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맨 앞장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시 구절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하루종일 치이고 힘들고 부딪히며 조용히 흐르지 못하고 그 모든게 밖으로 졸졸졸 소리치는 좁은 내가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깊은 물
도종환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얖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앤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좇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 이 시냇가 여울을
스스로 앝은 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이토록 소리내며 하루 하루를 흘러가는 것이 때론 부끄럽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난 신경질이 괜히 오랜 벗이자 스승같은 사람에게 터져나간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 따라야, 니 마음이 술잔하나 뜨지 못하는 물이 아니라, 넓고 깊은 바다라고 해도 말이야, 파도치는 소리는 들려. 아무 소리 없이 물이 흐를 수 는 없는거야. 그게 마음이란거 아닐까?
위로가 되면서도 괜한 심술이 터져 나온다
-호수는 아니잖아. 호수는 파도 소리도 안들리잖아.
-따라야, 그래 니 마음이 졸졸졸 소리내며 하루하루 흐르는 그런 시냇물이라 하자. 근데 말이야. 너 계곡 가봤지. 때론 그 물소리가 시끄럽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어느 쾌청한날 들리는 졸졸졸 소리는 사람을 쉬게 하기도 하잖아. 그런거야. 니 마음이 흐르는 소리도 그런거야. 나는 니 마음이 좀 시끄럽게 흐르더라도 니가 사는 소리, 때론 힘들어 하는 소리에 힘을 얻어.
오랜 침묵 후에 그는 다시 말했다.
-니 마음이 아무리 얕아도, 그 마음 위에는 너랑 함께 나눌 술잔은 항상 떠가.
내 마음은 여전히 시끄럽게 흐른다. 작은 일에 상처받고, 부딪히고, 다른 사람을 탓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해 가면서. 하지만 그래도 그 물위에 술잔하나 띄워줄 이가 있어서, 기꺼이 그 잔을 나눠줄 사람이 있어서, 괜찮다.
이만하면 나는 시끄럽게 흐르는 얕은 물을 가진 사람이라도. 제법 괜찮치 않은걸까?
하룻동안 스스로를 몹시 내쳤다가, 그의 말한마디에 스스로를 다시 끌어 안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