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바람이 등을 가볍게 떠밀듯이 걷는 길이였다. 오르막에서 숨이 약간 차올라도 이야기를 나누는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던것은 아마도 바람 때문이였나보다.   

#2.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제법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자다가 깨기를 여러번 했고, 휴게소에 들러 토스토도 사먹었고,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물에 감탄도 여러번 하도록 목적지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고, 피곤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래. 아마 오랫만에 느껴보는 설레임 비슷한. 그 무엇이였다.  

#3. 오랫만에 만나는 오래된 선배같은 느낌이였다. 그러니까. 함께 학교를 다녔을텐데 서로를 잘 모르던 그런 선배를 어떤 계기로 오랫만에 만나는 느낌이였다. 그 사람을 만나니 온갖 풍경이 마음을 스친다. 그 시절 나의 전공서적과  낮잠자기 좋던 강의실과 매섭던 선배들의 눈초리와 평편없던 학점까지도.  

#4. 그래서 우리는 걸었다. 바람이 등을 떠미는 조금은 높다란 그곳을 걸었다. 개나리가 미친듯이 피어있는 담벼락을 보면서 길처럼 흐르는 강을 보면서 말소리도 웃음소리도 그리고 우리도 그저 그 풍경의 하나일 뿐이였다. 그래,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던 풍경같은 만남이였다. 다음을 기약하지 않아도 좋고, 헤어짐을 아쉬워 할 필요도 없는,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둬도 좋을 그런 만남이였다.  

#5.  내가 사는 곳에서는 아직 목련이 채 피지 않았고, 벗꽃도 시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사람이 사는 그 곳에서 올 봄 나를 처음 맞는 벗꽃과 목련을 보면서도 나는 한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다. 그 흔한 핸드폰 카메라도 꺼내지 않았다. 때론 사진을 담는것에 욕심을 내서 정작 마음과 눈에 담아야 할 것을  놓칠때가 많다. 그래, 나는 이곳의 이 풍경과 이사람의 맑은 목소리를 담아가겠다. 언제든 문득 무언가가 그리울때 꺼내 볼 수 있도록 까르르 소녀처럼 웃는 이사람의 웃음만 담아가겠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 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봄꽃에게 좀 미안하더라도.  

#6. 논개를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서 나는 물었다. "논개가 정말 저렇게 생겼었을까요?" 그녀는 논개가 저렇게 색기없게 생기지 않았을거라고 이야기 했다. 동의한다. 한 남자가 죽음을 눈치채지 못하게 할만큼의 무엇인가가 없는 그저 음전한 그림이였다. 나는 대답했다." 여자는 이쁜게 진리에요. 이뻐야 호국도 하는거라니까."  그렇다면 나는 진리에 가깝게 사는건가? 

#7. 그녀가 말하는 책중에 내가 읽어 본 책은 거의 없었다. 취향이 다르기도 했지만 나의 독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으면서 그 책에 대해 이야기 해 줬다. 그리고 내가 그 책을 읽어 보겠다고 대답했을때 나에게도 그 책이 좋길 바란다고 이야기 했다. 그녀는 알까? 그때 그녀의 눈빛이 얼마나 이쁘게 반짝거렸는지, 얼마나 소녀같았는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나는 채 읽지도  않은 그 책이 엄청 나게 좋게 느껴졌다.  

#8.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주르륵 산문형식의 글을 쓰다보면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 번호 붙이기가 무척 마음에 든다.  

#9. 어찌됐건 그 주말은 이제 끝났고, 지금은 월요일이다. 이번주 토요일엔 나는 또 좋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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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4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4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4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1-04-04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마음이 많이 답답해서 산책을 나가고 싶은데 날씨가 여전히 춥네요..
날씨가 좀 따뜻하면 좋겠는데.. 자꾸 비가 내려요.ㅜ.ㅜ
좋은 오후 되세요^^

따라쟁이 2011-04-04 16:26   좋아요 0 | URL
좋은 사람과 함께 걸으실 수 있는 좋은 날씨가 어서 오기를..
저는 좋은 오후를 보내고 있어요. 후애님께도 좋은 오후가 되시기를요 ^^

2011-04-04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4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4-0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개라면, 진주성에 다녀오셨나봐요.
의기사에서 새로 봉안된 논개 영정을 보셨나요?
저는 실제로 본 적은 없는데, 왜색 논란이 있었던 당시에 좀 궁금하더라구요.

좋은 분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셨다니, 부럽습니다.
왠지 따라님 인터뷰를 하고 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좋은 분 만나러 가신다니 더더욱 부럽네요.

날이 많이 따뜻해졌어요.
점심 먹고 오는 길에 보니, 샛노란 개나리가 예쁘네요.

따라쟁이 2011-04-11 13:06   좋아요 0 | URL
인터뷰.. 좋죠. 거의 비슷해요. 다만 지면에 담을 이야기가 아니고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고 왔지요.

다락방 2011-04-0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보.

따라쟁이 2011-04-11 13:06   좋아요 0 | URL
아.. 걸렸습니까?

꿈꾸는섬 2011-04-06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좋은 사람 만나고 오셨군요.^^
이번 주말에도 또 좋은 사람 만나러 가신다니 부러워요.^^

따라쟁이 2011-04-11 13:07   좋아요 0 | URL
이히히. 그러게요. 무슨 복인지 모르겠어요. ㅎㅎㅎㅎ

2011-04-06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7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4-07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ㅠ.ㅠ
왕부러움,
돌아섰다가는 다시 왕부러움.
나도 데려가 주지, 나도 데려가 주지~

따라쟁이 2011-04-11 13:07   좋아요 0 | URL
그쵸? 부러우시죠? 날이 좀 더워지면 다시 한번 갈껀데..그때 함께 하시겠습니까? ㅎㅎㅎ

비로그인 2011-04-07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좋아요.

마지막이 참 좋네요~ 여름 지나 아침 저녁으로 시원해진 바람이 불때즘, 이불에 닿는 느낌처럼.

따라쟁이 2011-04-11 13:07   좋아요 0 | URL
크.. 좋았어요. ㅎㅎㅎㅎ

그나저나 바람결님의 이 비유의 비결은 뭐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