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장동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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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회에서 갈릴레오 재판의 잘못을 인정했다. 세계의 중심은 신에서 인간에게로, 바오로 6세는 메시지를 통해 인간다운 더욱 더 인간답게,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그러나 아직도 요원하다. 이 책은 역사의 증언으로 그림을,,,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의 전한다. 끝낼 수 없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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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장동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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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지은이 장동훈은 가톨릭 사제다. 바티칸 우르바노대학에서 교의신학과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18세기 교황청의 동아시아 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평범한 사제의 길을 보다는 교회의 대사회창구 사회사목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인천가톨릭대학에서 그리스도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이 책은 지은이가 몇 년에 걸쳐 매체에 기고했던 그림에 관한 글들을 출판사는 명화 속 교회사 장면으로 엮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은이는 종교화가 아닌 세속화를 고집했던 모양이다. 여기에 적은 그의 변은 종교화, 세속화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구분의 엄격성과 그 기준은 그리스도교 문화가 유일한 문화이자 삶의 당연한 전제, 즉 신의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구교와 신교를 둘러싼 공방들, 이합집산을 거처 독일에서 종교의 자유, 종교 관용이 성문화돼, 사실상 문화적 전제로서 그리스도교가 개인에 따른 선택이 됐음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는 보편성을 잃고 하나의 ‘특수’로 고립돼갔으며, 신의 시대의 종말과 인간 시대의 탄생이라는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고….

 

 

        귀스타브 카유보트 <대패질하는 사람들>(1875년) 파리오르세 미술관 소장

 

지은이는 이런 변화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종교화와 세속화의 구분이 별 의미 없음을, 그러나 교회는 스스로 완전한 사회로 정의하면서 완전하지 않은 세상과 애써 구분 지으려 했다. 성 속이라는 이분법적 대결 구도가 그것이다. 1960년에 이르러 4년 가까이 진행됐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런 구도를 사실상 깨뜨리려 했다. 아니 깨뜨렸다. 하지만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튼, 세상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 것이 교회 사명이라고 밝힌 교황 바오로 6세의 선언….

 

이 책은 4장으로 이뤄졌고, 1장 ‘나와 당신의 세상’ 2장 어둡고도 빛나는, 3장 종교 너머의 예수, 4장 혼미한 빛 순이다. 1장에서 다루는 작가 에드워드 호퍼, 자크 루이 다비드, 주세페 펠리차 다볼페도, 리베라 등의 그림을 싣고 있다. 특히,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불안한 풍경’ 에 관한 지은이의 코멘트는 공감한다. 호퍼는 인간은 뿌리내릴 곳이 없이 부유할 뿐이다. 카페, 술집…. 모두 언젠가는 떠나야만 하는, 결코 주인일 수 없는 공간에 계류할 뿐…. 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의 그림은 현대 문명이 껍데기임을 말한다. 기술발전이 도시의 시스템과 외형을 바꿔놓았지만, 정작 사람들과 생생하게 결속된 게 아니라 박물관의 유물처럼, 더는 사용하지 않게 된 벽난로처럼 현재의 삶과 어떤 연결고리도 없이 그저 눈요기…. 인간은 풍요로워졌지만, 헛헛해졌고 안전한 도시는 만들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안락한 집’을 얻지 못했다고, (34쪽)

 

 

기계문명은 인류를 더 풍족하게 해주었지만, 호퍼의 지적대로 소외됐음을, 인간 시대가 열렸지만, 인간은 실상 호퍼의 군상처럼 고독하고 허무해졌다는 지은이는 지적은 참으로 날카롭다. 이는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한마음사, 2009), 데이비스 리스먼의‘고독한 군중’(동서문화사, 2016)이란 표현을 같은 맥락이다. 신자유주의 물결은 이들 삶을 더 힘들게 한다.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존재할 이유

 

 

갈릴레오 재판에 관해 가톨릭교회가 2000년에 잘못된 것임을 인류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다….

이 재판에 대해 교회의 잘못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여기에 과르디니의 색다른 견해가 있어 살펴본다. 그는 재판의 부정적 측면을 지나치지는 않는다. 다만, 왜 갈릴레오에 대해서 완고한 태도를 고집했는가? 하는 이유다. 그는 창조의 중심에 땅이 있고 스스로를 그 동심원 한가운데의 존재라고 여겨왔던 세계관의 붕괴 이후 벌어질, 인간에게 찾아올 끝 없는 허무와 상실감을 교회가 무의식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윤판화들, 형님, 범놀이, 노동의 새벽 등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끝낼 수 없는 대화의 시작이다. 

 

 

신의 세계에서 인간 세계로,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단순히 관점의 변화일까? 그렇지 않다. 모든 가치가 뒤바뀐다. 인간 세계에서의 중심은 가치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오늘날 그 모습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세상의 희망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이 대목을 바오로 6세는 명확히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세상을 더욱 인간답게…. 라는 메시지의 배경이 아닐까?

 

펠리차의 네 번째 계급은 실로 오늘날의 현상을 마치 예견한 듯, 아니 당대의 산업화 물결 속에 변해가는 인간군상을 그대로 포착했다. 그림은 시대를 그려내기도 하지만, 프로파간다로서도 역할을 해낸다. 그림의 갖는 힘의 이중성이라 할 수 있겠다. 

 

 

종교가 정치로 해석될 때

 

 

종교적 처신이 정치적 입장으로 해석되던 시대(16세기), 화가 홀바인은 종교화가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끝내는 초상화가라는 비종교적 비정치적 영역으로 도망쳤다. 그가 그렸던 종교화는 그를 독일 종교개혁 미술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도록 만들었다. 그의 사고는 어느 쪽이었을까, 홀바인이 그린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은 신을 가리킬 만한 그 어떤 장치도 없이 오로지 육신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교회의 모든 장식을 걷어낸 신교의 새로운 조형 언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처참한 죽음은 종교 너머에 있는 신의 모습일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오윤과 한국, 홍성담의 판화들,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가능성

 

 

한국 미술을 현실에 한없이 무기력하고 오래 신형식을 맹종하며, 실체 없는 순수주의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진단한 오윤과 그의 동료들, 김지하와 평론가 김윤수가 참여해 ‘현실동인’을 만들고 현실 동인 제1선언과 함께 준비한 전시회가 모교(서울대) 교수들의 고발과 당국의 제재로 무산된 사건, 이것이 민중미술의 기원으로 기억된다. 

 

형님, 범놀이, 춘무인 추무의 등, 노동의 새벽, 도깨비 등 오윤의 판화예술은 미래적 삶의 가공치를 향하면서도 거기에 못 미치는 세상에 대한 연민의 정에서 비롯된 유홍준의 평, 하지만 작품에 관한 오윤의 해명은 없다. 

 

 

대중적이면서 대중적이지 않은 

 

근세, 근대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가장 큰 작품의 의뢰인이었던 가톨릭교회를 잃어버린 프로테스탄트 지역의 화가들에게 새로운 환경은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같은 장르화의 길을 열었고, 이 세속화의 한복판에선 이탈리아 바로크와는 다른 내면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빛과 어둠으로 짠 렘브란트와 같은 숭고화 중교화가 피어나기도 했다. 

교회가 선택한 바로크라는 조형 언어는 대중을 향한 것이기는 하나 표현 방식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책의 앞 뒤 표지

 

지은이는 그림을 통해서 교회사를 보기보다는 세속화를 통해서 인간의 삶을 더욱더 인간답게라는 2차 바티칸 공회에서의 바오로 6세의 메시지가 아직도 여전히 그리고 끊임없는 과정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성과 속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세속이 곧 교회사의 한 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신의 세계에서 인간 세계로의 이행 과정에 등장한 산업화 사회는 인간을 소외시켰고, 분자화 고립화를 초래했다. 노동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활동이다. 이 과정에서도 가치 생산은 왜곡되어, 노동의 소외를 만들어 냈다. 신자유화의 질서란 인간의 욕망을 끝없이 확대 재생산 발전해나가는 악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끝낼 수 없는 대화는 바로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을 다시 새겨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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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을 뛰어넘는 그릿의 힘 - 어린이를 위한 그릿 워크북
엘리사 네볼신 지음, 정미현 옮김, 주디스 S. 벡 서문 / 이너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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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그릿 워크북

<그릿의 힘>의 그릿이란

 

 

그릿은 투지, 기개, 용기, 집념을 가리키는 것으로 미국의 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가 만들어 낸 용어로 성공, 성취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투지, 용기를 뜻하며, 재능보다는 노력의 힘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마치 에디슨이 남긴 유명한 말,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태어난다. 이 말을 뇌과학자 정재승은 또 달리 해석한다. 99% 노력은 당연하고, 1%의 영감 또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그 비율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어느 정도 끼만, 아니 전혀 없더라도 부단히 노력한다면 보통 사람들도 영감은 있다. 즉 일에 몰입할 때 즐거움이 영감이다. 노력, 힘쓸 ‘노’에 힘 ‘력’ 애만 써서 힘을 기르려고 하면, 그 힘의 의미는 무엇일까, 바로 여기에서 힘에 의미를 부여하는 영감, 즉 ‘즐거움’에 곁들여질 때, 폭발하는 것이다. 화룡점정이라 할까,

 

이 책은 타고난 재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는 있지 않다. 우리가 아는 재능(달란트,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그 무엇)이 있으면 조금 더 성취나 성공을 앞당길 수 있을지라도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노력하는 힘, 즉 왜 노력해야 하는가를 알면 성공, 성취는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서문은 아론 벡(인지행동치료의 선구자)의 딸 주디시 S. 벡이 썼다. 지은이 엘리사 네볼신은 벡 인지행동치료연구소의 연구원이며 인지치료학회 전문의다. 이 책은 인지행동치료(CBT) 여기서 지금(Here and Now) 이론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서문에서 CBT의 핵심이론은 어떤 상황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는 이유가 상황 자체보다는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지각에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느끼는 것은 대개 부정확하거나 쓸모없는 것들이라 하는데 이런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릿은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자질이며, 이러한 성향은 어떤 상황에서나 항상 나오는 반응은 아니기에, 상황에 대한 반응을 변화시키는 것, 섣불리 포기하지 않는 것 등이 필요하며, 이 책은 CBT의 중요한 개념을 아이들에게 적용하여 보여주는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구체적인 훈련을…. 체력 키우기, 관점 유지하기 낙관적 사고하기, 문제 해결하기, 변화에 대처하기, 유연성 훈련하기, 자기 목소리 내기, 좋은 관계 구축하기 등이다.

 

구성은 28개 연습으로 돼 있다. 그릿수치를 점검하고, 변화하는 뇌에 대해서 알아보고, 사고방식 작동하기, 그릿작동 등이다.

 

이 책은 실전 CBT다. 연습을 통해서 훈련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연습21 관점 점검을 보자, 설명문이 나오고, 여기에 필요한 알아두기(이론적 내용을 풀어서 설명한다), 연습하기에서는 질문이 내놓는다. - 이 일이 두 시간 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이틀 후에는, 그리고 감정이 일시적이란 점을 기억하는 게 왜 중요할까? 등으로 자기 생각을 확인하기를 연습해본다. 다음으로 이 내용을 정리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코너를 배치하고 있다.

 

이 책은 그릿, 끈기와 용기가 왜 필요한지,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행동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 보다, 이런 류의 책을 접하면서 행동, 끈기,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부여도 꽤 의미 있겠다.

 

 

<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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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발견 365 - 오늘부터 1년, 내 삶의 기준을 찾아가는 연습 행복의 발견 365
세라 본 브래넉 지음, 신승미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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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날마다 행복을 기원하는 글 “365”는 코드다.

 

행복을 발견하는 365일, 오늘부터 1년, 내 삶의 기준을 찾아가는 연습

연습장치고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게 조금은 너무하다. 하루라도 쉬는 날이 없다니….

목차를 보는 순간, 그리고 띠지에 적힌 문구,

 

“세상의 목소리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면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다른 이의 시선, 주변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내 안의 나와 함께 소통하면서 내 중심을 잡는다면, 이 또한 “도(道)”를 깨침이다. 내 안의 나와 소통, 나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소통하는 것이다(로버트 그린 <오늘의 법칙> 까치, 2021)

 

도마 안중근이 여순감옥에서 했다는 말,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

 

코로나 19 재난 상황이 썩 나쁘지만 않다. 궁하면 통한다고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찾고, 소통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조금 늘었기 때문이다.

 

남과의 경쟁은 그 전제가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손자가 전쟁이 일상이던 시대와 시절을 살아왔기에 그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겠지만, 지금 손자의 후예들은 칼을 들고 싸우지 않는다. 나와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투쟁을 한다. 아니 소통, 이해를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밖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내 안에 나와 소통, 평화를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고, 아니, 목차 중에서 눈에 띄는 문구를 좇아 펼쳐 읽고 보고, 온종일 선방의 수도승처럼 화두 삼아 되뇌기를….

 

1월1일에 눈이 간다.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이 있는가?” 내게 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게 물었다. 답은 곧장 오지 않는다. 지은이는 꿈을 꾸는 자만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 문구, 혹시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내 안에 나에게 들려주던 말이 아니었을까, 전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아마도 나는 이 책의 함정에 빠진 듯하다. 두껍던 책이 아무렇지도 않게 됐으니, 어느덧 2일로 넘어가 “얼마나 자주 당신은 그저 묻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온갖 질문들을 가슴에 묻어둔 채 외면했는가?”라는 물음이다. 헤아려본다. 딱 하나다. 나를 과소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중심축이다. 그런데 정작 그 기준이 무엇인지, 또 꼬리를 문다. 기준이 있어야 잣대가 있어야 과소인지 과대인지 알 수있지 않는가, 기준은 또 제대로 된 것인가, 뭐로 기준을 평가하지? 이렇게 옆길로 한참 세대가, 되돌아오기를 몇 번….이 책은 내게 말한다. "내 행복의 기준은 나만이 세울 수 있다"고,

 

 

완벽주의는 최고의 자학이다...완벽주의는 나를 나로부터 소외시킨다. 내가 나를 소외한다.

 

2022년 1월 1일 나는 또 이 질문을 해야 할 듯하다. 아직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꿈이 하나여야 하나, 둘이어야 하나, 여러 개이면 안 될까, 내가 꾸는 꿈은 이룰 수 있나, 없나 하는 따위의 의문이 또 머리를 쳐든다. 시나브로 1월의 이야기를 통과한다.

 

1월 3일, 나는 남은 인생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또한 답하기 어렵다. 회피하고 싶은 물음이어서…. 4일,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 맞다. 이 말은 어르신들이 해주시던 말씀이었다.

 

이렇게 읽어나간다. 아직 다 읽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나도 모르지만, 아무튼 쉽게 읽힌다. 인생에는 리허설 따위는 없다. 인생이 연습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은 지금도 내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제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독법을 생각해본다.

 

1월, 누구나 그렇듯 올 한해 잘 살아야지, 하고픈 일도 하고…. 2월, 3월 일상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 보자. 3월25일에 눈길이 간다. 옷은 넘쳐나는데 왜 항상 입을 옷이 없을까? 기분 때문인가, 아니면 입어야 할 장소가 바뀐 탓일까, 내 옷장만 차지하고 있는 양복처럼 말이다. 4월, 나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달, 진짜 그리됐으면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읽어나가자. 5월 화창한 봄날, 내 삶의 질서를 챙겨보자. 1년 12달 계절로는 봄이요, 생애주기로는 청년기다. 내 안의 것들을 하나하나 톺아보는 것도 좋겠다.

 

6월에 행복의 여지를 찾고, 7월에 현실과 이상을 끌어당겨 가까이…. 힘든 달일 수도 있겠다. 인생의 황금기로 향하는 길목이다. 유혹도 포기도 새로운 용기도 혼란이요 카오스다. 그래도 그 안에 질서는 있게 마련, 8월, 진정한 재능을…. 불혹인가, 흔들림이 없는 시기인가, 9월, 천명인가,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열정을 되살리는 달, 그렇다. 내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는, 가장 햇볕이 따가운 알곡이 여무는 시간이다. 이렇게 해서 10월에서 12월로…. 또다시 찾아오는 새해를 위하여

 

행복한 나날 365일, 행복을 발견해가는 365일, 나를 찾는 시간, 내 꿈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아침들, 그리고 성장해가는 나를 대견스레 여기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

이 책은 침대맡에 책상 위에, 식탁 위에 눈에 늘 보이는 곳에 두고 읽고 생각하고 또 한 번 진지해지는 그런 감정변화의 연속이 되는 영양제 같은 것이다.

 

 

어제 읽었던 부분을 확인한다. 어제와 오늘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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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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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의 세상, 왜곡된 진실이 진실인 사회, 오늘날 우리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다

 

 

주인공 윈스턴이 사는 오세아니아 지구, 거기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에어스트립 원의 중심도시 런던, 그가 사는 맨션 현관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커다란 포스터의 얼굴, 빅브라더...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구속, 무지는 능력이라는 구호, 마치, 멸공 통일이란 구호가 온 사방에 전봇대마다 붙어있던 한국의 70년대를 생각나게 한다. 승공, 멸공처럼 전쟁해야 평화를 찾고, 자유는 예속이며 무지야말로 힘이다. 라는 생각을 모두에게….

 

빅브라더를 타도하자고 노트에 쓰던 윈스턴, 그는 오세아니아의 진실부에서 근무한다. 진실부는 문체부와 교육부를 묶어 놓은 것이고, 평화부는 전쟁, 군대다. 다정부는 사법, 복지부는 경제를,

윈스턴은 노트를 샀다. 일기를 써보려고, 이 세계에서 일기를 쓰면 불법, 아니 법이 없으니, 불법이고 합법이고를 논할 기준이 없다. 아무튼, 일기 쓰다 걸리면 강제노동수용소 25년,

 

 

헤이트, 세뇌, 생각이란 것

 

 

또 이 세상에는 헤이트 2분간 누군가를 증오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민중의 적 엠마누엘 골드스타인, 그의 얼굴이 사무실 끝에 있는 텔레스크린에 비친다. 변절자요 배교자인 골드스타인은 오래전에 당 지도자의 일원으로 거의 빅브라더와 같은 지위였지만 반혁명 활동에 참여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사람들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췄다. 증오의 대상이요, 조롱의 대상이었지만,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당에 대한 모든 범죄, 배신행위, 방해 공작, 이단적 주장, 일탈 행동들은 모두 그의 가르침에서 파생됐다. 사상경찰이 요소요소에 숨어 모두를 지켜본다. 윈스턴 그는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생각이란, 제 맘이지만 이를 글로 표현하는 순간 범죄다. 윈스턴은 인류 유산을 지키는 일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라고 여긴다. 당이 내린 명령은 눈과 귀로 얻은 증거를 다 무시하라고 한다. 당이 내린 핵심명령이다. 2+2=4가 아니라 5라도 명령이면 진실이다.

 

 

윈스턴은 모든 것을 관통하는 아래와 같은 글을 쓴다.

 

 

미래에게, 또는 과거에게. 생각이 자유로운 시대에게,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고 외롭게 살지 않는 시대에게, 그리고 진실이 존재하고 한 번 일어난 일이 없었던 일로 되지 않는 시대에게, 획일적인 시대로부터, 고독의 시대, 빅 브라더의 시대, 이중사고의 시대로부터……. 인사를 보낸다.!. (45쪽)

 

 

조지 오웰 아니 에릭 아서 블레어가 47살에 폐결핵으로 죽기 전 마지막 순간 온 힘을 다해 쓴 소설 ‘1984’의 핵심이다.

 

 

이 책의 부록이라 표시된 신조어는 부록이 아닌 듯하다. APPENDIX, 보유(補遺)다, 즉 가지고 있다. 아무튼, 재밌는 부분이다. 오웰의 상상력과 언어에 관한 지식을 쏟아부은 듯, 영국 사회주의(INGSOC)의 이념적 필요에 따라 고안된 언어다. 2050년에는 영어를 대체하고 전면적으로 사용될 언어다. 1984가 다른 소설과 전혀 다른 영역이랄까, 구분되는 점이다. 언어철학까지…. 예를 들어보자 이중의미가 있는 단어는 쓸 수 없다. “자유로운”은 신어지만 단지 이 개는 이(蝨)가 없다. 즉 이의 공격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예전의 의미인 정치적 자유나, 지적 자유란 의미는 개념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은 ‘그렇지만 전부 괜찮았다, 투쟁은 끝났다. 그는 자기 자신에 승리했던 것이다.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473쪽).

 

빅브라더를 죽이고 싶다던 윈스턴이 왜 마지막에 빅브라더를 사랑했다고 오웰은 썼을까? 반어법?, 주인공 윈스턴에게는 진심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은이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신조어, 그리고 언어의 힘, 언어란 무엇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이중사고”라는 점, 언어라는 게 무엇인지, 일제 강점기, 조선어 말살정책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상상 속의 오세아니아는 스탈린의 빗댄 동물농장의 연장선인가, 인민 통제, 절대적 사고, 세뇌, 끊임없는 사상검증과 감시, 체제 유지, 이를 위한 신조어 정책, 딱히 뭐라 표현하기는 모호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언어정책 너머로 신조어가 보인다. 언어는 사람의 생각, 사유하는 도구다. 말 속에 공통된 요소가 있고, 개념이 존재하며, 이를 통해 사상을 공유하고 소통을 한다. 아무리 통제의 고삐를 틀어쥐었더라도 마지막 완결 구조는 같은 생각이 같아지게 하는 것, 이중사고나 이중의 의미를 지닌 언어는 결국, 사유하게 하고, 완벽, 완전통제의 틈이 생기게 하는 독이란 생각이 든다.

 

1984는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가 팔린 책이다. 언어권에 따라(65개 언어) 해석되었고, 많은 사람이 읽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각각의 언어로 본 1984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하는 궁금함이 밀려온다.

 

조지 오웰은 인도 벵골의 하층 관리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명문 학교에 다니다 중퇴하고 버마(미얀마)의 경찰 부지휘관으로, 인도에서도 근무하면서 영국의 식민지에서 현지민들을 부리고 탄압하는 일을(식민지악)…. 방랑 마치 김삿갓처럼…. 파리와 영국에서 노숙자와 함께 지내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쓰기도 하고, BBC, 트리뷴지 편집장…. 스페인 내전 참가,

 

 

그의 글은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의식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또한 작가로서 정치적 글쓰기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의 반파시스트 의식은 사회주의자로 활동하게 하였으며 스페인 내전에서 스탈리니즘의 본질을 간파하고 비판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에서 현대사회의 바닥에 깔린 악몽과 같은 전체주의의 풍토를 유머와 풍자로….

 

 

1984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이 책이 나오기 전, 3명의 번역자가 각각의 감각으로 번역을 했다. 이정서의 번역본(새움, 2020)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빅브라더 보다, 부록<신조어>가 재밌다. 언어란 무엇인가, 사람의 사고방식, 가치, 체계, 사유의 세계까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어서 말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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