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 아우렐리우스편 세계철학전집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이 책은 모티브 출판사의 세계철학전집 아우렐리우스 편으로 이근오가 엮은 것이다.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 중 마지막이었던 그는 스토아철학자였다. 마흔에 황위에 올라 재위 20년(161~180) 동안 두 명의 공동황제를 두면서 철학과 정치, 통치, 그리고 기나긴 전쟁을 해왔다. 결국,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영화<글라디에이터>(리들리 스콧 감독, 2000)의 장군 막시무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다가, 우여곡절 끝에 엉망진창인 아들 코모두스에게 물려주면서 로마는 저물어간다. 


그는 전장을 누비면서 누구보다 엄격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도 자신을 지키려 애썼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명상록>은 하루의 끝에서 자신의 마음 다잡기 위해 써 내려갔던 문장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인 군주의 이상 실현을 위해서 노력했다. 철학과 명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그가 내뱉은 말은 아마도 “나를 아프게 하는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가 아닐까 싶다. 


“옳지 않으면 하지 마라, 사실이 아니면 말하지 마라. 

마음을 쾌활하게 하며, 밖으로부터 도움을 구하지 말고, 남들이 주는 안식도 구하지 말라.

너는 스스로 똑바로 서야지, 똑바로 세워져서는 안 된다.”


이 책은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 것, 세상이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 말 것,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갈 것, 그가 자신에게 반복해서 말했던 조언들을 담아낸 것이다. 그가 남긴 문장들은 그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내면으로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절제하고 반성하고 흔들리는 신념을 다잡기 위한 채찍이었다. 엮은이 이근오는 이런 아우렐리우스의 조언들을 쉽게 풀어쓰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갈파했던 불확실성과 불안 유동적인 “액체 사회”에서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나” 자신을 붙잡고 스스로 똑바로 서기 위한 마음의 공부를 위한 게 이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 구성은 아우렐리우스의 아포리즘 36개를 5장으로 묶었다. 1장 ‘왜 당신은 상처받지도 않아도 될 말에 아파하는가’에서는 결국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외부가 아닌 나의 해석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한다. 내가 나를 상처받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2장 ’당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마라. ‘에서는 인정욕구를 버려라, 누가 알아주든 주지 않던 묵묵히 그저 내 할 일 하면서 살아가는 게 최고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품격, 내가 정말 잘살고 있다는 증거, 오늘의 생각이 내일을 만든다, 정말 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담았다. 3장 ’모든 관계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에서는 불가근불가원이다. 언제든 적당한 거리를 두라는 말이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가까운 사이라도 예의가 필요한 법,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책임지려는 오지랖은 인제 그만, 화를 내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 마음공부다. 수양이다. 4장 ’나를 지키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에서는 불완전한 사람을 대하는 자세, 기분이 너의 주인이 되게 하지 마라, 즉 냉철함과 사유를 끊임없이 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5장 ’삶은 선택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에서는 나다운 게 무엇인지 모를 때,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것, 책임은 혼자 지는 게 아니라 나눠서 지는 것, 비워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위기를 기회로 보는 사람, 즉 현자의 삶과 태도를 말한다. 


가장 깊고 어두운 밤은 곧 새벽이 온다는 의미 


사람이 가장 절망에 빠져있을 때, 세상이 온통 어둠에 갇혀있을 때, 바로 그때가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이다. 위기는 늘 기회를 품는 법이다. 무시하고 지나치느냐, 아니면 발견하고 붙잡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렸지만, 그 개인의 삶의 태도와 수양의 정도로 그 판단력은 높아져 간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정욕구에 휘둘리지 말라는 건은 또 무엇인가?,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늘 잘못됐다 할 수도 없고 늘 옳다고 볼 수도 없는 시시각각, 환경변화와 상황에 따라서 평가는 유동적이며, 변화의 가능성이 있음을... 일희일비하는 사이에 “나”를 잃어버리고 내 자리에 차지하는 것은 남들이 원하는 껍데기인 나만이 있을 뿐이다. 내게 일어난 일은 나를 위한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은 나를 위한 것이다


아우렐리우스의 말 “그런 생각이, 쾌락이 우리를 속이는 방식이다. 눈앞의 즐거움을 진짜 좋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운명의 실타래, 새옹지마처럼, 나에게 벌어진 일,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부정보다는 긍정으로 내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것을 미리 훈련한다면, 후일 오늘의 일로 큰일을 막을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러기에 내게 일어난 일은 나를 위한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말이다. 우리가 무심코 뱉는 말,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실은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실패나 고통도 언젠가는 반드시 제 역할을 하는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하면 지금의 고통은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극복, 초월)가 보인다. 


“우리는 타인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보다 그들의 의견에 더 신경 쓴다.” 탁견이다. 이는 곧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듯, 내가 이들의 말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나”를 바로 잡아 세우는 일에 훼방을 놓는 셈이니, 결국 나를 아프게 한 것은 나의 해석이었을 뿐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노자의 “자중자애”와 같은 맥락이다. 내 삶과 인생의 주인공은 “나”일 뿐 그 누구도 아니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