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의 길 - 엇갈린 남·북·미의 선택
라종일.김동수.이영종 지음 / 파람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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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어설픈 중매쟁이 남한

 

이 책<하노이의 길>은 세 명의 북한 전문가가 모여 논의하며 정리한 책이다. 

필진은 김대중 정부 때 국정에 참여, 국정원 해외 담당 차장까지 했던 정치학자 라종일과 북한의 엘리트 출신 연구자 김동수 그리고 북한학을 전공한 언론인 이영종이 남북통일과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데 있어 이들 필진은 북한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공산주의, 유교와 전시용 주체사상 이론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 북한 이데올로기를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조선인들은 혈통이 지극히 순수하고 따라서 매우 고결하기 때문에 어버이 같은 위대한 영도자 없이는 사악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144쪽)

 

 

인종에 기반을 둔 북한 세계관을 굳이 전통적인 좌우 스펙트럼으로 보자면, 극우다. 파시스트 일본의 세계관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아무튼 필자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즉 남한에서 민족통일의 ‘민족’과 북한이 생각하는 ‘민족’개념에는 온도 차가 있어 보이는데. 이는 ‘순수혈통 기반한 인종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주로 ‘하노이회담’에 이르는 과정과 그 회담을 둘러싼 북?미 그리고 남한의 노림수들이 어떻게 얽히고설켰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여전히 비밀이 많은 삼국간의 관계, 필진도 정확히 알 수 없어 앞뒤 맥락과 자신들의 경험과 그간의 자료 등을 통해서 공백을 메꿔나가고 있다. 관련 문서가 공개될 때까지는….

 

이 책은 150여 쪽의 분량이지만, 그간 언론보도 등에서 부분적으로 다뤘던 내용을 총체적으로 조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책 구성은 4장으로 삼국 모두 나름의 희망과 기대로 시작된 여정(1장), 북과 미국 사이에 놓인 남한의 처지는 운전자인가 중개인인가 하는 역할의 문제와 북미 관계 속에서의 위상을(2장), 결국 실패로 끝난, 아니 처음부터 북미 모

두 자국 내 사정으로 이러한 쇼가 필요했을지도 모를 정도라는 추론 제기(4장)로

 

결론은 이렇다. 사람이 있는 햇볕, 사람이 있는 통일이 바로 진정성 있는 통일 노력이라는 걸 강조한다.

 

 

필자들은 일본도 북에 납치됐던 자국민을 데려오고, 미국도 이미 오래전에 억류된 군인의 송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남한은 어떠한가, 우편물 왕래도 가족의 만남도 봉쇄됐고, 양국 고위층인사의 기분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 운운하는 게 맞는 거냐고….“인권”이 실종된 형식만 남은 일련의 통일정책이 과연…. 남북통일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기대로 상징적인 “종전선언”이 실효성이 있느냐며, 현 정권의 통일정책을 꼬집고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 시절 매파였던 아베 신조가 북으로 가서, 북에 납치됐던 자국민을 만나 데려온다(물론 고향 방문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실제로 돌려보내지 않고, 각각 그들의 가족까지도 일본으로 오게 되지만), 북과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노력, 천만에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들에게 남북 분단상태는 늘 자국민을 통제하는데 유효한 수단이다. 강약조절을 해가면서, 하루라도 북쪽 사정을 놓치지 않고, 언론을 통해 내보내고 있는 저의는 뭔가, 핵미사일시험 자국 영토를 지나 공해상에 추락, 북한경제제재 등 정세의 불안감을 조성해야 국내 문제 등으로 권력층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정권 유지와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북한 납치귀향자(니가타의 하스이케 가오루(蓮池?-김훈의 칼의노래를 “孤?”라는 제목으로 일본어로 번역, 현재 니가타산업대학준교수)씨는 북한생활에 대해서 말한다. 아래(143쪽 인용문)과 같은 맥락으로 인식하고 있다. 식량난으로 시달리는 북한과의 납치자 송환 등은 댓가를 지급하고서라도 진행돼야한다고. 필자들과의 온도차를 느낄 수 있는대목다. 

 

이래저래 살펴보더라도 북미와 남한 관계 속에서만 놓고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6자 회담의 의도도 함께 봤어야 한다. 미국 또한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는 터에 북한에 아직도 억류 미국 병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다. 어떻게 하든 데려와야 정권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동상이몽을 꿈꾸는 관계 속에서 펼쳐진 정치쇼가 하노이회담이다.

 

과연 하노이회담은 어떻게 된 것인가?

 

평창올림픽에서 보여준 북한의 변화와 남북한 정전선언 등 햇볕정책 이후, 부침이 있었지만 현 정권의 종전선언을 이끌려는 의지와 어떻게든 북한에 대한 미일 등의 경제제재 완화 유도 등, 환경조성에 주력한 듯한 인상이다. 또한, 어찌 보면 북한의 핵무장에 관한 현 정권의 인식을 드러내는 부분인데 필자들의 분석은 

 

“이번 정부는 북한 내부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국제사회나 특히 미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에 변화를 추구하려는 그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적대적이며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에 더 근접한 자세 같습니다.” (143쪽)

 

라는 대목이다. 아주 이상한 해석 혹은 해설이라는 생각이 든다(참조; 이승열, 이승현 “북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주요 내용과 시사점” 이슈와 논점(1797호, 국회입법조사처, 2021.2.9.), 이승열 등은 김정은 위원장은 로동신문을 통해 남북관계가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언급, 관계 악화에 아쉬움과 향후 관계 개선의 여지를 남겨두는 복합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썼다.

 

하노이의 동상이몽

 

이 회담의 결론은 이미 예측됐다. 트럼프는 체면 유지, 협상했다는 데 의미를 두는 듯했고, 북한으로서는 이 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 얻어 낼 것은 별로 없을 것으로 여긴 듯했지만, 어쨌든 국내용으로 정상들의 만남을 추진했다는 점, 오히려 이 회담으로 보복을 당한 것은 북한의 외교관도 트럼프도 아닌 현 정권의 통일정책이었다. 어설픈 중매인으로 나섰다가 뺨을 맞은 셈이다. 

 

하노이에서 트럼프는 북한의 비핵화, “최종적이며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였는데 이전의 수준인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복구 불가능한 비핵화(CVID)”보다 ‘검증’을 강조한 것으로 이제껏 북한의 거부반응을 보이던 검증을 강조, 최종적으로 협상 결렬을 유도한 듯 보인다.

 

필자들이 분석한 통일의 걸림돌 네 가지를 음미해보자. 첫째는 정체성이다. 남한의 대북 지원이 있을 때마다 북의 지도부는 위기나 자괴감으로 받아들여, 도움은 당연지사라는 주장으로 대응 논리를 개발했다. 둘째는 남북 사이의 불균형, 이는 현실 문제다. 셋째, 과거의 나쁜 기억들, 김신조 사건 등을 비롯한 남한 정부 요인 암살이나, 포섭 시도들 이를 ‘이념의 혈친화’현상이라 했다. 해방 이전 독립운동 과정에서의 갈등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것들이 미래 개척의 걸림돌이라 봤다. 넷째, 국제 정치환경, 6자회담에서 보여지 듯,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통일로 향하는 데 어려움이 마치 지뢰처럼 널려있다.

 

 

 

남북한 모두 일상 속의 파시즘, 주권독재다

 

이 책을 보면서, 왠지 모를 꺼림직함을 느낀다. 임지현(외9)이 섰던 <우리 안의 파시즘 2.0>(휴머니스트,2022)의 국가주의와 인종주의, 식민주의 남성상 등, 일상 속의 파시즘이 자꾸 떠오른다. 필자들이 북을 파시스트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임지현 등도 남한 사회를 파시즘이라, 주권독재의 경향성을 지적 비판하고 있다. 남북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인종주의 등을 가지고 있다. 

 

‘하노이회담’을 소재로 햇볕정책을 기점으로 남한의 대북한 통일정책을 어떻게 유지해왔는지를 짐작게 하는 대목 등 아주 중요한 정보와 사실들, 그리고 북한의 핵무장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하는 인식의 문제 등, 실은 이 책은 우리 통일정책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과감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형식적인 통일은 의미 없다. 통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나, 혁명 같은 변화 없이는 꾀하기 어렵다는 등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여러 모순이 분단으로부터 시작됐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분단 70년 여년 이미 두 세대가 흘렀다. 2015년 KBS 생방송<이산가족 찾기>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랐다. 이게 자랑할 일인가….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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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 2.0 - 내 편만 옳은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임지현.우찬제.이욱연 엮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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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안의 파시즘이 있음을…. 우리를 되돌아보자 한국 사회 구석구석을 보자


    민족 좌파의 친일파 색깔론이 반공 우파의 빨갱이 색깔론보다 낫다고 믿어서는 곤란하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 책<우리 안의 파시즘 2.0>


    2.0이란 말은 이미 파시즘론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1999년 <당대비평> 특집 ‘우리 안의 파시즘’을, 그리고 이 책이 22년 후에 버전 업이 돼 나왔다. 당시 화두는 정치적 민주화에 만족하지 말고 사회적 민주화를 전면적으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 요지였다. 우리의 일상을 규율하는 미시권력의 문제를 짚어보고, 법과 제도, 구조와 일상을 전면적으로 민주화하자는 것은 가능한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문제의식이 바탕이 짙게 깔려있었다. 


    이 책은 지난 2021년 11월 ‘우리 안의 파시즘 2.0’ 학술대회에서 발표, 논의된 것들을 책으로 묶어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권력의 작동방식은 힘에 의한 강제와 억압에서 내면화된 규율과 동의를 통한 자발적 복종으로 이동했다. 권력의 작동방식은 합리화되었지만, 미증유의 코로나 19 재난 정국에서 벌어진 의학적 비상사태는 격리와 록다운, 집회 금지를 강제하는 위생독재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동의를 얻어냈다. K 방역의 이면에는 586세대와 더불어민주당이 박정희 때나 했을 법한 비상사태를 정치적 지렛대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우리 안 파시즘의 작동



    10명의 학자가 역사, 철학, 정치, 여성, 인종, 문화, 종교, 문학,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한국 사회를 톺아봤다. 



    일상적 파시즘이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임지현이, 그리고 이철우는 ‘능력주의의 두 얼굴’에서 엘리트 독점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능력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드는 폭정을 초래했다고 봤다. 한때 민주시민 사회의 동력이었던 능력주의는 이제 기득권의 세습수단으로 변질했다. 공정하다는 착각을 일으켜, 승자독식과 약육강식,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을 확대하고 재생산했다고.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공정 담론의 바탕에 깔린 복잡한 구도를 이철승은 ‘세대-연공-인구 착종이 낳은 기득권’에서 민주적인 노동운동의 퇴조를, 더 나아가 화석화를 우려하고 있다. 전투적 조합주의와 연공서열 고수 전략은 결국 586세대와 청년세대, 정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노동시장의 희생자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대단히 씁쓸한 이야기지만, 경향신문, 시사인 등 보수, 진보 진영할 것이 줄 곳 다뤄온 문제들이기에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서 헤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노조에 들어가는 자체가 특권이 되어간다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뜨거운 연대의 물결이 언제의 이야기일까 싶을 정도다. 그들은 노동귀족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건만, 어느덧 그 귀족 자리를 꿰차고 있지는 않은지, 불안정노동자, 정규나 비정규냐는 본래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안정된 일자리에 관한 장기적인 비전 없이 그저 세금이나 퍼부어대는 일자리는 아예 없애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민주주의는 민중의 피를 먹고 자라는 게 아니라, 그들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해야만 유지될 수 있고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스펙트럼과 부조화들, 여성 혐오와 식민지 남성상, 인종주의 



    정치학자 박상훈의 글 ‘국민주권 민주주의에 사로잡힌 한국 정치’는 섬뜩하다. 주권독재라는 표현으로 권위주의적 긴급명령권을 강화함으로써 문재인 정권만이 아니라 한국 정치 전반을 어지럽히고 있음을 비판한다. 직접민주주의 이름으로 국민 참여를 주도할 때 그 순간 바로 민주정치가 위험에 처한다는 경고, 나치즘을 주권독재라고 했던 독일의 나치시대 헌법학자 칼 슈미트의 말이 여운을….


    20세대(이대남, 이대녀)의 문화 가운데 여성 혐오, 식민지 남성상이 교차하고 있음을 지적한 정희진의 페미니즘에 대한 세간의 오해와 서구중심의 역사주의 프레임 속에서 식민지 남성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 안 파시즘의 또 다른 장면, 바로 인종주의다. 우리 사회만큼 외국인에 대한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곳도 드물다. 출신 국가의 경제력이 그 사람을 대하는 잣대, 기준이 되니 말이다. 조영한은 한국인의 인종주의가 너무 습관적이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러운 것이 돼버려 문제를 문제로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결속 강화되면서 국수로, 이른바 ‘국뽕’시대가 가져온 문화적 우월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정치교회, 문화교회



    그밖에 관종주의와 한 집 건너 하나씩 들어서는 교회, 누군가 농담스레 뼈있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남산에서 시내로 돌을 던지면, 김씨, 이씨, 박씨 중의 하나는 맞을 거라고, 그런데 그 당시에는 교회의 첨탑이 그리 많지 않았는지, 교회 이야기는 없었다. 우후죽순처럼 특히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원도심과 신도심이 어울리지 않는 공간 속, 연결점은 교회 건물들이다. 아무튼, 대형교회를 줄 곳 비판해 온 목회자 김진호는 ‘한국의 작은 독재자’들에서 개발독재 시대 성공에 대한 욕망을 부추겨 대중의 자발적 동원체제를 가능하게 했던 정치종교, 소비시대 자신의 결핍감을 소수의 다른 이에 대한 혐오감으로 푸는 문화 종교를 구분 지어 설명한다. 한국의 대형교회의 성장기의 뿌리는 남북분단에 기원한다. 서북 출신의 반공주의자들 종교인들이 박정희 정권의 지원을 얻어가면서, 하나의 종교 권력으로…. 연일 끊이지 않는 불협화음들, 이 또한 한국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우리의 행진곡 안에 자리한 식민지성



    음악학자 배묘정이 말하는 우리 안의 행진곡과 소리의 식민성은 그간 둔감해진 분별력을 일깨운다. 우리 사회는 일본강점기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신체와 감각에 내면화된 행진곡의 리듬이 개발독재를 거쳐 지금까지 강화되어왔다고 지적한다. 소리의 식민지성을 파시즘적 속성을….


    민주주의는 점점 퇴화해가는데, 우리 안의 파시즘만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부패 권력, 독재체제에 대항했던 그들 역시 파시즘의 싹을 안고 있었다. 독재냐 민주냐 하던 시절에는 내 편만 옳다고 주장해야 민주사회로 갈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었다. 그러나 87년 이후, 세상은 바뀌고 청년 386세대가 586세대가 되어 정치 권력의 중심에 섰다. 그들이 그렇게 비판해대던 정치의 비민주와 독재를, 이제 그들이 주체가 되어 그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가고 있다. 이제는 그들이 타도대상이 되어간다는 말이다. 언제나 돼야 그들이 말한 좋은 세상이 올 것인가, 시계열적 순차론은 없다. 동시에 함께 이뤄져야 한다. 성숙한 사회에서 정치 권력이든 경제든, 문화든 그 모든 것들을 규율하는 잣대는 ‘우리 안의 파시즘’은 없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보기에 따라서는 분명 냉소적으로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가 있고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있다.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시대의 소리를 듣는 것이 자연스러워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자리한 파시즘이 고개를 쳐들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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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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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라는 부제 붙은 이 책 

 

이 책의 핵심을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랍비(우리의 스승) 델핀 오르 빌뢰르의 글은 무한한 상상을 하게 했다. 번역가의 숨은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단어 하나하나 섬세하게 그리고 깊은 의미를 담아내려는 흔적들이 이 책의 가치를 말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지은이는 특이한 이력을 지녔기에 "세속적인 랍비"라는 평가를 받는 것인가, 신의 세계인 성과 인간 세계인 속세, 성 속에 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사고의 관성을 거침없이 파괴한다. 그는 의학을 공부한 철학자이며, 작가로, 또 낡은 관념의 틀을 깨고, 그 자리에 본디 있어야 할 그 무엇을 채워 넣은 일을 한다. 자유주의 유대인 운동에서 펴내는 잡지<테누아>의 편집장으로서….

 

죽음, 우리가 기억하는 파리에 있는 어느 잡지사에 무슬림들이 공격을 했다. 마호메트를 모욕했다고…. 이때 그 자리에 있었던, 정신과의사이자 칼럼니스트인 엘자 카야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에피소드 9개를 소개한다. 죽음이 찾아온 순간에 지은이가 함께했던 유명하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히브리어로 묘지는 베트 아하임, '생명의 집' '살아있는 자들의 집’

 

죽어서 묻힌 묘지를 생명의 집이나 살아있는 자들의 집이라는 반어적 표현은 왜일까? 지은이는 죽음을 부정하거나 죽음을 지우면서 죽음을 물리치려는 시도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죽음을 언어 바깥에 놓으면서 죽음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 했다. 

 

내 아들들이 나를 이겼구나, 이겼어

 

종교지도자들에게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게 있다면 그건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서물, 혹은 교리, 또 전통적인 뭔가일 것이다. 세속에 이미 알려진 그것들이 하느님의 권위를 대신한다. 이 책은 이를 웃기는 소리로 한마디로 '개소리'라 여긴다. 

 

탈무드의 에피소드를 들어, 랍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존재인지를 말한다. 

 

랍비들이 한낱 전승을 통해서 힘의 이른바 위계를 뒤엎고 초월적 권위에 대한 복종을 문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랍비들로서는 주님이 그들에게 율법을 위임했으니 율법에 대한 해석은 마땅히 그들의 소관인 것이고, 그 해석은 심지어 하느님의 생각 자체를 거스르는 해석마저 포괄한 것이다"라고(41쪽), 

 

이미 랍비들에게 부여한 힘은 그분이 포기한 것이기에 역사에서 더 이상 그분의 개입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탈무드의 랍비들은 유머가 넘치는 신, 웃으며 역사에서 물러날 준비가 된 신, 토론하는 인간들을 위하여 사라질 준비가 된 신을 열망한다. 

최근 <피로교회와 필요교회>라는 책이 나왔다. 이 제목에서 이미 모든 걸 말하고 있지 않은가, 

 

무덤에 꽃 대신 조약돌을

 

무덤에 조약돌을 가져다 놓는다. 대단히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꽃은 시들지만, 조약돌은 쌓여 가신 이를 찾는 사람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왜 그런지 그 기원을 말한다. 물론 위에 짐작하는 게 맞기는 맞는 모양인데,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조약돌은 히브리어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에벤'를 나누면 아브와 벤 즉, 부모와 자식이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무덤 위에 조약돌을 올려놓는 것은 그 안에 잠든 이에게 우리가 그의 유산에 포함된다는 선언이라는 말이다. 

 

위대한 신은 인간이 그의 체면을 세워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대목은 참으로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슬림인구가 9억, 아니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지하드든 뭐든 다 좋다. 테러라는 말은 상당히 정치적이어서 내편과 네 편을 가르기도 한다. 테러라는 말을 쓰는 순간, 이미 이분법이 적용된다는 말이다. 뭐 이 말은 여기서는 주제가 아니니, 그렇다 치고….

아무튼 신이 모욕당해서 노여워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큰 신에 대한 모욕이지 않을까, 신이 그리 쩨쩨한가?, 유머러스한 신은 위대하다는 지은이 말에 공감한다. 

 

레하임(삶을 위하여)

 

지은이는 전통 유대교의 재해석을 통해 아니 종교에 관한 그의 생각을 말한다. 종교란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세대마다 새롭게 정의되는 탐색의 과정이라고…. 죽음은 또 하나의 외침이다. 산 자와 죽은 자는 함께 하는 것이고,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 향해 나아간다. 우리 사회, 자기 죽음을 어떻게 여길지, 이름을 남기고 죽을지, 아니면 쓰지도 못할 재산을 싸매고 들어갈지,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찾는 계기를 가졌으면 한다.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고, 살아있는 이들, 후세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삶이 아름다움 죽음을 향한 여정이라면 내 손에 뭔가가 있을 때, 내 주머니에 뭔가가 들어 있을 때, 배려와 나눔을 해야 한다고, 삶과 죽음이 5분 안에 갈리는 세상 속에서 죽음은 결코 늘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들….

 

뭔가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책의 가치는 아마도 이런 뭉클한 감동을 주는 그 뭔가였을 때 나타나는 게 아닐까?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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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혼하고 부자가 되었다
업글하는 돈덕후 지음 / 경이로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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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부자가 됐다?

이 기묘한 논리는 사실인가? 결혼이 돈을 벌어다 주었다고?

 

돈덕후, 덕후란 말이 아주 거슬린다. 사회언어로서 우리 사회에서 시민권을 얻어가고 있지만, 이는 오타구(御宅=특정 활동에 몰입하는 행위, 또는 그런 사람을 가리킨다. 일본 사회에서 오타쿠의 이미지는 글쎄다. 아직은 네거티브로 사용된다. 우리 국어오픈사전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아직은 그런 단계까지는 아니다)라고 한다. 아무튼 이런 용어는 조금은 신중히 사용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신혼부부가 어떻게 돈을 모았나, 그 방법은 무엇이지, 꽤 궁금하다.

 

결혼 전 순자산이 1억이 채 되지 않았는데 결혼 4년에 6억으로 불었다. 이들은 업글하는 돈덕후라는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자, 이제부터 그 사례를 보자. 어디까지나 이들의 사례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재테크방법도 있구나 하는 점에서는 유용한 정보임에 틀림없다.

 

어떤 계기로 돈모으기에 관심을 갖게 됐나,

 

욜로의 환상에서 깨어나자. 나를 위해 적금을 깰 수 있는 남자와 데이트, 생일에 주고 받는 명품 선물, 주기적으로 다니는 외국여행,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 바에서 즐기는 데이트가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미래를 꿈꾸는 상대가 현재의 나를 위해 쓰는 돈은 결혼하면 모두 내 빛이라는” 걸,

 

돈 때문에 부부싸움, 돈이란 대체 뭘까? 왜 사랑으로 시작한 부부가 싸우며, 상대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해댈까, 애초에 돈을 가지고 부부싸움을 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지은이는 뭔가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지은이가 말하는 신혼부부 재테크를 따라가 보자.

 

신혼부부 재테크 원칙(1단계 아끼기, 2단계 더벌기, 3단계 불리기)

 

마치 회사운영을 하듯, 가계꾸리기의 기준을 잡는데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의 부양비, 자녀 양육비에 대한 기준잡기와 재무상태와 손익계산, 가계부쓰기 등, 우선 경제관념부터 다잡아 보는 것부터 출발,

 

1 단계 아끼기

 

투자 수익률8%보다 아껴서 20%모으기, 정말로 포기할 수 없는 소비는 2가지의 타입이 있다. 경험을 위한 소비와 남을 위한 소비, 전자의 소비행위가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우선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힐링을 위한 여행, 부부를 더 발전시켜줄 자기계발과 건강을 지켜줄 비용 등은 즐거운 마음으로 쓰라고 한다. 후자는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하는 소비, 가족과 지인을 위해 소비할 때는 그 돈이 아깝지 않다. 오히려 돈을 씀으로써 더 기쁘고 행복해지는 것 같다. 핵심은 내가 우리가 즐겁고 기쁘고 행복해지는 소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인데, 조금 말을 바꾸면, 선택과 집중을 하라는 말이다. 소비할 때마다 아낀다고 줄이고 또 허리띠를 졸라매면 늘 후회스럽다. 놀때는 제대로 놀고, 뭔가를 할 때는 제대로 하라는 기본 원칙의 응용이 아니겠는가,

 

2단계: 더벌기

 

부업하기, 부업방식보다는 부업에 대한 마인드 셋, 즉 사고방식을 제대로 잡고, 자신에게 맞는 방향과 분야를 선택하라는 말이다. 부업을 찾는 방법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서다, 또, 하나 블로그를 하는 것, 이는 한혜진<나는 매일 블로그로 출근한다>(경이로움,2022)에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수입이 늘어도 소비가 늘어서는 안 된다.

 

3단계: 불리기에서는 주식투자 등 여러 방법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조언을 해두고 있는데, 무턱대고 아낀다고 부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자신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를 그려가면서 수입의 1%가량은 기부하자고 한다. 나름의 재테크 원칙이 있다.

 

이 책은 신혼부부에게 적절한 재테크 방안을 소개하는데, 지은이의 경험, 즉 자신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터특한 방법을 적어두고 있다. 특징은 경험을 위한 소비와 남을 위한 소비는 꼭 필요한 소비라고, 맨날 돈돈 돈타령을 하지 않고, 즐겁게 생활하면서도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를 강조한다.

 

 

<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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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장마르크 로셰트 지음, 조민영 옮김 / 리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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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관계 맺기, 한편의 늑대 우화

 

일제강점기, 우리 강역의 산속의 최고 포식자 호랑이와 늑대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멧돼지, 자연질서에 인간이 개입하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돼 인간세계로 고스란히….

 

<설국열차> 시리즈의 지은이 장마르크 로셰트, 그의 2019년 작품이 이 책 <늑대>이다. 줄거리는 양치기 가스파르, 프랑스 국립공원 안에서 양 떼를 돌본다. 이 양을 노리는 늑대와의 팽팽한 긴장, 양을 물어 죽이는 늑대와 양을 지키는 양치기, 이런 구도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듯한데 이야기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뭘 이야기하고자 한 걸까? 늑대의 복수, 양치기의 복수, 끝없는 대립?, 아니면 자연과 인간이 새롭게 관계를 맺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걸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가 딸린 어미 늑대가 양 떼를 공격하다 가스파르 총에 맞아 죽는다. 가스파르는 죽은 어미의 새끼로 보이는 늑대와 마주치지만, 너무 어려 죽이지 못하고…. 그가 잡았던 산양 내장을 꺼내 놓고 온다. 독수리에게도 먹이를 남겨주고 온다.

 

국립공원 레인저가 가스파르를 찾는다. 총에 맞아 죽은 암컷 늑대를 발견했다고, 그러나 총알을 어디에도 없더라는 것이다. 국립공원에서 늑대를 죽이면 이 또한 범죄라고…. 가스파르는 레인저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비밀 하나 알려주지, “양치기와 늑대는 공존할 수 없어.”라고,

 

어린 늑대는 이제 모습을 갖춘 수컷 늑대로 커가고, 새로 들어온 양 떼를 절벽으로 몰아 떨어뜨린다. 무려 300마리를, 전멸이다. 거기에 아끼던 개 맥스까지 죽었다. 그리고 그날 밤하늘을 가르는 복수에 찬 늑대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늑대사냥, 복수

 

가스파르는 늑대를 잡아 죽여버리겠다고…. 어느 날 해발 3400미터의 겨울 산속에서 분노에 찬 늑대의 울음소리, 나오라 한 판 붙어보자…. 가스파르와 늑대의 대결이 시작된다. 늑대는 가스파르를 깊고 험한 곳으로 유인한다. 총에 맞지 않을 거리를 두면서…. 눈보라는 며칠째 계속되고, 대피소에서 추위에 떨며 겨우 버텨내는데, 비몽사몽, 환상 속으로 그의 양치기 개 막스가 나타나고, 파병 가서 죽은 아들 다미앵이 전투복 차림으로 산막을 찾아오고, 그의 어머니의 안부와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데…. 눈보라가 그치고 늑대는 가스파르 앞에서 또 나타나고, 이를 쫓는 가스파르, 때마침 사격 거리를 조금 벗어난 거리에 들어온 늑대를 향해 총을 쏘는데, 총소리와 함께 늑대의 한쪽 다리를…. 뒤에 이어지는 눈사태로 그도 파묻히면서 다리가 부러진다. 눈을 헤치고 나온 가스파르, 밤이 되자 눈을 파고 들어가, 또다시 비몽사몽에, 그의 아내가 나타나 말을 건넨다. 날이 밝아오고 지칠 대로 지친 가스파르는 쓰러졌다. 그 앞에 나타난 늑대를 죽이려고 칼을 꺼내려 했지만,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늑대는 그에게 산양고기를 놓아둔다. 어린 시절에 가스파르에게 빚을 갚는다.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

 

그해 겨울 양 떼가 늑대에게 공격받는 일은 없었다. 나중에 들려오는 소리, 디(장소)에서 커다란 하얀 늑대가 암컷 세 마리와 함께 있는 것을 봤다고…. 대미는 양 한 마리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가스파르는 죽은 양을 둘러업고, 그가 어미 늑대를 쏴 죽였던 그곳에 놓아둔다. 그곳에 나타난 늑대…. 피를 나눈 형제 바로 그 어린 늑대였다.

 

가스파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늑대와의 복수전이 무의미함을 깨달았던 걸까?, 누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든 간에, 늑대는 양 떼를 모두 죽게 하고 가스파르가 아끼던 개 맥스마저…. 이렇게 복수를 했다(진짜 그랬는지 아니면 사고였는지, 늑대가 죽였다고 오해하고 있는지)고 믿는다. 가스파르의 늑대에 대한 복수가 시작된다. 다행스럽게도 복수의 결말은 화해다.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 않을 만큼, 그들만의 안전거리 속에서 늑대는 양을 더는 헤치지 않고, 가스파르는 죽은 양을 그 어미를 쏴 죽였던 그곳에 가져다 놓았다.

 

아마도 늑대는 어렸을 때, 가스파르가 베풀어주었던 은혜에 보답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낮선 늑대 암수가 그의 구역에 나타나자 목숨결고 싸워 수컷 늑대를 물어죽이고, 암컷 늑대를 보낸다. (여기에서 복수가 끝나지 않았다...라는 말로 늑대의 정서를 표현했나?, 아마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사건은 양떼의 죽음과 가스파르가 아끼던 목양견 맥스의 죽음이다. 늑대 냄새를 바람결에 맡은 양 떼들이 혼비백산, 공포 속에서 일어났던 집단사고를, 가스파르는 늑대 짓으로 오해했을 수도 있다. 양 떼 중 목줄이 물린 흔적이 있던 양은 25마리, 늑대의 본능이었나,

 

늑대는 해수다? , 늑대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채우기에 방해되는 것들에 대한 인간의 처리 방식, "말살"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모노노케 히메- 원령공주>, 이리는 말한다. 본래 우리의 삶터였던 이곳을 인간들이 밀고 들어왔어. 우리의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없애버리고,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이 영화처럼, <늑대> 역시, 사람들의 이익을 해치는 해수로, 늑대를 잡아 죽이려 한다. 본래 늑대들의 보금자리였을 이곳 산 깊은 국립공원….

 

이 책은 보기보다 어려운 대목이 있다. 국립공원에서 양치기할 수 있는가?, 왜 설정이 국립공원이라는 의문, 이 책이 전하려는 본질에서 벗어난 것인지를 모르겠지만, 국립공원으로 설정한 것은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를 깨고 그 영역을 침범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아닐지,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인간과 화해, 이는 한편의 우화다.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가스파르가 어른 늑대에게 사냥했던 고기를 나눠줬더니, 그 늑대가 사경을 헤매던 가스파르에게 은혜를 갚았다고…. 마치, 호랑이 형님 우화처럼 말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지은이의 바람…. 자연과 함께하는 또 하나의 길이 있다고….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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