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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엑시트 - 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왜 우리는 탈출도 못 하고 안착도 못 하는 엉거주춤 일까,
이 책은 지은이 이철승의 <불평등 3부작> “불평등의 세대” “쌀 재난 국가”에 이은 완결판이다. 소셜 케이지가 무엇이고, 어떻게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소셜케이지가 만들어졌는지, 앞으로 이 소셜케이지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불평등 세대, 386세대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분석, 동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 구조를, 또 이러한 불평등 구조의 기원은 ‘벼농사 체제’라는 앵글을 통해 추적했고, 이 책에서는 인공지능, 저출생과 고령화, 이민이라는 구조적 변동과 그 변동의 힘들이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라는 기존의 제도 및 구조와 충돌과정에서 생성되는 불평등 구조를 분석하고 개인적 혹은 집합적 대안으로서 엑시트 옵션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엑시트 즉, 이탈, 탈출, 안착, 속박의 메커니즘을 사회과학 방법론에 따라 들여다본다. 그는 “인간”에 관한 가정을 한다. 이른바 연구방법론에서 쓰는 조작적 정의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주민과 정주민의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있다. 톰 하트만의 <ADHD 농경사회의 사냥꾼>(또다른우주, 2024)에서 지적한 농경사회에서 유목민은 돌연변이일 수밖에 없다. ADHD는 사냥꾼의 후손이다. 그들은 계속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음식을 찾고 위협과 위험이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인간”은 이주와 정착, 농경과 유목 혹은 사냥의 유전자가 함께 작동하는 “인간”을 상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탈출을 생각하는 것은 자유민의 기억 곧 사냥꾼의 DNA가, 집에 돌아가 편하게 쉬고 싶다는 심리는 정주민 곧 농경민의 그것이 혼합돼있기에. 오늘은 편안하게 쉬지만, 내일이면 또다시 여행과 탈출이 공존하는 것이다.
노동의 현실로 눈을 돌리면 어떨까? 수십 년을 뼈 빠지게 일한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왜 이토록 엑시트 옵션이 없는 것일까?, 라는 문제의식에 답하는 허시먼의 세 가지 옵션, ‘탈출, 저항, 충성’ 중 사회과학자들은 두 번째 옵션인 ‘저항’에 초점을 맞춘다. 자본주의 종말을 외친 공산당 선언, 국가와 사회혁명, 국가권력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등을 말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첫 번째 옵션인 ‘탈출’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 이유를 발전된 사회일수록 매우 자주, 다른 둘 보다 매력적인 옵션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충성은 착취의 또 다른 얼굴, 일란성 쌍둥이다. 충성은 착취라는 잠재적 배신의 가능성에 자신을 스스로 노출하는 것이다. 온몸을 갈아 넣어 평생 일하던 곳이라도 필요 없으면 가차 없이 날려버린다. 지은이는 불평등한 미래의 닭장 즉, 소셜 케이지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에 천착한다.
또한, 정주와 탈출, 현실적으로 탈출을 좌절시키는 기제가 바로 소셜 케이지다. 이는 한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나 집단, 조직을 탈출하고자 할 때, 이를 좌절시키거나 단념시키는 심리적-제도적-환경적 장벽이다. 즉, 내가 현재의 사회적 관계와 구조를 이탈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도록 만드는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인센티브 메커니즘 제도의 총체다. 주요 변수는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 정주 유인 기제와 탈출 옵션이다.
책 구성은 4장이며, 1장 ‘케이지에서 나가기’- 엑시트 옵션의 확장, 2장 ‘케이지 업데이트- 인공지능과 협업’, 3장 ’케이지의 재생산-벼농사 체제와 저출생‘, 4장 ’케이지 열기- 이민과 불평등‘, 마지막 결론으로 –새로운 케이지 룰 만들기가 실려있다.
이 책은 새롭게 떠오르는 균열과 불평등 구조, 세 가지 불평등의 축, 인공지능과 자동화, 저출생, 이민 등 5가지 키워드와 소셜케이지의 충돌을 들여다본다.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3장 케이지 재생산이다. 벼농사 체제와 저출생의 상관관계, 동아시아 사회에서 일어는 저출생과 국가들의 급격한 인구 감소, 결혼을 위한 경쟁과 경쟁하기 위한 비혼 등, 일련의 체제와 불평등의 상관관계를 하나하나 톺아보는 모노그라피라 할 수 있다.
엑시트 옵션과 불평등
국내 노동시장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 지은이는 대기업 즉 내부노동시장에서 정형화된 그 기업의 기술 등, 특화된 분야는 쉽게 다른 회사로 옮겨갈 수 없는 구조이기에 20~30년씩 근무하게 된다. 그리고 금융위기 때 유행한 ’사오정‘ 사십 대 중반에 회사에서 정리해고로 쫓겨나면 이전해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치킨집을 여는 외에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는 수직 계열로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2~3년 사이에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경향 또한 강소기업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엑시트 ’탈출‘불가능의 기제인 소셜 케이지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이주민은 어떻게 도시의 인구구성과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는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민국가 미국, 이주자들이 모여 만든 나라, 배타적 민족 공동체의 결성에서 해소로 또 갈등으로, 한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벼농사 역시 이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지은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으로 무역 시장이 통합되고 금융화와 외국의 직접투자가 늘고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노동시장에서 경쟁이 심해지면, 이 모든 현상은 분리의 힘의 물질적 기초로 작용한다. 이들의 힘이 강해질 때, 인종, 민족 사이에 차별과 계층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식과 육아 휴직의 사회보험화
진짜 현실로 가능해질 수 있을까? 육아 휴직은 아이를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한다면, 무자녀이거나 비혼의 경우는 어떨까, 안식까지를 포함하면 출산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도 상대적 박탈감, 차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안식과 육아 휴직 비용의 사회보험화는 자본의 저항을 무마시키고, 장기 휴가를 통한 재생산 혹은 재충전 활동을 권리화함으로써 출산이나 육아 활동에 새겨지는 일터에서 낙인을 없애는 데 유효하다. 누구에게는 출산, 또 누구에게는 여행, 또 다른 이에게는 글 쓰는 일일 수 있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어떻게 하면 개인들이 쉽게 엑시트(탈출)할 수 있는 사회, 열린 노동시장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바람과 상상, 그리고 현실 적용 가능한 이론들을 이 책에 풀어서 설명했다. 전체로서 하나이지만, 따로 떼어내어 곱씹어보고, 깊은 궁리를 해도 좋을 문제 제기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