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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판소리 - 조선의 오페라로 빠져드는 소리여행 ㅣ 방구석 시리즈 3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조선의 오페라로 빠져드는 “방구석 판소리”
오페라라... 서양의 창극과 조선의 그것은 다르지 않나. 왜 부제에 조선의 오페라라는 표현을 썼을까?, 책을 받아들고 네이버사전을 찾아보니, “광대 한 사람이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추어 서사적(敍事的)인 이야기를 소리와 아니리로 엮어 발림을 곁들이며 구연(口演)하는 우리 고유의 민속악”이라 풀이했는데, 한자로는 창극, 극창이라한다. 서양의 오페라와 흡사하다. 아마도 설명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 구성은 5부로 1부 ‘조선의 오페라- 판소리 다섯마당-, 심청가, 흥보가,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 2부 ’잃어버린 조선의 아리아들- 타령 네 마당- 옹고집타령, 장끼타령, 변강쇠타령, 숙영낭자타령, 3부 ‘삼국시대 뮤지컬-향가-’ 도솔가, 서동요, 헌화가&해가, 처용가, 원가, 4부 ‘고전의 발라드-고전시가-’ 하여가&단심가, 임제의 한우가& 한우의 회답시, 황진이와 소세양 이야기, 홍랑과 최경창 이야기, 5부 ‘달빛 아래 붉은 실-고전소설-’ 이생규장전, 옥단춘전, 금방울전, 정수정전‘ 이 실려있다. 제목만 들어본 것들도 있어 흥미롭다.
판소리의 기원과 사회적 역할
판소리의 기원은 조선 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 시기에 민중의 삶과 감정을 담은 이야기들이 구술 형태로 전해져 왔다. 판소리는 일반적으로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리꾼은 다양한 목소리와 표현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러한 특징은 판소리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의 종합 예술로서 발전하는 데 이바지했다.
판소리는 그 자체로도 중요한 예술이지만, 사회적 역할 또한 컸다. 특히 판소리는 민중의 삶을 반영하고, 그들의 고난과 희망을 노래하는 매개체로 기능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억압된 민족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판소리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었다. 판소리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문화적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판소리는 한국의 전통 문화유산으로서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현존하는 판소리 다섯마당, 효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동정과 배려, 자기 결정성, 권력의 생리, 민초의 삶
판소리는 조선 중기와 후기 동안 더욱 발전하였으며, 특히 18세기에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 등 여러 가지 대표적인 판소리 작품이 탄생한다. 이 시기는 판소리가 정형화되고, 다양한 기법과 표현 방식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판소리는 민속적인 요소와 더불어 사대부와 양반층의 문화, 당대 최고의 가치였던 “효”를 비롯한 삼강오륜의 질서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예술적 깊이, 그리고 방향은 민속 공연을 넘어, 한국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중요한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한다.
심청의 “효”, 그리고 효의 미덕을 종교적 테마와 결합시킨 점을 지은이는 눈여겨 봤다. 효의 실천이 단순히 도덕적 가치에서 벗어나 신의 은혜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서사라고 본 지은이의 설명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아비보다 먼저 목숨을 내던진 심청은불효이지만, 결국에는 황후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뜨게 만든 심청의 원동력은 아버지를 위한 효, 그것 하나뿐일 것이다.
흥보의 “우애”와 “권선징악”의 심층에 깔린 인문학적, 철학적 요소, 고통과 희망, 사회적 약자에 관한 동정, 정의와 부조리를, 춘향가 “의리”는 자기 결정권, 심리적으로는 자기 결정성 “나”라는 존재인식과 이어지는 한편, 사회적 계급과 권력의 문제를 다룬다.
수궁가의 별주부와 토끼가 상징하는 의미는 권력의 생리를, 강약의 갈등을, 사회의 복잡한 관계와 권모술수를 우화적으로 표현한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의 “적벽가” 지은이는 위,촉,오의 유명한 인물보다는 이름없는 민초, 군사들의 고충을 적벽에서 집어내었다.
하여가와 단심가
이방원은 이성계와 대척하는 정몽주를 향해, <하여가>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성황당 뒷담이 무너진들 또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하여 죽지 않은들 또 어떠하리" 정몽주는 유명한 <단심가>로 방원의 제안을 거절하는데, "이 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211~212쪽), 이방원은 포섭할 수 없다면 제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면, 살려둘 수 없는 두려운 적 정몽주를 죽인다. 그리고 그의 앞 길을 막아선 정도전도 죽인다. 하지만, 정몽주는 신원된다. 그의 충정과 의리는 보편적이었기에, 그리고 문묘배향하는데, 이방원의 무서움은 적이지만 인물평가는 냉정하게, 그리고 이를 알리는 태도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막힌 한 수라는 생각이 든다.
처용가, 고통을 넘은 용서의 춤의 새로운 해석
아내를 범한 역신을 본 처용. 어쩌면 역신은 그 시대에 두려웠던 것이나 문제시 됐던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의 역신은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 두려움의 대상은 다양해지고 또 넓어졌다. 처용, 당대의 역신이란 상징적 존재로서 타락한 화랑의 후예, 병든 도시의 한량이나 패륜아였을지도, 그렇다면 여전히 처용가는 과거의 한 때, 그때 그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일수도 있다는 점이, 처용가를 그저 교과서 속 고전으로 박제된 오래된 향가가 아니라 터벅터벅 시대의 경계를 넘어 현재로 온 처용으로 살아난다.
이 책 안에 실린 이야기는 그저 우리가 아는 그런 판소리이나 타령, 향가나 고전 소설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삶의 문학과 예술이란 점을 드러내고 있다. 낡고 익숙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가치, 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누구의 말이 생각나게 하는 이 책은 우리 선조들의 삶 속으로 끌어당기는 타임머신처럼 다가온다.
방구석의 판소리 역시, 이전의 “방구석” 시리즈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뮤지컬, 오페라에 이어 판소리까지, 지은이의 역량이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당연하다 싶은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들어맞는다. 딱 그만큼, 방구석 시리즈는 눈높이를 한층 높여준다. 인문학적 접근으로 새롭게 톺아본는 책,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