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입맛 경제밥상
김상민 지음 / 패러다임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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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입맛 경제 밥상

 

역동성을 잃어가는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책은 한국 사회 전반을 톺아보려 한다. 지은이는 입법부와 경제신문의 산업부장 등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를 거시적인 안목에서 들여다보는 노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쓴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국민의식전환이라는 깊은 함정

 

지은이의 문제의식,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함정, 가장 깊고 피하기 어려운 함정이 ‘국민의식 전환’이다. 의식 현재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들, 오해와 편견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살아남을 궁리 눈치, 나와 내 피붙이가 우선이고, 공익이나 사회적 기여와 봉사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군사쿠데타 이후 더해지는 독재의 세월 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사회변혁을 물결 밑에 흐르는 군사문화와 전체주의, 개인주의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사회적 책임 또한 당연히 나와는 먼 의무인 듯, 탈세하다 들키면 토해내고, 안 들키면 그냥 쓱싹하는 게 현명한 처신이라고. 세상에 가장 큰 힘은 ‘돈’이다. 모든 가치척도가 인간이 아닌 돈, 말 그대로 자본주의다. 아주 천박한 자본주의다. 따뜻한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등, 체제의 수정을 주장하는 이들의 꿈과 희망은 망상에 그치는가, 

 

너는 커서 “돈 많이 벌어라” 가 새해에 덕담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은 곧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다. 

 

지은이는 국민의식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다고 하는가?, 과거를 통해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듯,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 변혁을 가로막는 진짜 원인에 대한 규명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읽는다. 지은이는 아마도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안전망과 관련된 세금 문제를 다룬다. 

 

국민의식 바꾸기 프로젝트 1부는 프롤로그로 정치란 무엇인가, 기본 이념과 원칙을 확인한다. 2부에서는 정치의 실행방안, 3부 국가의 생존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이뤄지는 것임을 강조했다. 4부 시장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제5부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끝나지 않은 전쟁, 재벌과 노조 문제, 노동시장과 부동산시장에 대한 실체를, 6부에서는 사회안전망 구축에 필요한 복지와 복지자원마련을 위한 세금징수 등

 

정치, 누가 누구를 어떻게 다스리는가?

 

정치, 누가 누구를 어떻게 다스리는가, 대의정치의 금권화, 표류하는 정치, 대안은 무엇인가,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정치란 , 그 사회의 기본원리를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는가에 달려있다. 지은이는 자유, 평등, 연대에 대한 개념과 이론을 여러 논거를 들어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자유를 자기 삶을 위한 가장 본질적인 가치로 들고 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의 구별이 어려운 우리 사회, 물론 개인주의 개념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기에 그럴 수 있겠다. 여성에 관해서 보자. 고대로마, 인도, 중국, 뭐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조선 시대 여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는 게 도리인 가부장제를 사회질서의 근간으로 삼았다. 또한, 불평등 역시, 운명이요, 숙명이었다. 유교 질서의 사농공상의 계급 질서, 또한 이름을 지을 때도 많은 지역에서 ‘누구의 아들이고’란 의미의 ? 이븐 등으로…. 우리나라 이름이 항렬의 돌림자를 쓰듯, 

 

개인주의 개념을 제대로 실현하려는 사회와 달리,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할 환경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일까, 일제강점기,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 반공주의, 2차례에 걸친 군부 쿠데타의 영향은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가족주의? 전체주의?

 

우리 사회의 기본적 시스템은 ‘가족’이라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학자들도 긍정한다. 사회생활 하면서 흔히 ‘형님’ ‘동생’ ‘삼촌’ ‘언니’ ‘오빠’ 등의 호칭이 그러하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개인은 어려운 개념이다.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가 착종한다. 가장 대표적인 말 ‘우리가 남이가….’다.

우리 사회는 전체주의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화법은 쓴다면 개인주의는 결단코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정서적으로 가족주의 전체주의다. 

 

밀턴 프리드먼은 <선택할 자유>에서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이 평등의 정확한 의미라 했다. 불평등 담론에서 기회의 평등인가, 결과의 평등인가 하는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출발선이 같아야 능력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 그런데 능력이란게 특정 배경과 조건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라면 이는 정당한 것인가, 원천적으로 기회의 평등이란 자체는 강학상의 이론에 그친다.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물론 존 롤스의 평등주의 자유주의와 마이클센델의 정의론, 공동체의 선 등의 이론 등을 풀어서 설명한다. 자유, 평등과 연대, 개인주의 등에 대한 확실하게 관념하는 것은 의식전환 앞에 놓인 함정을 건너는 하나의 방법이다.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 진짜 진보와 진짜 보수는 참으로 귀하다. 

 

보수는 나쁜가, 진보는 좋은가, 아직도 이분법적인 사고가,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는 진보보다는 보수가 필요하다. 보수란 가치 있는 올바른 것들을 제대로 계승하고 발전, 시대 상황에 맞게 풀어나가는 유연성을 포함한 것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지 않은가, 진보 앞으로 나아가지만 않는다. 되돌아보고 문제점을 보강하고, 진보가 있은 연후에 보수가 따르는 것이지, 무조건 진보냐 보수냐 하는 것은 본질 왜곡이다. 진보도 보수도 실사구시에 기초해서 미래의 변화에 실용적이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열린 관용, 뭐 똘레랑스라고 해두자. 이는 다수를 따르되 소수는 존중돼야 한다는 말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극복하는 것 또한 함정을 피해 나가는 하나의 지혜다. 

 

자원분배는 정치 권력에 의해서 왜곡되기도 한다. 

 

동서양의 역사에서 정치 권력은 세금을 받기만 할 뿐 반대급부는 없다. 정치 권력은 재산을 빼앗고 착취한다. 좋은 공무원론은 허상일 뿐이다. 공무원은 국가의 공복이 아니라 그저 생활하기 위한 직장으로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택한 것뿐이다. 이를 너무 과대평가, 과소평가할 필요 없다. 다만, 공무원은 본래 해야 할 공무에 충실했느냐 안 했느냐로만 따져야 한다. 이미 공무원의 사회적 대우는 어떠한가, 선망의 직업인가, 최근 원체 직장 구하기가 어려워 평생 안정된 직장이라는 이미지만 앞에 보일 뿐, 국민을 위한 서비스를 하는 임무를 지닌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 역시 의식의 함정 중 한 갈래다. 정부가 모든 일을 다 해결하는 해결사는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의식해야 한다. 

 

대기업의 보신주의는 신자유주의 흐름이다

 

아웃소싱, 97년 금융위기로 IMF 구제금융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체제구축이 시작됐다. 눈에 보이는 신자유주의 전파소라는 빌딩은 세운 건 아니지만, 이미 시스템 내에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이식되면, 합리, 효율, 성과 만능주의 돈이 안 되는 것은 하지마!!, 국가는 작은 정부를 기업에는 자유를, 맘껏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내 하도급이란 편법을 쓰던 어쩌든 기업 시민으로서 의무 운운은 불필요한 규제다. 지은이는 한국 재벌은 핏줄에서 핏줄로 이어지는 왕좌처럼….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은이는 생산거점의 외국이전 등 여러 문제를 들고 있다(300쪽 이하)

 

기본소득은 틀렸다. 기본복지다. 세금, 종부세 등은 최종부담자는 개미들이다. 

 

지은이는 전방위적으로 한국 사회를 분해해보고 톺아보고 있다. 이 책은 차분히 각 장마다 관련 참고서적을 옆에 두고 읽는다면 아주 훌륭한 정치경제학 강의가 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 실린 지은이의 주장이 옳고 그름은 중요치 않다. 많은 문제 제기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그려낼 수 있는 하나의 조건과 환경에 관한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수험생을 비롯해 한국사회의 정치경제를 알고 싶은 청년들, 일반 시민의 교양 도서로써 활용될 수 있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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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 통합을 보다 - 문명전환기에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비전과 지혜
서동석 지음 / 에머슨하우스교육연구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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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대전환

 

이 책은 지은이 서동석이 그간 펴냈던 책들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하는 화두를 가지고 쓴 듯하다. 그는 미국의 정신이라 부르는 에머슨의 사상-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갈등을 하나로 융합-을 바탕으로 동,서양의 사상에 자리한 키워드 “역(易-바꾸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19세기의 혼란스러운 미국과 현재의 우리 사회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온고이지신

 

우리 앞에 놓은 과제는 삶의 모순과 갈등을 조율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데 있고, 우리는 과거의 궤적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먼저 예상할 수 있기에, 회고하고, 상고해보자는 논지다. 

 

이 책은 10장으로 구성됐고, 1장에서 에머슨의 동서융합론을, 2장에서는 코로나의 역설, 생존 패러다임의 전환을 말하며, 3장에서 디지털혁명, 정치 역학의 변화, 4장 음식 남녀, 인간사회에 대한 공자의 결론을, 5장에서 기물자기, 물질문명에 대한 노자의 경고, 6장에서 종교의 미래, 예수와 석가의 결론, 7장 신인류의 등장, 초인시대의 교육과 문화, 8장 개우석, 경계를 관통하는 역(易)의 지혜를, 9장에서 균형 조율, 회통의 세계로 그리고 마지막 10장에서는 상식회복, 도덕과 양심이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라는 주제를 담아냈다. 각 장에 실린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 

 

에머슨의 초절주의

 

조화와 균형의 정신인 중도, 즉 동서양 사상을 조화롭게 융합했다. 에머슨이 말하는 초절은 현실수용과 초월을 동시에 의미한다. 이런 정신은 스티브잡스, 워런 버핏 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19세기 미국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에머슨의 “중도”는 하나의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했고, 종교인들에게도 그러했다고…. 아쉽게도 구체적인 사상의 원리나 내용을 들여다볼 수 없어서, 이는 따로 살펴보련다.

 

지은이는 시대와 경계를 넘는 보편정신을 강조한다. 정혁(鼎革) 시대, 이른바 현재의 기반이 변화하는 것을 말하며 미래학자들에 의하면 2045년이 문명 전환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하며, 역(易) 풀이로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코로나 재난 상황과 현재 정치권의 변동 거대 여당의 계속되는 헛발질,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따져 물을 때가 아니다. 적폐 청산에도 정도가 있다.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는 코로나와 똑 닮은 꼴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막아도 막아도 변이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진퇴양난의 상황처럼 말이다. 

 

노자의 물질문명에 대한 경고를 통해, 코로나 시대를 상황을 극복할 방안을 이야기한다. 중세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이 인류에게 경고와 교훈을 주었듯, 코로나 역시 인류 정신을 깨우게 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쾌락을 두려워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예수와 석가의 결론

 

현재 종교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종교는 말 그대로 으뜸의 가르침이다. 예수와 석가가 공통으로 세상에 전하는 것은 ‘인간을 완전히 해방하는 대자유’였다. 그러나 현재 종교에 남겨진 것은 기복과 물질 만능이다. 제2의 진정한 종교혁명이 일어난다면 그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으나, 지금은 종교를 대신해서 으뜸의 가르침을 할 수 있는 것은 인간교육과 정신을 표현하는 문화밖에 없다는 점을 지은이는 강조한다. 

 

지은이는 동서융합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자, 노자 그리고 에머슨, 예수와 석가, 한때 장난스레 석가와 예수, 알라가 만약 한곳에서 모여 차 한잔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겠느냐고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차는 무슨 배갈(백주, 고량주) 한잔하면서, 술에 취한 척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겠지, 그 자리에서 모두 수긍했던 결론은 “사랑” “연대” 였다. 동서양 사상의 정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가 아닐까 싶다. 다만, 당대의 시대 상황에서 최선의 것들을 이야기했겠지만,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너를 너로서 존중해준다면 그것이 사랑과 연대 정신의 발로가 아니겠냐고….

 

중간에 역(易)으로 풀어내는 대목을 넣은 것이 특징적이다. 아무튼 문명의 대전환시대 4차 산업 AI 등장으로 일자리가 없어지더라도 중요한 것은 뭔가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찰라지간의 일일 터...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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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를 품은 이야기 - 최남단 도서 해안 구석구석에서 건져올린 속 깊고 진한 민속과 예술
이윤선 지음 / 다할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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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를 품은 이야기

 

도입부부터 심각하다. 지은이는 민속학, 문화학자이자 시인, 소설가다. 한 분야만을 파고드는 것도 혼신을 힘을 다해야 하는데, 아무튼 두루두루 통하는 문인이자 인문주의자라 해두자. 

 

호남학과 남도학을 명쾌하게 구분 짓는 폼이 심상치 않다. 호남학을 장소라 하면 남도학은 그곳의 문화라 할까, 이를 구분하여 ‘호남의 남도학’이라 표현한다. 

 

이 책은 지은이가 <전남일보>에 써 왔던 42편의 칼럼을 골라내 묶은 것이다. 그는 서울에 치인 지방들이, 낮은 이들이, 민중들이, 여성과 소외된 이들이, 작고하잖은 것들이 비로소 떨쳐 일어나 또 다른 중심을 이루는 세상을 꿈꿔왔다고 했다.

 

책의 구성은 5부다. 우선 1부에서는 우리 스스로의 배내옷이었던 것이란 제목으로 흥얼거리던 원초적 사랑의 노래와 순환을 아는 자가 어른이다 등이 실려있고, 남도를 품은 이야기에 씻김굿을 담아뒀다. 2부에서는 누군가 불러줄 노래 하나 있기를 이란 제목 아래 효부는 말한다. 뼈대 있는 집안이 뭐라고, 참 와닿는 글이다. 이어서 김장은 성찰이다. 등 8편의 글이, 그리고 남도를 품은 이야기에 세월로 버무린 미학, 김치를, 3부 고목이 쓰러지면 땅으로 돌아온다. 속에 6편의 글과 남도를 품은 이야기로 남생이놀이를 소개한다. 4부 남도에서 만나는 세계의 얼굴에서는 베니토의 오씨 아버지, 일제강점기 징용에 끌려 나가 전쟁터를 돌아다니다 여인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남긴 아들의 이야기가, 5부에서는 여성, 풍속의 주도자들 외 6편과 남도를 품은 이야기로 진도 상여를, 말한다. 

 

지은이의 재미난 많은 글을 읽다 보니, 미로에 갇힌 듯하다. 같은 사람의 글이라도 이렇게 맛이 다를까 싶다. 기억에 남은 글 중 몇 개만 보자. 

 

작고하잖은 그것들 속에서 의미를 톺아내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믿는 이윤선은 개펄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고된 노동 끝에 베틀에 앉아 또 일해야 하는 우리들의 엄니…. 흥얼거리는 노랫가락 흥그레소리와 함께…. 진흙탕을 건너야 한 필의 베가 된다. 

 

순환을 아는 자가 어른이다

 

“철없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 사시사철의 준말이 철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모른다는 말이다. 철들었다는 말은 이제 비로소 성인이 돼, 제 앞가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태, 생물학적으로 수십 년 반백 년 넘은 인간들이 아직 철없으니, 

바다를 등이 지고 사는 사람들, 썰물과 밀물, 만조와 간조 역시 때를 기다릴 때 쓰는 말이다. 바닷물이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때, 우리 조상들의 때가 있는 법이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진인사대천명 역시 사람이 할 도리를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라. ‘때’를….

 

씻김굿

 

죽은 이의 영혼을 씻어주어 이승에서 맺힌 한을 풀고 극락왕생하라, 과연 그런가라는 의문을 품는다. 이승을 부정적으로만 보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민중들의 언설과는 어떤 심리적 괴리가 있는가? 라는 말이…. 무슨 말일꼬, 이미 죽은 이에게, 이승에 더 이상의 미련을 두지 말고 훨훨 떠나라는 것이, 살아있을 때는 덧없이 죽지 말고, 죽었거들랑 미련 없이 떠나라는 말이 아닌가, 아무튼 지은이가 이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남도 문화라, 씻김굿 속에 담긴 여러 상징에 대해서는 학자답게 풀어서 설명해두고 있다. 

 

효부는 말한다, 뼈대 있는 집안이 뭐라고 

 

“나는 이씨 문중에 안 묻히려오” 형수가 대뜸 말했다. “대장들이 줄줄이 묻혀 있는 곳에 가면 또 구박받고 시집살이를 할 터인데, 내가 왜 거기 묻히겠소?” 시원스러운 말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요. 어려서는 아버지를, 혼인해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이 땅에 여성들의 운명인가, 죽어서까지 시할머니, 시어머니가 묻힌 곳에 들어가면, 혼백마저 시집살이할 것이라는데, 죽어야 해방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문중과 종가가 갇힌 포로들 또한 그렇다. 열녀요. 효부요 정려비가 세워진들 당사자인 여성의 자유는 이게 법통인가, 밥통인가?

 

베니토 오씨 아버지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추크주 피스 섬의 시장(공식명칭이란다)이다. 인근 섬 팽글랩은 지금도 왕이 있다. 베니또 씨는 우리나라로 치면 마을이니 이장 정도가 된다. 아무튼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 오씨는 징용으로 끌려와서 현지에서 아내를 만난 모양이다. 그가 엄마 배 속에 있을 일본군은 후퇴했고, 어디론가 또다시 끌려간 아버지의 생사는 모른다. 

 

목포의 눈물 이난영의 <친일논쟁>

 

목포의 눈물 이난영 친일인명사전에 오르는 기준이 노래 3곡이어서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80여 전에 불렀던 노래, 친일 논쟁이 아직도, 보기 나름인 이난영의 노래, 경계선에 서 있는 듯하다. 밝혀지지 않은 노래가 있다면, 유달산에 세워진 목포의 눈물 노래비, 목포시민은 양가감정이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하지만 팩트인걸….

 

<전남일보>에 실린 글들을 본 기억은 있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활자이고 사진이 있어 대충 본 것이었을까, 책으로 묶여나오니 느낌이 다르다. 그저 문재가 남다르고 열정이 넘쳐,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의 세계 속에 이런 재미난 것들이 담겨있었다니, 또 볼일 일이다. 

 

남도의 인문학이라는 개념이 정립된다면 물론 여러 측면에서 논쟁거리를 있지만, 적어도 호남학연구라는 틀이 있으나, 그 한계를 넘어서려면 호남학이든 남도학이든 긴장해야만 민속이든 문화든 생동감을 되찾을 것이다.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볼거리 속에 담긴 것들, 현산도(흑산도)의 정약전이, 강진 다산초당에 정약용이, 화순에 조광조가 보길도에 윤선도가 모두들 조금만 참고, 자신을 굽혔더라면 성정대로 살지 않았더라면 험한 유배도, 죽임도 없었을 것들, 그러나 이런 이들의 정신을 먹고 자란 남도는 이들의 유산을 창의적으로 풀어냈다. 그림이 그러하고, 음악이, 거친 땅 남도 끝자락에서 남도학의 기운이 솟아오르기를 기원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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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와 노동의 미래 - 탈희소성 사회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아론 베나나브 지음, 윤종은 옮김 / 책세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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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희소성 사회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자동화담론은 영향력 있는 사회 담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좌·우를 막론하고 자동화를 이야기한다. 지은이 아론 베나나브(경제사학자)는 이런 자동화담론, 즉 현재의 과학기술을 분석하고 잠재력을 예측, 과학기술의 변화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데 그 전제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날로 발전하는 기계가 이미 노동자를 대체(노동력 대체), 둘째, 기계의 노동 대체현상은 완전한 자동화 사회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이며, 앞으로는 자동기계와 AI가 거의 모든 노동을 수행할 것이다. 셋째, 자동화는 인류를 고된 노동에서 해방하겠지만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가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노동해방의 꿈은 악몽으로 바뀔 수 있다. 넷째, 사유는 전혀 다르지만, 코로나팬데믹 이후 미국에서 벌어지는 대량 실업 사태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도입, 노동의 양과 임금수준의 상관관계를 끊는 것이다. 

 

이 책은 무엇을 말하려하나 

 

이 책은 6장으로 구성됐고, 1장에서는 자동화담론을, 그리고 2장에서는 전 세계 노동의 탈공업화 현상을, 생산성의 역설과 제조업 생산능력 과잉이 가져온 해악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불황, 제조업을 대체할 만한 동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하는 문제를, 4장에서는 노동수요가 낮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노동인구는 과잉상태이며, 탈공업화 시대에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없어, 결국에는 조건을 따질 겨를이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짚었다. 5장 절묘한 해결책이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와 케인스주의 재무장이 과연 타당한 대안일 것인가, 그리고 6장에서는 탈희소성, 협력적 정의, 모두를 위한 자유 시간을 위해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를 싣고 있다. 대단히 도전적이다. 그저 4차 산업혁명으로 AI 시대가 도래하면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지만, AI 시대가 요구하는 일자리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인류 역사가 그렇게 발전해오지 않았던가 하는 발전론적 미래전망은 한편으로는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전혀 양상이 다른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즉, 불확실한 미래라는 것인데, 이 불확실에 대한 윤곽을 지은이는 시원하게 해설해주고 있다. 

 

 

우선 자동화는 단순히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생산력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한다는 점에서 노동력을 절약하는 다른 기술혁신과는 구별된다. 역사상 사회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공산주의의 위협이나 문명 파괴와 같은 사건이 사회에 엄청난 압력을 가할 때다. 전쟁과 재난은 큰 사건이기는 하지만, 그 결과는 다르다는 점 또한 지적했다. 통계에 따르면 전쟁 후에는 부흥이, 재난 후에는 경기침체가 지속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큰 사건 후의 변화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왜 달라지는가 하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자동화 담론에 대한 지은이의 반박

 

 

지은이는 만성적으로 노동수요가 낮아진 현상의 기원과 발달에 초점을 맞추어 지난 50년간의 세계 경제와 노동시장의 흐름을 바탕으로 자동화 담론의 전제가 되는 네 가지에 대해서 반박한다. 우선 지난 수십 년간 노동수요가 줄어든 것은 과학기술에 서 전례가 없는 혁신이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생산효율이 기술 개선을 통해 꾸준히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둘째로 노동수요가 낮아지는 저수요는 대량 실업이 아니라 지속적인 불완전고용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며, 셋째, 엘리트 계층은 노동자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을 방관하거나 내심 환영하기까지 할 것이므로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기본소득과 같은 기술관료주의적 해결책이 저절로 도입되는 일을 없을 것이라고 봤다. 마지막으로 완전한, 또는 완전에 가까운 생산 자동화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풍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정부의 개입이 아니라 사회적 투쟁을 통해 그런 세상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불평등의 심화하는 가운데 좋은 일자리를 사라지고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선에서 이뤄지는 노동력제공, 이런 사회구조의 변혁은 새로운 대중운동이 나타날 때, 개혁이 가능하다. 사회운동이 명확한 목표를 세워 전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도 실패할 경우, 그나마 기본소득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본소득 자체로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발전된 과학기술을 수단으로 삼아 탈희소성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주된 논지다. 

 

 

탈희소성 사회

 

 

자동화담론의 핵심은 ‘탈희소성 사회’를 희망한다. 자동화로 인하여 인간의 최소 노동력을 투입해도 높은 생산력을 얻을 수 있어 상품의 양은 충분(때로는 과잉)하여 재화의 가격이 아주 낮아지거나 아예 공짜가 되는 경제 이론적 상황을 말한다. 이렇다고 해서 상품과 서비스의 희소성이 완전히 제거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과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충족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과학기술발전을 통해 탈희소성 사회를 지향하지만, 이런 자동화담론(생산의 자동화 등)은 그 전제에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몇 가지 모호한 점들이 있다. 

 

 

협력적 정의 - 필요영역과 자유영역 확보를 위해- 

 

 

지은이가 설명하는 탈희소성 사회를 이루기 위한 협력적 정의의 핵심적 요소는 필요의 영역과 자유의 영역 구분과 생산을 장악한다는 가정 아래 잠재력을 완전히 발현한 개인들이 노동저수요문제를 사회해방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를 논한다. 

 

필요의 영역에서는 공동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노동을 함께 부담한다. 이는 각자가 자유의 영역에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필요노동의 범위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기에 합의가 필요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무엇이든 필요노동에 포함될 수 있다.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20세기 사회주의 계산 논쟁에서 제기된 물음에 만족스러운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과 21세기의 도구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자유의 영역을 위해서 개인이 맘껏 활용할 수 있는 시간, 이를 탈노동이라고하나 이는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다. 탈희소성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지은이는 경제사학자답게 종횡무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자동화담론과 탈희소성의 문제를 신자유주의나 신케인스주의로는 풀 수 없음을 지적한다. 문제는 노동저수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유토피아 소설에서 나오는 탈희소성의 세계는 꿈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즉, 인간이 노동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얻기 위해서 적절하고 적당한 시간 그 생산에 노력을 투여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 자유롭게 자신을 위해서 쓴다. 그런데 왜 이런 당연한 것들이 이뤄지지 않는가가 가장 큰 넌센스다. 왜 그렇지.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줄곧 이런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 책은 자동화담론을 반박하면서도 이들의 문제 제기에는 긍정적이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 제기와 논쟁마저 없으면, 얼마나 더 비참한 상황으로 흘러갈 것이냐는 생각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변화를 그리는 미래학자들의 여러 관측과 전망, 그 나름의 근거가 있어 그런 주장을 하겠지만, 거기에는 안타깝게도 인간의 모습이,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상화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높아져 가는데 사람들은 더 힘들고 가난해지는가, 뭔가, 이는 역설이 아닌가?, 

 

지은이는 사회운동을 하자고 한다. 아주 뿌리부터 뒤집어 엎어버리자고, 최근 노동조합운동이 힘을 잃고 휘청거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튼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로는 더 이상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만은 확실하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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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지음, 허진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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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문화, 이민자(비등록-그냥 국경을 넘어온 이들)2세의 청소녀의 성장소설, 언니의 죽음, 전통적 사고를 고집하는 멕시코 엄마와의 갈등, 친구들과 우정, 첫사랑, 작가의 꿈을 위해 나래를 펴는 주인공 훌리아의 멘트가 돗보이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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