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의 연결을 묻는 카를로 로벨리의 질문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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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세계를 연결하는 작은 호기심


양자 중력이란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개념 지운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은 존재의 연결을 묻는다. 장자의 유명한 이야기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다’에서 시작해 ‘다시, 장자,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다’로 글을 끝내는데, 이 책 안에 그가 지난 몇 년간 유럽 신문(주로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텔라세라, 시니스트라 신다칼레 등)에 기고한 37개의 글을 담았다. 글은 그가 천착한 존재의 연결을 찾는 물음들이다. ‘모든 것은 레스보스섬 바다에서 시작되었다’라는 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알려진 유명한 철학자만이 아니라 과학자였음을 알려준다. 마치, 흑산도 유배 중에 어족연구를 했던 손암 정약전처럼 그도 레스보스섬에서 그곳에 살던 플라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와 몇 년 동안 함께, 이곳 생명체를 정밀한 방법으로 연구했다. 


그의<동물지>(노마드, 2023)에서는 600여 종을 설명하며 <동물의 부분들에 대하여>(그린비, 2024)에서는 동물의 체계적 분류와 상세한 해부학을 소개한다. 이른바 과학자의 모습의 아리스토텔레스, 19세기에 이르러 인정받기도,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의 주요 원천은 직접 관찰이었지만, 어부, 농부, 양치기, 여행자들로부터 견해와 관찰을 모으고 선별하고 걸러내려 노력했다고... 마치, 정약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중요한 의미가 담긴 레스보스,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지만, 이 섬의 카라 테페 난민 캠프에는 2,000명 가까운 이주민이 감옥 같은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오늘날 세계에 남아있는 긴장과 불평등, 심각한 부정의는 인류에게 소중한 보석을 남긴 이 작은 섬에도 얼룩을 남기고 있다고, 


이 책에 실린 37개의 물음 끝에는 현실의 이야기가 짧게 쓰여있는데, 그는 과학자로서 기술적 작업의 여백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열정, 철학과 예술을 비롯한 여러 주제에 관한 생각이 담겨있다. 누구나 평화를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먼저 ‘이겨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평화를 원한다고 하지만, 그 말은 당연히 승리한 후의 평화를 원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의 탐욕은 생태계를 거침없이 파괴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과거의 밝은 미래를 꿈꿨던 청년들이 저지른 일들이다. 지은이는 “더불어 사는 삶”을 말한다. 세계는 연결돼있고, 우리가 우리일 때, 내가 ‘나“일 때,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베토벤의 ’장엄미사곡‘ 중 ’베네딕투스‘와 ’시간의 원천‘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와 에릭 바타글리아 사이에 오간 편지들 속에 보인 베토벤의 음악, 왜 가능했을까? 라는 질문이 와닿는다. 지은이는 ’장엄미사곡‘ 전체가 관찰 가능한 우주와 관찰 불가능한 우주에 대한 일종의 거대한 알레고리라고 생각한다. 제2 라그랑주점의 망원경이 아니라 베토벤의 정신으로 본 우주라고, 베네딕투스에서 바이올린 곡은 순수한 아름다움과 순수한 절망, 순수한 행복의 표현, 이것이 ’시간의 원천’이라고, 이는 음악에 관한 또 다른 시각을 지은이에게 열어주었다. 시간이 더는 표준적 리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천하, 하나의 하늘 아래


천명(天命)·하늘 아래 모든 것과 관련돼있다. 주나라의 천하(天下)개념, 하늘 아래지만, 하나의 하늘 아래로 옮길 수 있다. 이 표현에는 정치란 배타적이기보다는 포용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천명은 대립보다는 조화를, 천명을 받은 황제는 조화와 타협, 알렉산더에서 칭기즈칸, 합스부르크 왕가, 그리고 미국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문화적 다양성이 여러 당파 위에 존재하는 질서와 양립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2005년 중국의 정치철학자 자오팅양은 그의 책<천하체계>에서 국제사회의 공존을,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구상 필요성을 논한다. 이 책은 게임 이론적 토대에 예리하고 깊은 분석을 제시한다. 세계는 누가 이길 것인가가 아니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전쟁을 피할 방법이 문제다. 하나의 하늘 아래 인류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중심에 두는 정치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세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 믿는다. 


우리 대(對) 저들


피아(彼我), 우리와 그들, 그들만의 리그, 그들은 적,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계급과 이념의 갈등이 깊어지고 표면화된 적은 한국 전쟁 이후, 5.18민중항쟁, 그리고 45년 후에 일어난 비상계엄령과 21대 대선, 완전히 반으로 쪼개진 그들, 지은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걱정한다. 우리 대 그들, 진영논리 뒤에 깔린 자기들의 이익 계산이 우선이다. 형식적으로 인도주의를 외치며 반전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폭력을 조장해 폭력에 대응하는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칫 세계 3차 대전으로 이어질 뻔했던 쿠바의 미사일 무장, 케네디와 흐루쇼프가 그랬듯 ”대화와 정치”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정말로 시급한 일은 ’학살’을 멈추는 것이라고,


다시, 장자,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다


양자역학 ’관찰자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기준으로 현상을 설명한다.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물리학은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장자는 우리가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나 세계에 관한 것이나 ”뭐가 다르지“라는 질문을 한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세계 자체의 한 측면일 수도 있잖는가, 앎은 세계를 초탈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계 자체의 한 구성요소다.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자네는 내가 안다는 것을 알고 있네, 나는 여기 호수 위에서 알았지. 알쏭달쏭한 장자와 그의 친구 혜서의 문답, 앎은 영혼처럼 천상계 어디에 있지 않고, 바로 여기, 호수 위에 있다는 말이다. 


세상은 하나로 연결됐을지도 모른다는 카를로 로벨리의 생각, 과학자는 문화와 예술, 철학에 관하여 아마추어일 것이라는 우리의 고정된 생각을 여지없이 깨드려 놓았다. 과학과 철학은 본디 한 몸의 다른 측면이라는 것을 카를로 로벨리는 주장한다. “평화“ ”전쟁“ ”배려“ ”연대“ ”희망“ 이 모든 것은 함께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됨은 그의 글 전체를 관통하는 사유이자,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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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마크 그레이엄.제임스 멀둔.캘럼 캔트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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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AI의 신화 속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 이야기

 

연평균 20퍼센트씩 성장하는 AI 영역, 2023년 시장 규모는 2,000억 달러, 2030년에는 2조 달러 규모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 장밋빛 환상을 가져다주기에 더없이 좋은 산업 분야다. 영화<터미네이터>시리즈를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쉽게 기계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지를, SF 오락 영화 숨겨진 소름 끼치는 메시지를 흥미롭게 봐 넘길 일이 아님을 느꼈을 것이다. 시리즈 5, AGI(인공일반지능)단계에 이르면 사람의 사고와 판단, 행동이 같아진다. 주인공이 기계와 합체하는 장면까지, 이것이 우리 인류 앞에 놓인 미래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추출 기계 시대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과 대국해서 이겼다고 인류의 기술진보를 찬양하며 환호성을 지를 때, AI에 수많은 매개변수를 입력하고, 학습시켰던 “추출 기계 시대의 보이진 않는 노동자들”은 불안정고용과 저임금으로 AI라는 기계를 위한 기계가 되어 노동한다. 아이러니하게도, 4차 산업의 상징인 자율주행과 AI,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실은 이미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다만, 이들은 노동자들은 뒤에서 살펴보듯,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있다.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해방해줄 것같지만 실제로는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클릭을 유도하고, 데이터를 가공하며, 콘텐츠를 검열하고 물리적 이동을 수행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기계’를 움직여, 자산회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적인 시스템이 추출기계다. 노동자의 가치와 정보를 추출해 이윤으로 전환하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핵심 장치다. 

 

지은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AI 분야를 전방위적으로 검토해왔다. AI는 데이터를 처리하여 의사 결정, 예측, 추천과 같은 결과를 생성하는 기계 기반 시스템, 이메일의 자동완성에서 군용 드론에 쓰이는 정밀 타격 무기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적용 범위는 무한대에 가깝다. 하지만, 실상 AI는 아직 마케팅 개념에 가깝거나 매우 이질적인 기술들을 하나의 용어 아래 묶어놓은 포괄적이면서 모호한 개념으로 포스트 휴먼 지능의 경이로움을 떠올리게 한다. 모르면 신비로운 법이니, 하지만 AI로 인해 인류가 멸종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위에서 본 영화<터미네이터>처럼

 

AI로 연결된 세계, 구조적으로 착취당하는 디지털 노동세계의 노동자

 

AI가 장착된 제품, 서비스를 사용하는 순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 흩어진 노동자들의 삶과 연결된다. 커피 한 잔이 원두 농장에서 소비자의 컵에 담기기까지 복잡한 글로벌 생산망을 거치는 것과 같다. 이 책의 지은이 세 명(마크 그레이엄, 제임스 멀둔, 캘럼 캔트)은 제조업, 서비스업 등 눈에 보이는 노동현실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세계 디지털 플랫폼 노동, 노동과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 AI와 자동화 기술이 플랫폼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한다. 이들의 공동 관심은 디지털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이다. 

 

이 책에서는 7명의 디지털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실상을 1~7장에 걸쳐 각각 소개한다. AI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자본, 네트워크, 일자리 기회 등이 어떻게 세계적인 불평등과 불균형을 초래하는지를 분석한다. 지은이들은 데이터 주석자 작업자(Data annotators). 콘텐츠 검수자, 머신러닝 엔지니어, AI 윤리학자, 물류 노동자, 노동 조직가, 투자자 등 200여 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1장 ‘기계가 우리를 닮아갈수록, 우리는 기계가 되어간다- 우간다 굴루, 데이터 주석작업자-’ 불안전고용 저임금 노동상태를 기계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고 정의한다. 2장 ‘AI는 사유하지 않는다. - 영국 런던, 머신러닝 엔지니어-’에서 AI는 우리를 대처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디지털 우생학과 공정하다는 착각을 다룬다. 3장, ‘얼음과 불의 데이터센터 –아이슬란드, 기술자-’에서는 냉각과 전력 없이는 AI도 없다. 인프라의 권력을, AI 군비경쟁까지, 4장. ‘당신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인가 –아일랜드, 예술가-’에서는 창의력 테스트: AI는 진정한 창의력을 가질 수 있을까? 를 묻는다. 5장. ‘기계를 멈춰 세워라’- 영국 코번트리, 물류 노동자‘ AI 감시: 출근에서 퇴근까지, 6장. 자유를 지키는 독재자들- 미국 실리콘밸리, 투자자-, 민주주의가 배제된 기술, 자기합리화인가 미래를 위한 선택인가, 7장. ‘오래된 미래에 맞서는 사람들 –나이지리아 나이로비, 노조 활동가-, 무엇이 달라졌는가, 국경을 넘어서, 8장 기계 재설계하기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전략-까지를, 

 

우리 앞에 나타난 정교한 AI는 실은 수천 시간의 저임금 노동이 투입된 결과물이며,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친 과정에 있는 한순간의 것이다. 기계 속에는 일련의 레버와 거울을 통해 인형을 조작하는 인간 체스 마스터가 숨어 있었다는 말이다. 즉, AI는 광범위한 인간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며, 씁쓸한 이야기다. 동전의 양면, 빛과 어둠은 AI에도 존재하니 말이다. 

 

AI, 민주주의가 배제된 기술과 그 위험성

 

지은이들은 두 가지의 핵심적인 질문을 한다. 첫째, AI 기술 발전을 추동하는 구조적 압력은 무엇인가?, 둘째, 왜 테크 기업의 경영진들이 가진 세계관이 문제인가? 라는 것이다. 

창업자 중심의 사고, 창업자들은 자신을 변화의 주역이라고 믿는다. 민주적 절차는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진보적? 아무튼, 마크 저커버그처럼 다양한 진보적 이슈에 공감하면서 대규모 자선단체를 설립하는 등의 외형과는 달리 그는 일에서는 절대권력자다. 권력의 불평등을 당연시하며 결국 모든 것이 ‘더 큰 선’을 위함이라고 일축한다. 

 

AI 시대의 노동전략

 

지은이들이 내놓은 다섯 가지 실천전략, 첫째, 노동조합과 노동자조직의 집단적 힘을 강화한다. 둘째, 시민사회가 조직적으로 기업을 견제하고 책임을 묻는다. 셋째, 엄격한 규제를 도입한다. 넷째, 노동자들이 기업을 직접 소유하거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모색한다. 다섯째, 기업을 넘어서 전체 시스템의 불평등이나 부정의에 맞선다. 이들은 AI 생산 시스템에서 노동자에게 더 공정한 환경을 제공하며,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산업에 걸친 자본주의의 생산 시스템에서도 통하는 보편적인 전략이다. 아무튼, 우리는 AI를 위해 일하는 세상이 아니라 AI가 인간을 위한 도구가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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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 - 전 세계를 뒤흔드는 트럼프 2.0시대 최악의 충격파
추동훈.이승주.강영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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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관세전쟁의 진짜 이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경제 핵폭탄이라고 일컫는 “관세”을 우방이든 적국이든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관세전쟁의 본질은 국가안보와 경제안보 논리로 포장된 보호무역주의라는 시각, 그렇다면 5.12. 제네바에서 열린 미, 중 관세 협상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 관세 협상을 시도한 미국과 중국이 90일간 관세 일부를 유예하기로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극적 타결에 성공했다. 두 국가는 종전 각종 보복 조치들을 멈추고 양국 간의 무역 관계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는데, 베센트 미 재무장관 “양국 모두 경제적 디커플링 원하지 않아” 나란히 115%P씩 인하, 중국의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도 “회담은 솔직하고 건설적이었으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라며 “이번 회담은 양국의 무역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으로 우리는 중요한 컨센서스를 이뤘다”라고 밝혔다. 더해 “미국과 협력해 차이는 관리하고 협력 분야를 확대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덧붙였다(5.12. 일간지 보도기사). 이런 미, 중의 움직임은 보호무역주의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미국의 우방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부과한 관세율, 이 역시 유보라는 겁주기의 프로다간다였을까? 


미국의 큰 도시들에서 연일 벌어지는 반트럼프 시위, 미국연방법원도 관세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선 상황이다. 관세정책의 양면성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미 국민의 불안 반영인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트럼프는 단지 개인이 아닌, 자국중심주의의 세력의 대변인이자 상징이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이 책은 매일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추동훈과 문화일보 경제부 기자 이승주, 한국경제신문 기자 강영연이 함께 썼다. 트럼프 취임 이후의 관세정책 동향을 줄 곳 추적해 온 세 사람은 어떤 이유로 ”관세전쟁”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책 구성은 4장이다. 1장 ‘관세전쟁의 충격- 발발 원인과 방향-에서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이른바 MAGA정책의 하나라는 것이다. 미국의 관세 전략과 대상국, 동맹국을 겨냥한 미국의 새로운 관세 공세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미국 우선주의에서도 기본 전략을 있을 듯한데, 2장 ’관세전쟁이 뒤흔드는 글로벌 경제‘에서는 멈춰버린 성장 엔진, 거꾸로 가는 전 세계 경쟁성장률,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과 금융시장과 투자환경 변화 등을 톺아본다. 3장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한국은 대응은 어떻게, 4장. 투자가들에 미친 영향을 본다. 1, 2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우선주의 관철을 위해 일으킨 관세전쟁인지를 살펴보고, 한국과 투자자들에 미치는 영향을 이렇게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눠서 살피고 있다. 






국가안보와 경제안보의 논리로 포장된 보호무역주의?


2025.2.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새로운 무역보고서에 등장한 ”경제안보”라는 개념이 핵심 주제로 등장, ’경제적 안정 없이는 안보도 없다‘라고 공식적으로 표명, 공급망의 안정, 핵심 산업 보호, 첨단 기술 통제, 외국 의존도 축소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포함, 무역정책 전반이 국가전략 일부로 재편됨을 의미한다. MAGA플랜의 관철이다. 트럼프의 행보, 트럼프는 장사꾼이다.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할뿐더러 제대로 된 전략 구사도 할 줄 안다. 이 전체의 틀이 선전에 불과하다면?, 국가안보 무기로 사용된 <무역확장법> 제232조, 이 역시 미국의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주 발동한 역사가 있다. US 스틸을 인수하려던 일본이 제동이 걸리기도, 또 하나의 세이프가드의 부활인 무역법 제201조 발동, 


이미 중국의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무역법 제301조 이른바 슈퍼 301조 발동이다. 슈퍼 301조는 미국 무역대표부가 외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에 대해 보복 조처를 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이 조치는 1988년 제정된 '통상법 제301조'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를 '슈퍼 301조'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제재 방식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본래 1986년 일본 자동차 해일이 미국 시장을 덮쳤던 것을 계기로, 물론 한국 자동차도 여기에 막혀 애를 먹었다. 






가치 보다는 이익을 우선, EU 등 동맹국도 각자도생을


유럽의 MEGA는 미국의 MAGA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세계의 공장에서 일대일로 등 다자 및 지역경제 협력 등의 네트워크를 건설, 패권국으로 옮아가는 중국, 세계 강대국의 1, 2위는 미국, AI 기술에서도 1, 2를 다툰다. 이미, 단순제조국에서 첨단기술국으로 양에서 질로 바뀌었다. 희토류 수출 금지는 전 세계의 ”전기자동차“생산이 중단될 정도 영향을 미친다. 이 정도면, 중국을 밀쳐내겠다는 미국의 전략은 절반은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관세전쟁,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


누가 세계를 설계할 것인가, 관세전쟁이 바꾸는 미래의 질서, 아마도 그 향방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미, 중 사이의 관세전쟁의 본질은 21세기 국제 질서의 주도권 놓고 벌어진 정치, 경제, 기술 패권전쟁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사건이라고 지은이들은 평가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트럼프가 러시아에 손을 내밀며 관계 개선을 시도, 2.24. 유엔총회에서 미국이 러시아 규탄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도 이해된다. 이는 민주주의 가치 동맹의 중심국인 미국의 태도는 배신으로 평가돼, 세계질서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은 없어진 셈이다. 





21세기 신냉전은 관세, 기술, 규범으로 벌어지는 경제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국제 경제 질서의 동맹 구조 역시 재편 중이다. 트럼프의 실리 중심의 협상 구도 전환은 EU,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가치보다는 이익원칙의 폐기, 동맹은 유지하되 그것은 거래의 기술 위에 성립된 조건부 관계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비서구권 국가들과 연대강화 자국 중심 전략의 지형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른바 비동맹 중립권 포섭이다.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지금도 미, 중 사이에 끼여 양쪽 눈치만 살필 수 밖에 없는 처지인데...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새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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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 아우렐리우스편 세계철학전집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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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이 책은 모티브 출판사의 세계철학전집 아우렐리우스 편으로 이근오가 엮은 것이다.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 중 마지막이었던 그는 스토아철학자였다. 마흔에 황위에 올라 재위 20년(161~180) 동안 두 명의 공동황제를 두면서 철학과 정치, 통치, 그리고 기나긴 전쟁을 해왔다. 결국,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영화<글라디에이터>(리들리 스콧 감독, 2000)의 장군 막시무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다가, 우여곡절 끝에 엉망진창인 아들 코모두스에게 물려주면서 로마는 저물어간다. 


그는 전장을 누비면서 누구보다 엄격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도 자신을 지키려 애썼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명상록>은 하루의 끝에서 자신의 마음 다잡기 위해 써 내려갔던 문장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인 군주의 이상 실현을 위해서 노력했다. 철학과 명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그가 내뱉은 말은 아마도 “나를 아프게 하는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가 아닐까 싶다. 


“옳지 않으면 하지 마라, 사실이 아니면 말하지 마라. 

마음을 쾌활하게 하며, 밖으로부터 도움을 구하지 말고, 남들이 주는 안식도 구하지 말라.

너는 스스로 똑바로 서야지, 똑바로 세워져서는 안 된다.”


이 책은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 것, 세상이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 말 것,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갈 것, 그가 자신에게 반복해서 말했던 조언들을 담아낸 것이다. 그가 남긴 문장들은 그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내면으로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절제하고 반성하고 흔들리는 신념을 다잡기 위한 채찍이었다. 엮은이 이근오는 이런 아우렐리우스의 조언들을 쉽게 풀어쓰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갈파했던 불확실성과 불안 유동적인 “액체 사회”에서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나” 자신을 붙잡고 스스로 똑바로 서기 위한 마음의 공부를 위한 게 이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 구성은 아우렐리우스의 아포리즘 36개를 5장으로 묶었다. 1장 ‘왜 당신은 상처받지도 않아도 될 말에 아파하는가’에서는 결국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외부가 아닌 나의 해석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한다. 내가 나를 상처받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2장 ’당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마라. ‘에서는 인정욕구를 버려라, 누가 알아주든 주지 않던 묵묵히 그저 내 할 일 하면서 살아가는 게 최고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품격, 내가 정말 잘살고 있다는 증거, 오늘의 생각이 내일을 만든다, 정말 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담았다. 3장 ’모든 관계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에서는 불가근불가원이다. 언제든 적당한 거리를 두라는 말이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가까운 사이라도 예의가 필요한 법,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책임지려는 오지랖은 인제 그만, 화를 내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 마음공부다. 수양이다. 4장 ’나를 지키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에서는 불완전한 사람을 대하는 자세, 기분이 너의 주인이 되게 하지 마라, 즉 냉철함과 사유를 끊임없이 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5장 ’삶은 선택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에서는 나다운 게 무엇인지 모를 때,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것, 책임은 혼자 지는 게 아니라 나눠서 지는 것, 비워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위기를 기회로 보는 사람, 즉 현자의 삶과 태도를 말한다. 


가장 깊고 어두운 밤은 곧 새벽이 온다는 의미 


사람이 가장 절망에 빠져있을 때, 세상이 온통 어둠에 갇혀있을 때, 바로 그때가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이다. 위기는 늘 기회를 품는 법이다. 무시하고 지나치느냐, 아니면 발견하고 붙잡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렸지만, 그 개인의 삶의 태도와 수양의 정도로 그 판단력은 높아져 간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정욕구에 휘둘리지 말라는 건은 또 무엇인가?,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늘 잘못됐다 할 수도 없고 늘 옳다고 볼 수도 없는 시시각각, 환경변화와 상황에 따라서 평가는 유동적이며, 변화의 가능성이 있음을... 일희일비하는 사이에 “나”를 잃어버리고 내 자리에 차지하는 것은 남들이 원하는 껍데기인 나만이 있을 뿐이다. 내게 일어난 일은 나를 위한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은 나를 위한 것이다


아우렐리우스의 말 “그런 생각이, 쾌락이 우리를 속이는 방식이다. 눈앞의 즐거움을 진짜 좋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운명의 실타래, 새옹지마처럼, 나에게 벌어진 일,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부정보다는 긍정으로 내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것을 미리 훈련한다면, 후일 오늘의 일로 큰일을 막을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러기에 내게 일어난 일은 나를 위한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말이다. 우리가 무심코 뱉는 말,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실은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실패나 고통도 언젠가는 반드시 제 역할을 하는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하면 지금의 고통은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극복, 초월)가 보인다. 


“우리는 타인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보다 그들의 의견에 더 신경 쓴다.” 탁견이다. 이는 곧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듯, 내가 이들의 말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나”를 바로 잡아 세우는 일에 훼방을 놓는 셈이니, 결국 나를 아프게 한 것은 나의 해석이었을 뿐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노자의 “자중자애”와 같은 맥락이다. 내 삶과 인생의 주인공은 “나”일 뿐 그 누구도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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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말습관 - 불행도 다행으로 만드는 나만의 기술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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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불행도 다행으로 만드는 나만의 기술


이 책<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말습관>제목에서 눈길을 끄는 단어 “말습관”이다. 지은이 이주윤이 말하려는 “말습관”은 덜 서럽고 더 유쾌하게 먹고살기 위한 “긍정의 주문”이었다. 그는 집, 작업실, 요가원을 오가는 생활, 2017년부터 일간지에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산다. 이 규칙적인 동선에서도 말 잔치의 향연은 하루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일어나는 말 잔치와는 양의 차이일까, 


이 책은 에세이 속에서 일상에 도움이 될 만한 ‘오늘의 한마디’를 뽑고, ‘오늘의 미션’을 덧붙였다. 하루를 돌아보면서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담겨있다. “실천행” 티켓인 셈이다. 


5장 30가지 이야기, 하루에 한 가지씩, 한 달 동안 지은이를 따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요가를 할 수 없지만, ‘마음의 요가’를 해보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을 할 때처럼, 몸과 마음이 따르지 않더라도 자세를 잡아보는 것이다. 내 일상의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1장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 내는 말’에서는 누구에게나 있는 저녁, 계속해서 넘어지다 보면 낙법의 달인이 된다 등, 읽다 보면 지은이와 마주 앉아 미주알고주알 신세 한탄, 수다를 떠는 듯한 느낌이 온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굳이 누군가가 아니라 그저 내 말을 들어보소라는 그리고 말하면서 일어나는 정화작용 같은 것이다. 2장 ‘나를 칭찬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말’에서는 나는 나의 가장이다. 용기 있으면 다 언니, 나는 게으른 사람 중에 가장 부지런한 사람, “유쾌한 반전”이다. 수필을 신변잡기라고, 그저 보고 느끼는 것을 글을 옮기는 것이라는 의미가 이 대목에서 걸어 나온다. 3장 ‘바쁘게 사느라 잊었던 일상의 행복을 찾는 말’에서는 육수가 코인이라니, 사려던 음료수가 1+1이라니, 행운의 여신이 나를 따라다니고 있나 봐!, 어쭈, 나한테 감히 배고픔을 느끼게 해? 먹어서 이겨 주지... 제목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4장 ‘지금의 내 삶을 사랑하는 말’, 5장 ‘타인과 더불어 잘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말’에서는 보청기의 속뜻은 ‘인내심을 갖고 말해 주세요’, 눈인사 한 번에 친절 도장 하나, 개망신으로 나를 사회화해 주는 고마운 사람. 


오늘의 한 마디 “쓰레기 같은 말들이여, 안녕.” 


뜻풀이, 마음속에 담아 둔 나쁜 말이 자꾸만 떠올라 괴롭힌다면 쓰레기 하나를 버릴 때마다 한 마디씩 함께 버려보자.


변형, 여태껏 집도 안 사고 뭐 했냐는 비아냥이여, 안녕. 자식이 없으면 늙어서 비참하다는 독설도 안녕. 

“누군가 당신에게 봉지 하나를 줬다. 선물인가 싶어 열어봤더니 쓰레기만 가득 들어 있다. 버리면 그만인 것을 손에 쥐고서 수시로 열어 보며 화를 낸다면 그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말 중에도 쓰레기가 있다. 나쁜 말이 바로 ‘말의 쓰레기’다. 누군가 당신에게 집어 던진 말의 쓰레기를 움켜줜 채 괴로워하지 말아라. 쓰레기를 버리듯 그저 버려라.”


오늘의 미션, --- 이여 안녕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가득 차 있나요? 마침 잘됐습니다. 마음속에 쌓아 둔 기분 나쁜 충고와 속상한 말들을 쓰레기와 함께 버리러 나가 볼까요? ” 라는 미션으로.


유쾌한 반전인 듯하다. 쓰레기만 가득한 봉지를 줬다. 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온갖 생각이 든다. 감히 나에게, 나를 뭐로 봤으면 이따위 쓰레기를, 이건 혐오다. 이건 괴롭힘이다. 한 번 꼬꼬무 모드로 바뀌면 오만가지 잡념이 순식간에 앞다투어 머리를 헤집어 놓는다. 결국에는 내 감정은 상처를, 마음도 아프고 심장도 벌렁거리고, 솟구치는 혈압, 분노, 내가 세상을 헛산 건가. 거꾸로 이런 반응을 의도하고 쓰레기를 나에게 안긴 것인가, 그렇다면 반격이다. 응 그거 버렸어! 아주 깔끔하게 그리고 깨끗이, 감정의 찌꺼기까지 몽땅 싸서 그 봉지에 넣어서 재활용도 안 되게 아주 꾹꾹 눌러서 말이지. 이렇게 나 혼자만의 처리 방법으로 말 쓰레기를 처리하면 어떨까? 오늘 하나를 배웠다. 


지은이의 이런 맥락과 같은 책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나를 아프게 하는 한 맏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이근오 엮음, 모티브, 2025)에 나오는 “아무 말이나 믿지 않는 연습”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는 말을 듣고, 누구에게 하소연하면 그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오히려 더 의식하게 된다. 아우렐리우스는 “외부의 일은 당신의 마음을 해치지 못한다.”라고 했다. 결국, 나를 해치는 건 그 일이 아니라 내 반응이란 말이다. 사람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이미 머릿속엔 코끼리가 생각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키 선수들도 많은 나무 사이를 뚫고 지나갈 때 나무를 피해야 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눈길만 따라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말을 피하기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을 제안하고 생각하며 따르는 것이 낫다. 


부정적인 말습관에서 벗어나기


아이들에게 소파에서 과자를 먹지말라고 말하기 보다는 식탁에서 과자를 먹으라고 하면, “부정”의 요소 없다.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 생각하지 말자, 쓰레기통에 넣어버리자. 해도 쉽게 안 되는 것은, 생각이 꼬리를 문다는 것, 그래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것은 후자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나의 해석 때문이다. 모든 고통은 나로부터... 불행도 다행으로 만드는 것 역시 나로부터, 나만의 기술이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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