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가능했던 위험한 상황과 사례들
마치 의사 한 개인이 게을러서 아니면 의학적 처지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서, 기구를 잘못 다뤄서, 서투른 수술을 해서라고 생각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의학 기술이나 기구는 만능이 아니다. 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있다. 지은이가 지적하는 점도 바로 이 대목이다. 의료실수를 논하는 장면은 다양한 각도에서 전개될 수 있다. 사망사고에 관한 의료과실 여부를 따지는 민사손해배상 사건에서 의료과오의 입증과 그 전환이라는 측면도 있고, 의료과실에 따른 형사소추의 면제, 의료과실의 판단 여부를 다루는 전문가집단 등 “의료실수를 일으킨 의사들”을 주제로 다룰 수 있는 다양한 접근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의료실수에 이르는 과정에서 의사들의 태도를 눈여겨보고 있다. 환자와 의사의 일 대일의 구도가 아니라 의료시스템과 스태프의 조화(협업체계)를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의료서비스는 공급하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일방통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구조가 정립되지 못한 채, 의료진의 수직구조와 환자를 대상화하고, 기술발전의 가져온 기술맹신, 거기에 사소한 오타 같은 사소한 실수가 한데 모여 의료실수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처럼 사망 같은 커다란 의료 사고가 발생하기까지 적어도 29번의 아찔함을 경험했을 것이고, 300번의 미세한 징후가 있었을 것이다. 간호사가 환자를 수시로 돌보지 않아서 찰나에 벌어지는 급한 상황 발생, 전문가 주의가 빚어낸 과신, 협진으로 함께 의견을 모으면 충분한 예방 가능했던 위해의 사례들,
의료실수, 또 하나의 원인 "주요 관계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환자가 메이저 병원, 이른바 Big 병원을 찾는 이유는 최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그 병원의 평판에 기댄 “신뢰” 때문이다. 그러다가 사소한 의료실수로 위험 상황에 놓이게 되면 배신감을 느낀다. 지은이의 표현대로 의학은 사망률과 고통을 줄이는 데는 일정한 기여 수준을 넘어 엄청난 발전을 했지만, 치료가 “위해”가 된다는 점에 관해서는 극히 무신경하기에 상당수의 질병이 예방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놓치고 만다. 그러기에 의료실수와 환자 안전 문제를 함께 놓고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다. 왜 의료실수가 일어나는가를 여러모로 분석했는데, 그중 하나가 “주요 관계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들고 있다. 하루 회진 오전, 오후, 잠깐 들러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고 챠트를 보면서 지시대로 잘 이해되는지만 확인하고 지나가는 의사와는 달리 일하는 시간 동안에 수시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간호사, 하지만 이들 역시도 담당한 환자들이 있기에 환자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당부를 하고 떠난다. 오롯이 병실에는 환자 가족과 지인만이 있을 뿐, 의학지식이 없는 비전문의 환자 가족이나 지인이 환자의 상태를 두고 이러저러하다고 말을 할 때, 전문가들은 그들 말 속에 담긴 신호를 포착해야 하지만, 그냥 귓등으로 흘러넘기고 만다. 지인 중에 전문가가 있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남의 땅에 와서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하느냐는 태도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