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가 주는 힘
M. J. 라이언 지음, 이주영 옮김 / 시크릿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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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인내가 주는 힘이란 


인내(忍耐)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이다. 인내의 끝에 성공이란 열매가 있다. 인내는 단기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고 평생에 걸치는 경우도, 인내가 쓰기만 하다면 버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긍정적 사고”다. 자신의 능력을 믿는(과신과는 전혀 결이 다르다) 가운데 극복의 의지(마치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또한 같은 맥락이다. 


지은이 M.J.라이언은 인내가 주는 힘을 “끈기” “평온함” “받아들임”을 통해 우리는 최상의 상태에 머물게 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니체 등이 이야기와도 통한다. 열매 즉 성공의 사례는 많다. 월트 디즈니는 302번의 거절 끝에 디즈니랜드를 위한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고, 조지 루커스는 투자가가 없어 자비로 <스타워즈>를 결국에는 대박이 나면서, 큰 성공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단지 1만 가지 방법이 통하지 않았을 뿐이다.” 초긍정적인 사고다. 해리포터의 지은이 J.K.롤링, 책 출판을 제안했다가 번번이 거절당했지만,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성공과 실패 딱 백지 한 장의 차이다. 에디슨의 말처럼 그저 방법이 통하지 않았을 뿐이다(2장 ‘인내심이 탁월함을 만들다’). 다만,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즉, 우리의 마음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바로 이 끈기와 평온함과 수용이 버틸 힘인 “인내”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긍정적 사고다. 


책 구성은 6장이다. 1장 ‘우리는 왜 점점 기다리는 게 어려워질까?’ 조급함의 원인은 어디서, 불안이다. 안절부절못하기에 그렇다. 22년 전의 MBC TV 드라마 <대장금>, 수라간 궁녀 장금은 궁에서 쫓겨날 위기, 중전의 유모가 병에 걸려 궁을 나올 때, 수발들 들기 위해 함께 나와 절에 머문다. 유모는 궁에 들어오기 전 추억을 떠올리며 오라버니가 그녀의 손에 쥐여줬던 올게 쌀이 먹고 싶다고, 장금은 벼를 덖기도 하고, 갖은 방법으로 유모에게 가져다주었지만, 유모는 그 맛이 아니란다. 절의 처사는 올게쌀(올해 수확한 햅쌀)은 “기다림”이라고, 햇볕도 받아야 하고 바람도, 이슬도 맞으면서 그렇게 맛이 드는 것이라고, 한편의 철학이다. 장금은 깨닫는다. “인내”와 “기다림”(이 책의 2장의 ‘모든 일에는 계절이 있다’ 3장 ‘시간은 필요한 만큼 걸리는 법이다’와도 통한다) 아무리 서두르고, 재촉해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음을, 아마도 이때의 깨달음이 그의 인생 철학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은이는 로스앤젤레스 도로 공사 중 속도줄이라는 고깔을 세워두어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주 교통사고를 당한다고, 속도를 줄여달라는 캠페인을 펼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고, 공사 구간 1.6㎞를 지날 때 시속 90㎞나 110㎞의 차이는 10초밖에 아닌데 왜 그렇게 모두 죽어라 달릴까? 아마도 세상이 빨리 돌아갈수록 여유가 없어진 탓에 흐름을 타지 못하면 낙오된 느낌, 이게 참을 수 없는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우리 사회만 8282(빨리빨리)인 줄 알았다면, 이는 착각이다. 세계 문명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니까,


2장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비밀’에서는 인내심이 탁월함을 만든다를 비롯하여 분노 조절, 기다릴 줄 아는 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 등, 3장 ‘태도가 성공의 반이다.’에서는 인내심을 키우는 방법, 4장 ‘인내심을 기르는 멘탈 연습’에서는 ‘무엇이 조급증을 폭발시키는가?’ 즉, 내 인내심은 무엇에 어느 순간에 바닥에 이르고 폭발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을 들여다보기를..., 이어 5장에서는 인내심을 높이는 간단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6장은 결국, 나 자신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읽다 보면, 지은이의 이야기가 아주 당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에 동감하며 이해하며 동감하는 것과 실천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인내는 재능”이라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말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인내심을 기르는 방법의 사례가 많이 실려있다. 명상, 틱낫한 스님의 간단한 방법도 있다. 숨을 들이마시며,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있다고 말을 하고, 내 쉴 때도 나는 숨을 내쉰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 일러주는 것이다. 


인내가 주는 세 가지 선물과 인내심 기르는 방법 20가지


지은이는 무엇에도 꺾이지 않고 버틸 힘, “끈기”를 길러주는데, 이는 목표와 꿈을 향해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나 니체 또한 같은 생각이다. 두 번째로는 “평온함‘ 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거나 휘둘려 분노, 두려움, 불안에 빠지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나 객관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보는 여유와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수용“ 어떤 어려움이라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살면서 마주치는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책에는 불안의 시대에 필요한 ”인내심“은 기르는 실천 방법 20가지(책 234쪽)가 실려있는데 우리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것들이다. 격렬한 상황에서 말하기 전에 속으로 열을 세라는 오래된 속담처럼, 호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라, 손으로 만지작만지작하면서 분노의 사이클과 속도를 조절하기에 좋다. 줄을 서서 기다릴 때는 마음속으로 휴가를 떠나라. 


명상할 시간이 없다면, 걷기 명상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활용하라. 바닥을 딛고 이는 발을 느낀다. 천천히 한쪽 발을 들고 그 느낌을, 모든 과정을 의식하면서 한쪽 발을 내려놓고 다른 발을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덧 내 순서가 되니, 기다리지 않았던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경청하라, 올바른 사람이 될 것인가, 유능한 사람이 될 것인가, 자기에 질문해보라. 내가 놓여있는 상황을 보면서 웃어보자. 농담을 해보자.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이미 이런 것들은 우리가 알고 있다. 알고 있음의 영역은 무의식이겠지만, 이를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내 보자. 끌어 내놓고 일을 시키자, 의식적으로 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 또한 염두에 두자 "인내는 선택이기도 하다"는 말을... 말을 물가까지는 데려갈 수 있지만, 물을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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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스파이 전쟁 - 간첩, 공작원, 인간 병기로 불린 첩보원들의 세계
고대훈.김민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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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남북 스파이 전쟁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스파이 전쟁은 2013년 러시아로 망명한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 정보 수집을 폭로한 미 중앙정보국(CIA) 전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일 듯하다. 요인 암살 등 전형적인 블랙 요원은 아니었지만, 세계는 여전히 외교관 신분으로 대사관을 거점으로 주재국의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화이트 요원, 한국에서 화이트 요원으로 러시아에서 암살당한 최덕근이 처음일 듯싶다(공식적으로 외교관 신분으로 활동한 사람 가운데), 


이 책은 중앙일보 고대훈, 김민상 기자가 1년여에 걸쳐 남과 북에서 양성한 두 스파이의 행적 추적한 기록이다. 등장인물은 북의 공작원 김동식과 남의 정보사 소령 정구왕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을 위해 허가받지 않고 일했다는 이유로 스파이 혐의를 받았던 수미도 카메오로 등장한다. 스파이라는 가면만 걷어내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영화 <용의자>의 탈북 공작원들이 국가정보원의 보이지 않는 무력수단으로 북에서 온 사람을 잡으러 다니는 일을 한다. 왜, 살아야 하니까... 이이제이의 전형을 본다. 한편으로 인간이 나약하기도 하지만, 제 살길을 찾기 위해서는 서슴없이 살인도 한다. 인간의 이중성, 악마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영화<야차>에서 중국 선전을 중심으로 각국의 스파이들이 활동하는 무대였는데, 이중 스파이가 될 확률이 높음을 읽어낼 수 있다. 


북의 김동식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남파 공작원 선발, 김일성 정치 군사대학 등지에서 10년 동안 교육을 받았다. 적구화 교육(남한 사회적응을 위한 말투를 비롯하여 생활양식과 인기 TV 드라마까지)까지 받았다. 아무튼, 결론은 남쪽에서 체포된 것이다. 한편 정구왕 소령은 중국 단둥에서 1998.3.13. 휴민트(민간 정보원 혹은 협력자)의 함정에 빠져 북으로 끌려가 이중스파이 역할을 강요받다가 220일 만에 귀국한 한국 초유의 사건(CKW-정구왕사건), 그의 공작 활동은 블랙 요원으로 북한 피랍, 탈출 및 귀환이며, 주요임무는 북, 중 접경지 동향파악과 현지 휴민트 포섭과 관리, 북한 장교 귀순 유도 등 이었다. 


토사구팽?


북의 스파이 김동구는 북의 고정 스파이 이선실을 무사히 북으로 데려간 덕에 “영웅”칭호를 받았다고, 그는 10년 동안 남파 공작원으로 특수 훈련을 받은 북의 소중한 자원이었지만, 김부겸 포섭 실패 등으로 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했다. 스파이의 임무 수행이 이리도 어설플까 싶은 대목도 다수 보인다. 정구왕 역시, 휴민트의 배반으로 북에서 보낸 자들에게 북으로 끌려갔다 돌아왔다. 이중스파이활동을 하기로 하고, 정보사는 그를 군무원으로 군에서 내보냈다. 한번 정체가 드러난 스파이는 두 번 다시 쓸 수 없으니, 영화<베를린>에서 화이트 요원 하정우의 제거 이유도 황당하지만, 진짜 그런 것인가, 스파이세계의 참모습을 알 수 없지만, 합리적인 추론이 자주 빗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꼬꼬무다. 


남과 북의 스파이 씁쓸한 모습, 개운치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말은 틀린 말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이들은 모두 스파이다. 그 정형으로 시야를 좁히려는 한 때문에 스파이는 보통사람과 전혀 다른 아주 완벽히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고, 또 그렇게 이미지화돼 있다. 


김동식의 전향이유, 북한에서 교육받을 때 남한 사회는 썩었다고 그런데 남한에 와서 보니 그렇지 않았고, 자유롭게 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해도 처벌받지 않았다, 북한에서 노동당 간부 경험 또한 전향을 생각하게 된 계기였는데, 신발 공장을 감독하면서 북한의 실상을 보게 됐다고, 남한에서 잡힌 부부 스파이가 ‘북한에 있는 당신 가족이 모두 숙청됐다’라고 전한 말이 결정적이었단다. 김동식처럼 인간 병기로 만들어진 귀중한 남파 공작원의 사상과 신념에 대한 검증을 그렇게 소홀히 했을까?, 남한 교도소에 갇힌 빨치산 소년병은 끝내 북으로 송환해달라고 그렇게 해서 북으로 갔는데, 그들에게 사상과 이념은 무엇이었을까? 김동식의 남한 정세파악과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얕았을까?, 


정구왕의 역시 군무원으로 정년까지 근무하고 나와, 이제 세상에 내 억울함으로 호소하겠다고, 그는 제대로 된 스파이 훈련을 받은 걸까?, 마치 영화<공작>처럼, 상사원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휴민트를 관리했다는데, 혼자서 활동하는 걸까, 팀은 없는가?, 북으로 끌려가 어떻게 하든 남한의 영관급 장교가 귀순했다고 하면, 정치적 이용 거리로서 가치가 있었을 텐데, 그렇게 풀어줬다. 모호한 태도로...


이 책을 읽는 동안 혼란스러웠다. 스파이의 모습은 지옥의 야차나 살인 병기라는 이미지보다는 그저 보통사람으로 사람들 틈에 제대로 숨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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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는법, 세속적인 지혜의 기술 - 초역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
발타사르 그라시안 지음 / 도서출판 더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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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법, 세속적인 지혜의 기술


이 책은 출판사 더북의 기획, “현대인을 위한 초역 필독서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쉬>를 통해, 자기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점을 되새기기도, 한편으로 동양고전을 찾는 이들에게 노장사상, 특히 노자의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점, 롤모델을 좇아 그를 흠모하며 그처럼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죽은 이들도 많다. 현대 사회는 역사의 반복처럼 예전과는 다른 요인으로 “불안의 시대다”, 그라시안은 “올바르게 살지 말고, 현명하게 살아라”라고, 대체 올바르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현명하게 산다는 건 어떤 것인지, 이를 화두 삼아 책을 읽어봤다. 


17세기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성직자인 그라시안의 눈에 비친 시대, 해가 지지 않는 태양의 제국 스페인은 잦은 전쟁의 피로 때문에 절정기를 지나 사그라지고,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런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또 어떤 게 필요했을까?, 책 소개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쌍벽을 이룰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튼 약한 처지의 인간들에게 들려주는 세상을 지혜임은 분명하다. 강한 자들은 이런 이야기가 필요 없으니, 세상의 중심은 그들이고, 세상 또한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주변부로 밀려나, 생명마저 위태롭게 된 사람들이 기댈 곳은 어디였을까? 17세기 교회는 아마도 그런 역할을 하기에는 이미 신뢰, 믿음을 잃어버렸으니, 조정래 소설 제목<정글만리>처럼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정글을 헤쳐나가는 시대, 그들에게는 어떤 것들 필요했을까? 


책은 스페인어가 아닌 현대 영어 번역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17세기 스페인어와 그라시안의 글쓰기 스타일이 독특했던 모양이다. “고전”반열에 올려놓아도 좋을 듯하다는 제현의 판단을 존중해야지... 


구성은 2부 14장으로 돼 있고, 1부는 ‘삶의 지혜와 내면의 성찰’로 지혜로운 삶의 기본원칙에서 자신을 완성하는 법까지 운명을 다스리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신중함과 결단력, 그리고 변화와 성장의 힘을 통해 완성에 이르기까지를, 2부는 ‘성공과 균형의 길’에 새겨야 할 것들을 실었다. 인간관계에서의 지혜, 내면의 강점 발견하는 법, 성공으로 이끄는 행동, 품격있는 삶의 원칙, 도전과 균형의 길, 올바른 판단과 신중함, 끊임없는 자기 개선, 완벽함의 추구로... 각 장은 키워드별로 한쪽 분량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라시안의 눈에 보였던 것들 “조심해야 할 함정들”과 “꼭 지키고 해야 할 것”


2부 14장에 실린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목차를 아주 자세하게 적어두었는데, “올바른 판단과 신중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대, 우리는 그라시안에게 어떤 가르침을 얻어야 할까, 우선 자제다. 이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다. 독특함은 그라시안의 눈에는 차별화가 아닌 결점으로 보였다. 튀면, 모난 돌이 정 맞듯이, 좋은 것도 칼날 쪽을 잡으면 상처를 입고, 해로운 것도 칼자루 쪽을 잡으면 보호받는다. 양날의 검이랄까? 


그라시안이 말하는 “품격있는 삶의 원칙”이란, 진정한 지혜는 어리석음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이 대목은 소크라테스가 왜 철학자로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가와 관련된다. 그가 스스로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라시안의 혜안이 돋보이는 곳이다. 대담함은 지혜를 돋보이게 하고, 완고함보다 유연함이 더 큰 가치를 만든다. 격식보다 내실을 우선하라. 남의 문제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을 경계하라. 400년 전에 그가 보고 느끼고 후세에 남겨야 할 교훈과 경계라면 지금도 통한다. 변함없이 말이다. 자신을 스스로 들어낼 때와 감출 때를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라고, 동양의 고전에서 나온 듯한 기시감을 떨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꿰뚫어 본 때문인 듯, 이런 걸 "보편성"이라면 보편성이라 말해야겠다. 


도전과 균형의 길에서


그라시안이 전하는 말, 행동은 삶의 본질이고 말은 삶의 장식과 같다. 탁월함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실력과 성취로 입증되는 것이다. 쉬운 일에 방심하면 실패를 할 수 있고, 어려운 일에 겁먹으면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저속한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그들의 논리에 말려들지 마라. 우연히 일어나는 감정의 동요를 경계하라. 


끊임없는 자기 개선


시작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곧 능력과 의지의 증명이다. 비둘기의 순진함과 뱀의 교활함을 겸비하라, 호의를 베풀되, 호의를 빼앗기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평범함을 넘어서 독창적으로 생각하라. 변명은 요청받기 전에는 하지 마라. 때로는 반대로 생각해야 진실을 볼 수 있다. 선을 베풀 때는 적절함과 균형이 중요하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예속되지 마라. 남들에게 쉽게 파악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라. 작은 불행도 가벼이 여기지 마라. 인간관계를 끓을 때도 품위를 유지하라, 자신의 잘못을 떠넘길 대상이나 불행을 함께 짊어질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 모욕을 칭찬으로 바꿀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말고, 누구도 너에게 예속되지 말게 하라. 


니체에 왜 그라시안을 “유럽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도덕률을 제시한 인물”이라 평가했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인생의 훌륭한 지침서”라 했다고... 인생 지침의 고전이다.


자신의 잘못을 떠넘길 대상, 불행을 함께할 사람을 곁에 두라고. 이 무슨, 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정치 세계의 불문율과도 통하지 않는가,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으나, 내 삶의 방패로 검으로 “모순”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만은 확실해질 듯하다. 이 책을 읽는 방법, 목차에서 우선 맘에 드는 제목을 골라 읽어라 한쪽 분량이며 이미 목차에서 그 내용을 짐작게 해주기에,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는 정도의 수고다. 어쩌면 이 세속의 지혜가 헬조선을 살아가는 나침판이 돼 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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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말하는, 버려야 할 것과 버텨야 할 것
제이한 지음 / 리프레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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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니체가 말하는 “버려야 할 것”과 “버텨야 할 것”에 관한 사유


이 책의 지은이 제이 한의 리프레시에서 출간한 <군주론>의 공저자다. 그는 이 책을 니체 철학을 해설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니체의 사상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며, 어떤 기준에서 벗어나야 하는지, 이른바 자신의 삶에 관한 태도 혹은 자세, 무의식 가운데 몸에 밴 것들 이를 고정관념이랄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던 것들을 소환하여 곱씹어보고 따져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책 구성은 3부 9장이며 1부(통찰)‘새로운 시선으로 삶을 바꾸다’ 에서는 기존가치들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되돌아보며, 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지를 살펴본다.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법, 그리고 2부(변혁)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힘’에서는 기존 틀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한다. 3부(재정립) ‘더 강한 나를 만들자’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재정의하고 나아가 세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실천법을 담았다. 각 장 끝에는 “실천적 조언”이 실려있다. 이 책과 최근에 나온 <위버멘쉬>(떠오름, 2025, 초인, 극복, 초월, 슈퍼맨이 아닌 오버맨이다) 을 비교해가며 함께 읽어보면 입체적인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철학과 사유는 늘 인내와 고통이 따른다는 기존의 관념, 요즘은 하나둘씩 깨지고 있다. 철학은 도구라든지, 철학아 나하고 놀자는 등, 고상한 것이 아닌 우리 삶 속에 들어있는 평범함 속에 감춰진 의미를 톺아보고 들춰내 보임으로써, 철학하고 사유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일견 타당성이 없지는 않지만, 아무튼 이 책의 주제와는 결이 다르니, 제쳐 둔다. 


니체가 전하는 말, 니체 조언의 세계로 여행


지은이는 통찰과 변혁 그리고 재정립의 과정에서 생각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두고 있는데, 꽤 흥미로운 접근법이다. 통찰 편에서는 새로운 틀을 깨고 본질을 마주하라는 의미, 기존의 가치와 도덕을 생각 없이 받아들여 나의 가치체계 안으로 들이는 순간, 스스로 열린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선 도덕과 가치의 기원을 의심하라. 즉 나 자신을 통찰해보는 것이다. 극복과 초월 워버멘쉬를 하는 것이다(책 35~37쪽)


변혁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시련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되겠지, 어려우니 피하잖아 아니라 정면 돌파다. 제아무리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조선 선조때 문인 양사언의 시조다) 노력하면 안 될 게 없건만 사람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은이는 초인이라고 그대로 쓰는데, 초인이라 해석하면 아무래도 한자문화권에서는 불세출의 영웅이 먼저 떠오른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자기 극복, 즉, 나만의 경계를 돌파한 사람인 즉, 슈퍼맨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니 이를 초월 혹은 극복이라 새겨도 좋을 듯하다. 


재정립은 또 어떻게 하는가?,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다. 흔히들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 자리를 남에게 내어주는 삶,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다고 내가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됐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산다는 말이다. 지은이는 삶의 주도권을 쥐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라고 한다. 실천적 조언에는 ‘이 순간을 온전히 긍정하라’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의 책<몰입과 진로>(해냄, 2018) 은 청소년의 진로에 관한 것이나 창조성과 자기실현의 기회,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등 또한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삶을 긍정하는 태도에서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이는 체념이 아니라 능동적인 개척이란 의미로 새겨야 한다. 지금 환경이 완벽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찾는 연습을 해라. 현실 불평보다는 하루 동안 현실 속에서 기회를 찾는 연습을 해보라. 과거는 과거일 뿐,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현재에 충실하고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라. 이게 바로 “행복”이다. 남과 비교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 삶을 실험하고 자기만의 길을 정하라, 이를 통해 자기 초월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비교하는 순간, 내 인생의 주인공 자리를 남에게 내어주는 꼴이니...


니체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은 닮은 구석이 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자각과 인식이 그의 삶의 중심을 잡는 것이며,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노자의 자중자애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노장사상을 니체 철학으로 재해석하려는 연구(이상옥, “도가의 철학성 소고-니체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도교문화연구, 2011, 35호, 201쪽)는 노장과 니체의 상대적인 이론과 비교 융합 가능성을 검토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늘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한 장씩 되새겨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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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공화국 -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의 수단이었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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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강준만의 <법조공화국> 그들만의 리그는 인제 그만


    강준만이 작심하고 법조계를 향해 비판을 칼날을 인정사정없이 들이댔다. 그에게는 유전무죄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4.18. 임기를 마치는 헌법재판소장 대리 문형배 재판관의 인사청문회때 국회에서 답변에서 “전관예우는 법 안에 있다”는 취지로 “전관예우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현직 재판관의 인식이 이러하다. 그리고 영리목적의 변호사는 개업은 하지 않겠다고 했댜. 고향에 내려가서 무료 법률지원 활동을 하겠다고... 


    이 책의 구성은 머리말에서 10대 0, 선악 이분법을 넘어 서로 포문을 열고 6장에 걸쳐 법조 공화국의 전방위적으로 톺아보면서 “탄핵”한다. 특히, 4장~6장은 “전관예우”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데 이는 꽤 중요하다. “전관예우 폐지, 헌법개정운동본부(2020년 설립)”가 활동하고 있을 정도다. 우선 1장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의 수단이었다’ 에서는 말 그대로 정의보다는 출세 수단이 된 법이라 정곡을 찌른다. 진보주의 민주주의 기수들이라고 불렸던 이들조차도 역시 법조 특권 주의를 누린 사람들이라고 밑바닥부터 훑는다. 2장 ‘소용돌이 사회가 만든 법조 특권 주의’ 에서는 그 원인과 현상을 미디어에 실린 글들을 인용하면서 따져 묻는 한편, 법조 개혁은 증오와 혐오로 이루어질 수 없음도 냉정하게 짚고 있다. 3장 ‘서울대 법대 정치인은 왜 실패했는가?’에서는 서울법대 공화국의 파탄을, 정치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한다. 아무튼, 삼권분립이 맞나 싶을 정도로 판, 검사들이 국회의원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 역시 기이한 현상이다.


    4장 ‘왜 전관예우는 사라질 수 없는가?’ 에서는 전관예우는 법조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의 모든 전관예우를 동시에 다루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법관 출신 법관 연봉 27억” 이 금액은 후불제임금 성격이다. 그렇다면 어떤 행위를 해야만 이 후급 임금을 받을 수 있을까?, 떨칠 수 없는 유혹이다. 파리가 꼬이듯 말이다. 전관예우는 “윤리도 법도 모두 비웃는 요술 단어”라고 지은이는 평한다. 


    이어서 5장 ‘유사종교적 현상이 된 전관예우’에서는 대형로펌은 보이지 않는 손, 숨은 힘이냐고 질타한다. 이재명 로펌이 된 민주당에 이르기까지 권력층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전관예우, 이를 폐지하는 것은 혁명적이라 할 수밖에 없음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6장 ‘국민적 신뢰도 추락에 둔감한 사법부’ 국민에게 재판부는 공정하며 믿을만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바로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아주 특이한 나라 <법조공화국>이다. 


    강준만의 <법조공화국>, 검찰 공화국이란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정확한 실상을 반영한 것이 법조다. 소년천재들, 왜 정치판은 그들만의 리그가 됐을까, 강준만의 그들이 자유직업이기에 짤려도 “변호사”잖아, 박원순도 문재인도 그렇게 했듯이, 


    사법 서비스 질 향상과 법조인의 인성 교육을 위한다는 로스쿨은 실패했고, 


    청렴결백 운운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 로스쿨이 왜 생겼지? 사법 서비스가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위해 수임료를 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시골까지 방방곡곡 사법 서비스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겠다. 법 기술자보다는 인성을 갖춘 법률가가 필요해서 로스쿨이 필요했다고, 그렇다면 로스쿨은 실패한 것이다. 사법시험은 나이도, 학벌도 성별도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는데, 로스쿨을 나와야만 법률가가 될 수 있다니, 이 또한 기술지상주의의 또 다른 현상이다. 지방대 로스쿨에서 반수하여 수도권으로 구체적으로는 SKY를 향해, 실제 대형로펌과 판, 검사임용에서 이 세 학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니...로스쿨이 제대로 기능하는지,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에는 사법시험이,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면 과거에 합격한 길밖에 없었던 조선 시대처럼 여전히 왜곡된 유교의 질서가 DNA에 각인될 정도로 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제는 올라갈 사다리마저 끊어지고,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을 만큼 말라버렸다. 


    왜 법조인이 정치판을 휩쓰는 걸까?


    30년 동안의 육사판 정치, 1992년 김영삼 때부터 시작된 서울법대판 정치판 22대(2024년) 61명의 국회의원이 늘 15~20퍼센트, 한때 민주당의 외부인사 영입의 30퍼센트를 차지하기도... 변호사가 직업으로서 정치인이 되기에 좋은 조건임은 부정할 수 없다. 정치에서 밀려나더라도 변호사로 개업하면 되니... 이런 환경적 요인은 다른 나라와 다른가, 별로 그렇지도 않다. 일본, 대만의 경우를 보더라도 상황이 다르니, 근본문제는 “전관예우”와 직결됨을 알 수 있으니, 미국을 들먹이는 예도 있지만, 법조일원과 법조삼원의 차이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며, 판, 검사가 선출직임도 헤아리지 않는 극히 형식적 비교일 뿐이니. 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가면 탱자가 되듯이


    왜 전관예우 금지를 헌법에 명시해야 하는 걸까?


    강준만은 이 책의 4장~6장까지 유사종교 수준까지 변한 이유를 논하고 있는데, 나아가서는 법조 폐망론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한국 사회가 법조 공화국으로 변한 주요한 이유는 “전관예우”풍토 때문이다. 토양과 작물의 관계처럼 말이다. 


    전관예우란, 전직 관리에 관한 예우를 뜻하지만, 오늘날 이런 의미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음습한 어둠의 낱말이 돼버렸다. 좁게는 전직 판사 또는 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하여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등 특혜를 주는 일이라 새기는데, 이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넓게는 고위 공직에 있었던 인물이 퇴임 후 기존 업무와 연관된 기업 등에 재취업한 뒤 전관의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으로 고위공직자까지 포함한다. 


    전관예우는 고유명사가 돼버렸기에 전관 특혜라는 의미를 담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예우와 전관예우가 같은 뜻으로 오해할 수 있어서 ‘전관 특혜’라고 하자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의례적인 비판 정도로 무너질 수 없는 구조적, 역사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왜 전관예우 금지를 헌법에 명문의 규정을 두어야 할까? 헌법 어디에도 법조 공화국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현실은 있다. 그래서 전관의 범위를 정하고, 구체적으로 판, 검사로 임용된 경우에는 변호사가 될 수 없음을 못 박아두자는 것이다. 법조인에게 어떤 특권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헌법에 분명히 밝혀두어야 사회가 바뀔 것이다. 앞에 언급한 문형배 재판관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그는 “전관예우”는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이재명은 전관예우는 없어야 한다면서도 전관예우에 기대는 모습은 모순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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