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넘치게 흐르는 감정들은 나에게 와서 잘 닿지 못한다. 그저 스크린 안쪽을 맴돌다가 사라져 간다. <만추>는 내게 보여지는 영화가 아니라 들려주는 영화였다. 그들의 감정이 전해지는 것은, 화면가득 차오르는 그들의 표정이 아니라, 영화관을 울리는 소리였다. 탕웨이가 종이를 씹어먹는 바르작 거리는 소리나, 과자를 먹는 오도독거리는 소리에서 그녀의 불안감이 느껴진다. 이마위로 쏟아지는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스산하다. 그런 그녀뒤로 들리는 구두소리에 설레임을 느낀다.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건 아주 작은 소리들이였다. 시계를 채워주는 딸깍하는 소리, 귀걸이가 찰랑거리는 소리, 단추를 풀어나가며 옷깃을 스치는 바라작거리는 소리. 가장 처음느끼기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이 소리라고 했던가?
그래서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는걸까?
낮은목소리를,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들기던 소리를, 묶여있는 리본을 풀던 소리를, 색연필로 종이 귀퉁이를 색칠하던 소리를,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책을 덮던 소리를.
2. 요 몇일 늦은 밤, 혹은 새벽. 창 밖에서는 계속 고양이가 울었다. 제법 큰 고양이가 집 주변을 배회한다더니 내방 창문 밑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야-옹"하더니만, "니-야-옹"하고 그리고 "아-옹"한다. 그 차이에 무슨 뜻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차이를 알아낸 스스로가 기특했다. 귀를 귀울여 주는것, 관심을 보여주는것, 그래서 그 찰라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봐 주는것.
내 기억속에 그 사람이 오래 머무는 것은 아마도 나에게 눈동자가 갈색이라고 말해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한갈색에서 진한 고동색으로 바뀌는 찰라의 눈동자 색을 알아봐 준것. 그 눈빛의 변화에 내 감정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모를지라도...
3. 봄밤이다. 그래서 잠을 못드는가 보다. 그래서 쓸대없는 생각이 끊임없이 드는가 보다.
4. 잠들지 못하는 봄밤. 이 책을 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