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좀 그만 버려라 - 개정증보판
강철수 지음 / 행복에너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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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판돼야, 


강철수 작가의 <개 좀 그만 버려라>는 개 발바닥으로 써 내려간 눈물과 콧물 그리고 깡의 기록이다. 개만도 못하다는 말은 이제 일반적이지 않게 됐다. 금수저 개, 날마다 발톱다듬기를 받고, 헤어디자이너와 피부관리 전담사에 당당하게 여객기 짐칸이 아닌 좌석에 떡하니 앉아서 외국 여행도. 개 팔자 상팔자다. 아니, 반려라는 아름다운 표현을 붙여, 개가 개답게 사는 개다운 견생을 즐길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워질 때, 질서가 물구나무설 때, 사람들은 “개판”이여, 말세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개판은 개는 (改) 이며, 씨름판에서 도중에 같이 넘어지면 자기편이 이겼다고 우기며 옥신각신한 데서 유래한 말인데. 개들이 마구 뛰어다니며 난장판을 만든 것으로 오해했던 것일까?. 아니, 지금 바로 이 순간에 개판이 되어야 한다. 판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개를 키우려면 등록해야 하고, 교육받아야 하고, 질병 등으로부터 예방, 안전 등의 조치와 절차를 다 거쳐야 한다. 아파트에서는 키울 수 없고, 별도의 개 전용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개가지고 장난치는 개만도 못한 인간은 성희롱, 음주운전처럼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한다. 


개는 진흙이나 모래밭에 뒹굴고, 물에 들어가 헤엄치고 나오면 끝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개에게서 나는 고유한 그들의 냄새를 사람의 향수로 지우고, 앞발, 오른발, 왼발, 빵….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우리 집 개는 완전히 영재 견인가 봐, 똑똑한 개인가 봐”하다가, 밖에서 스트레스받고, 열받으면, 애꿎은 개한테 화풀이, 어느 날 심장사상충에 감염되기라도하면, 그날로 주인의 너그러운 사랑으로 생명을 이어가느냐, 아니면 쫓겨나거나 버려지거나.


작가는 유기견을 주인공 삼아,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예리하게 들여다본다. 너희들의 허영기의 끝이 어딘가를 까발려보겠다는 생각인지. TV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동물농장 등 헷갈릴 정도로 많다. 집에서 기르는 개에서 반려견이라는 표현으로. 한국 인구의 1/3에 육박하는 개들, 개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많다. 구탕, 보신탕, 사철탕, 영양탕이라 이름을 바꿔가면서 혐오식품이 돼가더니, 끝내는 개고기 금지란다. 이제 개는 가축의 반열에서 동물보호법에 적용을 받는 동물로, 보험사에서도 반려견 보험상품을 내놓는다. 


개 좀 그만 버려라


전국에서 매년 1%의 반려견이 버려진다고 그 숫자 10만 마리다. 1천만 반려견 사회에서 말이다. 공원에다 슬쩍, 비닐봉지에 싸서 쓰레기장에 살금, 차에 태워 고속도로 휴게실에, 배타고 섬에 가서 슬쩍, 버리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또 한편으로는 개에게 내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진짜 개판(다시 판을 짜야하는)이다. 뭔가 제대로 된 질서가 필요하다. "개죽음, 파리목숨"


일본에서는 반려견이란 말을 아직도 쓰지 않는데, “펫(애완견)”이라 한다. 자식처럼 여겨 노인네들은 자신이 죽고 난 후에 세상에 홀로 남아있을 개, “유기견”이 어떤 처우를 받을까, 그 앞날이 짐작되는 모양이다. 개 앞으로 우리의 남은 재산을 남겨주려 한다. 이른바 “펫상속법” 물론 개는 민법상의 상속인이 될 수 없기에, 그 개를 돌봐주는 비정부, 비영리(NGO, NPO)단체에 신탁해두고, 그 개가 죽으면, 나머지는 단체에 귀속되도록 하는 등의 법률까지도 검토되고 있다. 북유럽에서도 개한테 재산을 물려주는 사례가 있는데 절차는 일본의 예와 비슷하다. 


한때 개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사람, 지금은 곤욕스러운 처지이기는 하나, 그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개를 기르려면, 개의 특성을 알아야 하고, 주거환경을 바꿔야 한다.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건 인간의 그릇된 욕심이다. 개는 사람들이 시키는 목욕을 좋아하지 않는다. 샴푸를 쓰면 피부가 상한다. 피부호흡을 하는 개에게는 오히려 치명적, 개 옷을 왜 입히나, 털로 체온조절을 하게 돼 있는데... 뛰어놀도록, 사냥하도록 개량되고 또 훈련된 개들은 그렇게 살도록 해줘야 한다. 개를 기르기로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적어도 산더 콜라트의 <개와 함께한 하루>(흐름출판, 2021)에서 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가끔씩 소개되는 이야기지만 책임지려는 자세는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자유로운 영혼, 유기견


유기견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반려견이라는 환경 속에서 살려면 브랜드, 이른바 족보 품종견이어야 하는 잡종 똥개는 환영받지 못한다. 꼬락서니 때문인가, 외모지상주의다. 상품의 희소성이 그대로 반영된다. 한편으로 개를 반려로 삼아 함께 사는 사람들, 아이를 낳지 않고 반려견과 사는 딩크족, 이들의 속내와 사정은 각각 다르다. 인간에게 데여서 나를 믿고 따르며 희생하는 충성스러운 그 무엇을 욕망하는 이들이 찾는 반려견, 반려견 또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듯, 자유를 포기하고 일용할 양식을 보장받을 것인가, 영화<브레이브 하트>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 책은 일명 “개 사회학”의 얼개를 보여준다. 영화 “알파” 임신한 늑대(어패가 있지만)와 동행하게 된 주인공, 부족 사람들과 사냥에 나섰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가 늑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다. 인류가 늑대를 개로 길들이는 과정이기도. 나홀로사는 노인들에게 개와 함께 살기를 권하기도, 지병의 악화나 인지기능저하 예방으로도, 무엇보다도 나홀로라는 외로움에서 잠시나마 살아있는 생명과 함께 산다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인간은 역시 본능적으로 무리동물이기에... 집안에 있을 때는 반려견이지만, 문밖을 나와 거리에 내몰리는 순간 “살아 움직이는 쓰레기”가 되고 만다. 


다 좋다. 하지만, 개도 생명이니 버리지 말라. 입양이니 파양이니 하는 낱말 자체가 아직도 어색하지만, 의인화해서 개아빠니 개엄마니 하는 표현 또한….


이 책은 주인공 유기견의 생각(개의 생각)과 말을 사람의 생각과 말로 바꿔 이른바 의인화해서 풀어낸다. 조목조목. 사람의 손을 무서워하는 개, 학대를 당한 개, 그래도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뭘까, 생존의 본능일까, 안전과 배고픔의 고통을 알기에 그런 것인가, 학습된 무기력과 인간에 대한 공포, 언제 돌변할지 모를 개 "주인"들의 꼬라지, 우리 사회의 갑과 을의 관계 또한 이러한데, 


결론은 개 좀 그만 버려라. 개는 오늘도 생각한다. 세상은 넓고 쓰레기는 많다. 오늘 배가 터지게 먹어라. 오늘이 행복해야 일생이 행복하다. 개 좀 그만 버려라는 사람이 사람인 이유를 아느냐는 반문과도 같다. 반려견이라 쓰고 부르지만, 사실은 장난감같은 개가 더많은 이유는?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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