 관계 설정이고, 그 해답은 국가나, 정치 권력의 쟁취가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자발적 시민들에서 찾았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국가와 시장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 계속적인 이해가 변천하고 있다. 학창시절에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터라, 새로운 지식은 별로 없으나, 노무현대통령이 바라보는 관점을 엿볼수 있어서 좋았다. 단지 아쉬운 점은 한국사회의 특수성인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어서 아쉽다.  

내가 말하는 시민이라는 것은 자기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람, 자기와 정치, 자기와 권력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적어도 자기의 몫을 주장할 줄 알고 자기 몫을 넘어서 내 이웃과 정치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것을 일반화해서 정치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시민이라고 보는 것이죠. 이런 개념에서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시민이고 그 시민 없이는 민주주의가 설립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시민의 숫자가 적다면 시민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죠.(p.295) 

 시민도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 재산권을 중심으로 하는 권리주체로서 시민이 이젠 인간의 행복에 관한 권리로 그 범위를 좀 더 보편화하자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그동안의 시민은 국민이었거든요. 국가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 이젠 그것을 뛰어넘어 시민사회로 가야 되는 것이고, 세계의 추세가 이미 국가주의를 넘어서고 있는 것 아닌가......(p.302) 

그야말로 역사의 진보를 밀고 가는 역사의 주체가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의 이상과 목표를 분명하게 품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운영해 갈 수 있는 시민 세력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답은 민주주의밖에 없어요. 지배 수단이라는 것을 놓고 정치와 권력을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똑똑히 제 몫을 다하자, 그것 말고 달이 있겠어요?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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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에너지 - 더 진보적이고, 더 민주적이며, 더 서민적으로 호모폴리티쿠스 정치가에게 묻는다
정세균 지음 / 후마니타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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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 치자면 개성미가 없어 잘 조명받지 못하는 스타처럼 느껴지는 민주당 대표 정세균이 대한민국의 정치현실, 민주주의, 진보진영과 민주당의 진로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히 신선한 내용도 없고, 이론의 여지가 있는 주장은 없지만, 다른 진보진영의 인사들처럼 과격하거나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가 없고, 실사구시적이고 실용적인 그의 태도가 엿보인다.

그동안 격동의 한국정치에서 언제나 세상을 변혁하고 뜯어 고쳐야 한다는 좌,우의 주장 속에서 색깔이 선명하고 과격한 주장만이 득세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며, 불의와 기득권에 순응하지는 않으면서도 현실적이고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정치지형과 이를 만들수 있는 정치인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기업의 CEO출신이면서도 정치를 단지 비효율적인 제약으로 보지 않고, 보다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사회적 장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보는 그의 태도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기업가와 기업 출신의 정치인들이 눈여겨 보왔으면 종겠다. 이 책을 쓴 동기에서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관을 이렇게 서술했다.

 

정치란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어 어떤 합의에 도달하고 그것에 따르도록 만드는 기술이자 예술이다. 무슨 사업 추진이 옳다 그르다, 세계 몇 위를 언제 달성하며, 몇 퍼센트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2만 달러다 3만달러다 하며 소리를 높이는 동안 정치적 담론과 실천은 실종되어 간다.

이런 식의 다툼으로 일관한다고 해조자. 어느 누가 정치를 통해 어떤 가치와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적 기초를 어떠해야 하는지를 성찰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을 위해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지를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p.8)

 

그가 어려서 가난하게 살아서 고학으로 학업을 마치고 대기업에서 산업근대화에 이바지하다가 정치에 입문했다는 그에 대한 삶의 이력과, 여러 정치현안들을 해결해 나가는-이를테면 IMF시절 현대자동차파업문제 해결이나 열린우리당집권시절 4대입법처리에서 보여준- 그의 문제해결 방식은 요즘처럼 사회가 좌우로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좋은 본보기가 될수 있을 것 같다. 외유내강의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 나라의 정치인이 무슨 장수처럼 적들을 쳐부수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여러 이해세력들의 요구들을 경쟁과 타협을 통해 일부는 대변해 주고 일부는 변용해 가는 운영의 묘가 오늘날 정치현실에는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아무튼 민주당 혹은 민주진영이 오늘날 한국사회에 이룩한 것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다시 질적인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려는 그에게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민주당은 보다 선명해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 한 의원이 언급한 것처럼 좀더 국민들 시선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지향하는 바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풀어나가는 방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지난 10년의 정치현실에 대해 국민들이 작년에 보여준 대선과 총선의 결과로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그는 적어도 국민들이 오해를 했다고 얘기하지 않고 우리가 일부 잘못했다고 시인한다.

 

진보의 가치가 소중한 만큼 일부 진보 진영에서 보여 온 태도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이를 제기하는 데 능숙한 반면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찾는 데에는 소홀하다. 제한된 권한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해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민주화의 성과를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도 있다. 독재 정권 아래서 숨죽이고 열심히 살아온 보통 사람들의 아품과 애환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때 어느 편에 있었느냐는 잣대로 세상을 손쉽게 나누어 이해하기도 한다.

입장의 선명성에 의존하다 보니 일에 대한 헌신을 중시하지 않는다.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요구되는 노력과 인내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말은 거친데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 대안까지 내놓으면 휠씬 나은 경우이지만, 많은 경우 마치 백지상태에서 그림 그리듯이 아름답고 보기 좋은 비전을 내놓는다. 그것이 실현되기 위한 조건과 제약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 가능하냐고 물어보면 서유럽이나 북미의 사례를 몇 가지 보여 주는 것으로 간단히 정리한다. (pp.101-102)

 

끝으로 올해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했을 때의 과정을 보면서, 정치인이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지 생각해 본다. 종이호랑이가 된 전직 대통력을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지켜주지 못했다. 일부 진보진영과 진보주의 언론은 그가 재임당시 행한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이젠 알수 없으나 있다고 추정되어졌던 정치비자금을 가지고 그를 가차없이 등을 돌리고 비난했다. 정의는 참 중요하다. 정치나 사회가 보다 정의롭고, 국민이 뜻하는 바데로 가도록 노력하는 것은 정치인이나 공인으로써 바른일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진보진영들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보여온 태도는 정의로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의리는 없었던 것같다. 장사를 하려면 정직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의리가 중요한데민주당은 국민들에게 신뢰를 쌓아야 겠지만, 정치인들 사이에세도 신뢰와 의를 찾아야 할 것같다.

노무현 전대통령님을 추억할 수 있는 귀절이 있어 이렇게 남긴다. 노무현가 정세균 서로 스타일은 틀리고,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대의를 위해서 서로 좀 서먹하면서도 의리있게 정치를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노무현과 민주당

내가 실지로 노무현과 함께 일해 본 것은 1998년 현대차 파업 때다. 앞서 말했듯이 그가 중

재 단장이었고, 내가 사측을 담당했다. 그는 내 활동을 좋게 보았는지,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당시 일을 꺼냈다.

사실 그 일 말고는 나에 대해 회상할 일이 마땅히 없었을 것이다. 그는 지역주의와 싸우고, 언론 권력과 싸우면서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에 비해 내 활동은 순탄했고, 주어진 일을 여심히 하는 편이었다. 열정적이었던 만큼 외로웠을 그에게 나는 무난하게 기득권에 안주하는 사람의 하나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스타일상 그와 나는 워낙 달랐다. 그는 때론 과하다 싶을 만큼 솔직하고 말에 거침이 없었다. 나는 말로 꼬투리 잡고 잡히는 걸 싫어했고, 공연히 분란만 일으키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그의 존재로 인해 민주당은 많은 이익을 얻었지만, 민주당은 그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를 정치로 끌어들인 김영삼은 3당 합당에 가담해서 영남 민주 세력을 고립시켰다. 노무현을 포함한 많은 영남 인사들은 지역 기반을 포기하던가 민주개혁을 포기해야 하는 가혹한 시험대에 올랐다. 많은 사람이 지역을 붙잡았지만, 노무현은 그러지 않았다.

그 뒤로 고난의 길이 시작되었다. 민주당을 지키며 지역주의에 맞서 싸웠다. 누군가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마땅한 이유를 찾기 힘들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사람은 좋은데 당이 별로라서……” 노무현은 이런 자기 합리화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PP.224-225)

그와 나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둘 다 원내에 있을 때나 당직을 맡았을 때 그만하면 친해졌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잘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호남출신이고 기업 출신이며 예측 가능한 사람이다. 반면 노무현은 영남 출신의 투사형이면서 당시까지는 노동계를 대변해왔다. 그의 발언이나 행보는 돌출적일 때가 많았다.

후보 시절 사진이나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거나 반미면 또 어떠냐라고 말했다. 나 같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 차이로 인해 오히려 친해질 수도 있으련만 그렇지 못했다. 그는 현실을 매우 못마땅해 했고, 일을 벌이는 편이었고,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했고, 일을 수숩하고 마무리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그는 호방하고 직선적인 스타일이고, 나는 온화화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나에게 노무현은 늘 어색하고 불편했다.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꼈지만, 일을 대하는 자세가 나와는 판이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릴 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p.228)

당은 왜 분열했나
모르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의 배후라고 말할 것이다. 그가 세운 당이니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몰랐다고 무지를 탓할 뜻은 없다. 나마저도 후일 대통령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민주당이 노무현에게 베푼 것은 별로 없지만 그가 민주당을 등진 적은 없다. 그를 후보로 뽑아 놓고도 당의 주류들이 흔들어 댔지만, 민주당을 버린 적은 없었다.(pp.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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