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의 연결을 묻는 카를로 로벨리의 질문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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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세계를 연결하는 작은 호기심


양자 중력이란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개념 지운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은 존재의 연결을 묻는다. 장자의 유명한 이야기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다’에서 시작해 ‘다시, 장자,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다’로 글을 끝내는데, 이 책 안에 그가 지난 몇 년간 유럽 신문(주로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텔라세라, 시니스트라 신다칼레 등)에 기고한 37개의 글을 담았다. 글은 그가 천착한 존재의 연결을 찾는 물음들이다. ‘모든 것은 레스보스섬 바다에서 시작되었다’라는 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알려진 유명한 철학자만이 아니라 과학자였음을 알려준다. 마치, 흑산도 유배 중에 어족연구를 했던 손암 정약전처럼 그도 레스보스섬에서 그곳에 살던 플라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와 몇 년 동안 함께, 이곳 생명체를 정밀한 방법으로 연구했다. 


그의<동물지>(노마드, 2023)에서는 600여 종을 설명하며 <동물의 부분들에 대하여>(그린비, 2024)에서는 동물의 체계적 분류와 상세한 해부학을 소개한다. 이른바 과학자의 모습의 아리스토텔레스, 19세기에 이르러 인정받기도,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의 주요 원천은 직접 관찰이었지만, 어부, 농부, 양치기, 여행자들로부터 견해와 관찰을 모으고 선별하고 걸러내려 노력했다고... 마치, 정약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중요한 의미가 담긴 레스보스,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지만, 이 섬의 카라 테페 난민 캠프에는 2,000명 가까운 이주민이 감옥 같은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오늘날 세계에 남아있는 긴장과 불평등, 심각한 부정의는 인류에게 소중한 보석을 남긴 이 작은 섬에도 얼룩을 남기고 있다고, 


이 책에 실린 37개의 물음 끝에는 현실의 이야기가 짧게 쓰여있는데, 그는 과학자로서 기술적 작업의 여백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열정, 철학과 예술을 비롯한 여러 주제에 관한 생각이 담겨있다. 누구나 평화를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먼저 ‘이겨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평화를 원한다고 하지만, 그 말은 당연히 승리한 후의 평화를 원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의 탐욕은 생태계를 거침없이 파괴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과거의 밝은 미래를 꿈꿨던 청년들이 저지른 일들이다. 지은이는 “더불어 사는 삶”을 말한다. 세계는 연결돼있고, 우리가 우리일 때, 내가 ‘나“일 때,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베토벤의 ’장엄미사곡‘ 중 ’베네딕투스‘와 ’시간의 원천‘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와 에릭 바타글리아 사이에 오간 편지들 속에 보인 베토벤의 음악, 왜 가능했을까? 라는 질문이 와닿는다. 지은이는 ’장엄미사곡‘ 전체가 관찰 가능한 우주와 관찰 불가능한 우주에 대한 일종의 거대한 알레고리라고 생각한다. 제2 라그랑주점의 망원경이 아니라 베토벤의 정신으로 본 우주라고, 베네딕투스에서 바이올린 곡은 순수한 아름다움과 순수한 절망, 순수한 행복의 표현, 이것이 ’시간의 원천’이라고, 이는 음악에 관한 또 다른 시각을 지은이에게 열어주었다. 시간이 더는 표준적 리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천하, 하나의 하늘 아래


천명(天命)·하늘 아래 모든 것과 관련돼있다. 주나라의 천하(天下)개념, 하늘 아래지만, 하나의 하늘 아래로 옮길 수 있다. 이 표현에는 정치란 배타적이기보다는 포용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천명은 대립보다는 조화를, 천명을 받은 황제는 조화와 타협, 알렉산더에서 칭기즈칸, 합스부르크 왕가, 그리고 미국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문화적 다양성이 여러 당파 위에 존재하는 질서와 양립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2005년 중국의 정치철학자 자오팅양은 그의 책<천하체계>에서 국제사회의 공존을,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구상 필요성을 논한다. 이 책은 게임 이론적 토대에 예리하고 깊은 분석을 제시한다. 세계는 누가 이길 것인가가 아니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전쟁을 피할 방법이 문제다. 하나의 하늘 아래 인류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중심에 두는 정치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세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 믿는다. 


우리 대(對) 저들


피아(彼我), 우리와 그들, 그들만의 리그, 그들은 적,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계급과 이념의 갈등이 깊어지고 표면화된 적은 한국 전쟁 이후, 5.18민중항쟁, 그리고 45년 후에 일어난 비상계엄령과 21대 대선, 완전히 반으로 쪼개진 그들, 지은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걱정한다. 우리 대 그들, 진영논리 뒤에 깔린 자기들의 이익 계산이 우선이다. 형식적으로 인도주의를 외치며 반전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폭력을 조장해 폭력에 대응하는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칫 세계 3차 대전으로 이어질 뻔했던 쿠바의 미사일 무장, 케네디와 흐루쇼프가 그랬듯 ”대화와 정치”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정말로 시급한 일은 ’학살’을 멈추는 것이라고,


다시, 장자,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다


양자역학 ’관찰자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기준으로 현상을 설명한다.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물리학은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장자는 우리가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나 세계에 관한 것이나 ”뭐가 다르지“라는 질문을 한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세계 자체의 한 측면일 수도 있잖는가, 앎은 세계를 초탈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계 자체의 한 구성요소다.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자네는 내가 안다는 것을 알고 있네, 나는 여기 호수 위에서 알았지. 알쏭달쏭한 장자와 그의 친구 혜서의 문답, 앎은 영혼처럼 천상계 어디에 있지 않고, 바로 여기, 호수 위에 있다는 말이다. 


세상은 하나로 연결됐을지도 모른다는 카를로 로벨리의 생각, 과학자는 문화와 예술, 철학에 관하여 아마추어일 것이라는 우리의 고정된 생각을 여지없이 깨드려 놓았다. 과학과 철학은 본디 한 몸의 다른 측면이라는 것을 카를로 로벨리는 주장한다. “평화“ ”전쟁“ ”배려“ ”연대“ ”희망“ 이 모든 것은 함께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됨은 그의 글 전체를 관통하는 사유이자,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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