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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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라는 부제 붙은 이 책 

 

이 책의 핵심을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랍비(우리의 스승) 델핀 오르 빌뢰르의 글은 무한한 상상을 하게 했다. 번역가의 숨은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단어 하나하나 섬세하게 그리고 깊은 의미를 담아내려는 흔적들이 이 책의 가치를 말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지은이는 특이한 이력을 지녔기에 "세속적인 랍비"라는 평가를 받는 것인가, 신의 세계인 성과 인간 세계인 속세, 성 속에 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사고의 관성을 거침없이 파괴한다. 그는 의학을 공부한 철학자이며, 작가로, 또 낡은 관념의 틀을 깨고, 그 자리에 본디 있어야 할 그 무엇을 채워 넣은 일을 한다. 자유주의 유대인 운동에서 펴내는 잡지<테누아>의 편집장으로서….

 

죽음, 우리가 기억하는 파리에 있는 어느 잡지사에 무슬림들이 공격을 했다. 마호메트를 모욕했다고…. 이때 그 자리에 있었던, 정신과의사이자 칼럼니스트인 엘자 카야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에피소드 9개를 소개한다. 죽음이 찾아온 순간에 지은이가 함께했던 유명하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히브리어로 묘지는 베트 아하임, '생명의 집' '살아있는 자들의 집’

 

죽어서 묻힌 묘지를 생명의 집이나 살아있는 자들의 집이라는 반어적 표현은 왜일까? 지은이는 죽음을 부정하거나 죽음을 지우면서 죽음을 물리치려는 시도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죽음을 언어 바깥에 놓으면서 죽음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 했다. 

 

내 아들들이 나를 이겼구나, 이겼어

 

종교지도자들에게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게 있다면 그건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서물, 혹은 교리, 또 전통적인 뭔가일 것이다. 세속에 이미 알려진 그것들이 하느님의 권위를 대신한다. 이 책은 이를 웃기는 소리로 한마디로 '개소리'라 여긴다. 

 

탈무드의 에피소드를 들어, 랍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존재인지를 말한다. 

 

랍비들이 한낱 전승을 통해서 힘의 이른바 위계를 뒤엎고 초월적 권위에 대한 복종을 문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랍비들로서는 주님이 그들에게 율법을 위임했으니 율법에 대한 해석은 마땅히 그들의 소관인 것이고, 그 해석은 심지어 하느님의 생각 자체를 거스르는 해석마저 포괄한 것이다"라고(41쪽), 

 

이미 랍비들에게 부여한 힘은 그분이 포기한 것이기에 역사에서 더 이상 그분의 개입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탈무드의 랍비들은 유머가 넘치는 신, 웃으며 역사에서 물러날 준비가 된 신, 토론하는 인간들을 위하여 사라질 준비가 된 신을 열망한다. 

최근 <피로교회와 필요교회>라는 책이 나왔다. 이 제목에서 이미 모든 걸 말하고 있지 않은가, 

 

무덤에 꽃 대신 조약돌을

 

무덤에 조약돌을 가져다 놓는다. 대단히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꽃은 시들지만, 조약돌은 쌓여 가신 이를 찾는 사람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왜 그런지 그 기원을 말한다. 물론 위에 짐작하는 게 맞기는 맞는 모양인데,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조약돌은 히브리어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에벤'를 나누면 아브와 벤 즉, 부모와 자식이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무덤 위에 조약돌을 올려놓는 것은 그 안에 잠든 이에게 우리가 그의 유산에 포함된다는 선언이라는 말이다. 

 

위대한 신은 인간이 그의 체면을 세워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대목은 참으로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슬림인구가 9억, 아니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지하드든 뭐든 다 좋다. 테러라는 말은 상당히 정치적이어서 내편과 네 편을 가르기도 한다. 테러라는 말을 쓰는 순간, 이미 이분법이 적용된다는 말이다. 뭐 이 말은 여기서는 주제가 아니니, 그렇다 치고….

아무튼 신이 모욕당해서 노여워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큰 신에 대한 모욕이지 않을까, 신이 그리 쩨쩨한가?, 유머러스한 신은 위대하다는 지은이 말에 공감한다. 

 

레하임(삶을 위하여)

 

지은이는 전통 유대교의 재해석을 통해 아니 종교에 관한 그의 생각을 말한다. 종교란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세대마다 새롭게 정의되는 탐색의 과정이라고…. 죽음은 또 하나의 외침이다. 산 자와 죽은 자는 함께 하는 것이고,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 향해 나아간다. 우리 사회, 자기 죽음을 어떻게 여길지, 이름을 남기고 죽을지, 아니면 쓰지도 못할 재산을 싸매고 들어갈지,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찾는 계기를 가졌으면 한다.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고, 살아있는 이들, 후세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삶이 아름다움 죽음을 향한 여정이라면 내 손에 뭔가가 있을 때, 내 주머니에 뭔가가 들어 있을 때, 배려와 나눔을 해야 한다고, 삶과 죽음이 5분 안에 갈리는 세상 속에서 죽음은 결코 늘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들….

 

뭔가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책의 가치는 아마도 이런 뭉클한 감동을 주는 그 뭔가였을 때 나타나는 게 아닐까?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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