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리뷰오브북스 14호
한승훈 외 지음,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부 엮음 / 서울리뷰오브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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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북 “믿음, 주술, 애니미즘”과 “고전의 강”


창간 준비호에서 시작, 열다섯 번째 발행된 “서울 리뷰 오브 북스”(2024.여름호)의 특집 리뷰 “믿음, 주술, 애니미즘”(6편의 리뷰)과 새롭게 들어선 ‘고전의 강’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고전으로서 꼭 읽어보고 생각해봐야 할 책을 다루는 코너, 그리고 이마고 문디와. 북&메이커에 실린 서평 4편(이승철 “사소한 것들의 힘”<경계를 넘는 공동체>, 김지훈의 영화이론과 영화, 물질적 유령, 홍제환 북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박진호의 한 언어학자의 삶을 통해 본 남북분단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고전의 강 “도덕은 왜 유전자와 싸우나” 2003년에 번역된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등이 실려있다. 


2019년 영화<곡성>과 2024년 영화<파묘>는 한국의 무당과 일본 음양사의 대척 혹은 대립 구도다. 이들 영화의 배경은 일본의 전근대 악이 자리한다. 전자에서는 우리 땅 지킴이(산신령), 후자는 무당과 지관이 등장한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장수(정령이다. 우리 것이 아닌 남의 땅의 것이다)의 혼령과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맥을 끊으려는 쇠말뚝, 악질 친일파의 후손들은 그냥 부자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살지만, 묫자리 수가 좋지 않아 죽음의 그림자가 일가를 따라다닌다는 데서. 이 영화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글쎄다, 설정 자체가 한일관계의 해묵은 것들이 아직도 한반도 곳곳에 정령으로 남아있는 건 아닌지,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온 것인지, 


특집 리뷰는 믿음, 왜 이상한 것을 믿는지, 무당, 여성, 신령들,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 최창조의 한국의 풍수 사상과 인간 공양을 했던 상나라 정벌의 고대사, 애니미즘의 세계 등이 실려있다. 어느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종합선물상자처럼 여겨지는 서리북, 지난 봄호에서는 특집 리뷰로 “민주주의와 선거” 지역당 건설의 문제가 흥미로웠지만, 이번 호는 모든 리뷰가 다 흥미롭다.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새로 나온 책들까지 모두 훑어보고 책을 주문하고. 아마도 이번 호는 서리북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듯하다. 적어도 나에게서는 말이다. 


무당, 풍수, 미신


한승훈은 “지적대상으로서의 기괴한 믿음”이란 제목으로 이창익의 <미신의 연대기>를 리뷰했다. 음과 양, 과학과 미신, 바로 그사이에 존재하는 무당, 이 세상과 저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잇는 특수한 능력자들이다. 파묘의 지관은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에게 풍수는 종교이자 과학”이라고, 모르는 것은 신비하다. 묘하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뭔가 절대적인 힘이 작용하는 것인지조차 모른다. 신비한 현상, 물론 여기에는 사람들의 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기꾼들이 끼어들 여지가 충분하다.


또 보자, 오성희가 쓴 “여성 인류학자들이 만난 무속의 현장들”은 로렐 켄달<무당, 여성, 신령들>과 김성례의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을 통해서, 전자는 경기 북부에서 후자는 제주도에서 4.3을 통해 여성들의 삶이 중심이 되는 무속 민족지, 켄달은 전통가옥,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는 1970년대의 경기 북부를, 


김성례는 1980년 중반 제주를, 굿판은 어떻게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는 장으로 기능을 할 수 있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굿판에서는 이들이 돌아와 증언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무당의 입을 통해서, 영화<혈의 누>에서처럼, 억울한 죽음을 사람들 앞에서 밝힌다. 나를 죽인 건 누구라고. 무속은 무교가 되고, 일제강점기 때, 민간신앙을 낮춰 부르던 무속을 무교의 반열로 되돌려 놓는 작업 또한 필요해 보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다양한 종교를 믿는 가운데서도 무교의 실천이 그들의 삶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김성례의 제주 무교는 그곳 여성의 자아정체성을 구성하는 언술행위로 봤다. 4.3사건으로 희생된 원혼들의 비극적 이야기를 공표하는 장으로 굿판이 기능하며, 이들의 죽음과 관련된 역사를 회복하고 이에 대한 민중 기억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그것이 무속이든, 미신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시원스레 토해내는 정화의 장이 굿판이다. 


최창조의 풍수, 도선국사의 자생풍수, “어머니로서의 땅에 대한 사랑”을 핵심으로, 중국의 이론 풍수, 즉 죽은 자의 묫자리를 잘 써야 후대에 복이 닥친다는 믿음(아마도 조선왕 중에서 세종의 묘터가 그러했던 것으로 전해져, 문종이 죽고, 그의 장자인 단종이, 세조의 장자가 죽어 나가는 비극의 전승), 살아있는 대원군 이하응은 아버지 남연군의 묫자리를 명당이라 칭하던 그 자리에 슬그머니 묻었다. 이러한 연유로 운이 틔어 그의 둘째 아들이 고종이 됐다는 말이다. 최창조는 지리학자이면서 자생풍수를 연구하는 외로운 연구자였다. 죽은 사람을 위한 풍수가 차가운 이론이었다면 그의 풍수지리학은 어머니로서의 땅에 대한 사랑, 즉,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통풍이 좋고 양기가 서린 땅을 즉, 양택을 찾는 것이다. 


대학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와 풍수 연구자로서 삶, 풍수를 떠나 그의 연구자로서 열정과 책임 굳은 신념이 오히려 존경스러울 뿐이다. 풍수와 현대 지리학 사이에서 풍수를 현대 학문으로 자리매김하려 했던 그의 이중전략, 죽은 선조의 유해와 후손 사이의 감응에 관한 속신에 따라 오로지 후대의 영달만을 노렸던 음택 대신에 도읍지, 마을, 주택의 입지를 고르는 양기, 양택 풍수를 “학”으로, 


특집 리뷰 외에도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샹바오<경계를 넘는 공동체>(글항아리,2024)는 베이징 저장촌 생활사다. 900여 쪽의 방대한 책, 베이징의 호적법을 넘어서 저장성 원저우 출신들이 그들의 집단 주거, 생산, 사업, 소비공간인 “저장촌”을 만들었는데, 이들이 어떻게 탈법과 불법의 외줄 타기를 하면서 중국사회의 개방, 개혁의 물결 속에서 베이징에 10만 명이 활동하는 그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었는가를 추적하면서 네트워크와 관계에 주목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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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의 역사 - 확장판, 쿠데타·혁명에 의한 ‘정치상 대변동’
최경식 지음 / 갈라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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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政變)의 역사


지은이 최경식의 역사시리즈 중 하나인 이 책<정변의 역사>은 고구려 연개소문을 비롯하여 12.12까지 천 사백 년이 넘는 역사 가운데 일어났던 정변을 다룬다. 고려 거란전쟁의 빌미가 됐던 “강조의 정변” 또한 정치상의 대변동에 속한다. 이 책은 4부 체재이며, 1부는 정치상 대변동이라는 주제로 고구려의 연개소문, 고려 태조 왕건, 이자겸, 묘청, 무신정변을 다룬다. 2부에서는 지배체제 변혁이라는 열쇳말로 여말선초의 혼란 정국 속을 들여다본다. 공민왕의 피살, 위화도 회군, 무인정사, 조사의의 난, 계유정난을, 3부는 극적인 상승과 몰락으로 주제로 조선 시대의 종중, 인조반정과 정조의 암살설, 갑신정변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을, 4부에서는 고난과 좌절의 역사 구한말의 명성황후시해사건, 고종암살설, 5.16쿠데타, 10·26사태, 12.12쿠데타를, 부록으로 중국의 당 태종과 청의 영락제, 명나라를 멸망 늪으로 몰아간 이자성의 난 등을 다룬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드라마틱한 인간사 "정변"에 대한 탐구라고 이 책의 목적을 밝힌다. 한 편의 드라마,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바꾼 역사적 순간과 배경을... 권력의 유한성을 흥망성쇠의 파노라마로 그려낸다.


이 책에서는 역사적 전환기를 만들었던 사건 중에서 당대의 국제정치 흐름과 국내 정치세력 간의 갈등, 체제 전복과 유지 등 여러 장면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642년 당의 이세민의 고구려 압박과 화평 파와 자주파(일찍이 한반도 역사에서 늘 되풀이되어온 현상들이다, 고려거란전쟁 그러했고, 몽골과 고려가, 조선과 청이) 연개소문은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양만춘과 함께 당으로부터 고구려를 지켰다. 태조 왕건의 정변, 혁명인가 쿠데타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역사는 항상 승자의 기록이니, 당연히 궁예는 역량이 안되는 그저 그런 하수에 불과했다고 해야 맞겠다. 


지배체제 변혁


정권 주류의 몰락과 비주류의 부상, 공민왕의 개혁, 원나라에서 벗어나 자력갱생의 시도도 예기치 못한 몰락, 그리고 조선의 건국 신호탄 위화도 회군은 뒤에서 볼 이방원의 형제의 난, 세조 반정, 중종반정, 인조반정 그리고 5.16 군사쿠데타, 12.12에 이르기까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누가 키를 잡고 어느 때 결정타를 먹이는가, 일련의 흐름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승패의 갈림길에서…. 여기에 더해지는 왕들의 암살설, 구한말 급진개화를 꿈꾸던 청년들의 삼일천하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은 지는 조선의 외세의존, 아래로부터 반봉건, 반외세를 외쳤지만, 결국 미래의 흐름을 보지 못한 탓에, 아니 열강의 침략 의도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국내 정치의 미숙은 저무는 조선을 더는 어떻게 해볼 도리없이.


지은이는 연개소문의 재평가를, 태조 이성계, 당고조 이연, 그리고 그의 아들들, 한 산에 호랑이 두 마리가 살 수 없듯, 권력 앞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모두 적일 뿐, 세조와 청의 영락제, 전자는 계유정난으로 이미 시위를 벗어난 화살은 과녁을 향해 날아갈 뿐, 후자의 정난의 변 역시, 누구든 왕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을 멸족시켜야만 사는 시대, 청의 이자성의 난과 동학농민혁명 또한 시대의 물길을 바꿔놓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역사의 사이클, 반복


당대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역사가 E.H.카가 말했듯이 역사란 흥망성쇠의 사이클을, 새로운 기운은 전 체제에서 배태된 모순의 확산과 확장이며, 이를 키운 환경은 오만과 자만이었다. 개혁 군주가 구체제의 모순을 척결하고 이상향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였지만. 광해의 자주노선 등거리 외교는 철저한 자국의 역량과 국내 정치 질서를 냉철하게 꿰뚫어 본, 리더의 결단이었다. 극적인 상승과 몰락에서 다룬 중종, 인조, 정조암살과 갑신정변, 동학농민혁명, 연산에 왕좌에서 끌어내린 반란, 중종반정으로 이미 조선은 끝났다. 뒤를 이은 조선, 광해의 자주독립과 강역 수호를 위한 노력은 유교 질서에서 용납될 수 없는 대비의 서궁 유폐 사건이라는 패륜으로, 이를 패륜이라 할 수 있을까, 이미 새로운 권력이 자리한 즈음에, 역사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인조의 어리석음으로 백성을 전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몰고 갔던 사대주의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지배층, 인조의 사례에서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다. 


지은이가 이 책에 소개하는 정변이 다는 아니다.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때 “정변”이라 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권력 교체, 때로는 명분이 있어, 백성들의 암묵적 지지를 받았고, 때로는 식자들의 항거를 불러일으키기도, 역사상 어느 사건도 그 배경에는 깨진 균형과 반목, 갈등, 기득권과 새로운 권력 지향이 한데 어우러져 일어난 것이다. 


이 책에 실린 20건의 사례가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진보와 반동의 일진일퇴 속에서…. 역사는 이런 의미에서 반복된다고 한 것일까, 우리는 오늘을 살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위기 언제 어떤 식으로 닥쳐올지 추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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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PD - 어느 방송국 프리랜서 PD의 고백
정영택 지음 / 하모니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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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PD 어린이프로 뽀뽀뽀에서 케이블TV 야동을 틀어주는 정사원PD, 대한민국 방송의 세계 생태계에서 20년 동안 살아온 프리랜서 PD의 좌충우돌의 청춘 기록, 3D업종이지만 방송국 피디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전하는 말, 직업으로서의 PD란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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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PD - 어느 방송국 프리랜서 PD의 고백
정영택 지음 / 하모니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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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PD


정영택 PD의 에세이집이다. 제목이 낯설지 않다. 아마도 마르크스와 쌍벽을 이룬 사회과학의 거장 막스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직업으로서의 학문>(현대지성, 2024)이라는 제목의 책 때문인지 기시감도 든다. PD라는 직업의 명암을 말하는 것이겠거니, MBC<뽀뽀뽀>를 시작으로 20년 세월을 FD(플로의 디렉터), 조연출을 거쳐 PD(방송감독)로 교양, 예능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보낸 청춘기록이기도 하다. 뭐, 특성상 스타급의 유명 PD가 아니면 그 존재 자체도, 브라운관에 나타나는 탤런트 이름도 다 모르는데, 무대 앞, 뒤의 연출을 다 어떻게.


그렇다 이 이야기는 무대 앞에 있는 일군의 카메라와 각종 방송기자 재들, 이를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PD다. 부제는 “어느 방송국 프리랜서 PD의 고백”으로 방송시장 혹은 그 세계의 구조적인 모순이나 제도를 비판할 의도는 없다. 그저 생생한 방송 현장 에피소드들로 전달되는 직업 세계일 뿐이다. 물론 “프리랜서 PD”라는데 방점을 찍으면, 왜 이런 구조라는 문제는 바로 눈에 들어오지만 말이다. 프리랜서라, 외주방송 감독이자 독립사업자. 방송 세계의 생태계가 보인다. 


이 책은 방송국 PD라는 직업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에피소드1과 2로 나눠 싣고 있다. 1에서는 피디로서의 일상과 직업으로서의 피디, 다소 헷갈리지만, 아무튼 방송관련 에피소드 26꼭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방송국에 FD로 입성, 말 그대로 현장 지휘, 시간 관리 제작진과 출연진을 오가며 소통을.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다양한 세트와 무대를 이동하며 진행되는 동안 출연자의 위치와 카메라 각도를 조정, 장면 전환 때 원활한 진행, 뭐 이른바 정해진 분야 외에는 모두 FD가 해야 할 일이다. 요즘에는 3D업종으로 꼽히지만. 어쩌겠는가, 피디라는 건, 마치 무당 굿하듯 누가 뭐라고 하든, 작품 속으로 뛰어들면 그곳이 내 세상인데, 아마도 그래서 중독성이 강한 장르인가보다 싶지만, 


이 책에서는 정 피디의 힘겹고도 슬픈 사연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케이블방송국의 정직원 피디가 돼서 하는 일이 성인방송을 제시간에 틀림없이 틀어줘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일이고 보니, 현장을 뛰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Go, Stop 이른바 고스톱(고와 스톱, 감독하는 일)에서 멀어지면서 회의한다. 못 먹어도 고다. 다시 방송 제작 현장으로, 한참을 하다가 도지는 회의증세, 


현장을 일탈해도 어쩔 수 없이 되돌아오는 PD라는 직업의 마력, 철새처럼 귀소본능?


피디 현장 일탈, 대치동의 일타강사의 유튜브를 만드는 피디로. 세상에 제 뜻대로 되는 일만 있다면 한강에 빠져 죽기를 결심한 이들도 없겠지만 말이다. 좌충우돌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지은이는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듯하다. 방송국의 화려함은 연출된 것이라고, 출연자도 제작진도 누구를 위해 왜 이 일을 하는지를 모른 체 그저 움직인다면, 과연 직업이라 할 수 있을까, 취미활동과 직업의 경계선상에서 지금도 헤매는 사람들에게 정 피디는 직업으로 PD를 선택하려면, 마치 직업으로서의 정치나 학문을 선택하려는 준비처럼, 창의력이 있어야 하고, 친화력과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피디든 정치인이든 학자든 간에 창의력이 외출 나간 사람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추진력과 친화력은 세상과의 관계와 접근 태도다. PD가 되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속편, 직업으로서의 PD”론을 기대하며


3D업종에서 쨍하고 빛 볼 날이 얼마나 있을까?, 수많은 방송국 PD들이 한 번씩 꿔보는 꿈이기도 하기도 하지만, 히트에 대박을 치는 프로그램을, 아마도 낚시꾼이 대어를 낚을 때의 손맛처럼, 방송국 피디도 이런 기분일까?, 피디라는 직업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한번쯤 방송국 피디를 희망했던 이들에게 묻는 말이기도, 앞으로 선택하려는 이들에게 묻는 말이기도 하다. 



나머지 여백은 채워가야 할 작업의 결과일 것이다. 정 피디의 경험이 녹아있는 청춘기록 2 “속편, 직업으로서의 PD”라는 꽤 심각한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지상에 넘쳐나는 피디론의 클리셰말고, 한국 방송계의 구조적인 문제와 생태계에 관해 정피디는 미래의 피디들에게 PD라는 직업은 뭘하는 것인지를 알려줘야 할 듯... 기능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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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좀 그만 버려라 - 개정증보판
강철수 지음 / 행복에너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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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판돼야, 


강철수 작가의 <개 좀 그만 버려라>는 개 발바닥으로 써 내려간 눈물과 콧물 그리고 깡의 기록이다. 개만도 못하다는 말은 이제 일반적이지 않게 됐다. 금수저 개, 날마다 발톱다듬기를 받고, 헤어디자이너와 피부관리 전담사에 당당하게 여객기 짐칸이 아닌 좌석에 떡하니 앉아서 외국 여행도. 개 팔자 상팔자다. 아니, 반려라는 아름다운 표현을 붙여, 개가 개답게 사는 개다운 견생을 즐길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워질 때, 질서가 물구나무설 때, 사람들은 “개판”이여, 말세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개판은 개는 (改) 이며, 씨름판에서 도중에 같이 넘어지면 자기편이 이겼다고 우기며 옥신각신한 데서 유래한 말인데. 개들이 마구 뛰어다니며 난장판을 만든 것으로 오해했던 것일까?. 아니, 지금 바로 이 순간에 개판이 되어야 한다. 판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개를 키우려면 등록해야 하고, 교육받아야 하고, 질병 등으로부터 예방, 안전 등의 조치와 절차를 다 거쳐야 한다. 아파트에서는 키울 수 없고, 별도의 개 전용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개가지고 장난치는 개만도 못한 인간은 성희롱, 음주운전처럼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한다. 


개는 진흙이나 모래밭에 뒹굴고, 물에 들어가 헤엄치고 나오면 끝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개에게서 나는 고유한 그들의 냄새를 사람의 향수로 지우고, 앞발, 오른발, 왼발, 빵….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우리 집 개는 완전히 영재 견인가 봐, 똑똑한 개인가 봐”하다가, 밖에서 스트레스받고, 열받으면, 애꿎은 개한테 화풀이, 어느 날 심장사상충에 감염되기라도하면, 그날로 주인의 너그러운 사랑으로 생명을 이어가느냐, 아니면 쫓겨나거나 버려지거나.


작가는 유기견을 주인공 삼아,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예리하게 들여다본다. 너희들의 허영기의 끝이 어딘가를 까발려보겠다는 생각인지. TV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동물농장 등 헷갈릴 정도로 많다. 집에서 기르는 개에서 반려견이라는 표현으로. 한국 인구의 1/3에 육박하는 개들, 개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많다. 구탕, 보신탕, 사철탕, 영양탕이라 이름을 바꿔가면서 혐오식품이 돼가더니, 끝내는 개고기 금지란다. 이제 개는 가축의 반열에서 동물보호법에 적용을 받는 동물로, 보험사에서도 반려견 보험상품을 내놓는다. 


개 좀 그만 버려라


전국에서 매년 1%의 반려견이 버려진다고 그 숫자 10만 마리다. 1천만 반려견 사회에서 말이다. 공원에다 슬쩍, 비닐봉지에 싸서 쓰레기장에 살금, 차에 태워 고속도로 휴게실에, 배타고 섬에 가서 슬쩍, 버리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또 한편으로는 개에게 내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진짜 개판(다시 판을 짜야하는)이다. 뭔가 제대로 된 질서가 필요하다. "개죽음, 파리목숨"


일본에서는 반려견이란 말을 아직도 쓰지 않는데, “펫(애완견)”이라 한다. 자식처럼 여겨 노인네들은 자신이 죽고 난 후에 세상에 홀로 남아있을 개, “유기견”이 어떤 처우를 받을까, 그 앞날이 짐작되는 모양이다. 개 앞으로 우리의 남은 재산을 남겨주려 한다. 이른바 “펫상속법” 물론 개는 민법상의 상속인이 될 수 없기에, 그 개를 돌봐주는 비정부, 비영리(NGO, NPO)단체에 신탁해두고, 그 개가 죽으면, 나머지는 단체에 귀속되도록 하는 등의 법률까지도 검토되고 있다. 북유럽에서도 개한테 재산을 물려주는 사례가 있는데 절차는 일본의 예와 비슷하다. 


한때 개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사람, 지금은 곤욕스러운 처지이기는 하나, 그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개를 기르려면, 개의 특성을 알아야 하고, 주거환경을 바꿔야 한다.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건 인간의 그릇된 욕심이다. 개는 사람들이 시키는 목욕을 좋아하지 않는다. 샴푸를 쓰면 피부가 상한다. 피부호흡을 하는 개에게는 오히려 치명적, 개 옷을 왜 입히나, 털로 체온조절을 하게 돼 있는데... 뛰어놀도록, 사냥하도록 개량되고 또 훈련된 개들은 그렇게 살도록 해줘야 한다. 개를 기르기로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적어도 산더 콜라트의 <개와 함께한 하루>(흐름출판, 2021)에서 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가끔씩 소개되는 이야기지만 책임지려는 자세는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자유로운 영혼, 유기견


유기견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반려견이라는 환경 속에서 살려면 브랜드, 이른바 족보 품종견이어야 하는 잡종 똥개는 환영받지 못한다. 꼬락서니 때문인가, 외모지상주의다. 상품의 희소성이 그대로 반영된다. 한편으로 개를 반려로 삼아 함께 사는 사람들, 아이를 낳지 않고 반려견과 사는 딩크족, 이들의 속내와 사정은 각각 다르다. 인간에게 데여서 나를 믿고 따르며 희생하는 충성스러운 그 무엇을 욕망하는 이들이 찾는 반려견, 반려견 또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듯, 자유를 포기하고 일용할 양식을 보장받을 것인가, 영화<브레이브 하트>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 책은 일명 “개 사회학”의 얼개를 보여준다. 영화 “알파” 임신한 늑대(어패가 있지만)와 동행하게 된 주인공, 부족 사람들과 사냥에 나섰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가 늑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다. 인류가 늑대를 개로 길들이는 과정이기도. 나홀로사는 노인들에게 개와 함께 살기를 권하기도, 지병의 악화나 인지기능저하 예방으로도, 무엇보다도 나홀로라는 외로움에서 잠시나마 살아있는 생명과 함께 산다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인간은 역시 본능적으로 무리동물이기에... 집안에 있을 때는 반려견이지만, 문밖을 나와 거리에 내몰리는 순간 “살아 움직이는 쓰레기”가 되고 만다. 


다 좋다. 하지만, 개도 생명이니 버리지 말라. 입양이니 파양이니 하는 낱말 자체가 아직도 어색하지만, 의인화해서 개아빠니 개엄마니 하는 표현 또한….


이 책은 주인공 유기견의 생각(개의 생각)과 말을 사람의 생각과 말로 바꿔 이른바 의인화해서 풀어낸다. 조목조목. 사람의 손을 무서워하는 개, 학대를 당한 개, 그래도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뭘까, 생존의 본능일까, 안전과 배고픔의 고통을 알기에 그런 것인가, 학습된 무기력과 인간에 대한 공포, 언제 돌변할지 모를 개 "주인"들의 꼬라지, 우리 사회의 갑과 을의 관계 또한 이러한데, 


결론은 개 좀 그만 버려라. 개는 오늘도 생각한다. 세상은 넓고 쓰레기는 많다. 오늘 배가 터지게 먹어라. 오늘이 행복해야 일생이 행복하다. 개 좀 그만 버려라는 사람이 사람인 이유를 아느냐는 반문과도 같다. 반려견이라 쓰고 부르지만, 사실은 장난감같은 개가 더많은 이유는?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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