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를 품은 이야기 - 최남단 도서 해안 구석구석에서 건져올린 속 깊고 진한 민속과 예술
이윤선 지음 / 다할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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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를 품은 이야기

 

도입부부터 심각하다. 지은이는 민속학, 문화학자이자 시인, 소설가다. 한 분야만을 파고드는 것도 혼신을 힘을 다해야 하는데, 아무튼 두루두루 통하는 문인이자 인문주의자라 해두자. 

 

호남학과 남도학을 명쾌하게 구분 짓는 폼이 심상치 않다. 호남학을 장소라 하면 남도학은 그곳의 문화라 할까, 이를 구분하여 ‘호남의 남도학’이라 표현한다. 

 

이 책은 지은이가 <전남일보>에 써 왔던 42편의 칼럼을 골라내 묶은 것이다. 그는 서울에 치인 지방들이, 낮은 이들이, 민중들이, 여성과 소외된 이들이, 작고하잖은 것들이 비로소 떨쳐 일어나 또 다른 중심을 이루는 세상을 꿈꿔왔다고 했다.

 

책의 구성은 5부다. 우선 1부에서는 우리 스스로의 배내옷이었던 것이란 제목으로 흥얼거리던 원초적 사랑의 노래와 순환을 아는 자가 어른이다 등이 실려있고, 남도를 품은 이야기에 씻김굿을 담아뒀다. 2부에서는 누군가 불러줄 노래 하나 있기를 이란 제목 아래 효부는 말한다. 뼈대 있는 집안이 뭐라고, 참 와닿는 글이다. 이어서 김장은 성찰이다. 등 8편의 글이, 그리고 남도를 품은 이야기에 세월로 버무린 미학, 김치를, 3부 고목이 쓰러지면 땅으로 돌아온다. 속에 6편의 글과 남도를 품은 이야기로 남생이놀이를 소개한다. 4부 남도에서 만나는 세계의 얼굴에서는 베니토의 오씨 아버지, 일제강점기 징용에 끌려 나가 전쟁터를 돌아다니다 여인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남긴 아들의 이야기가, 5부에서는 여성, 풍속의 주도자들 외 6편과 남도를 품은 이야기로 진도 상여를, 말한다. 

 

지은이의 재미난 많은 글을 읽다 보니, 미로에 갇힌 듯하다. 같은 사람의 글이라도 이렇게 맛이 다를까 싶다. 기억에 남은 글 중 몇 개만 보자. 

 

작고하잖은 그것들 속에서 의미를 톺아내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믿는 이윤선은 개펄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고된 노동 끝에 베틀에 앉아 또 일해야 하는 우리들의 엄니…. 흥얼거리는 노랫가락 흥그레소리와 함께…. 진흙탕을 건너야 한 필의 베가 된다. 

 

순환을 아는 자가 어른이다

 

“철없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 사시사철의 준말이 철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모른다는 말이다. 철들었다는 말은 이제 비로소 성인이 돼, 제 앞가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태, 생물학적으로 수십 년 반백 년 넘은 인간들이 아직 철없으니, 

바다를 등이 지고 사는 사람들, 썰물과 밀물, 만조와 간조 역시 때를 기다릴 때 쓰는 말이다. 바닷물이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때, 우리 조상들의 때가 있는 법이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진인사대천명 역시 사람이 할 도리를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라. ‘때’를….

 

씻김굿

 

죽은 이의 영혼을 씻어주어 이승에서 맺힌 한을 풀고 극락왕생하라, 과연 그런가라는 의문을 품는다. 이승을 부정적으로만 보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민중들의 언설과는 어떤 심리적 괴리가 있는가? 라는 말이…. 무슨 말일꼬, 이미 죽은 이에게, 이승에 더 이상의 미련을 두지 말고 훨훨 떠나라는 것이, 살아있을 때는 덧없이 죽지 말고, 죽었거들랑 미련 없이 떠나라는 말이 아닌가, 아무튼 지은이가 이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남도 문화라, 씻김굿 속에 담긴 여러 상징에 대해서는 학자답게 풀어서 설명해두고 있다. 

 

효부는 말한다, 뼈대 있는 집안이 뭐라고 

 

“나는 이씨 문중에 안 묻히려오” 형수가 대뜸 말했다. “대장들이 줄줄이 묻혀 있는 곳에 가면 또 구박받고 시집살이를 할 터인데, 내가 왜 거기 묻히겠소?” 시원스러운 말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요. 어려서는 아버지를, 혼인해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이 땅에 여성들의 운명인가, 죽어서까지 시할머니, 시어머니가 묻힌 곳에 들어가면, 혼백마저 시집살이할 것이라는데, 죽어야 해방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문중과 종가가 갇힌 포로들 또한 그렇다. 열녀요. 효부요 정려비가 세워진들 당사자인 여성의 자유는 이게 법통인가, 밥통인가?

 

베니토 오씨 아버지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추크주 피스 섬의 시장(공식명칭이란다)이다. 인근 섬 팽글랩은 지금도 왕이 있다. 베니또 씨는 우리나라로 치면 마을이니 이장 정도가 된다. 아무튼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 오씨는 징용으로 끌려와서 현지에서 아내를 만난 모양이다. 그가 엄마 배 속에 있을 일본군은 후퇴했고, 어디론가 또다시 끌려간 아버지의 생사는 모른다. 

 

목포의 눈물 이난영의 <친일논쟁>

 

목포의 눈물 이난영 친일인명사전에 오르는 기준이 노래 3곡이어서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80여 전에 불렀던 노래, 친일 논쟁이 아직도, 보기 나름인 이난영의 노래, 경계선에 서 있는 듯하다. 밝혀지지 않은 노래가 있다면, 유달산에 세워진 목포의 눈물 노래비, 목포시민은 양가감정이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하지만 팩트인걸….

 

<전남일보>에 실린 글들을 본 기억은 있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활자이고 사진이 있어 대충 본 것이었을까, 책으로 묶여나오니 느낌이 다르다. 그저 문재가 남다르고 열정이 넘쳐,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의 세계 속에 이런 재미난 것들이 담겨있었다니, 또 볼일 일이다. 

 

남도의 인문학이라는 개념이 정립된다면 물론 여러 측면에서 논쟁거리를 있지만, 적어도 호남학연구라는 틀이 있으나, 그 한계를 넘어서려면 호남학이든 남도학이든 긴장해야만 민속이든 문화든 생동감을 되찾을 것이다.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볼거리 속에 담긴 것들, 현산도(흑산도)의 정약전이, 강진 다산초당에 정약용이, 화순에 조광조가 보길도에 윤선도가 모두들 조금만 참고, 자신을 굽혔더라면 성정대로 살지 않았더라면 험한 유배도, 죽임도 없었을 것들, 그러나 이런 이들의 정신을 먹고 자란 남도는 이들의 유산을 창의적으로 풀어냈다. 그림이 그러하고, 음악이, 거친 땅 남도 끝자락에서 남도학의 기운이 솟아오르기를 기원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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