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철학 - 삶의 순간에서 당신을 지탱해 줄 열세 가지 철학
양현길 지음 / 진성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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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홀로서기를 지탱해 줄 열 세 가지 철학


지은이는 외로움을 사람과 소통해야 해소되는 감정이 아니라고, 남들에게 의존하여 외로움을 달래기 더 외로워지는 것이라고, 외로움은 의존성과 연결된다. 내가 위로와 위안을 얻는 방법은 의존을 떨쳐내는 것이다. 주변과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나만의 공간에서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내가 나인 것을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이 책은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다른 사람을 통해 비친 내가 아닌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물 흐르듯 사는 삶,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삶. 홀로서기 나 홀로도 외롭지 않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동서양의 현자들에게 듣는다. 책 구성은 4장이며, 위의 삶에 대하여 각 장에 실었다. 1장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한 삶은 어떤 것인지를 몽테뉴, 쇼펜하우어, 랠프 월도 에머슨 세 사람에게 듣는다. 2장 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하여는 카뮈, 빅터 프랭클, 헨리 데이비드 소로 세 사람에게, 물 흘러가듯 사는 삶에 대해서는 장자와 노자, 에픽테토스에게,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삶에 대하여는 세네카, 사르트르, 니체, 아들러 등 네 사람의 생각을 이렇게 13명의 현자는 “삶”을 어떻게 봤는지, 이들에게 삶은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듣는다.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한 삶


몽테뉴는 자기 자신이 먼저라 했다. 아무도 자기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충분하게 느끼는 것은 매우 숭고한 일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은 충분히 살았다. 이제 남아 있는 인생만큼은 자신을 위해 살아가자고. (몽테뉴의 수상록에 실린 문장이다). 우리는 왜 혼자인 인생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서는 것이 진정 성숙한 어른의 삶이기에.


인간관계는 고통을 낳는다. 헤어짐에는 고통이 따른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같이 왔다 갔다 한다. 태엽에 감겨 아무 생각 없이 돌아가는 시곗바늘과 같다(쇼펜하우어). 고독이라는 ‘모닥불’과 살아가라. 욕망도 집착은 공허한 자기 내면을 찾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찾는 게 나아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 자신이 참된 자아로서 살아가야 한다.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히 살기 위해, 무리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닥불’ 앞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라고 한다. 


잘 정리된 인생의 정답을 가진 한국의 사람들에게, 랠프 월도 에머슨은 말한다. 답은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한국 사회에서 정답은 ‘의사’, ‘대기업’, 안정된 직장과 함께 일정 수준의 급여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면의 소리, 흘러나오는 생각들을 주목하지 않고 그냥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자꾸 밖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당신 인생은 너의 것이고, 나의 것이다. 삶의 주인공이 빠져버린 인생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자기 자신을 믿고 신뢰하라고, 이는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말한다. 귀가 따가울 정도 많이 들은 말이지만, 정작 그 의미를 모른다. 나 자신의 무엇을 믿으란 말인가, 내 무엇을 신뢰하라는 말인가,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역사를 열어갔던 사람들은 책과 전통을 무시했고 남들의 말을 모방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을. 이런 맥락의 말은 미셸 푸코가 자기 배려와 자기 돌봄이란 표현으로, 노자가 자중자애라는 말로,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하지만, 나를 찾는 게 힘든 사람들은 여전히 밖에서 나를 찾는다. 다른 사람들의 눈과 말을 통해서 말이다. 


당신 안에 숨어있는 치유능력을 깨우라 당신 안에 우주가 있다고 말한 박상미<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특별한 서재, 2024),  이렇게 온전한 나 자신이 되기를 하는 동안에 내 삶의 의미는 자연스레 깨우치게 된다. 아우슈비츠의 죽음의 무덤에서 살아남은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은 오늘 하루 내 삶을 살아가야 할 의미를 늘 생각하라고, 그에게는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처형장으로 끌려갈지도 모를 상황이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순간, 죽는 것임을 그는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실존에 관해 철저하게 묻는 것이다. 


대체로 현자들의 하는 말은 “나”다. 외부에서 만들어진 “나”가 아닌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두려워 마라. 어차피 인생은 내 것이니, 누가 평가하지도 않고, 누구의 평가를 들을 필요도 없이 오로지 ‘나“를 찾고, 찾은 나에게 물어라.라는 끊임없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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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
강이엘 지음 / 렛츠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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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변해야 한다는 지은이, 남편이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기적, 너무 이기적이었을까, 기질이 다른 금성에서 온 여자와 화성에서 온 남자와 함께 사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인가, 도대체 가정이란 뭔가, 최근에 가족을 버린다. 가정이 없었으면 좋겠다. 시집의 “시”자만 들어도 울렁증이 도지는 사람들, 명절 때면 연내에 쌓였던 감정이 솟구치고, 폭발 일보 직전까지, 이들에게 가정은 뭔가, 뉴스를 타고 자주 들려오는 아동학대, 아이들 두들겨 패 죽인 엄마, 아동수당을 받아 어린아이를 집에 내버려 두고 놀러 다니는 부모들, 사회적 공분을 사는 일이 어디 한 두 가지랴. 이런 가정이라면 차라리.


지은이는 그래도, 가정은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아이들이 있어서일까, 20대건 30대건 연애와 사랑에 불붙은 정열, 하지만 결혼은 현실, 아내의 뒤엉켜진 머리, 며칠 동안 혼자만 하는 육아에 시달려 잠이 부족한 아내 머리에서 나는 냄새도 삶의 향기로움으로 느껴진다면, 참으로 이상적이지. 일터에서 상사에게 까였는지, 어두운 인상으로 퇴근하는 남편, 일찍 왔네. 된장찌개 끓였어, 자기 좋아하는 채소 가득 넣고. 어느새 활짝 펴진 얼굴 미소, 가정은 아마도 이런 건가. 


지은이의 신앙고백처럼 이어지는 잔잔한 글, 범상, 혹은 심상치 않은 출생 배경과 성장기, 그리고 결혼 초년시절. 바람피우는 남편, 며느리를 못 마땅해하는 시어머니, 종교적 갈등(이단이라 생각되는 예전 신앙촌, 전도관을 믿으라는 시가 쪽과 이에 따르지 못하겠다는 며느리) 이제는 독립해서 사회경제 생활을 하는 아들 쌍둥이, 수십 년을 살아도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어정쩡하게 거리를 두고 사는 남편, 한 지붕 아래 여러 가족이 사는 셈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경험담을 술회하면서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하던 이유야 어쨌든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데, 이를 동의, 부동의, 이의제기하는 사람은 얼마든 있다. 다만, 지은이 이야기를 통해 그가 이야기하는 “가정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경청하고, 공감하는 대목이 있으면 그렇다고 하면 된다. 


가정이란 무엇인가?


이디스 쉐퍼의<가정이란 무엇인가?>(생명의말씀사, 1995), 종교적 믿음을 바탕에 깔고 쓴 이 책에서는 11가지로 "가정"을 설명하는데 꽤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첫재로 가정은 변화하는 삶의 모빌이요, 다음으로 생태학적으로 균형잡힌 환경, 창조력의 산실,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중심지, 폭풍 속 은신처, 진리의 영원한 릴레이, 중요한 하나의 경제단위, 교육의 조정 기관, 추억의 박물관, 돌쩌귀와 자물쇠가 달린 문, 마지막 열 한번째로 혼합된 균형 따위로 정의될 수 있다는 말인데, 이 책 지은이는 가정을 이렇게 관념한 게 아닌가 싶다. 내 가정은 어디에 방점이 찍혀있나를 생각해보는 것도 유의미하겠다. 


하루에도 수십 쌍의 부부가 이혼 법정으로 향하는 한국 사회, 물론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혼인신고를 하는 수만큼 이혼신고를 하는 모양새, 20만 쌍의 혼인 중에 10만 쌍이 이혼하는 시대라고 하니까, 절반이 혼인했다가 갈라섰다는 말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 흔한 성격 차이부터, 배우자의 유기, 질병에 걸리거나, 교도소에 갇히거나 아무튼 다양한 이유로 혼인을 더 지속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진짜로 많아진 것인지, 이런 요인을 안고 있었던 잠재적 이혼대상 군이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가 사회환경의 변화로 표면으로 떠오르게 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무튼 참지 않겠다. 나도 지금부터라도 내 인생을 찾겠다는 말은 자주 들리게 됐지만 말이다. 


지은이는 가정은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그 연유는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참고 견뎌야 하는 인간적인 갈등을 종교적 믿음을 통해 분노를 삭이고, 또 관계 설정에서 오는 미묘한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일련의 자기와의 싸움 이야기를 담담하게 글로 이야기한다. 그에게는 종교적 믿음이 자기 배려였고, 자기돌봄인 듯 보인다. 


지은이는 결코 이혼하는 가정을 향해 누구에게 책임을 묻거나, 양쪽 배우자에게 모두 참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이런 인생을 살아온 사람도 있답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이유를 묻지 않고, “가정은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지킬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확신에 찬 이 말을 전하기 위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이렇게 책으로 엮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혹시 "이혼할 생각이 드는 가? 그렇다면 이 책 어때, 읽고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테니...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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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실존의 미학, 내 삶의 예술가 되기 - 천경의 미셸 푸코 읽기
천경 지음 / 북코리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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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실존의 미학


지은이 천경의 공부론에 눈길이 간다. 그가 공부에 매료된 이유에 공감하면서 책날개에 실려있는 문장을 곱씹어본다. 공부는 습관, 인격, 운명을, 끝내는 사람을 바꿔버리기까지, 어느 사상에 깊이 빠졌다는 말과는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아무튼 공부라는 것은 학문이든 기술이든 익힘을 말하는 게 보통 우리의 이해다.


지은이는 우선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나를 어떤 존재로 만들어 갈 것인지, 세상의 잣대로 아닌 나만의 잣대로 재어 보라는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3부 체재이며 1부에서는 푸코 철학의 총론 ‘통치성과 주체성’을 주제로 실존의 미학, 내 삶의 예술가 되기, 삶을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돌봄이 필요함을 피력한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결단을…. 통치성과 자기 배려, 근대 영혼의 탄생을 유명한 감옥 파놉티콘을 들어서, 통치를 당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권력과 주체의 윤리학을 논하고 있다. 2부에서는 실존의 미학<주체의 해석학> 읽기를, 자기 배려와 인식을 비롯하여 내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인간의 죽음 이후, 공부한다는 것, 꼰대들과 전향들과 개종을, 3부는 주체화의 기술들: 자기 돌봄 실천의 방법들, 분노 다스리기, 지금 당장 행복해지기 등을 언급한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삶의 주인공이다. 우주에는 인간만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의 무게에 인간이 새보다 덜 무겁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 모든 세상이 인간 중심이라는 즉, 세상의 중심이라는 오만과 편견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지은이는 서양 철학자의 말고 동양사상, 그리고 불가의 말씀 등으로 겸허한 인간, 누가 누구를 통치한다는 생각, 이미 학습화된 무기력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질서를 당연한 법칙이나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일은 노예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표현은 달리하지만, 내 삶의 주체는 ‘나’이며, 내 삶의 주인공 또한 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산다. ‘남을 위해서 산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누군가 말한다. 나 또한 이런 말을 듣고 산다. 남을 위해서 사는 것 자체 혹은 그렇게 보이는 것이 실은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라면, 남을 위해 사는 데 가치를 두는 것은 내 삶의 가치에서 맨 위에 놓는 층위 혹은 위계상 맨 꼭대기에 있다는 말이다. 이 책 또한 그런 삶을 지지하고 권장하는 듯하다. 


내 삶을 예술로 만들기


내 삶을 예술로 만들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대저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술, 어학사전에는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이라고, 또, 명사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도 한다. 내 삶이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고, 여기에 이르는 주체는 바로 ‘나’이며 내가 주인공이다. 결국, 내 삶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운명 지워지고, 결정된 게 아니라 내가 내 삶이라는 도화지에 백지에 어떻게 그리는가에 달려있음을 깨달으란 말이다. 실존하는 나, 허상 됨이 없는 나, 대상화된 나, 세상의 어느 한 틀을 구성하는 나사가 아니라 나는 나일 뿐이다. 몰개성을 요구하는 사회, 통치와 지배의 대상에서 벗어나 통치, 지배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나. 바로 이것이 내 삶을 예술로 만들기의 알맹이다. 


오늘 나에게 묻자. “잘 살고 계시는가?”라고


노년?, 늙은 나를 상상할 수 없고, 그 흉함을 거부하는 안티에이징은 나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늙는다는 것이 네거티브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헬레니즘, 로마 시대에는 노년은 영예로운 것이었다. 신체의 노쇠함과 지혜, 노년은 조언해주는 자이며 현자인 셈이다. 하지만 요즘은 틀탁, 꼰대라는 부정적 인식이다. 얼른 노년이 왔으면 하던 바람은 이제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 살아있다는 게 민폐라는 식으로 변했다. 완전히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추세, 경향이다. 자중자애하자. 자기 배려와 자기 돌봄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돌 속에 갇힌 나를 꺼내기 위해 망치와 정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를 깨는데 정을 대고 망치로 내리치는 아픔의 강도에 비례하여 돌 속에 갇힌 나는 구출되거나 해방되는 확률, 시간이 짧아진다. 아픔만큼 성숙한다는 의미이기도. 돌이란 고정관념을 깨는 데 고통이 따름을 이유로 돌 속이 편안함을 깨고 싶지 않다고, 돌 속이란 본디 고통스러운 것인데, 이미 역치 작용으로 익숙해졌다. 학습된 무기력으로 이런들 저런들 나아질 전망이 없음이라고 자기 스스로 정해버리면 그것이 바로 돌 속에 갇히는 것이다. 


푸코의 철학을 지은이만의 말로 풀어내는 이 책, 천경의 푸코읽기는 푸코의 책에서 얻은 느낌과 이해보다는 이 책을 통해서 여러모로 혹은 입체적으로 푸코의 철학, 즉 실존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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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 유토피아 - 인공자궁과 출생의 미래에 대한 사회적·정치적·윤리적·법적 질문
클레어 혼 지음, 안은미 옮김, 김선혜 감수 / 생각이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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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지은이 클레어 혼은 <재생산의 유토피아>는 인공자궁으로 출산의 고통을 줄일 수 있을까?, 인공자궁과 출생의 미래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법적 질문을 세상에 던진다.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성과 남성, 그리고 여성 안에서도 임신에 관한 생각이 다 같지는 않으니, 자못 흥미로운 주제일 수밖에, 저출생초고령화사회에서는 꽤 큰 이슈이며, 이에 관한 찬반론 또한 거대한 담론이 될 것이다. 


지은이는 체외에서 어디까지 배아를 기를 것인지는 이제 열린 질문이 됐다고 말한다. 2021.5. 이스라엘 바이츠만 연구소의 연구자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7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인공자궁에서 길러낸 쥐배아, 모든 형태를 다 갖춘 태아 상태로 길러내는 데 성공했다고. 실험실에서 동물 배아를 태아 상태로 길러낸 것이다. 과학기술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이 책은 6장 구성이며 1장에서 온실, 화초, 인공자궁을, 2장에서 인공 위탁모, 3장 멋진 신세계로 향햐는 체외발생, 4장. 어머니 기계, 5장. 임신중지의 해법, 6장 생물학적 폭정이란 소제목으로 재생산은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담고 있다. 


인공자궁이라는 발상


성별과 무관하게 누구나 만삭까지 태아를 임신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 꽤 오래전으로 기억하는 영화 “트윈스” 서로 생김새가 너무나 다른 이란성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 남자가 임신한다면 도대체 어떤 기제로 임신을 하게 된 걸까, 자궁도 없는데, 아이는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인가, 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이 책은 인공자궁이 등장하는 사회적 맥락만 혁신적일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상적인 세계라면 부분 인공자궁(이른바 인큐베이터, 미숙아, 조속아 등의 성장기간 동안 생명을 보호하는 장치)은 임신한 사람들 모두가 접근할 수 있고, 이들과 함께 너무 일찍 태어난 아기의 건강과 생명을 구하는 수단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젠더와 무관하게 모두가 자신의 선택에 따라 가족을 구성하는 도구로 체외 발생 기술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체외발생의 담론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명유지 장치(인공자궁)에서 길러낸 아이들은 아이의 모습이 아닌 성인의 모습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왜 체외발생을 다루게 됐는지, 임신과 출산에 따른 산모의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라는 단순한 그 무엇을 넘어 영화 “데몰리션맨”처럼, 성접촉을 비위생적으로 심지어는 야만적이라는 인식, 하지만 현실로 이런 기술이 불러오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들(동전의 양면처럼), 기존의 불평등이 악화되고, 인권의 진보가 저해될 위험에 처하게 됐는지를 톺아본다. 아울러 부정적인 평가의 대척에는 인공자궁이 인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긍정론...


인공자궁과 체외발생에 관한 생각들


임신에서 태아의 출산까지 “재상산” 노동의 젠더 불평등을 바로 잡기 위한 인공자궁을 활용할 수 있다는 발상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인공자궁은 성별에 관계없이 부모에게 허락되는 법정유급휴가 휴직의 대체재일 수 없고,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이거나, 보편적인 무상 교육의 대체재일수도 없다. 임신과 돌봄의 무게를 홀로 짊어진 한부모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임신의 신체적, 정서적 위험과 돌봄 노동의 평가절하가 여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쳤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임신을 탈젠더화하는 데에는 임신을 자동화하는 수단이 필요치 않다. 성별과 무관하게 임신하고 부모가 되는 일을 가로막는 의학적, 법적, 사회적 관행들을 실질적으로 무효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다산장려에서 산아제한으로 다시 출산장려, 출생률을 어떻게 높여 사회를 유지시킬 것인가하는 과제, 이제는 국운이 걸린 인구절벽론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체외발생과 인공자궁에 관한 논의, 인공자궁에서 태어난 아이가 성장해서 인공자궁을 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체외발생이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기술이 되고 재생산에 관련된 자신의 삶을 통제하게 해주는 또 다른 도구가 되려면 임신이 문제가 되지 않는 곳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결국 임신과 출산, 임신에 따른 신체적 변화와 고통, 현실적으로 임신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할 사회적 차별, 이와는 반대로 거시적으로는 인구절벽의 회피, 탈출책으로 떠오르는 출생률 높이기, 


공동육아의 논의도 태아출생 이후의 이야기다. 재생산을 노동력의 재생산으로 등치시키는 탈인구절벽론의 논리 역시도 찬성할 수 없다. 재생산 정의가 실현된 세상에서는 임신한 사람들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대신 지지하나는데 인공자궁이 이용될 수 있을까? 여전히 꼬꼬무다. 


재생산의 유토피아는 우리 사회의 제도와 규범, 문화와 가치 등 전방위적으로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주제다. 명확히 옳고 그름도 없다. 이 책에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미국의 재판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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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선
이병순 지음 / 문이당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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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선 이후에 대박, “태안선”


지은이 이병순의 소설<태안선>은 해양 고고학이란 생소하고 낯선 분야를 이야기로 풀어낸다. 

잠수부와 해양 고고학자는 한 끗발 차이라며, 잠수하는 놈이 물에 들어가서 물건만 건져 올리면 되지, 그것이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어쨌든 나는 자맥질해서 입에 풀칠하고 사는 거지, SSU, UDT 출신의 훈련된 잠수사들, 산업잠수사라고 부르기도,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무너졌을 때,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잠수사들.


이 소설 플롯은 등장인물들의 과거 속 기억을 끄집어내어 바다로 올 수밖에 없는 사연들을 엮는다. 자칫, 태안선의 보물 발굴 보고서 수준의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주인공인 난 3대가 바다에 엮여있고, 그의 엄마는 늘 부적을 지니고 다니라고 한다. 70년대 젊은 가장들을 라스팔마스의 원양어선에 보냈던 시절, 그리고 해양 고고학이라는 세계로 뛰어들게 된 나, 여자친구는 폼 좋게 보이는 육상고고학을 두고 왜 사서 고생이냐고, 잠수하다 사고 나면 어쩔 거냐고, 그리고 점차 멀어진다. 캠프는 11명이 탈 수 있는 씨뮤즈호고 실명이다. 작가는 실제 일어났던 발굴 보고서의 일정을 따라, 군데군데,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끄집어들인다. 


한국의 수중고고학은 육상고고학과 비교하면, 한참 늦다. 1975년 8월 전남 신안군 증도 앞바다에서 도자기 6점을 발견돼, 그 존재가 드러낸 신안선은 9년여 동안 11차례에 걸쳐 배와 함께 실려있던 각종 문화재가 발굴됐는데, 물품은 2만 4천여 점, 그리고 동전은 무려 28톤 상당의 엄청난 양이었다. 목포에 해양유물전시관이 들어서고, 이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로 커졌다. 24년 5월부터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청으로 해양문화재연구소를 해양 유산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주꾸미가 알을 품으려고 청자를 기대어


이 이야기의 시작은 2007년 충남 태안군 근흥면 대섬 앞바다에서 주꾸미잡이 조업을 하던 한 어부의 제보로 ‘보물선’ 태안선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2007년, 2008년 수중발굴이 이루어진 태안 앞바다는 예로부터 경상, 전라, 충청 일대 조운선의 주요 통과해역이며 역사적으로도 중국, 일본 등의 사신선과 무역선이 개경에 도착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야 하는 항로였다. 

태안 앞바다는 예로부터 ‘난행량(難行梁)’ 혹은 ‘안흥량(安興梁)’이라고 불렸던 우리나라 수로 상의 4대 험조처 중의 하나로, 연중 지속되는 안개, 복잡한 해저지형, 급속한 조류의 흐름, 수중 암초 등의 원인으로 항해 선박의 재난 사고가 빈번하였던 곳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태안 앞바다는 수중의 박물관이라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많은 양의 수중문화재가 잠들어 있는 수중문화재의 ‘보고(寶庫)’지역이다. 따라서 이번 태안 대섬 해저 유물 발굴은 향후 전개될 해양 유물의 연구와 수중고고학 발전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한 획을 긋는 작업이었다. 2008년 태안 대섬 발굴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동안 15차례의 크고 작은 발굴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태안 대 섬 수중유적의 발굴은 그 규모나 출토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신안선 발굴에 버금가는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국내는 물론 여러 나라 학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태안선 출토유물을 종류별로 보면 청자류 2만 여점, 목간 34점, 도기류 11점, 철제 솥 2점, 선체 6편, 선체 부속구 3점, 인골, 도자기 포장재, 기타 선상 생활용기 등 23,000여 점으로 고려 시대 선박사, 도자기 역사, 생활사를 연구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태안선의 발굴 보고서의 내용이다. 여기에 적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고고학을 하든 뭘 하든 과학이 제아무리 발달하든 어쩌든, 바다에는 바다의 질서와 의식이 있는 법, 물속에 들어가면 육상에서 늘 짓궂던 말투와 행동과는 달리 참으로 진심인 제 일을 잘하는 아름다운 사람이자 팀원들에게 든든한 기둥이 돼주는 해병대 UDT 출신의 임대원, 역사건 뭐든 두루 꿰고 있는 이 박사, 목포가 고향인 늘 고민에 쌓인 사람처럼 보이는 팀장, 그리고 나, 나에게 잠수를 가르쳐주었던 SSU 출신의 신대원 그는 중사로 군에서 나와 민간 잠수사로, 사연이 많다. 


우리 앞에 놓인 태안의 험악하고 변덕스러운 바다에서 건져 올린 9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사자 향로를 분명 물속에서 보고, 사진까지 찍어 놓았는데, 사라지고, 얼마 후 배의 크기를 짐작게 하는 닻돌이 보이는데, “심 봤다”다. 


등장인물들은 팀으로 묶이며, 서로서로 지켜주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속에서 만나기만 하면 서로 잘났다고 으르릉거리는 관계가 있고, 팀장의 신뢰와 인정을 받고 싶은데 제대로 안 되는 사람, 좋아하는 일 때문에 가정을 꾸리기를 뒤로 미루는 사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군상들이다. 관공서라는 모습이나 "기자학"을 거침없는 촌철로 예나 지금이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의 본능을 재미나게 드러내준다. 


인간의 조건이 뭐냐고 묻는다


세상 보이는 것 뒤에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력이 있다고, 겉만 번드레하게 남의 피와 땀으로 얻은 열매를 제 것인 양 죄송스러운 마음 없이 먹어버리는 사람, 딱 이렇게 해야 이 사회에서는 "출세"라는 걸 한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열정과 희망으로 제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씩 대딛는 사람들, 작가는 우리에게 세상은 아직은 살만하다고, 자칮 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 와하는 탄성을 연발하는 이들이여, 당신 눈 앞에 천 년의 역사를 거쳐 온 나를 볼 자격이 있냐고 묻는 유산들... 


태안선이란 주제로 새로운 해양 고고학이란 판에도 사람은 살고 있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잠수 수당 5만 원, 예산이 없단다. 겨우겨우…. 인간은 늘 시험에 빠져든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이참에 팔자 한 번 고쳐보자는데 하는 유혹의 힘은 강렬하다. 하지만, 어째겠는가, 천성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을, 그래서 세상은 돌아가는 듯하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해양 유산을 보여준 작가, 태안선과 30여 년 동안 건져 올린 배들, 건져 올릴 때마다 누군가는 아픔도 함께 건져 올렸을 것이다. 세상에 화려한 것 뒤에는 어두운 게 있어 더 화려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메시지와 함께….태안선의발굴현장의 아픔과 희망,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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