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를 바꾼다는 것 - 트랜스젠더 모델 먼로 버그도프의 목소리
먼로 버그도프 지음, 송섬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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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 메이커 “변화를 부르는 사람”

이 책<젠더를 바꾼다는 것>의 지은이 먼로 버그도프는 트랜스젠더 모델이다. 흑인, 여성, 모델, 트랜스젠더가 열쇳말이다. 대기업 “로레알”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그의 기나긴 투쟁의 이야기다.

여러 명의 트랜스젠더가 있다면 이들은 각자의 트래지션(전환)이 있다. 모든 트랜스젠더가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인 유레카가 있는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 인형이나 로봇에만 선택적으로 애착을 갖지 않는다. 이런 이분법, 확정적 설명이 대중에게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겠지만, 단순한 접근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바로 이 대목에서 이 책은 트래지션이 우리 모두에게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성별 정체성뿐만 아니라 지금 생활 속에서 모호함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한한 변화 가능성을 억제할 필요는 없다. 자신과의 진실한 교감을 계속하라. 그 속에서 자기 발견을.

이 책은 먼로의 자전적 서사다. 사춘기와 섹스, 젠더, 사랑, 인종 그리고 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먼로는 “그 시절 내가 진짜 나를 찾아 나서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라고 스스로 자기에게 묻는다. 답은 지금 그 앞에 펼쳐진 현실이겠지만, 그에게 트래지션이라는 결정은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잡는 것이었다. “전환”은 보이지 않는 것과 실체적인 것을 일치하도록 만드는 일이고,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이다.

비자발적 정체성 극복과정 “트래지션”

우리는 모두 태어남과 동시에 여러 요소에서 비롯된 비자발적 정체성을 지닌다.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불평등한 권력관계의 산물인 성에 관련된 행위, 태도, 감정, 욕망, 실천, 정체성 따위를 포괄하여 나타내는 말), 종교나 정치 같은 부모나 보호자들의 특정한 요구가 그 요소들이다. 또, 우리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다른 사람의 추측과 기대(전통성-남성 중심의-을 바탕으로)로 이루어지는 정체성이기도 하다. 흔히 TV 드라마에서 나오는 게이, 동성애를 혐오하거나 전통에 어긋난다.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배척, 소외되는 경향을 드러내 보인다. 물론 그렇지 않은 때도 있지만 말이다.

먼로는 어째서 사회가 여성성을 약점이라고, 종속적이며 교묘한 조종에 능한 특성이라고 여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에게 여성성이란 인간성의 전형이자 우리 모두가 가진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남성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이로써 자기를 정의하는 남성들은 다른 사람이 지닌 강력한 여성성을 위협적이라 여기는데 그것이 비하의 대상이던 자기 안의 여성성을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역할 모델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조를, 먼로는 어른이 된 뒤, 청소년기에 갖게 된 수치심과 죄책감이라는 두 가지 감정을 지워버리려고 애를 썼다. 청소년기에 그는 그를 닮은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퀴어,흑인, 트랜스젠더,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는 없었다.

섹스의 경험, 불편했던 기억과 좋았던 기억 끝에 기다리는 건, 권력관계로의 전환, 지배당하고 불법, 그리고 여학생 친구와의 만남 또한...

사랑에 관하여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를 의식하는 가운데 사랑과 관계를 배워간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종종 성별화되며, 무엇이 우리를 충분하게 하는지를 알게 되기 전부터 사랑은 충족감을 주는 만능열쇠처럼. 사랑은 일반적으로 사회화의 한 형식으로 제시된다. 사랑 또한 모방을 통해 배워가는데, 그 기준은 이성애다. 동성애는 설 자리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집에서 부모의 감시를 이성애의 기준에서 진정한 모습으로 살기 전 먼로가 감당해야 할 장애는 나 자신이 되는 대가로 홀로 남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가부장제와 사랑, 여성들은 모두 외모로 평가받는 사회, 여성들은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청소년기 시절, 안전해지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받으려면, 사랑받으려면, 자기를 사랑하려면 매력적인 외모를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외모지상주의)

이제 트래지션, 끊임없는 "전환" 의 노력

사회구성원으로서 우리는 권력과 특권이라는 뿌리 깊은 체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은 목소리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으로, 적어도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전환해야 한다. 먼로의 개인적 성공, 영국 역사상 패션과 미용업계에서 로레알과 일한 최초의 트랜스젠더 모델, 영국판<보그> 최초의 흑인 영국인 트랜스 여성 표지 모델, 영국판<코스모폴리탄> 표지에 실린 최초의 트랜스 젠더 여성 모델 등의 화려한 개인 이력은 오히려 그에게 이중 압박으로 다가왔다. 현실의 트랜스젠더의 삶을 대변하는가, 뭔가를 잘못하면 나를 닮은 다른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을 구실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그들의 편견을 정당화할지 모른다고 느꼈다. 완전 고용의 특권 속에서 그는 여전히 그의 길을 가려 애쓴다. 자칫 한순간에 그는 천연기념물처럼 대상화되거나, 박제된 그로 남을 수도 있는 엄혹한 환경 아래 놓여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고용주에게 건네는 말조차 내가 이 말을 하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자기검열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치열하게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아 사회적 편견과 평판에 주눅 들지 않고, 트라우마에 잡이 먹히지 않기 위해 꿋꿋하게 버텨온 트랜스젠더 모델의 삶 이야기다. 먼로가 이 책을 쓴 목적은 그와 같은 트랜스젠더들이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그런 세상, 더는 싸우지 않는 평화를 염원한다. 그를 비방하는 개개인을 상대로 다투기보다는, 현실의 벽이 높고 두터움을 받아들이고, 이런 해악이 일어나게 만든 사회구조에 다시금 집중하는 것이 에너지와 목적의식을 더욱 잘 쓰는 방법이라는 자신에게 들려주면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되새기자는 것이다.

아직도 먼로의 청소년기처럼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들이 많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기를 응원하면서, 자신을 향해서도 흔들림 없이 이들과 함께 늘 전환을 생각하면서 전진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는 <코스모폴리탄>어워드에서 2018년 올해의 체인지 메이커로 선정되기도 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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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키 호택 - 한국판 돈키호테 임택, 당나귀하고 산티아고
임택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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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운반해주는 여행자


지은이 임택의 책<동키호택>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걸었던 당나귀 “메스키”와의 여행길 이야기다. 지은이는 “자연인”, “자유인”이다. 속박도 굴레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뭐, 인생이 계획되는 대로 흘러갔다 하더라도 후회가 없겠는가만, 대중이 지은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아마도, 어릴 적 꿈 많던 시절에 그려보던 인생 계획표의 어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를 “자유롭게”라는 그리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의탁한 “여행” 이를 통한 대리만족, 임택과 함께 걷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즐거울 듯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지은이가 아니라 동키호택이다. 돈키호테와 비슷한 발음이라서 듣는 사람들도 돈키호테를 연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우연한 기회, 지은이에게는 한계와 절망이 없는 듯, 산티아고 “카미노”를... 당나귀와 함께 걸어본다면 어떨까에서 시작된 여행, 800킬로미터의 길을 사람과 당나귀가 호흡을 맞추면서 걷는다. 이 또한 모험이요, 도전일 듯,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여행이 예상대로 되지 않는 건 인생과 닮은 꼴


지은이는 당나귀 호택을 그저 머슴, 짐꾼 정도로 생각했다. 목줄을 쥐고 꼬락서니가 사나운 당나귀를 통제하는 법을 그의 주인에게 배운 터라서, 사람이 당나귀를 지배하고 통제한다. 별 이상할 것도 없지만, 어느덧 이들은 한패가 되고, 길동무가 된다. 어느덧, 호택이를 통제하던 목줄을 잡지 않게 됐다. 제대로 된 산티아고 카미노 여행이다. 71일 동안 호택과 함께할 수 있게 도와준 스페인 목장주인 부부도 이렇게 되리라고 알고 있었을까?, 당나귀를 좋아하고 또 잘 아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지은이와 호택이의 동행은 어떻게 보였을까, 호택이 덕을 본 지은이.


이런 신박한 이야기를 책으로, 지은이는 영어도 잘 모른다고 했지만, 번역기를 돌려 영어로도 이 책을 냈다. 물론 감수를 받았겠지만, 지은이가 자신의 엉뚱 여행기를, 호택과 함께한 800킬로 여정을 글로 썼다는 것, 누구나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미 정도로만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인생에 정해진 경로가 없든, 임택처럼 우리도 호택이를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의 지은이처럼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은이의 열린 사유방식, “인생에 정해진 길이 있나?” 가면 되지, 성지만 가야 하기에 길을 잘 못 들었다는 말도 나오는 거지, 목표는 늘 내가 정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남이 정할 수도 있다. 이른바 열린 사고, 자유로운 사유, 얽매임이 없는 것들, 욕심을 버리고 비워야만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 법정 스님으로 대표되는 “무소유”는 자신을 늘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일 뿐, 물질 욕과 소유욕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런 것들이 하잘것없음을 깨달았을 뿐, 자신만의 호택이를 찾는 것 또한 나를 찾는 길일 듯하다.


이 책은 읽는 이에게 지은이는 아마도 이렇게 묻고 저렇게 답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자유란 무엇일까요” 그거 아세요.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건데요. 실상 말이 쉽지, 사람에 따라서는 몹시 어려운 일일지도 몰라요라고, 자유의지 그거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실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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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 먼 훗날 장애 아이가 혼자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길 꿈꾸며
박현경 지음 / 설렘(SEOLREM)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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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이 된 아이와 함께 “30년 동안”

지은이 박현경의 이야기다. 먼 훗날 장애 아이가 혼자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꿈꾸며, 펴낸 엄마와 장애인 아들의 지난 30년 세월을 담은 고통과 절망, 희망과 기쁨, 엄마가 된다는 것, 그리고 장애아들의 동생들, 장애인이 있는 가족의 삶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삶의 이야기다. “30년 동안 아이와 살면서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순간은 매일매일 있습니다.”라는 말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서사로 끝나지 않고, 장애인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앎의 기회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지은이의 말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여성의 삶과 언어의 지분이 없는 아들을 대신한 글쓰기, 엄마로서의 반성과 성장, 장애인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장애인도 다를 게 없네, 아이들 키우다 보면 다 그렇지 뭐라는 엄마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달라는 지은이,

글을 쓴다는 것, 책을 펴낸다는 것, 제각각의 이유와 목적이 있겠지만, 이 책은 세상에 장애인과 그의 가족을 삶을 알리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많은 시도 가운데서도 매우 설득력 있는 잔잔한 울림을 전해준다. 세상에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오기를….

이 책은 3개의 에피소드로, 첫 번째는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그 날의 기억을 더듬는다. 예방접종 후,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한 아이, 결국 뇌 병변이라는 진단을 이게 누구의 탓일까요.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받았기에 국가의 책임이지만 이를 따질 만큼 한가롭지 못한 첫아기를 가진 젊은 엄마의 일상, 가슴이 미어지고, 모두 내 잘못인 것만 같아, 절망하면서도 아이를 위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공부하는 삶, 두 번째 일상을 되돌리는 엄마, 수영강습장에서 배움의 속도가 더딘 우리 아이, 주변에 민폐를 끼는 일은 피하고 싶어서 오늘도 고민 속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영강습을 접어야 했던 엄마, 세 번째,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하다. 첫아이의 배움에 도움이 될까, 둘째, 셋째가 있으면 외롭지 않을 테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겠지, 어느덧 다 커버린 아이들 둘째는 형을 배려한다. 이런 게 삶의 모습이 아닐는지,

그저, 조금 다른 너를 엄마는 많이 사랑해라는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책을 읽고 난 후에서야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아마도 아래의 글을 읽는 것이 다른 어떤 설명보다도 우리에게 울림이 클 듯하다.

같은 반의 어떤 아이는 징그러운 송충이 보듯 우리 아이를 피했고, 어떤 아이는 과한 호기심으로 짓궂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하니 병원에서 고쳐 오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우창이(아들)를 궁금해하기에 32명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손편지를 썼다.

“애들아 우창이가 수업 시간에 떠들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때 자꾸 움직여서 이상했을 거야. 어렸을 때, 예방주사 맞고 열이 나면서 머리에 문제가 생겼단다.(중략). 너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해. 친해지는 방법을 모르니까 자꾸 장난치는 거야. 너희들이 많이 도와주고 친하게 지내면….” (50쪽)​

아이들은 머리에 어떻게 문제가 있는 거냐고 물어서 로봇 부속품이 하나 빠져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거라고 설명했다.

달라진 아이들, 우창이를 도와주고, 배려해주는 모습 속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한 엄마는 말한다. “장애가 있다는 것이 그저 안경을 쓰거나 피부가 까맣거나 키가 작은 것 정도로 여겨지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길을 가다 마주친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도 부담스럽다.

이 책은 우리가 읽어야 할 “장애인에 관하여”라는 말로는 부족할 듯하다. 장애인 이해하기로도 부족하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장애를 있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각박한 말일까 싶다.

비장애인의 눈높이와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착각, 누구든 어떤 계기로든 장애를 안게 될 수 있다는 점만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늘 생각하자. 이 책 내용이 그저 슬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향해가는 장한 엄마의 고난 극복기는 결코 아니다. 엄마가 사라진 후에 홀로 남겨질 우창이와 같은 많은 사람을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보듬고 함께 갈 수 있을까 하는 화두를 던진다. 지금부터라도 “담론”으로 삼아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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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 - 내 발목을 잡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죄책감과 수치심에 맞서는 심리학
셰리 캠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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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해로운 사람에게서 탈출하기 


가족이란, 혈연과 인연으로 맺어진 공동체다. 당연히 가족 구성원 사이는 인간의 존엄과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당위와 각각 가정이라는 심적 공간의 울타리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은 제각각이다. 가정 내 폭력의 하위 부부싸움, 아동학대, 돌봄 거부, 방임, 기대와 배반, 갈등, 고전적인 생각은 가정 내 문제는 가정에서 국가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왔다. 물론 사회문제로 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국가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가정 내 문제는 가정 안에서라는 인식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그의 가족 구성원 누군가에게 해를 입혀도, 그저 참아내야 하는 게 진정한 가족은 아니다. 수 없이 많은 사례가 TV뉴스를 통해, 시사다큐방송을 통해, 우리 사회를 환기시키려 했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가족 문제의 심연을 들여다 본다. 가족은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은 누구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다.


이 책<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은 지은이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며, 상담했던 이들의 사례이기도 하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내 발목을 잡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죄책감과 수치심을 줄이거나 없애는 마음의 처방이다. 구성은 3부 16장이며, 1부 관계단절은 정당방위에서는 해로운 가족과 단절해야 하는 이유를, 가족에서 선을 그어도 된다. 가족의 빈자를 채우는 것은 내면의 힘이라고 설명한다. 2부 치유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애착과 학대, 수치심, 이유 없는 외로움과 공허함에서 등 심적 갈등 들여다보기를, 3부 선을 넘은 사람들에게서 나를 지키려면 보복 가능성과 주변인과 사회적 상황을 이용한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국, 자립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것들 낱낱이 적고 있다. 책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내 인생은 내 것이라는 말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준다.


자유로움과 수치심, 죄책감이라는 감정들은 


지은이는 가족과 연을 끊으면 자유로움과 함께 자신에 관한 불신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고, 이른바 자유와 수치심의 충돌이다. 이런 감정은 자신이 크게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쉬운데 그 이유는 상대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작동하는 무의미한 수치, 죄책감은 무시해버리라는 영국의 신경과학자 딘 버넷의 말처럼 “우리는 1만 년 전 이유로 창피해하며 고통받는다.”라고 말한다(뜨인돌출판사, 2022). “집단에서 외면, 거절당하는 것은 사형 선고와 같은 일”, 공동체나 집단에 생존을 의지하고 있다면, 사회성이 높을수록 수용과 생존의 확률은 높아지지만, 외면, 거절당하면 호전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을 의미한다. 몸과 마음 모두가 말이다. 그것이 상징적이든, 실질적이든…. 


심리적 학대를 하는 가족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방식 외에 다른 건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에 가족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정서적 학대와 조종,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 경제적 학대, 신체학대, 성적 학대, 중독과 방임, 자신과 상반된 가치를 강요하는 환경, 험담 등)을 감내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되며, 자존감은 물론 창의력과 포용력을 갖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 발전하기 어렵다. 나에게 “해로운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는 길, 관계를 끊는 일이 오히려 가족을 유지하는 길이다. 관계를 끊고 난 후에야 생존이 가능해지니,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람들의 경험담과 다양한 대처법은 새로운 바운더리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준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기에(자중자애의 길을 선택하는 것)….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돌봐도 된다. 화가나면 화내도 된다. 자신을 챙기고 필요한 것을 얻으라는 메시지다. 우리는 가끔 예전에는 가끔씩이었지만, 요즘은 자주 듣는 말 "가족이 아니라 웬수여, 웬수"라는 말의 의미를, 그래도 가족아닌가요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이 책을 읽노라면 분명해질 듯하다. 


이 책에 담긴 많은 사례는 공통된 “해로운 사람의 특성”(정신질환 진단통계편람 5판=DSM-5에서 B 군 성격장애로 분류된 여러 특성)을 보여준다. 나르시시스트와 무척 닮았다. 해로운 사람은 여러 특성이 겹치는 예도 있다. 즉, 가족, 그 구성원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부속물이야,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나를 중심으로, 이를 구성원들로부터 확인받고, 인정받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밖으로는 매우 과장된 행동과 외모에도 지나치게 신경 쓰며,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지 않으면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밖에서는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순간 돌변, 가족 구성원은 모두 부하처럼 다루는 사람 등 


가족이 무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가, 해로우면서 무고한 사람은 없다는 지은이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가족관계,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족이 나에게 해로운 사람이라면, 관계를 끊어도 된다고. 자립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라고, 그 과정에서 겪는 불안과 죄책감은 모두 무시해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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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만난 동양철학 - 마음 근육을 키우는 하루 10분 인문 독서! 카페에서 만난
리소정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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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만난 동양철학

동양, 정확하게는 중국 고전의 정수를 숏폼으로 10분 이내에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압축해서 바쁜 현대인에게 전한다. 과연, 얼마나 느끼고 깨달을 수 있을까, 하기야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고, 또 깨칠 수도 있으나, 다만, 풀어서 설명해내는 가운데 생기는 생각의 여백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이 현재로서는 약점이지 않을까 싶다.

지은이 리소정은 어쨌든 요즘 젊은이들의 읽기 특성에 맞춰, 짧고 굵게 중국 고전의 정수를 압축해서 전한다. 유예(猶豫)와 낭패(狼狽)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를 이르는 말인데, 둘 다 동물에서 유래한 말이다. 원숭이와 코끼리, 낭패는 앞다리와 없는 것과 뒷다리가 없는 것이니. 한자는 “표의”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 학문도 인생도 자기 성찰을 통해 머뭇거림 없이, 이 책의 1강은 동양 고전에서 비중이 높은 리더십, 그 자질과 바탕을, 2강은 세상을 대하는 리더의 자세, 3강 수련과 성찰을 통한 자기계발, 책의 흐름은 동양적 사고, 으뜸은 효와 윤리, 노력과 발전, 자기 수양과 성찰, 학문과 독서 등이 고전의 이미지다. 철학과 사상을 굳이 구별할 실익은 없지만, 이 책의 자매 편인 <카페에서 만난 서양사상>은 왜 사상이라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은이가 철학과 사상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했다는 말이 없기에, 철학은 답이 없지만, 사상은 답이 있다고 하면 이분법적 사고일터, 적어도 철학이 지향이면 사상은 목표 정도라고 해두자.

리더의 자질과 바탕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한다는 말, 여기서 몸과 마음을 닦고 바로 세우는 첫걸음은 ‘효’에서 시작하며, 여기에 투철한 ‘윤리’의식이 더해질 때, 비로소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를 아우를 수 있는 지도자의 품성이 완성된다. 품성은 당대의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리더의 정신적 자질, 곧 바탕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구한말, 단발령을 거부하는 조선의 양반들이 입에 올리는 말이다.

윤리 “인”, 천하의 도리

동양적 사고의 상징이 “윤리”다. 천지인의 천자도 땅도 사람도 윤리라는 틀, 즉 윤리라는 원리에 또는 질서에 따라 돌아간다. 만약 이게 엇나가면 천자를 향하던 천명은 다른 이에게로 간다(역성 혁명론), 사람에게는 강상죄(綱常罪), 천하의 도리를 어긴 사람이란 뜻이니, 국가지도자건 무리의 수장이든 집안의 가장이든 “도리”를 어길 수 없음이다. 윤리의 바탕 가운데 인의예지가 즉 네 가지 싹수 혹은 싹아지, 싸가지란 말로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욕을 쓰이는 “싸가지”없다는 표현이다.

화기와 의기

“절개와 의리를 표방하는 사람은 절개와 의리 때문에 헐뜯음을 당하고, 도덕과 학문을 표방하는 사람은 도덕과 학문 때문에 원망을 불러들인다.” 절개와 의리를 주장하다가 그와 반대되는 언행을 하면 비난을 받는다. 도덕과 학문으로 고상함을 무기로 삼던 사람이 그 반대로 행동하면 도덕적 상처와 불신을 당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자주 보던 모습들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악한 일에도 가까이 가지 않고 좋은 이름에도 가까이 서지 않는다. 오직 혼연한 화기(和氣)만이 곧 몸을 보전하는 보배라는 홍자성의 <채근담>에 실린 문장은, 몸을 사리는 법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온화한 마음과 겸손”이다.

그렇다면, 의기(義氣)는 “인(仁)”이다. <논어>의 위령공 편에 실린 문장 “지사와 어진 사람은 생(生)을 구하려고 인(仁)을 해치지 않고, 자기 몸을 죽여서 인(仁)을 완성한다.” 안중근, 윤봉길 등의 의사(義士)를 왜 의사라 부르는가?,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한목숨을 기꺼이 받친 사람들이기에 “살신성인”의 지사(志士)“ 곧 의사인 것이다. 실제 이치를 얻는 것은 실제로 보고 체득한 때문이다. 입으로 나불거리는 애국지사가 넘쳐나는 세상에 자신의 귀한 목숨(생)도 원하고 의(義)도 원하는 것인데, 둘 다 얻을 수 없다면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말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에서도 엿보인다. 법을 따르지 않으면 어렵게 이루어져 가는 법 앞의 평등은 무시될 것이라는 법학자들의 견해도 있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철학적 접근을 해보면, 그는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도 중요하다.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다는 의미와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의 특징은 취사 선택, ”너라면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서슬 파랗던 독재 시대 같았으면, 젊은이들 망쳐놓을 못된 책일 수도 있겠다. 소크라테스가 이상한 논리로 젊은이들을 버려놓았다는 이유로 독배를 받게 되듯, 마키아벨리의 책을 악마의 서라 하여 금서라 했던 중세의 가톨릭교회의 저지선을 뚫고, 인구에 회자하듯, 천하의 도리는 어떤 의미에서건 생명력을 잃지 않는 법….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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