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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자유
이재구 지음 / 아마존북스 / 2025년 4월
평점 :
<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
포기할 자유
철학적인 제목의 이 책<포기할 자유>(Freedom to give up)은 작가 이재구의 꿈일지도 모르겠다. 실존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 도피>(Escape from Freedom, 1941)는 인간이 자유를 두려워하고, 때로는 이를 포기하면서 권위주의에 종속되는 심리를 파헤친다. 주어진 자유, 무늬만 자유, 형식적 자유는 어떻게 사람들을 구속하는가, 자유의 역설, 프롬은 자유를 얻은 개인은 더는 전통 공동체에 기댈 수 없게 되며, 고립감, 무력감을 경험한다고 했다. 중요한 대목은 "사람들이 이런 불안에서 탈출하려고,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하고 권위적인 체제나 집단에 종속된다"는 견해다. 그 기제는 권위주의적 성향, 파괴성, 기계적 동조다. 마치, 조선 후기 삼정문란 시기에 가렴주구(苛斂誅求)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땅을 양반 지주에게 바치고, 그들의 울타리로 들어가 보호받는 자발적 노예 상태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과도 같다.
이 소설은 지은이의 자기 회상임을 엿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경제생활에 내몰리고 밑바닥부터 헤쳐나온경험이 녹아들지 않았을까 싶다. 피보다 이념, 이념보다는 돈을 좇는 현대인의 속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데서 그런게 아닌가 미루어 짐직해본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행복해질 권리>(21세기북스, 2025) 에서 현대 사회를 "액체 현대"로 과거 고정된 질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과 그 무엇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소비" "돈" 최고가치를 지닌 사회, 조정래의 소설<황금종이> 곧 돈이 행복의 척도가 된 사회에 대한 거부와 부정의 몸부림이 아닐까, 백숭기의<사르트르를 만나다>(한스미디어, 2025) 에서는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노력, “자유롭게 살도록 선고받은”, “우리는 자유를 그만둘 자유가 없는” 인간이 제대로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를 묻는다. 이렇게 보면 애초부터 포기할 자유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단지, 포기할 자유라는 것은 그저 착각일 뿐이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진지한 철학의 문제는 오로지 자살뿐”이라고 말했다. 공허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마주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첫 번째 충동이 자살이다. 부조리란 세상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카뮈의 말대로 삶은 무의미하고 공허하다. 그가 말한 이방인이란 단순히 낯선 말하는 게 아니라 ‘부조리한 인간’을 일컫는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는 사람,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인간이 아무런 이유 없이 우연히 이 세상에 내던져진 고아 같은 존재라면, 그건 존재의 목적도 원인도 없는 부조리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돈의 위력은 진짜 피보다 진하고, 이념보다 강한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자본과 종교의 프리즘을 통해서 지속 가능한 희망이 있는지를 묻는 이 소설, 금광을 크게 열었다는 형구, 그는 이국땅 카지노에서 20억 원을 몽땅 날리고, “포기할 자유”을 얻었노라고 말하며 호텔 방 창문 아래로 몸을 던지고, 몇 개월이 후에 공개된 그의 유언장에 어렵게 사는 조카들을 비롯한 친인척들에게 지분을 나누어 주라는 문구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는데, 형구의 자식들은 사촌과 친척들을 꾀어서, 자신들의 위치를 고수하려는 이전투구가, 이 중심에 놓여있는 건 “돈” 곧 “황금종이” 우리 사회의 "프리패스"다. 그렇다면 "포기할 자유"는 형구에게만 해당한 것이었을까?, 아니 애초에 그에게는 포기할 자유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내 미현은 자식들에게 말한다.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아빠는 배움도 없이 빈손으로 시작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사업을 크게 키운 분이야..., 아빠는 원효대사의 대자유를, 체 게바라의 거룩한 분노를 사랑했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려 노력했던 분이야... 예수께서도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제자의 배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지. 아빠는 너무 낭만적이고 집안에서 영향력이 너무 커서 형제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 거야. "돈에 영혼을 팔아 버린 사람들이 이 지경을 만들었구나. " 너희들이 지분 10%씩만 받아도 수백억 아니, 천억은 넘을 거야. 거기서 더 욕심내지 말고...”
돈을 벌면,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팔듯, 포기할 자유는 없어진다. 그의 삶은 이제 오롯이 그의 삶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삶과 이어지고, 함부로 포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돈의 양면성이다. 스쿠루지 처럼 돈에 굴복하고, 노예가 됨을 의미한다. 가렴주구를 피하기 위해 제 땅을 양반지주에게 바치듯이 말이다.
작가는 “불행한 가족은 각기 다른 이유가 있지만,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다.”라는 레프 톨스토이 소설<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인용으로 글을 마친다. 권력은 부자 사이에서도 나누어 가질 수 없듯이, 형제 사이의 권력쟁투, 이제는 "권력"의 자리에 들어가는 건 "돈"이라는 씁쓸한 사실을...