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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는법, 세속적인 지혜의 기술 - 초역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
발타사르 그라시안 지음 / 도서출판 더북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법, 세속적인 지혜의 기술
이 책은 출판사 더북의 기획, “현대인을 위한 초역 필독서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쉬>를 통해, 자기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점을 되새기기도, 한편으로 동양고전을 찾는 이들에게 노장사상, 특히 노자의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점, 롤모델을 좇아 그를 흠모하며 그처럼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죽은 이들도 많다. 현대 사회는 역사의 반복처럼 예전과는 다른 요인으로 “불안의 시대다”, 그라시안은 “올바르게 살지 말고, 현명하게 살아라”라고, 대체 올바르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현명하게 산다는 건 어떤 것인지, 이를 화두 삼아 책을 읽어봤다.
17세기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성직자인 그라시안의 눈에 비친 시대, 해가 지지 않는 태양의 제국 스페인은 잦은 전쟁의 피로 때문에 절정기를 지나 사그라지고,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런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또 어떤 게 필요했을까?, 책 소개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쌍벽을 이룰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튼 약한 처지의 인간들에게 들려주는 세상을 지혜임은 분명하다. 강한 자들은 이런 이야기가 필요 없으니, 세상의 중심은 그들이고, 세상 또한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주변부로 밀려나, 생명마저 위태롭게 된 사람들이 기댈 곳은 어디였을까? 17세기 교회는 아마도 그런 역할을 하기에는 이미 신뢰, 믿음을 잃어버렸으니, 조정래 소설 제목<정글만리>처럼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정글을 헤쳐나가는 시대, 그들에게는 어떤 것들 필요했을까?
책은 스페인어가 아닌 현대 영어 번역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17세기 스페인어와 그라시안의 글쓰기 스타일이 독특했던 모양이다. “고전”반열에 올려놓아도 좋을 듯하다는 제현의 판단을 존중해야지...
구성은 2부 14장으로 돼 있고, 1부는 ‘삶의 지혜와 내면의 성찰’로 지혜로운 삶의 기본원칙에서 자신을 완성하는 법까지 운명을 다스리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신중함과 결단력, 그리고 변화와 성장의 힘을 통해 완성에 이르기까지를, 2부는 ‘성공과 균형의 길’에 새겨야 할 것들을 실었다. 인간관계에서의 지혜, 내면의 강점 발견하는 법, 성공으로 이끄는 행동, 품격있는 삶의 원칙, 도전과 균형의 길, 올바른 판단과 신중함, 끊임없는 자기 개선, 완벽함의 추구로... 각 장은 키워드별로 한쪽 분량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라시안의 눈에 보였던 것들 “조심해야 할 함정들”과 “꼭 지키고 해야 할 것”
2부 14장에 실린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목차를 아주 자세하게 적어두었는데, “올바른 판단과 신중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대, 우리는 그라시안에게 어떤 가르침을 얻어야 할까, 우선 자제다. 이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다. 독특함은 그라시안의 눈에는 차별화가 아닌 결점으로 보였다. 튀면, 모난 돌이 정 맞듯이, 좋은 것도 칼날 쪽을 잡으면 상처를 입고, 해로운 것도 칼자루 쪽을 잡으면 보호받는다. 양날의 검이랄까?
그라시안이 말하는 “품격있는 삶의 원칙”이란, 진정한 지혜는 어리석음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이 대목은 소크라테스가 왜 철학자로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가와 관련된다. 그가 스스로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라시안의 혜안이 돋보이는 곳이다. 대담함은 지혜를 돋보이게 하고, 완고함보다 유연함이 더 큰 가치를 만든다. 격식보다 내실을 우선하라. 남의 문제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을 경계하라. 400년 전에 그가 보고 느끼고 후세에 남겨야 할 교훈과 경계라면 지금도 통한다. 변함없이 말이다. 자신을 스스로 들어낼 때와 감출 때를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라고, 동양의 고전에서 나온 듯한 기시감을 떨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꿰뚫어 본 때문인 듯, 이런 걸 "보편성"이라면 보편성이라 말해야겠다.
도전과 균형의 길에서
그라시안이 전하는 말, 행동은 삶의 본질이고 말은 삶의 장식과 같다. 탁월함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실력과 성취로 입증되는 것이다. 쉬운 일에 방심하면 실패를 할 수 있고, 어려운 일에 겁먹으면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저속한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그들의 논리에 말려들지 마라. 우연히 일어나는 감정의 동요를 경계하라.
끊임없는 자기 개선
시작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곧 능력과 의지의 증명이다. 비둘기의 순진함과 뱀의 교활함을 겸비하라, 호의를 베풀되, 호의를 빼앗기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평범함을 넘어서 독창적으로 생각하라. 변명은 요청받기 전에는 하지 마라. 때로는 반대로 생각해야 진실을 볼 수 있다. 선을 베풀 때는 적절함과 균형이 중요하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예속되지 마라. 남들에게 쉽게 파악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라. 작은 불행도 가벼이 여기지 마라. 인간관계를 끓을 때도 품위를 유지하라, 자신의 잘못을 떠넘길 대상이나 불행을 함께 짊어질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 모욕을 칭찬으로 바꿀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말고, 누구도 너에게 예속되지 말게 하라.
니체에 왜 그라시안을 “유럽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도덕률을 제시한 인물”이라 평가했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인생의 훌륭한 지침서”라 했다고... 인생 지침의 고전이다.
자신의 잘못을 떠넘길 대상, 불행을 함께할 사람을 곁에 두라고. 이 무슨, 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정치 세계의 불문율과도 통하지 않는가,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으나, 내 삶의 방패로 검으로 “모순”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만은 확실해질 듯하다. 이 책을 읽는 방법, 목차에서 우선 맘에 드는 제목을 골라 읽어라 한쪽 분량이며 이미 목차에서 그 내용을 짐작게 해주기에,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는 정도의 수고다. 어쩌면 이 세속의 지혜가 헬조선을 살아가는 나침판이 돼 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